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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이 차오른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가볍고 한없이 부족하다. 이 <난중일기>는 짧게 구성한 편역본이라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완본을 읽고 싶다. <난중일기>를 읽고 나서야 놓쳤던 영화 ‘한산:용의 출현’을 봤다. 영화 ‘명량’의 이순신이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면 그에 비해 ‘한산’의 이순신은 신중하고 과묵하고 외로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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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 교직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그런 아쉬움이 조금씩 커져 가는 마음을 누르고 조금은 뜻 깊은 미션을 수행하려고 마음 먹고 제일 먼저 난중일기를 읽어 보기로 하였다. 가까이 있기에 현충사에 들러 가끔은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나 기록물을 보기는 하였지만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었고,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하여 끝까지 읽어 보려고 마음 먹었다.
「난중일기」하면 이순신, 이순신 하면 「난중일기」가 아닐까? 그렇게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난중일기」가 무엇인지 질문한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부터 1598년까지의 일을 기록한 진중일기((陣中日記)라고 대답을 할 수 있지만 내용은 제대로 읽어 보지 않았었다.
임진년 정월 초하루에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일기를 시작으로 한장한장 넘기다 보니 하늘나라로 엄마를 떠나 보내던 날이 생각나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짐을 느꼈다. 잠시 느꼈던 슬픔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읽어 보니 이순신 장군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영웅 중 한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잠깐 비가 왔다. 인종 임금의 제삿날이라 업무를 보지 않았다. 혼자 다락 위에 있었다. 나라의 정세가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운데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기둥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 잡을 만한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으니, 사직이 장차 어떻게 될지 몰라 마음이 심란했다. 하루 종일토록 누웠다 앉았다 뒤척거렸다. - 을미년(1595) 7월 1일 」
「 저녁때 천안에서 온 어떤 사람이 편지를 전하는데 미처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둘째 아들 열의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자가 씌어 있어 면의 전사를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그 빛이 변했구나. 슬프고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너는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중략 - 정유년(1957) 10월 14일 」
이렇게 두 편의 일기를 보니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을 가슴에 묻을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면서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을 어찌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이외에도 틈날 때마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효성 지극한 아들의 면모와 부하의 죽음에 애통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의 성품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조금더 가슴으로 느끼면서 생각해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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