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 백민석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어떤 단편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고 동질감을 느꼈다 이 사람은 나와 같은 부류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 글이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의 리뷰가 되기는 글러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겠다. 혹여 리뷰인줄 알고 읽으신 분이 있다면 사죄를 구한다. 인간관계에 회의적이며 일말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내가 작가로부터 유대의식을 느끼는 것은 퍽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백민석 작가는 b급 정서를 A급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탁월한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군상들, 하나같이 뭔가 하나쯤 잃고서 세상을 부유하는 그의 페르소나들은 지배세력들에게 저항하거나 순응하거나 무관심하지만 바탕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반체제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단편이 이 친구를 보라 인데 이것은 백 작가의 성장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거위 요리가 등장하는 연극을 위해 없는 돈으로 거위 대용인 핫도그를 샀던 저 가난한 소년은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게 말을 걸어주는 피터팬으로 되살아났다... 술을 먹어서 그런지 이 독후감이 터무니없이 두서없지만, 사실 술을 먹어서 이 책을 꺼내들고 다시 읽은 것인데 아무튼 백민석 작가는 결핍된 자의 아픔과 슬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이다. 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백민석 작가님, 요즘 뭐하십니까? 작품이 궁금합니다. 건필하세요~~ |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은 단편모음집이다. 하지만 내용은 무언가 한가지를 말하고 있다. 죽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 곁에서 맴도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존재 와 존재하지 않음의 경계선에서 이야기들은 움직인다. 이야기에서 보이는 것은 죽은 존재들이기도하지만, 결국은 죽은 존재와 동일시되려는 ‘나’ 이다. 그래서 죽은것들과 소통을 하기도 하고 동화되기도 한다. 단편 제목인 ‘검은 초원의 한켠’처럼, 이 글을 읽다보면 검은 초원이 생각난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공간에 있는 검은 초원이다. 그것은 ‘내’ 가 잃어버린것들과 이야기하고싶어하는 소망이기도 하다. 그것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나' 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 1.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 나 와 내가 흉내내고싶어했던 대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그를 베끼면 베낄수록 어떻게 내가 죽어가는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서 장원의 aw는 어딘지 약해보이고 비정상적일수도 있지만 어린 나 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aw의 모든 것을 베끼고 일기장마저 훔쳐보면서 글도 베끼려고 하지만 결국 자기가 사라져버리게 된다. 단순한 구조이지만 결국 죽은 줄 알았던 것은 aw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까지의 묘사와 긴장감이 대단하다. 2. 이 친구를 보라 ‘이 친구를 보라’ 는 백민석씨의 일종의 자서전이다. 구구절절이 설명하는것보다 다음 인용이면 충분할 것 같다 ...어렸을 적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보게 되는 반응이다. 책을 만든다고 하면 인쇄소 직공인줄 알고,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외판원인줄 알고, 공장에 다닌다고 하면 기계공인줄 안다.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전문대학? 하고 되묻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반응이다. 실은 나도 내가 그렇게 되는줄 알았다. 그리고 권투 도장 아이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도 그들과 똑같은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별은 안 달았어? ... 3.구름들의 정류장 구름들의 정류장은 시체에 관한 내용이다. 시체라고 해서 죽어서 누워있는 시체는 아니다. 정류장 같이 바로 우리가 사는 곳에서 살고 있는 시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 는 계속해서 ‘무슨 수수께끼가 이렇게 많은걸까’ 하고 내뱉는다. 그리고 나는 od라는 여학생에게 돈을 주고 그저 하루에 몇시간동안 함께있기로 한다. 그리고 화단을 꾸미기도 한다. 뭔가 나 는 외로워하는 것 같다. 시체들이 나타나는 곳은 버스정류장이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정류장이다.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황량한 느낌을 주는 그런곳이다. 