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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부터 정도전과 이방원이 사극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왕조를 건국한 주역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동지였지만 동시에 향후 조선의 체제를 두고, 또 세자책봉을 두고 정적이 된 관계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소재일 것이다. 거기에 이 둘의 선 굵으면서도 주도면밀한 정략가 스타일, 패기 넘치는 행동파 스타일이라는 대조적인 캐릭터라는 점 또한 조선의 두 영웅의 건곤일척, 용호상박의 대결을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다 알고 있듯이 두 사람의 대결은 결국 정도전은 이방원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이방원이 승자가 됐지만, 그럼에도 조선에는 정도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굳이 승패를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대에서는 패자라해도 후세의 평가에서 승자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역사인 것이고, 실제 이방원과 정도전 두 사람은 최근 조선 건국 과정에서 나라의 방향을 제시하고 틀을 다지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평가가 높아지고 대중들에게도 호감을 사고 있다.
두 사람이 워낙 걸출한 인물이다보니,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정도전과 이방원이 정적이 아니라 동지였다면. 두 사람을 손을 잡지 않더라도 최소한 협조의 여지를 남겨둔 사이였다면. '칼에 베인 용'은 바로 이런 나의 상상을 만족시켜준 작품이었다. 아마도 두 사람이 협조하는 사이이기를 바랐던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용에 베인 칼' 은 정도전의 장자, 정진이 화자가 돼, 정도전 사후이후 몰락한 정도전 일가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역적 자손의 운명이 그렇듯 진은 폐서인이 돼, 장남과 함께 전라 좌수영에서 수군으로 일하며 그야말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며,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는 개국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행적을 밝히고 있다. 오랜기간 막역지우에 동지였던 정몽주, 또 명나라 주원장과의 관계 그리고 요동을 정벌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웅지에 대해서 유난히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방원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이방원의 만행과 아버지 정도전이 건설하고자했던 나라에 대해 '삼봉집에 몰래 저술하고 있었다. 이 '삼봉집'을 여러 권 필사해, 자손대대로 물려줌으로써, 정도전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것, 그리고 마침내 신원을 받는 것, 그것이 진이 원수 갚겠다는 방식이었다.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룰 수 있는 방법.
그의 수군생활은 15년만에 끝이 났다. 혹독한 세월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와 장남은 몸성하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삼봉에서 노모와 처, 조카들까지, 다시 일가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 순간 그는 꿈인가 생시인지..감격에 겨웠을 것이다. 비록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됐지만, 이렇게 식구들과 재회하게 된 것에. 그는 여전히 이방원을 응징하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았는데,,이방원은 진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정도전 가족들은 다시 두려움에 떨지만, 진은 죽을 날이 됐다고 각오하고, 행궁에 입궁한다.
그런데 이방원이 정진을 대하는 태도는 실로 뜻밖이었다. 이방원은 정진과 과거 피를 나눈 형제처럼 가까웠던 시절을 회고하는 살가운 말로 말문을 열고, 진은 이런 이방원의 속내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왕이됐다해도 진에게 방원은 살부의 원수, 집안을 풍비박산내 원수였던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실제적으로 그가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내심 이방원이 천벌을 받아야 한다는 저주를 멈추지 않는 것이 전부였다.
'칼에 베인 용'은 처음과는 달리, 뒤로 갈수록 정도전은 왜 죽음을 당했을까? 에 대한 실마리를 추적하는 과정임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방원은 자신은 결코 정도전을 죽이지 않았음을 진과의 독대에서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도전 죽음에 관련된 진실은 그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표면적으로는 방원이 죽인 것처럼 유포됐지만, 그럼에도 방원이 공공연하게 털어놓지 않았던 그 사실이란. 진도 받아들이게 되는 정도전의 죽음에는 어떤 내막이 있었단 것일까.
정도전을 죽음을 당했다는 그 역사적 사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정도전의 죽음 뒤에 가라져있었던 그 전모, 소설적으로 구상해낸 내막은 그럴싸했다. 정도전 일가가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은 것도 납득이 됐고, 그 아들을 수군으로 보낸 것도. 단순히 정도전-이방원과의 권력 투쟁이 아니라 명과 조선과의 관계라는 국제적 틀에서 정도전의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만족했던 것은 정도전과 이방원이 서로 죽일듯이 싸워야 하는 적이 아니었다는 마무리에 있었다. 그 어느쪽도 패자가 되지 않았고, 정적을 죽인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 두 거물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할까, 역사적 평가와는 일치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결말이었다. 굳이 역사책이 아닌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역사의 차원과는 다른 내 상상에 부합하는 결말을 원하기 때문이리라. 다만 이 작품 속에서 정몽주의 노선에 대해 비판적인 묘사가 두드러진 것을 보면, 작가는 보수보다는 변화와 혁명을 택한 풍운아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무엇보다 그 내막을 전해주는 화자가 정도전의 맏아들 진이라는 점이었다. 작가가 내세우는 화자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메세지에 대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니. 작가는 정도전 아들을 통해, 이방원이 털어놓은 진실을 전하고 있다. 전모가 밝혀지기까지 역적의 자손으로 살아야했던 고생과 이방원에 대한 복수심을 털어놓은 뒤, 다시 이방원의 고백으로 밝혀지게 되는 내막. 그 내용을 독자에게 흥미롭게 전달하고,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화자로 작가는 정도전 아들을 낙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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