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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개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구연하기 위해서
"개인개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구연하기 위해서" 내용보기
정치라는것이 무엇인가??많은 다수의 편의를 위해서 공정한 방법으로 그들의 대표자를 모아서 우리모두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자는 뜻에서 시작된것 아닌가??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우리의 뜻이 대표된적이 있었던것 같지 않다.시대는 바야흐로 21세기이고 세계가 곧 한국이고 한국이 곧 세계이다.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수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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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는것이 무엇인가??많은 다수의 편의를 위해서 공정한 방법으로 그들의 대표자를 모아서 우리모두의 의견을 모두 존중하자는 뜻에서 시작된것 아닌가??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우리의 뜻이 대표된적이 있었던것 같지 않다.시대는 바야흐로 21세기이고 세계가 곧 한국이고 한국이 곧 세계이다.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수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지역분쟁도 굉장히 심한 편이고 양반,상놈이라는 논리가 아직도 존재하며 여자,남자의 구분도 심하다.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주의가 팽배하여 이기주의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자신만을 존중하다보니 남을 경시하기도 한다.이 책은 그런 개인개인의 권리를 위해서 다수의 뜻에 의한 횡포보다는 소수를 위해서 차등적으로 정치를 펼치자는 뜻을 피력하고 있다.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이 책이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갖는 의미는 무척 크다.
a***x 2001.10.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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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를 구상하며..
"새로운 정치를 구상하며.." 내용보기
정치는 이상적으로는 이념의 구현 장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권력의 다툼으로도 볼 수 있다. 권력의 다툼은 종종 기득권들만의 싸움으로 번져버릴 우려가 있다. 그러한 현실에 차이의 정치를 논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행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약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배려한다고 해도 그것은 호혜에 머무르고 만다.) 정치는 결국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만다.
"새로운 정치를 구상하며.." 내용보기
정치는 이상적으로는 이념의 구현 장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권력의 다툼으로도 볼 수 있다. 권력의 다툼은 종종 기득권들만의 싸움으로 번져버릴 우려가 있다. 그러한 현실에 차이의 정치를 논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행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약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배려한다고 해도 그것은 호혜에 머무르고 만다.) 정치는 결국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만다. 차이가 정치의 장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지 그들의 권리를 찾아줄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차이를 위한 정치가 왜 의미있는가와 현실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차이의 정치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정치에서 차이를 위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민주주의 비판이 아니라 정반합에 의한 변증법으로 더 나은 정치로 가자는 발전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은 있으나 이념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c******n 2002.1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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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차이의 정치
"모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차이의 정치" 내용보기
장애우, 여성, 동성애자(이반). 이들은 분명 사회에서 소수의 입장에 있다. 그 수가 많건 적건, 주류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뚜렷이 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들은 공통적이다. 근대 의회 정치에서 의사결정방법은 두말할 것 없이 다수결이다. 숫자가 많으면, 힘이 세면 이기는 의사결정방식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묻혀져 지내왔다. 저자는 이러한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모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차이의 정치" 내용보기
장애우, 여성, 동성애자(이반). 이들은 분명 사회에서 소수의 입장에 있다. 그 수가 많건 적건, 주류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뚜렷이 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들은 공통적이다. 근대 의회 정치에서 의사결정방법은 두말할 것 없이 다수결이다. 숫자가 많으면, 힘이 세면 이기는 의사결정방식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묻혀져 지내왔다. 저자는 이러한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모색들을 여러가지 소개하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한 하버마스와 푸코의 대립각을 확인한 후 하버마스를 비판하며 그의 대안으로 시민 결사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결사주의 모델에 따른 정치는 개별적 집단의 연대를 통한 정치집단화를 통해 모든 차이 문화를 주체화 시키고, 이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해방을 지향할 수 있다. 차이를 수용하는 정치가 귀착지가 되어야 하는 것에는 동감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방법론적인 결사주의 모델은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저자도 많이 열거했지만, 현실적으로 실행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제약조건들이 따른다. 오히려, 내게는 그가 그다지 강조를 하지 않았던 푸코 계열의 샌더스와 영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타당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내세운 대안이 옳건 그르건 간에, 현재 소수자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및 사회적 권력의 지형도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과, 그에 관한 논의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는 점은 아직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러한 분야에서 가뭄의 단비마냥 고맙고 소중하다.