죽은 어린애가 먼저 나타났다. 나는 서너발짝 앞에서 네 노랫말을 듣지 못하네..그건 아마 우리 둘중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 나 는 이런 노랫말을 그에게서 듣는다. 그런데 나 는 노랫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아마 내 가 궁금해하는 수수께기가 아닐까? 나 는 죽은 40대 여자를 보기도 한다. 또 킴스클럽에서 어떤 여자를 보기도 한다. od는 이런 나를 보고 시체같다고 한다. ..누군가 애인을 부르며 검게 그을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누군가 구두의 먼지를 털며 부러진 다리를 건들거리고 있었고, 누군가 시게를 들여다보며 터진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코를 풀자 휴지가 빨갛게 물들었고 누군가 호주머니에서 다른 누군가의 손목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누군가 온몸에 불을 붙이곤 아주 늦어버렸다는듯이 버스를 향해 뛰고 있었다.. 4.진창 늪의 극장 이 단편은 기억속의 극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낡아빠진, 철지난 영화들을 상영하던 뒷골목의 그런 극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그런 극장을 찾아다니던 나 의 기억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극장은 진창이 가득차서 늘러붙는 곳이다. 그건 나 의 그 시절이 진창이 되어버렸다는 비유일 것이다. 극장은 한물갔다고 계속 중얼거리며 그때의 그 극장을 헤멘다. 그때 탱탱했던 나 의 엉덩이도 이제는 힘이 빠졌다. ..너는 그 여자애를 사랑하듯이 이 거리를 사랑했었고 이 진창들을 사랑했어. 진창들로부터 모든걸 배웠어. 그리고..오물투성이 극장을 사랑했지.. 극장은 나 의 과거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극장의 무덤뿐인지도 몰라..우리는 정말 미쳤는지도 모른다.. 5.인형의 조건 ..그 단순한 기계에서 무슨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주 인상깊게 읽은 작품이다. 나 는 우연히 알게된 ru 라는 소녀의 생일선물을 챙겨주려고 한다. 그녀는 복잡한 조건들을 제시하며 자기가 원하는 인형의 모습을 말한다. 나 는 그 인형을 사주기 위해서 결국 수제 인형집을 찾게 되고 그 아이에게 줄만한 인형을 주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없다. 그아이에게 인형을 줬지만 주는 순간 그 아이는 사라졌다. 내 가만든 하나의 상像 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아파트에서 그런 인형을 원하는 어떤 아이가 투사된 것일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결국 아무도 없었다. 남은건 나 였다. 6.아주 작은 한 구멍 ‘아주 작은 한 구멍’ 은 나 와 너 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 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이고 예전부터 알던 사이이다. 아마 사귀던 사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너 의 성별이 확실치가 않다. ‘네 와이프’ 라는 말이 나오는걸로 봐서 남자같다. 그러면 나의 성별은? 역시 모른다 내가 여자일수도 있고 남자일수도 있다. 묘한 동성애적 분위기도 보인다. 나 는 너 의 회사방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너 는 작은 한 구멍..에서 쏟아져나오는 햇살을 감당하지 못해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 한 구멍은 봐서는 아주 작아서 놓쳐서는 안되는 그런 구멍이다. 하지만 그 구멍가까이 간 이들은 모두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 구멍이 우리를 호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구멍은 아마 자기의 정체성 또는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렇게도 위험한 것일 테니까. 7.검은 초원의 한켠 이 글은 참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il 은 자기의 아파트에 무언가를 키운다. 구십퍼센트정도는 식물성이지만 다른 것도 있다. 친구들은 그가 이상해졌다고,회사에서 쫓겨났다느니 이혼을 했다느니 필리핀으로 이민을 갔다느니 하는 소문만 무성하게 퍼뜨린다. 하지만 그는 다만 무언가를 키우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스크림집을 하는 내 옛 애인과 나와 il과 그가 하루동안 산 kp라는 창녀는 그의 집으로 간다. 그의 집에서 그들은 앉아서 논다. 그리고 돌아온 후 나는 청바지 엉덩이에 묻어있는 시커먼 얼룩을 발견한다. 그것은 il 이 자기를 위해 만들어놓은 영혼의 집에서 묻은 것이었다. 하지만 검은 초원이라는 건 어딘지 불길하다. 스스로 그리고 타인이 알고 있던 자기가 없어져가면서 만들어낸 초원이기 때문이다. 죽은 것들은 결국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일 수 있다. 그것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백민석씨 작품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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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절필을 선언한 작가가 최근 신작을 발표할 거라는 소식에 문학계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이는 바로 백민석이라는 작가입니다.
