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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다. 덕보(德保, 홍대용의 자)는 툭 트이고 민첩하며 겸손하고 아담하며 식견이 원대하고 사물의 이해가 정밀하며······ 일찍이 지구가 한 번 돌면 하루가 된다고 해 그의 학설이 오묘하고 깊었다.”(박지원, 홍덕보묘지명)
홍대용이 세상을 떠난 후,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박지원이 쓴 묘지명의 구절이다. 조선 후기 박지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일군의 지식인들을 일컬어, 그의 호를 따서 ‘연암학파’라고 부른다. 당대의 벌열 가문의 일원이었던 박지원은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을 탐구하면서, 출신을 가리지 않고 뜻에 맞는 인물들과 허심탄회하게 교유했다. 홍대용은 박지원이 가장 가까이 지내던 인물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 글에서 보듯 지구의 자전을 받아들인 홍대용의 주장은 일생의 연구와 사행으로 갔던 북경에서 마주쳤던 서양학문의 적극적인 수용에 힘입은 득의의 학설이었다고 평가된다.
홍대용은 1765년 작은아버지 홍억이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중국의 북경에 갔을 때, 사신단을 수행하는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동행하게 된다. 북경에서 다양한 지식인들과 서양에서 온 신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자신이 탐구했던 과학 이론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북경의 곳곳을 답사하면서 그들의 발전 상황을 목도하고, 더욱이 북경으로 과거를 보러 왔던 엄성과 반정균 등의 지식인들과 필담을 통해 긴밀한 우정을 쌓기도 했다. 약 3개월 동안 꾸준히 만나며 교유했던 그들과 헤어지며 조선으로 돌아올 때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며, 이후에도 중국을 오가는 인물들을 통해 서신을 교환하며 우정을 이어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중에 연행을 갔던 박지원에게 이들을 소개하는 편지를 써주기도 하여, 연암학파와 중국 지식인들의 교유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 책은 북경으로의 연행에 대한 홍대용 자신의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을병연행록>을 현대역으로 소개하는 내용이다. 홍대용은 연행 경험을 한문과 한글로 따로 기록햇는데, 이 책은 그 가운데 한글로 작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조선을 출발하면서부터 북경으로 항하는 여정을 빠짐없이 기록하였고, 북경에서 마주쳤던 문물과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세밀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북경에 머물렀던 2달 동안의 일정을 기록한 내용을 통해서, 홍대용이 느꼈던 중국의 문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인들과의 교유 그리고 천주당을 방문하여 서양의 기술 문명을 접했던 소감 등 다채로운 내용들이 펼쳐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행 과정을 한문으로 기록한 <담헌연기>가 연행 과정에 대해 사실 기록을 충실히 한 것에 비해, 국문본인 <을병연행록>에서는 자신의 신변의 일이나 감회 등을 정감 있게 묘사하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홍대용의 이 방대한 기행문을 읽으면서 감탄한 바는 과연 이 분량의 내용을 어떻게 기록했으며 보관했을까 하는 점이다. 한양을 출발한 뒤 170여 일간의 여정을 마칠 때까지 그가 기록한 내용을 보면 너무 세밀하고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어 마치 그를 따라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심부름꾼, 문지기들한테 선물(일종의 뇌물?)로 무엇을 얼마나 준 것까지 기록되어 있으니 말이다. 볼펜이나 노트도 없던 시절에 이 내용을 일일이 붓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밀한 작업에 더불어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홍대용의 위대성은 실학자로서의 명성에 걸맞는 탐구성이다. 처음부터 사신일행을 따라 가게된 것이 자신의 지식욕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여정 중에 그가 보여주는 호기심과 이를 풀기 위한 열정은 놀라울 정도이다. 북경에서 그가 방문하고 조사한 내용을 보면 얼마나 많은 다리 품을 팔았는지를 알 수 있고, 그가 가진 학문적 기반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책 중반 이후부터 전개되는 북경에서 사귄 중국 선비들과의 대화 내용은 현대인들의 조선중기 실학자의 사상과 사고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아주 사소한 문제들, 즉 복장이나 두발에 대한 것 등에 대해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고담준론(高談峻論)은 가벼운 우리의 대화문화에 대해 반성을 하게 한다. 홍대용은 말이 통하지 않아 그들과 필담을 나누는데 필담을 나눈 종이들을 기록을 위해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기록을 소중히 여겼는가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상당한 분량이고 워낙에 상세한 기록이라 약간 지루한 내용들도 있지만 조선조 사신들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하고 있고, 당시 중국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다만 각종 풍경이나 문물에 대한 모사에서 이를 글로만 설명하니 시각적으로 잘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면이 있다. 이에 대해 보완적으로 후대에서나마 상상도적(?) 삽화를 곁들이면 어떨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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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 단지 한줄로 나오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던 인물, 홍대용, 드디어 그분의 글을 읽게 되었다.
