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미지의 나라이자 탐구의 대상이다. 중국에 대한 의문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유럽이 갈라지고 겨우 부족국가 나타났던 시절. 중국은 이미 대제국을 이루어냈다. 어떻게 중국은 이렇게 이른 시기에 제국을 이루어 냈을까.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낸 제국을 2000년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애썼을까. 당나라 까지만 하더라도 전세계에서 가장 개화하고 발전한 문명을 가진 나라. 그런 중국이 근대에 들어서 결국은 서구에게 뒤쳐져서 전쟁과 정복의 아래에 놓여진다. 왜 중국은 서양과 같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그렇게 수많은 황제들-현명한 군주, 패망한 군주, 새로운 왕조의 건설자들과 계승자들-과 영웅들, 관리들, 그외의 많은 인물들이 나타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성공을 계승한다. 왜 중국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보일까. 이런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 저자는 한 개인개인의 특징이 아닌 중국의 지리적 배경, 당시의 역사적 요청 등으로 중국의 역사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물론 저자가 항상 새롭고 색다른 이야기를 하지만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진부한 대답을 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얻을 수도 있다. 저자의 시도가 얼만큼 성공했는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분명 어느정도의 성공은 거두었고 공감이 가는 바도 적지 않다. 중국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틀을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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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내가 2007년에 구입해서 읽었던 책이다. 그 때는 아직 역사에 관한 눈이 떠지지 않아서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최근 역사에 대한 맛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단순히 재미있는 책이 아니었다. 중국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첫째, 현대 경제의 핵심인 자본주의로 중국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그리고 왜 자본주의로 서양보다 먼저 발전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한다. 레이황은 자본주의로의 발전이 역사적 합리성이라고 표현하면서 중국이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자본주의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내재적 약점이 있어 자본주의로 도약하지 못했다고 서술한다.
중국과 우리나라에 봉건제도가 제대로 없는 이유이면서 강력한 국왕 중심의 관료제사회가 지속된 이유다. 새로운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고 해야하나. 두번째, 역사를 발전 시키는 원동력으로 경제의 변화를 든다. 그러면서 경제에 미치는 여러 요소, 특히 농업생산력과 그 수취제도의 발전을 중요시 한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라는 마르크스 유물사관을 생각나게 한다.
셋째, 한족중심의 역사관이면서 비한족을 포함하려하는 생각이 많이 보인다. 중화주의 같으면서도 중화주의가 아니라하고 한족과 이민족을 구별하면서도 동화가 합리성이라 주장한다. 중국 변두리 국가의 사람으로서 복잡하고 이해 하기 어려운 주장들이다.
중국의 여러 민족의 신화를 "한족의 신화"로 통합해서 중국의 역사를 단일화 하는 중국.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티벳과 위구르등 자치와 독립을 원하는 민족은 힘으로 누르는 중국. 그 이면에는 이렇게 무서운 생각이 있다. 한족으로 통합이 역사적 순리다. 통합하면 모두 한족이다. 통합하지 않으면 소수민족으로 통제의 대상이 된다. * 중국의 역사발전을 설명하는 방식에 수긍하게 만들면서도 한족과 이민족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는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좋으면서 고민되게 만드는 책이다. 레이 황의 다른 책들을 더 읽게 만든다. |
| 지금이야 미국 문화가 -좋든 싫든- 전 세계를 주름 잡고 있지만, 백년 전만해도 세계의 상당 부분은의 일은 중국 문화의 영향 하에 놓여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는 더욱 그러했는데, 그것이 어찌나 길고 강하게 지속되어 왔던지, 우리는 우리가 그들에게 철저히 막혀있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중국을 공부해야하는 숙명을 타고 날수 밖에 없다.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 하다』는 중국의 오랜 역사를 해석하는데 매우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인 '레이 황' 교수는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에 극도로 침잠하는 ‘현미경적 사고’를 경계한다는 말로 책의 서두를 장식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미시적 연구 태도는 그 연구 범위가 지나치게 세밀해, 심지어 같은 역사학자라도 그 세부분야가 조금만 다르면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한데, 비전공자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이러한 미시적 접근은 연구자 혼자의 만족을 충족시키거나, 독자들에게 색다른 흥미 거리를 제공해주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미시사의 폐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저자는 거시사의 역할 증대를 강조한다. 역사란 커다란 흐름과 사회의 구조적 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즉흥적이거나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황 교수의 역사관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여러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준거를 마련해준다. 예컨대, 공자와 맹자를 비교하는 장에서, 공자의 여유로움과 맹자의 혁명성을 비교하며, 이를 당시의 시대상황과 연결시킨다. 공자 생시인 ‘춘추’시대는 적에게도 아직까지는 최소한의 ‘예’가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나이 많은 적들은 포로로 삼지 않았고,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지 않았다. 