백민석작가는 페미니즘 문학이 유행한 90년대에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의 글을 때로는 기괴해 보이거나 엽기적이게 보일 수 있는데요, 여기 그의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 있습니다.
백민석 작가의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의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라는 소설이 그러합니다.
'나'는 유년시절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었습니다. 19년이 흐른 후, 나는 문득 그때 생각이 나 다시 장원에 찾아 갑니다.
나에게 장원은 많은 추억들이 어려있는 장소입니다. 특히 장원의 도련님 aw는 심부름꾼인 자신과 형제처럼 지냈었죠.
나는 기품있게 걸었고, 품위있게 말했고, 일기장에 영혼있는 문장을 쓸 수 있었던 aw에게 심한 질투를 느낌니다.
그래서 그의 모든것을 따라합니다.
다시 찾아간 장원에서 그는 aw가 얼마 전에 죽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리곤 장원의 마님을 만납니다.
장원의 마님은 자신과 같은 하인들을 피붙이처럼 여기고 있다는 말과 함께 다시 찾아와 줘서 기쁜 마음을 말합니다.
나는 마님과의 대화 후 aw의 방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과거의 그것과 전혀 다를바 없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다만, 그와 aw가 예전에 가지고 놀던 럭비공의 바람이 빠지고 헤져 가지고 놀 수 없게 됩니다. 나는 럭비공과 과거 aw가 쓰던 일기장, 그리고 그의 책 한권을 가져옵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연인인 xp에게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고 가지고 나온 aw의 일기장과 책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xp는 "이건 네 일기장이잖아. 그리고 이건 네가 작년에 쓴 책이고" 라는 말을 하며 소설이 끝나게 됩니다.
소설의 끝부분까지 닿았을 때, 독자들은 이제껏 자신이 쌓아온 '나'와 'aw'의 정보들이 한순간에 무너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껏 알고 있던 '나'라는 존재가 'aw'라는 존재가 돼 버리니까요.
그렇지만 고급 독자들은 작가가 쓴 상징과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소설은 환상적이고 상징적입니다.
이 소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피붙이'라는 말입니다. 마님은 장원을 거쳐간 수많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들을 자신의 피붙이로 생각합니다.
즉 장원에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심부름꾼들이 존재했고, 어쩌면 장원은 그런 심부름꾼들을 양성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즉 '나'와 'aw' 모두 장원의 심부름꾼이었고, 나는 유년시절 그의 모든 것을 질투했고 때문의 그의 모든것을 빼앗아 익히려 했습니다.
나는 장원을 나온 후에도 그렇게 aw가 되어 aw의 모든 것을 그에게서 빼앗아 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점차 질투하는 성향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w가 죽은 후, 드디어 나는 상징적으로 완전한 aw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갈망하고자 한 것을 완전히 옷 입었을 때의 인간의 모습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사실 처음 소설을 읽은 후 상징성과 내용을 분석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곳곳에 환상적 장치들과 상징적 도구들을 심어 두었습니다. 한번 방향을 잡으니 계속해서 소설의 실마리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매력적이고 대단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신작이 기대가 되어지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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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사람과 유령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디 아더스="">에서 유령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가족'과 유령의 존재로 인해 공포에 떠는 '가족'이 한 집에서 마주치는 것처럼 우리 주변 곳곳에 떠도는 유령들이 없지 않을 거라는 섬뜩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서 유령 입장에서 보면 살아 숨쉬며 자신들이 몸 담았던 공간을 잠식하고 있는 인간이 두려움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소설집의 대부분 작품들에서 유령이 출몰한다. 내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소리, 소릴 지르면서 봤던 <식스 센스="">보다 더) 예전 MBC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만큼 오싹한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이 친구를 보라'와 같은 자전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친구를 보라'에는 '남들'이 보기에 측은한, 작가의 유년 시절이 담겨있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를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들에 상처 받을 때마다 작가는 눈빛이 슬퍼지곤 했다고 한다. 가슴 찡하지 않은 자전소설은 본 적이 없지만 '이 친구를 보라'도 참 슬펐다. 유령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돌을 던지고 상처를 후벼파는 건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일 때가 많다. 거침없고 뛰어난 작가의 상상력을 확인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생각의 여지가 가장 많이 남았던 건 작가의 너무나 '인간적인' 자전소설이었다.식스>디>장원의> |
