| 김영명이란 작가가 일본에게 큰 건으로 하나 된통 당한 바람에 이번 책은 아주 냉정하게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 일본은 현재는 많이 변해있지만 근본부터 뿌리 박혀 있는 의식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화와 칼="">이란 책을 읽으려고 한 번쯤은 시도를 해봤을 것이다. 중도에 포기한 경우도 많겠지만~~ ^^ 이 책 역시 국화와 칼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일본의 부정적인 모습은 한국 내에서도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정도 면에 있어서 일본이 훨씬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한다. 일본이야 말로 정말 우리에게 먼 나라 이웃나라이다. 일본을 비방하기도 모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 조금의 상식을 갖고 덤벼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은 알아가기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책이긴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유지하여, 작가의 주장에 비판하면서 읽어 가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작가가 많이 화난(?)상태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 감정 절제가 안된 부분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국화와> |
| 읽을 책이 없을까 해서 부대 도서함을 봤을때, 주인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책이다. 눈병에 걸렸다가 막 나았던 터라 주인장이 갖고 있던 두꺼운 전문서적보다 가볍게 읽을만한 그 무언가가 필요할 때였다. 제목이 참 재밌지 않은가?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호기심 반, 기대 반에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일본에 객원 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가 있던 저자가 일본에 대해 적은 책이다. 그 1년간 적은 초고를 귀국후 약간의 보충 후 출판한 책이라고 한다. 일단, 이 책, 아니~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때면 주인장은 항시 전제조건을 깔고 본다. '이 책의 전부가 진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장이 직접 일본에 가 보지 않은 이상 단편적인 지식 습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자신이 직접 해 보지 않은 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항상 자기 현 시점, 배경을 위주로 한 주관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사회에 있을때로 그랬고 물론 군대에서도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봐야 그나마 이런 류의 책을 읽는데 주인장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이 서기에 이번에도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책장을 계속 넘겨봤다. 책의 첫 내용은 '일본의 첫인상 : 미국같은 소도시' 였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유행과 패션의 선두 주자이자 서구화가 가장 빠른 아시아권 나라임을 느끼게 했다. 일본이라는 곳을 한번도 안 가 봤고,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기에 주인장이 처음 느낀 일본은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다. 미국에 놀러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미국의 소도시(변두리의 도시)들은 참 푸근하고,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건물들도 정겨워 보인다. 주인장의 친척이 사는 곳도 앨러바마 주의 한스빌이라는 작은 소도시의 외곽 거주지다. 그런데 일본이 그런 느낌이라니 조금 이상했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거리의 풍경이 느껴졌다. 뭔가 서로 맞지 않는 위화감의 나라, 일본. 이 책 첫면에서 접한 느낌이다. 안 그래도 다음 내용은 '모순의 나라 일본' 이었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같다. 경제 대국의 빈약한 국민 생활, 그래~정말 일본은 그런 것 같애, 딱 맞는 말 같다. 예전에 학교에서 스페인史를 배울때가 생각났다. 펠리페2세 치하의 스페인은 강성대국이었으나 중공업 위주의 부국 정책으로 인해 그 나라 국민들은 결국 가난했다고 말이다. 스페인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 웃음이 나왔다. 내심 주인장이 그렇게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 밖의 내용들은 참신한 것들이 많았다. 예전에 '일본은 없다' 라는 책을 봤을때 그냥 흘려 봤었는데 그런 류의 책을 이번에 다시 보니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책 전체적으로 主가 돼는 내용은 일본인의 정신적인 빈곤에 대한 것들이다. 주인장도 이 표현을 좋아하게 됐는데 물질만능주의, 고도 경제성장에 따른 정신적 황폐화, 정신적인 소극적 자세, 서구화에 대한 막연한 외경심, 모순으로 가득찬 생활...막연히 알고 있었던 일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돼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국도 크게 잘난 건 없고 일본도 잘난 건 없다. 그러니 서로서로 잘 하자...라고 말이다. 어차피 동북아시아가 전체 아시아의 주요 지역(HUB)이라고 할 수 있고, 결국 한-중-일 3국으로 그 범위는 좁혀진다. 문제는 이 3국이 합심할때 그 주도 세력이 누가 돼느냐에 따라 아시아의 경영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주인장은 한국(되도록이면 통일한국, 최소한 남-북 연합국가라도)이 그 주도국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 최소한 주체자로서 다른 2국에게 있어 꿀리지는 않아야만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의 이런 바램은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이 책이 3년 전에 나왔고, 이런 국제 정세가 한두해 지속된 것이 아닌걸 감안한다면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은 고요속의 외침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관료 통제 사회 일본, 야쿠자가 정경계를 지배하는 좀 특이한 사회, 그런 일본인들과 같이 걸어나가야 할 한국인, 과연 어떤 대처가 필요한 것일까? 강한 힘? 