시대를 넘어, 사상을 건너 뛰어 질곡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선각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까?
그런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이책을 읽었다.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뇌하는, 그리고 행동하는 홍대용의 행적이 새삼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연암의 열하일기와 북경에 이른 경로가 비슷하여 앞으로 더 한번 읽으면서 비교해 볼 작정인데, 두책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이책을 읽으면서 덤으로 얻은 것 하나. 인현서원의 기록이다. 정축년에 효종(당시 봉림대군이 심양에 잡혀가는 길에 서원에 참배하고 방명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기사..는 내가 그간 자료로 수집하던 소현 그리고 봉림의 행적이라 무척 반가운 부분이었다. |
| 『을병연행록』의 내용은 잡다하다. 풍속, 풍물(절경), 천문, 지리, 수학, 기계, 음악 심지어 떠도는 소문까지 그 날 보고들은 것들은 되도록 빠지지 않고 상세히 기록한 흔적이 역력하다. 김태준 교수는 이런 점을 당시의 백과전서적 관심에 근거한다고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재미있는 여행기를 일별 엮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야 없으니 몇 가지로 소개한다. 첫째, 尊華攘夷 사상의 허구성 비판이 나타난다. 연행(燕行)은 주지하다시피 중국에 대한 사행을 그 前인 명나라 때까지는 중국 황제를 알현한다는 뜻으로 '조천(朝天)'이라 부르던 것을 청나라 때에는 북경을 연경(燕京)이라 불렀으므로 '연행'으로 바꾼 것으로 그 말뜻에 이미 대청의식이 담겨 있다 할 것이다. 「문물이 비록 변했다고 해도 산천은 의구하고, 의관이 비록 변하나 인물은 고금(古今)에 다름이 없으니, 어찌 한번 몸을 일으켜 천하가 큼을 보고 천하 선비를 만나 천하 일을 의논할 뜻이 없겠는가? 또, 제 비록 더러운 오랑캐라 하더라도 중국에 웅거하여 백여 년의 태평을 누리니, 그 규모와 기상이 어찌 한번 볼 만하지 않겠는가? 만일 "오랑캐의 땅은 군자가 밟을 바가 아니요, 호복을 한 인물과는 함께 말을 못하리라"한다면 이것은 편협한 소견이며, 인자한 사람의 마음 아니다.」(21쪽) 이것은 청나라에 대한 홍대용의 긍정적 인식이 드러난다. 오랑캐라 해서 배척부터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군자의 마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학문을 토론하는 것을 부분을 보면, 대체로 한글본 『을병연행록』은 한문본보다 학문적 토론을 한 부분의 내용이 상세하지 않다. 가령, 초9일 「천주당을 보다」"이때에 수작한 말이 많았으나 다 기록하지 못하였다."(162쪽) 라고 하여 보다 자세한 얘기는 결하고 있다. 그렇지만 간정동에서 만난 청나라 선비와의 교유는 자세하고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홍대용의 관심을 알 만 하다. 그는 애초에 "황성 안은 구경할 곳이 많지만 그중 태학(太學)이 먼저 볼 만하였다.(119쪽)"라고 해서 학자적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또 간정동에서 만난 엄생과의 대화에서 양명학과 상산학에 대한 문답이 오간다. 대체로 중국도 주자를 존숭하는 풍토이나 조선보다는 융통성있다. 그리고 불교에 관해서도 유교에 엄생과 더불어 유교에 미치지 못한 것을 말하며 홍대용은 이이를 운운하며 조선의 군자상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다. 이들은 때로는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도 하며 평생의 지기를 만난 듯 대화한다. 반면, 일찍이 중국에 알려진 허난설헌의 시에 대해 물으니 홍대용은 부인이 비록 시를 잘 한다 할지라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며 오히려 허난설헌이 남편 김성립과 소원하였다하여 그 인간적인 면모를 부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중국의 반생(반정균)은 그의 아내가 시를 짓는 것을 자랑하는 기색을 보이며 또 동방의 창기들 중에서 시를 능히 하는 이에 대해 듣고 싶다고 청한다. 