| '목화밭 엽기전'을 읽은 뒤로 계속해서 기다려 오던 백민석씨의 신작이었다. 하지만 기대를 다른 방향으로 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많이 해서인지 전작에서 돋보이던 번뜩임이 사그라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여러 단편들로 이루어져있고 그 중에서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라는 단편이 가장 재미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과거의 기억으로 다시 찾은 장원. 그리고 과거 기억 속의 도련님. 마치 영화 '리플리'같았다. 도련님을 동경하여 달리는 모습부터, 글 한조각까지 따라하는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리플리가 가지지 못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다. 가끔 자기만의 세계에 도련님을 데려가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한다. 마지막에 그녀가 말한 반전(?)은 조금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과연 도련님은 언제 죽은 것일까? 기대에 조금 못미친다고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좋은 소설가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작품을 기다린다. |
|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이들의 추천에 의한 것도, 무언가 책에 관한 추천의 글을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집어들었을 따름이다. 무언가 어린시절의 추억에 얽힌 가슴 뿌듯한 이야기가 아닐까 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가끔씩은 제목 때문에 고른 책이 독자를 놀래킨다. 아니, 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말하건데, 난 무언가에 홀렸었다. 그것은 작가가 뱉어내고 있었던 이야기들에 묻어나는 귀신의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목에 맞추어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 실제 소설 사이에 묻어나는 너무도 큰 괴리감 때문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처음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나름대로의 기대감을 가진 체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그리는 것은 포기했다. 어린시절의 자신에 대한 고백이라고 믿고 싶다. 누구나 가질 법한… 하지만 그 고백 안에 숨겨진 너무도 복잡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싶지 않다. 직접적인 신분의 차이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의 원리. 어린 아이의 눈은 정확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너무도 서글퍼 보였다. 한낱 장원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그는 계속적으로 주인집 아들(aw)을 관찰하고 모방한다. 근본적으로 그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오래 걸린 듯 하다.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과 말투,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심지어 일기도 썼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슬프다 못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같은 것을 해도 한쪽에선 끊임없이 베품을 받고 다른 한 쪽에선 끊임없이 무시당하는 현실. 그러면서도 그는 aw를 끊임없이 모방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지닌 배경적 코드에 대한 저항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부르디외가 이야기하는 적극적 의미의 구분짓기에 반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끝자락까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높아보이는, 잘나보이는 이를 모방하는, 어쩌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던걸지도 모르겠다. 그 몸부림에 찬물을 껴얹는 것은 다름 아닌 그가 보았다는 마지막 aw의 일기였다. 근본이 다르다는, 아무리 흉내내도 똑같아 질 수 없는, 영혼이 텅빈 아이라는 그 말이 심장을 짓누른다. 그것은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마지막 xp의 말에 나는 다시금 놀란다. 시종일관 관심없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xp의 던져내는 하나의 말투에 모든 이야기는 정리된다. 그토록 모방하고팠던 aw와 동일인물이 되어버렸음을, 자기 안의 자아를 잠재우고 aw로 다시 태어난 그의 모습을 xp는 너무도 담담하게 진술하고 있었다. 텅빈 자기 안에 aw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잃고 aw로 다시 태어난 그. 자신은 몰랐지만 이미 주변의 모든 이들은 그를 aw로 부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그에 비하면 두 번째 실린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은 그로테스크하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 비해 보다 더 몽상적이며, 이해하기 어렵다. 소년 가장이었던 그의 뒤에서 돈을 대어주던 한 부자. 