주인장이 보기에는 강한 힘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 외교가 적합하지 않나 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책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은 일본의 이런 치부를 드러내고 아무리 속내를 파헤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쓴 내용은 자신의 저서(이 책 말고 이전에 나온 다른 책)가 일본측에서 번역, 판매돼는 과정에서 완전히 왜곡당하고 뒤틀려 버렸으며 오히려 번역자에게 훈계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주인장과 같은 독자들은 다 이 부분에서 화가 났을 것이다. 하물며 그 당사자야 어련하겠는가. 물론 저자는 법적 대응까지 불사했지만 일본측에서는 묵묵부답, 요즘 표현으로 그냥 쌩 깠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좋은 점고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물론 나쁜 점이 더 많아 보인다) 같이 나아가자~라고 취지를 잡아놓고는 마지막에 일본의 만행(이건 만행이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책장(마지막)을 넘기고 책을 덮으면서 느낄 것이다. 역시 일본놈들은 이렇다니깐~하면서 가식적인 전범 처리나 위안부 보상 문제를 떠 올릴 것이다. 주인장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다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다. 계몽적인 자세는 솔직히 큰 도움이 못 된다. 보다 현실적인 책이 되어야 한다. '일본은 있다' '일본은 없다' 가 한창 한국 독서계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 독도문제(이건 뭐 수년간 계속된 것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교과서 문제때도 그랬다. 아니, 늘 그랬다. 냄비 정신이라고 불리는 그 현상은 언제나 그랬다. 마치 월드컵 분위기마냥 말이다. 평소 국민들의 인식 속에 이런 불나방같은 사상이 얼마나 더 처박혀 있을까? 한번만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 왜? 국민들이 평소 이런 것들을 생각할리 없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장은 다시 생각한다. 보다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이 괜찮은 책이기는 하지만 책은 지식 전달에만 그치면 안 된다고 본다. 역사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 책의 단점일 수는 없다. 이 책은 분명 일본에 대해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이 책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나아가 신빙성을 부여한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음으로서 얻은 사실들은 많다. 그럼에 느낀 부분 역시 많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이랄까, 그건 역시 얻을 수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고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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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출판되는 일본에 대한 서적의 경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는 일본에게서 배울 점을 역설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본을 까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이런식으로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일본을 객관적으로 그려낸 서적은 그다지 많지 않고(대표적으로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있다), 대부분 이런 두 경향성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일본까기'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가를 특정짓는 국민성이랄까 경향성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동시에 두루뭉실하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특징이 국민 모두에게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몇 %가 그렇다. 라는 수치적인 해석을 가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경향성이 있다. 라고만 표현할 수 있는 그것은 해당 국가의 국민성을 판단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저 관념적인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은 일본인들이 가지는 콤플렉스에 대한 것을 지적하는 객관적인 서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그것 또한 우리 사이에 암묵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 위에 덧씌워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일제치하라는 비극을 겪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일본에 대한 시선이 적대적일 수 밖에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고, '콤플렉스'를 바탕으로 일본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인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콤플렉스를 책 한권으로 엮어낸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물론 저자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경향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설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접한 독자들이 그것을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라고 인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일본인이 가지는 '콤플렉스'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행위-생각에 덧 씌운다는 것도 사실상 어폐가 있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이런 책을 쓴 의도-독자들이 이런 책을 읽음으로서 얻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고, 동시에 상대적인 존재이다. 어떤 분야에서 세계 1위이다. 라고 하는 것 또한 그가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경쟁자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상정할 때 필요로 하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이다.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밌는 것은 이런 비교가 자발적이 될 때 일반적으로 비교의 대상은 자신보다 '떨어지는' 경향성을 가진다. 