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아프다는 것으로 그 분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잠시 쉬어가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여성, 가정폭력, 성차별, 아동학대. 이것들과 관계된 글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단지 나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그들의 고통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들의 고통에 분노하면서,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파하면서 정작 나는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 아니 회피한다는 사실에 큰 죄책감만 쌓인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이나마도 하지 않으면 무심하게 될까봐.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게 될까봐.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떤 일로 인해 부부가 싸운다. 여자가 따따따 따지고 들면 시청자는 흔히 생각한다. '저러다 한대 맞지'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불끈하며 여자의 뺨을 한대 치고, 여자는 황당함과 놀라움에 어쩔줄을 모른다. 그 다음은? 남자가 여자를 안고 용서를 빈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고 받아들인다. 요즘은 남자가 한 대 치면 여자도 이어서 한 대 치기도 하더라만, 대부분의 부부싸움에서는 저 공식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인용된 글처럼 때린 다음 꽃을 사들고 나타나는 남자. 다시 행사되는 폭력. 더 큰 꽃송이... 그 꽃이 쌓이고 쌓여 내 장례식장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여자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다.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아이 때문에, 세상의 편견이 무서워서, 종교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런 결말까지 가게 되는 세상의 많은 여자들. 그 여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남자가 꽃을 사들고 오면 짓밟아 주라고. 폭력 후의 꽃은 다음의 폭력을 예고하는 징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달에 방영된 '제비꽃'이라는 특집 드라마. 그 속의 남자 주인공도 그러했다. 아내의 몸에 꽃모양의 멍을 새김과 더불어 아내의 직장으로 꼬박꼬박 꽃을 보냈다. 결말이 어떠했던가. 남자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새처럼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자는 새가 아니기에 죽음으로 자유를 얻을 수밖에.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 시청자들의 불만도 많았지만 나는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자신을 돌볼 줄 모른다면 결국은 그러한 결말만이 남을 것이라는 것. 그것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렇다. 잊지 말아야 한다. 잠시 아름답다 추하게 시들어 버릴 꽃에 한눈 파는 사이 나의 생명과 자유는 조금씩 좀 먹어 간다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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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분량인데도 전력질주하듯 숨을 헐떡거리며 다 읽었다. 이 어마어마함이라니!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거 몰라도 잘 산다고 생각했고 굳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1년 후에 어떻게 살까도 걱정스러운데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살기에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이나 그러려니 했다.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생각했던 것인데, 그러다가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보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래서 필요하구나. 나라도 먼저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 안의 폭행. 아무리 여자들의 사회인권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아직도 여자들은 피해자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에서 가슴 아팠던 건, 그 여자들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받아야 했던 폭행이다. 자식이 있는 여자는 무자비하게 폭행당해도 가출하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자식 버린 어머니로 불린다.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그렇다. 이건 정말 최악의 이야기인데,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보면서 많이 분노했다. 이런 내용을 몰랐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바꿔야겠다. 책을 보면서 그 생각을 한다. 바꿔야겠다. 바꿔야겠다! 당신도, 바꾸실래요? 그러고 싶다면,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