그가 죽고 없는 넓은 저택에 혼자 살고 있는 아들(wt)과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갈까봐 두려워 소년소녀가장을 돕기 시작했다는 wt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갈고리’라고 생각한다는 wt. 빈부에 대한 기본적인 구도는 앞의 이야기의 연속인 듯 하다. 그 집에서 일해주는 아주머니는 또 다른 xp가 아닌가 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다만, wt를 이해하는 게 너무도 어려웠다. 현실감이 없어보인다. 구름위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서움도 그렇다 하여 소름끼치는 유쾌함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하나의 꿈을 꾼듯한 인상, 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다할 계획없이 써내려간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의 그 말에 충실한 것들이 이 책에 실려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작가는 어쩌면 독자들보다 먼저 그 묘함에 이끌려 하며 묘한 글을 적어내려 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 '목화밭 엽기전' 이후 나온 백민석의 단편집이다. 백민석은 늘 그렇듯이 약간 환상적인 부분을 가미해 소설을 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유령이다. 여러 단편들 곳곳에서 유령이 발견된다. '구름들의 정류장'이나 '인형의 조건'에서는 노골적으로 유령이 등장한다. '구름들의 정원'에서 유령을 보는 주인공 '나'는 꼭 영화'식스센스'의 소년과 같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들... 그리고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과 '이렇게 정원딸린 저택'에는 유령이 누구인지 헷갈리지만 좀 으스스하긴 하다. '아주 작은 한 구멍'에서는 '구멍'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검은 초원의 한켠'에서 '검은 초원'은 무엇으로 만든 것일까? 그냥 일반 풀이나 잔디라고 하기는 확신이 안선다. 유령, 죽은 것의 대명사인 곰팡이일까? 아님 그늘, 음지 등을 상징하는 이끼일까? 아무래도 나는 소설의 스토리 이면을 가늠해 보지 않고 항상 스토리 그 자체 있는 그대로를 판단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단순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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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 백민석 / 문학동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바둑계의 속설이 있다. 만일 그것이 장고 없는 포석이었다면 반상의 기본을 다시 익혀야 할 일이고.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사람이 반상의 법도를 논해도 될 것인가. 이 책에서 장편소설보다 단편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말의 진리를 지난 번 저자가 쓴 다른 소설의 서평을 한 번 더 살펴 보았다. 읽고 나서도 잔상이 오래 남았던 소설이었는데 만일 이 책을 함께 읽었다면 저자의 두 번째 작품집으로써 단편소설 8편이 묶여 있다. 비슷한 내용과 흐름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유령 시리즈 같은 책이다. 유령이라는 소재의 참신함과 매력 정도가 이 책이 평가 받을 유일한 저자도 이 책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미리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의 후기를 한번 보자 이 책에 묶인 소설들은, 구성상의 간단한 공통점을 빼곤 이렇다 할 전체적인 그래도 일단 묶고 보니, 희미하게나마 무언가 보인다. 다행이다. 저자가 말하는 구성상의 간단한 공통점은 유령이라는 주제와 영문 이니셜로 이것 역시도 의식적으로 꾸며놓은 것이라면 그는 천재나 바보 중의 다른 소설에서 이미 씌어 있는 글들이 중복되어 계속 나오고 있다. 저자가 즐겨하는 어투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남용하여 오히려 나 이전에도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심부름꾼 소년이 있었지만, “이십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졸업 후에도 연락을 해온 건 네가,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외판원인 줄 알고, 공장에 다닌다고 하면 기계공인 줄 알고, 건설 일을 한다고 하면 일용잡부인 줄 안다.[장원의 심부름꾼 소년]-32p 책을 만든다고 하면 인쇄소 직공인 줄 알고,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외판원인 줄 알고, 공장에 다닌다고 하면 기계공인 줄 안다.[이 친구를 보라]-132p 수입 웨하스나 약식이 입 안에서 죽이 되도록 오래 씹었다. 그는 접시의 마지막 고깃점을 입에 넣곤 거의 죽이 되지 않았을까 싶게 오래, 비슷한 사례는 많이 있지만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구성을 했을까? 독자들의 눈을 시험하기 위함은 xp, aw, wt, od, tu, ru, il, kp. 영문 이니셜로 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다. 나름대로의 깊은 뜻이 있나 해서 이리저리 조합해서 영문 사전까지 찾아보고 이 역시 모든 소설 속에서 남발하여 자칫 안이하게 글을 쓴다는 의구심을 후기에서 자인하고 있는 것처럼 첫 단편인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인 계획 없이 씌어진 것들이라고 보인다. 저자의 염려대로 모든 소설들이 산만하게 읽혔을 뿐만 아니라 시험 삼아 저자는 일단 묶고 보니, 희미하게나마 무언가 보여서 다행이라고 하였지만 저자의 다른 소설을 더 읽어봐야 할 필요성을 확인시켜 준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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