그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자신이 상정하는 자신의 위치를 높게 가정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못한 존재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단점'을 짚어내는 것은 결국 타인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에게는 그런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알량한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런 지적이 타인에게 그들의 단점을 솔직하게 말해서 고치도록 유도하는 순수한 의도를 지닌다면 다르겠지만, 한국인 저자에 의해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이 그런 의도를 가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명확해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이다. 특히 일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을 욕할 거리를 주는 것. 대중은 그것을 통해 한 때 일본에게 지배당했던(그것은 결국 자존심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자신들의 분노를,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보고 비웃으면서 해소하는 것이다. 이런 감정해소 방법은 분명 저급한 것일 수 밖에 없지만, 동시에 필요하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살아갈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이 불편한 이유는, 작품의 의도가 너무나 눈에 보일 뿐더러, 어떻게든 반일감정에 묻어가 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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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처음 나온 것이 1994년.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이라는 개정판이 아닌 《일본의 빈곤》으로 읽었다. 11쇄판을 구입했으니, 당시 꽤 팔렸던 것 같다. 당최 언제 책을 구입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 94년~95년 사이였으리라 추측해본다. 일단 책의 내용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진다거나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16년이 훌쩍 지난 ‘한물간’내용이라서가 아니다. 틀리건 맞건 저자가 그렇게 판단했고, 느꼈다면 그건 개인적인 그의 생각으로 존중할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 일단 무엇보다, 고작 채 1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그것도 일본의 다양한 지역이 아닌, 동경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머문 경험으로 거창하게도 《일본의 빈곤》이라는 제목을 붙인 용기에 박수. 짝. 그리고 그럼에도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을 다룬 책들이 당시 아주 적었거나, 종류도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생각. 구입 후 한 번 읽었던 책을, 16년이 훌쩍 지난 이제 다시 펼친 이유는 사실, 없다. 다만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고 있었는지, 궁금하긴 했다. 지금도 분명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비단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특이하거나, 연구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부 연구기관을 비롯해 많은 단체에서 북한을 연구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태반이 전혀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대해 그럴듯하게 전문가인양 말하는 이들은 넘치도록 많지만, 정작 제대로 중요한 문제를 꿰뚫어 보는 이들은 드물다. 현직 여당 국회의원처럼 남의 원고를 도둑질해 제 책인양 내는 인간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도둑X. 책의 내용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재미있다.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짧은 일본 체류 기간 동안 나름 많은 것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일본에 머물기 전, 다녀온 후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보완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책은 나름 많은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려 노력했다. 저자가 일본이 빈곤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의 괴리, 부강한 국가와 빈약한 국민 생활의 괴리, 외국, 혹은 외국 것에 대한 숭배가 매우 배외적인 태도와 공존하는 있는 모순 등이다. 모두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다. 일본은 국가가 부유함에도 국민은 가난한 모습을 보여 왔다. 토끼장 국민이라는 비아냥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아울러 아직도 역사 청산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당당한 모습은, 일본의 갈 길이 여전히 멀었음을 보여준다. 12월 14일이면 정신대 할머님들의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이함에도, 여전히 일본은 반성을 모른다. 또한 일본의 서양에 대한 광신적인 추종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갸루는 영어의 ‘걸’을 일본식으로 부르는 말인데, 이는 서양 사람들에게 매우 호의적인(성적인 의미) 일본 여성을 비하해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또한 쓸데없이 노래나 책, 방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등을 남발하는 것에서도 그들의 유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16년 전 저자가 지적한 그러한 유아성이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래보다 다른 것들을 앞세우며 인기를 얻는 아이돌들의 활약, 그리고 그 노래들에 무차별적으로 들어가 있는 영어, 시청률 경쟁을 위해 저질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연예인들끼리 모여 잡담하고 상대방을 헐뜯는 방송이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까지, 어쩜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이제 종편까지 문을 열었으니, 저질 방송은 더욱 판을 칠 것이다. 