그러나 홍대용은 이에 대해서도 군자의 미목을 어럽힐 뿐이라고 하며 오히려 『시경』의 '관저'와 '갈담'을 운운하고 있다. 다 같은 유학자이나 홍대용은 중국의 선비들보다 더 보수적 면모를 띠고 있다. 홍대용 개인이 이토록 철저한 유교이념을 가진 사람이었을까는 하는 의심도 들지만 보통 타국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몸을 삼가고 말을 조심하기 마련인데, 조선인의 처지로는 청에 대해서 오로지 자신할 것이 바로 위의 정약용의 글에서도 드러나듯이 군자의 나라를 이었다는 것이므로 대화의 곳곳에서 이런 보수적 유학도의 면들이 두드러졌다고 본다. 셋째, 풍속 및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면, 홍대용은 여성의 머리에 꽂은 수식과 상투의 제도가 보고 싶은데 남녀가 다른 까닭에 감히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지 못한다고 염려하나 여성이 괜찮다고 하자 세밀히 여성의 상투의 제도(55쪽)를 살펴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선비가 호기심을 이길 수 없어 체면을 뒤로하고 적극적으로 묻고 살피는 일련의 과정들은 홍대용의 일상 생활에 관심을 둔 실용적인 학문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다. 넷째, 무엇보다 홍대용은 음악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홍대용 개인이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외교의 수단으로서 음악의 중요성도 인정된다. 그러나 유독 음악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 없이 자존심이 대단한 까닭은 특별하다 생각된다. 홍대용은 연극, 마술 등 여러 문화 공연을 보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신이'를 위주로 기술하고 있다. 홍대용이 이런 것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다. 일례로 경극의 여장배우를 보고 옆에 있던 사람이 실제 여자라고 하자, 이미 여장배우인 줄로 알고 있는데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홍대용은 항상 『노가재일기(김가재일기)』을 참고하고 있으니 사전지식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충격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퍼포먼스보다는 과학문명에 대해서일 것이다. 아마도 홍대용의 이러한 태도는 공자로부터 정립된 군자상 때문일 것이다. 음률을 아는 것은 군자를 군자답게 하는 능력이다. 조선에겐 청의 기술문명이 비록 삼전도 굴욕을 안겨주었지만, 조선은 명을 이을 이은 군자의 나라였다. 이것은 중국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명나라에 대해 선진기술로 굴복시키기는 하였지만, 문화적 콤플렉스가 비친다. 종맹이란 사람은 음악으로 접대할 때 매우 신중하게 처신한다. 그리고 도중에 천주관 구경으로 일어서는 홍대용에게 화를 내고 서운해하니 홍대용이 서양측과의 신의문제를 들먹이며 선비된 자로서의 도리로 어쩔 수 없음을 간곡하게 말한 연후에야 그 마음을 풀며 자신의 화가 풀린 것을 증명하려고 천주관으로 악공들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것들이 모두 명이 무너지고 청과 조선은 서로 군자적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심리의 일환으로 보인다. 조선의 선비가 청나라 여행을 어떻게 하고 무엇을 보고 배우고 또 말로만 듣던 청심환 외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
