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뮤얼 헌틴텅 교수의 [문명의 충돌]이란 저서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나듯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서구문명을 중심에 두고 타 문명을 논하는데 있어 일본의 위치는 이 책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하는 중국에 맞설만한 경제적 능력을 보유한 일본이 미국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문명은 한국마저 포섭된 중화문명에서 새롭게 독립 문명으로 그 위치를 격상시켰다고 본다. 이 책의 단점은 바로 일본을 문명국으로 세워주었다는 것과 함께 한국이 중화문명에 포섭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는 점에 있다. 일본은 분명히 타 아시아 국가처럼 식민화나 독립의 기간이 필요없을만큼 당시의 세계강국과 동맹을 맺으며 서구화에 성공한 듯 했다. 그러나 저자가 고립국으로 설정한 이유도 일본 고유의 특성(이것을 문명으로 기준화될 수 있을까)으로 말미암아 제 2 강국으로 된다. 그러나, 일본은 명치유신전까지 고대로부터 줄곧 대륙문명으로부터 전수받는 위치에 불과했다. 중세시대에 명을 치기 위해 조선은 길을 비키라는 전쟁을 획책하지만, 결국 무너지고 만다. 일본은 현재 한반도 전쟁의 특수로 말미암아 급성장한 경제대국도 플라자합의이후 계속 거품경제로 몰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걸프전쟁에는 거금의 전쟁자금을 대주었고, 이라크 침략에는 자위대를 파병할 수 밖에 없는 위치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로서 왜 한국의 문명이 중화문명에 포섭된 것에 불과하냐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반박과 함께 말하고 싶다. 알겠지만, 우리는 반만년 역사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단일민족이며, 그것을 재쳐두고라도 중국의 유교 수입과 함께 사대주의가 마련된 것은 조선 5 백년이 전부다. 한민족의 역사에 1/10 이나 1/5 에 불과한 기간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은 조선시대의 사대주의 잔재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중화문명의 이유로 이 책에서 자주 다루는 인구통계가 근거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분명히 인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분열과 통일 그리고 이민족의 침략-식민기간으로 점철된 역사라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의 고구려사 편입-동북아공정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도 티베트와의 분쟁에 민감하거나 하는 이유도 지금의 영토가 각 종족의 독립으로 말미암아 현저하게 줄어들 것에 위기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명은 종교로도 나눌 수 없을만큼 복합적이면서도 한번의 위기에는 민족성으로 뭉치는 저력을 보유하고 있음에 따로 독립 문명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세계 전략이 곧 서구 문명, 그 속에 미국화가 눈 뜨고 있음에 이 책은 일본이 미국의 대리 역할로 기능해주길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는 섬뜩한 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저자의 [문명의 충돌]가 함께 일본에서 강연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참 많다. 그래서 처음 읽는 사람도 빠르게 장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국의 독자로서 생산적 담론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 인간을 거미형, 개미형, 나비형으로 구분한 키에르케고르의 논리는 분류의 기준이 주관적이라 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보편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개미형이나 꿈을 찾아 떠도는 나비형 또 현재의 권력과 힘을 거미줄이란 형태로 유지한 채 걸려드는 먹이만을 기다리는 거미형의 인간은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습관, 제도" 즉 "문명"을 초월해 인간 보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현 세계적 위치로 짐작할때 가히 "불사의 환영에 눈이 멀어져 자기들의 사회는 인간 사회의 최종적 형태"(171쪽) 라는 우물안 사람들일 수 있는 미국, 그 우물안에서도 미 전략문제 연구소의 소장인 저자 새뮤얼 헌팅턴의 살갑지 않은 미국 곱씹기 글에 키에르케고르 식의 인간형 구분을 적용한다면 능동적 글읽기의 한 지류를 찾는 길이 아닐까 한다. 새뮤얼 헌팅턴의《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은 이미 발표했던 그의 글들과 일본에서의 강의록에 대한 농축되어진 요약본적 성격을 지닌다. 분량에서나 문명의 개념을 도입해서 서구와 동아시아 세력 관계를 풀어나가는 논리 위주의 글의 성격으로 볼때 키에르케고르식 인간형을 적용해 보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우며 감정적이고 작위적 해석이 될 수 있기에 조심성이 요구 된다. |
| 여러편의 글을 실었는지 반복되는 내용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문명의 충돌'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딱히 일본이나 근동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끌만큼 새로이 전개되지는 않았습니다. 20대 젊은 층의 구성비율이 많은 문명이 호전적인 편이라거나 일본은 역사적으로 강한 국가에 편승하는 외교를 취해왔다는 점 등을 근거를 제시하며 설명하는 부분은 흥미로왔습니다. 문명을 이루는데 있어 종교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는 바이구요. 책에서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여러 종교 속의 보편 진리가 매개가 되어 문명간의 대립, 갈등이 줄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좀 이상적이더군요.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문명의 충돌'에 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