벗기고, 농담 따먹기하고, 남 비방하고, 대신 깊이는 그 어느 때보다 깊지 않은, 그런 방송들이 판을 칠 것이다. 아, 재벌과 언론 족벌 들을 위한 찬양 방송, 독재자를 옹호하고 미화하는 방송들도 판을 치겠지. 암튼 책에서 저자가 말한 일본의 불쌍한 모습은 현재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저자가 위대한 예언자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 테다. 정말 예측 가능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전히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은 배울 점이 참 많은 나라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경제성장 요인이 무조건 미국의 배경 아래 경제 발전에만 올인할 수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일 수 없다. 분명 국민들은 근면하고, 기업의 문화 역시 단점이 존재하지만, 장점도 있어왔다. 그들의 경제성장은 분명 배울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공격하고 비아냥거리는 가운데에서도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동시에 성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비난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현재에는 더욱 그렇다. 영혼을 잃고, 다만 소비의 동물, 경쟁의 동물로 살아가서는 일본을 능가할 수도 없고, 일본보다 행복할 수 없다. 일본을 따라가는 것처럼 멍청한 짓도 없지만, 일본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유아 같은 행동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그 사이 시끄럽고, 때론 갈등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힘으로 가야 후회가 없다. 저자는 나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영삼 당시 정권이 정신대 문제에 대해 일본에게 공식적으로 사죄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칭찬한 것은 옳지 않다. 덕분에 일본은 1000회가 되도록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할머님들을 무참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은 정말 해선 안 될 짓을 한 거다. 앞으로도 일본은 우리의 이웃나라로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의 어이없는 모습들이나, 꼴통 같은 짓거리에 흥분도 할 것이고, 때론 그들의 치밀함과 근면성에 감탄도 할 것이다. 그렇게 일본과 살아갈 것이다. 정답은 없다. 일본의 길이 있다면, 우리의 길도 있다. 평화적이고 영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며, 모든 이들이 적어도 의식주와 교육, 의료에 있어, 빈부의 차이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 최선이다. 저자의 글 중 꼬집고 싶은 것은 참 많다. 하지만 난 오늘도 자랑스러운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자제 할란다.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가 최소한 그때의 생각에서는 진일보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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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전여옥이라는 여사가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낸 적이 있었다. 그 책의 내용이란 일본인은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유치하고 겁많고 단순한 종족이라 사실 불쌍한 족속들이란 것이 골자..
이번 책의 저자인 김영명은 정치학과 교수이고 따라서 제법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글을 적어놓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 책이 일빠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란 점은 여전하다. ----------------------------------------------------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강조되고 있는 점은 세 가지 정도다.
먼저 우리가 일본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이 사실 거짓이란 것. 가령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기 그지 없는 것이라거나, 일본인이 극히 예의바르다는 점 등등.. 그 허상에 대해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몸으로서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 있거나 일본에 있던 사람들의 다른 증언을 듣자면 이 책 저자의 말이 다소 과장인 것 같긴 하지만, 어차피 간접적인 경험 밖에 일본을 느낄 수 없는 나로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다음으로 일본이 추구하는 작은 미국에 대한 조롱. 일본의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 거리의 풍경은 물론 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따라잡으려 발악하는 그 풍경에 대해 재미있게 이를 그려놓았다.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되지 못하는 그 풍경은 비판이라기 보다는 역시 조롱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전 저작물을 자의로 재단하고 왜곡한 일본의 출판사에 대한 조목조목의 비판. 사실 가장 영양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책의 마지막 4분지1을 장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전혀 개운하거나 일본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최근 출판된 버거슨의 <대한민국 사용후기>를 보면 대한민국 역시 작은 미국이 되려 발악하는 천박한 모습이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외국인의 눈에 의해도 발가벗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에게 과연 잘못될 망정 깨뜨려야할 정도의 코리안 이미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이고 비양식적인 행태는 일본에 국한되는 것인가..
이 책은 아무래도 '일본'을 '한국'으로 치환해 읽기조차 불편한 정도로 격정에 차 있다. 하지만 과연 그 격정만으로 모든 진실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아무래도 이런 책은 쓰지 못할 인물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