[인상깊은구절]
이들은 사회가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공공선을 따를 필요가 없으며, 공공선에 억압받을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 이들은 다른 이질적 집단의 가치를 무시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가치를 따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모델은 단일한 실체로서 공동선의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사에 속하는 상대적 이방인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수한 공동체에 충성한다고해서 시민 결사의 구성원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다.
e********t 2003.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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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존중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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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원리' 근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특히 선거에서 다수결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단 한 표를 더 얻은 정당과 후보자가 행정부, 국회, 지방정부, 지방의회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다수결에 패배한 소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됨으로써 소수는 다수에게 정책 결정뿐만 아니라 정의와 보편성까지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특히 특수 종교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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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원리' 근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특히 선거에서 다수결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단 한 표를 더 얻은 정당과 후보자가 행정부, 국회, 지방정부, 지방의회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다수결에 패배한 소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됨으로써 소수는 다수에게 정책 결정뿐만 아니라 정의와 보편성까지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특히 특수 종교 신봉자, 외국인노동자, 동성애자, 절반이지만 소수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여성들은 다수자에게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다수는 자기와 다른, 소수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소수가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다수 지배 정치 문화를 비판한 이남석이 지은 책세상 문고·우리시대 044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는 다수와 소수의 차이를 극복하고, 소수가 주체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


 


"우리는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 조차 없는 것은 아닌가? 차이는 우리와는 무관한 주제였고, 정치의 주제로도 성장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차이 자체가 억압받고, 정치에서 배제당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었다." (9쪽)


 


최근 들어 소수자에 대하여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이 차별받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그들이 주체로 등장하는 일 특히 정치영역에 참여하여 당당한 권리 행사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음을 이남석은 지적한다. 즉, 진정 차이를 인정하는 일은 차이의 주체들이 권력체제 안에서 동등한 위치를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주목할 점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무산자, 특정 종교 신봉자, 특정 이념자들은 소수이지만 이들을 다 합치면 다수이다. 그리고 다수결에 의하여 권력을 쥔 자들은 사실 소수다. 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 원리이지만 결국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구조이다.


 


다수결에 의하여 집권한 지배 집단은 '차이에 대한 무관심(indifference to difference)'하다. 지배집단의 이런 차이에 대한 무관심을 결과는 무엇일까? 이남석은 "지배집단은 자신의 경험, 문화, 사회적 능력과 상이한 차이 집단에게 끊임없이 불이익을 준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인 반공은 지금도 사상과 이념의 다양성을 옥죄이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체제를 지배하면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더욱 힘들어졌고, 그들이 내세우는 권리는 무시되거나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은 오히려 탄압까지 한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비극은 지금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


 


문화와 정치, 이념과 성별, 종교와 신념, 성적지향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 구조를 극복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이를 인정함으로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단까지 밀고 가며, 근·현대 정치의 토대가 되는 추상적 개인주주의를 부정하며, 개인이 아닌 집단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운다. 이러한 차이의 정치가 가정하는 '좋은 사회'란 집단의 차이를 제거하거나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집단들이 모두 평등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이다. 결국 좋은 사회란 각 주체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차이를 정치의 동반자 관계로 설정하는 사회." (24쪽)


 


이남석은 Chantal Mouffe의 말을 빌어 민주주의를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으로 정치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지배' 또는 '정부와 피지배자의 동등성'으로 정의"된다 말하고 있다. 인민의 능동적 참여. 이는 각 인민 개체가 주체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고, 권리의 행위자인 동시에 권력의 주체라 할 수 있다.


 


유럽이 근대 국가로 발전한 배경에는 파벌간의 대립, 중세 자유인 간의 대립을 의미하는 싸움을 조정하고, 명분 대립이었던 종교 존쟁을 종식시키고, 그 지역 내의 '평화, 인전, 질서'를 도입하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라고 이남석은 말한다.


 


차이의 정치를 성공시킨 나라로 캐나다를 예로 든다. 캐나다 안에서 퀘벡주는 프랑스언어권로 영어권이 지배하는 캐나다에서 독립을 끊임없이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퀘벡주 안에 사는 인디언들은 연방정부에서 독립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독립과 연방정부에 귀속되는 상황은 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퀘벡주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캐나다 내의 다민족과 다인종이 요구하는 자치정부 권리와 다인종의 권리는 분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영을 위한 자치 정부와 다인종의 권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더 큰 캐나다 안에서 공영을 위한 다민족과 다인종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122쪽)


 


캐나다는 헌법과 정치의 다양성 인정, 각 주체들의 다양한 참여, 공영을 통하여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종과 언어 차이를 극복함으로 차이의 정치가 현실 사회에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이남석은 말한다.