| 홍대용이 사신 일행으로 묻어가 중국을 보고 온 기행문이다. 소문대로 꼼꼼한 기록이다. 하루의 일정, 사람들의 대화, 보고 들은 것, 소감, 외출을 하는 과정 등이 잘 기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책 초입부는 글투가 익숙하지 않아 조금 고전했으나 금방 적응이 되는 편이고, 그 이후로는 꽤 키득대며 볼 수 있다. 홍대용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볼 때 단정하고 깔끔한 면이 많이 보인다. (책을 다 읽고 책 앞에 초상화를 보니 과연 그런 성격일 것 같다.) 그러면서도 농담도 제법 재미나게 하고, 악기 솜씨는 일품이고, 천문에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뭔가를 알려는 열의 또한 대단해서, 천주교당에 가서 서양 신부를 만날 때에는 각 방위의 이름을 서양 언어로 써 보라는 요구도 하고, 낯선 기계를 보면 가만히 살펴 보고 원리가 이렇게 되는 것인지 질문도 한다. 새 악기를 보면 대략 음도 맞춰보고 연주도 해 본다. 단정하면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던 사람인가보다. 후반부는 엄성과의 교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필담으로만 나누는 대화가 매우 정겹고 예의를 다 한 것이라 아주 재미있었다. 네 명, 혹은 다섯 명이 주로 함께 만나는데 각 사람의 개성이 다 달라서 제법 흥미진진하다. 젊은 나이라 그런지 뽐내기도 잘 하고 감동하여 눈물도 잘 흘리는 사람도 있고, 술을 즐겨 만취하는 사람도 있고, 차분하게 벗의 실언을 꾸짖는 사람도 있다. 여기까지가 주요 내용. 지금부터는 사소한 이야기. 1. 청심환 중국에서 청심환을 무척 좋아했는지 매사를 매끄럽게 하기 위한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중국에 갈 때 청심환 수십 개는 챙겨 가야 감당을 했을 듯 하다. 사신 일행의 신분이라 외출이 자유롭지 못 할 때도, 전각에 들어가 이곳저곳 상세히 구경하고 싶을 때도, 새로 사귄 사람에게 마음의 인사를 할 때도 이 청심환은 늘 등장한다. 2. 여성의 문학 활동 엄성과 같이 지내는 중국 선비 김생의 부인이 제법 시를 짓는다며 김생이 자랑을 한다. 이 때 홍대용이 부녀자가 자기 본분을 다 하지 못한다면 자랑이 될 것은 없다고 받는다. 김생이 이에 조선에도 난설헌과 같은 이가 있지 않는가라며 묻자 홍대용은 매우 단호하게 말한다. 남편을 공경하지 못 하였고, 여자의 본분을 하지 못 하였으니 어찌 문장만이 빛나겠는가 하고. 난설헌이 중국에까지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는 것에 괜히 뿌듯해하다 찬물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 발랄하고 다재다능한 멋쟁이 홍대용에게 여자란 그런 존재였다. 홍대용이 내심 가볍게 여기는 김생이 차라리 낫겠다. 3. 명나라를 회고하기 김생과 엄생의 교류에서 김상헌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미 청이 세워진지 꽤 오래된 시점이지만 김생과 엄생은 김상헌의 절개를 칭찬하며 그의 문집 이야기를 한다. 홍대용은 조선이 명에게 의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삼학사 이야기도 한다. (사실 청에 사신으로 간 것을 감안할 때 아슬아슬한 대목이 아닌가 싶었다.) 홍대용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뽐내기도 하고, 김생과 엄생은 자신의 머리 모양을 조금 부끄러워 하기도 한다. 비단 마음을 터놓고 사귀고 있는 둘에게만 이러는 것이 아니다. 한족을 만나면 여지없이 홍대용은 직격탄을 날린다. 내 머리 모양을 보니 소감이 어떠한가? 내 의복을 보니 어떠한가? 상대방은 한스럽고 부끄럽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아아, 그 시절의 홍대용이 이러할진대 광해군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4. 어쩔 수 없는 인간 관계 엄성과 홍대용, 둘만 만난 것은 아니었다. 여럿이 만나는 가운데 특히 둘이 마음이 통한 것이라 형제의 의를 맺게 된다. 다정다감하며 늘 이별할 때 마다 눈물을 흘려 주변을 놀라게 하는 김생에게 홍대용은 따스하면서 따끔한 충고도 해 주지만 엄생에게만큼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여럿이 만나 함께 사귀면서도 더 친한 이와 덜 친한 이, 더 마음이 가는 이와 마음이 덜 가는 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그렇다고 김생을 박대한 것은 아니다. 홍대용은 김생이 구해 달라는 것은 아낌없이 구해 주는 면모를 보인다.) 글투만 익숙해지면 꽤 재미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