 


정치는 권력이다. 권력은 원래부터 선하지 않다. 하지만 정치를 통하여 사회는 운영되고 있다. 그러기에 모든 이가 정치에 참여함으로 특정 집단, 소수집단, 특정이념, 특정 신념만이 정치 주체가 되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 정치가 필요하다. 타자성을 회복해야 한다. 형식민주주의는 실현되었지만 실질과 평등 기준으로 보면 아직 민주주의가 갈 길은 멀다. 우리는 이 실현을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 차이의 정치는 보편인간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k****e 2008.04.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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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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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용하던 교과서에는 유독 남자 아이의 그림이 많았고, 그나마 등장하는 여성은 아이를 안고 있거나 집안 청소를 하는 모습 등으로 그려지곤 했었다. 그 땐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었다. 전업주부였던 나의 어머니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라서 여성은 결혼하면 으레 직장을 관둬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남아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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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용하던 교과서에는 유독 남자 아이의 그림이 많았고, 그나마 등장하는 여성은 아이를 안고 있거나 집안 청소를 하는 모습 등으로 그려지곤 했었다. 그 땐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었다. 전업주부였던 나의 어머니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라서 여성은 결혼하면 으레 직장을 관둬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해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박근혜가 여성이라고 하여 한나라당이 여성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정당의 대표가 여성이라고 하여 그 정당이 여성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여성은 여성을 위한 여성 대표자를 선출하는데 실패해왔다. 그나마 여성은 수적으로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나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경험이 아니다. (인구의 1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그들 대부분은 평생 집 안에만 머무르는 생활을 한다. 우리 사회는 소위 ‘정상인’으로 분류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냉혹하다. 동성애자는 어떠한가? 그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한동안 방송가에서 퇴출당했던 홍석천의 삶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은 종종 드라마에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맡는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성애자, 그 전형적인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이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 소외 당하고 있는 부류에 속한다. 서양 사회에서 으레 백인 남성이 가장 우월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선 혼혈이 아닌 순수 한국인 남성이 가장 우월한 존재로 여겨진다. 헌법에서 성별, 인종, 종교, 신체의 장애 등의 차이에 의한 차별을 용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진 모른다. 하지만 민법만 보아도 여성차별적이며, 장애인복지법을 본다면 대부분이 ‘~해야 한다’ 아닌 ‘~할 수 있다’로 규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의무가 아닌 임의 조항을 실천에 옮기는 정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 사회는 경쟁력 제고, 생산성 향상 등을 부르짖으며 의무사항마저도 회피하기 급급하니 말이다.) 서로에게 존재하는 차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여성이 남성으로, 동성애자가 양성애자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다르다는 것을 전제에 깔고 인정하는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정도는 증대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세력간의 끊임없는 부대낌이 있어야 한다. 성장의 과정에서 장애인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에게 장애인의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를 위해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에 기반한 협의 민주주의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하지만 이 개념은, 토론 그 자체에 진입이 불가능한 소수자의 처우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구의, 특히 복지국가를 이룩한 몇몇 국가들은 차이의 정치에 나름대로 성공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그들은 인간이라면 모든 존재는 높은 질의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했으며, 성, 장애 등 서로 다른 출발선에 선 이들이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해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 국가들이 소수자를 복지 수혜자의 위치에만 머무르게 놔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 국가는 소수자들이 ‘수혜자’라는 극히 피동적인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캐나다의 사례 역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캐나다 라는 거대 정부에 예속되어 있긴 하나,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자치권을 영위하고 있는 퀘백 주의 경우는, 차이의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유독 단일 민족을 강조하며 우리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높은 배타성을 보여왔다.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것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유지하려 들었고, 그 안에서 여성은 가정에 머물러야만 하는 존재로, 동성애자는 치료받아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낙인 찍어 버렸다. 세계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그나마 존재하던 사회적 안전망마저도 해체시키는데 신자유주의가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가 하나로 되는 것은 단순히 무역에 있어서의 장벽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피부색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 서로 다른 성을 가졌고, 서로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제 소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다수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말이다.
q*****2 2005.0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