반면 ‘맹자’의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의 ‘예’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었다. ‘전국 7웅’이 치열하게 주도권 선점을 다투는 시점에서, 관용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각종 비열하고 치졸한 전략이 난무했고, 심지어 항복한 병사 40만을 한곳에 생매장 시켜버린 일도 있었다. 민중들의 삶은 비참의 극치를 달렸고, 들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널려있었다. 한마디로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만 하는 시기였던 것이며, 맹자의 급진적 이론인 ‘역성혁명’은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논리였던 것이다. 양귀비도 그렇다. 양귀비는 흔히 당나라 멸망의 원흉으로 지탄받는다. 하지만 황 교수에 따르면, 현종대에 이르러 당나라는 이미 위기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현종이 양귀비에 마음을 빼앗기기 이전부터 중앙정부의 통치력 확대에 반발하는 관료들의 조직적 저항이 있었고, 이에 적절히 대응치 못한 당시 지배층의 무능함이 멸망의 1차적 원인인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거시적인 안목으로 중국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과거 우리가 배워왔던 자료의 단순 나열이나 분석, 그리고 사건과 인물위주 역사관의 편협성을 제거해준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고고학적 연구결과가 얼마나 사실과 가까운가의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서울시민이 쓰레기장으로 사용한 난지도를 ‘고고학적 연구법’으로 발굴한 결과, “1980년대 서울 사람들의 주식은 라면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냥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아니 적어도 다양화할 때가 됐음을 말해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역사란 거대한 대양(大洋)의 흐름이라 섬의 한 귀퉁이에선 그 전체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그것을 바라볼 때 비로소 대양의 참모습을 접할 수 있는 법이다. |
| 저는 개인적으로 대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어느 분야이던 간에 그 분야에 일정한 깨달음을 얻은 대가의 글은 그 분야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칸트를 완전히 이해한 철학 대가의 100페이지짜리 입문서가 칸트를 전공한 초학자의 100권의 책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글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저자가 주장하는 '거시적 안목의 중국사'가 그런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닐까하는 기대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절반의 실망으로 돌아왔습니다. 1. 적절한 집필기획, 실패한 집필 저자가 주장한 역사서술 의도는 매우 적절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중국사를 조명한다'는 집필의도는 현재의지나친 미시적 역사 연구풍토에서는, 특히 역사를 통하여 현재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원하는 일반독자에 대하여는 더욱 합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대의 역사, 지리, 기후, 경제, 기술수준, 외교'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그 역사를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저 주장에 머물고, 저술상 사용된 기준은 왜 중국이 자본주의를 이룩하지 못하였는가를 구명하는데 머물러 있습니다. 명, 청대의 중국역사를 평가하면서 체제의 합리성, 법치주의확립, 지방분권의 확립, 자본주의적 경제의 실현 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가능할지모르겠습니다만(그러나 실제 이책은 원대까지만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명, 청대에 대하여는 다른 책을 저술한 것으로 보임), 예를 들어 한대나 당대의 제도나 사회를 논하면서 '이러한 점때문에 중국에 자본주의나 법치주의가 성립할 수 없었으므로 이러한 점은 잘못된 것'이라는 논지를 취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라 할 것입니다. 당대의 수준에서는 이러한 기준은 지나친 것이라 할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오히려 저자는 당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저자는 기준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미국 및 서구의 기준을, 관점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중국민족의 관점을 채택하여 보편성을 잃고 있을뿐 아니라 2000년대에도 중국인의 중화사상은 없어지지 아니하였구나 하는 탄식을 짓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글은 중국사를 통사적으로, 그리고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획의도가 완전히 구현되지 아니한 것으로 보이며, 초학의 글은 아니라 하더라도 대가의 작품도 아니고, 오랜 기간 미국에서 중국사를 강의한 원로교수의 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번역, 제본, 편집부분 노력이 상당히 들어간 변역임은 알수 있습니다. 번역투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아니하였고 일부 문맥상 오해있는 번역도 있지만 힘들여 번역된 것 같습니다. 활자는 비교적 읽을만하고, 다만, 주를 미주형태로 처리한 것은 저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번거로움을 주었습니다. 각주처리가 바람직할 듯하고..., 각 장의 사진에 대한 설명이 없고 전체적으로 사진이 흐린 점은 개선이 필요할 듯... 각 장의 역자 요약은 독자의 수준을 존중하면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 3. 결론 독자의 읽기 스타일 상 좋아하는 것은 각자 다르겠지만, 대가나 천재의 사통팔달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은 약간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매장마다 비판적 문구를 써나가면서 읽었는데 오랜만에 생각은 많이 하게 하더군여.. 원로학자의 경륜이 축척된 글을 좋아하시는 분은 좋게 보실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고 다만 관심을 가지고 읽으려는 사람이다.. 그간 중국사를 다룬 책을 꽤 많이 봐왔지만 황인우 교수의 저서는 처음 접했다..명성은 이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사실 그간의 흥미위주의 서술과 달리 이 책의 내용이나 서술은 상당히 합리성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수 있다.. 그러나 생각외로 평이한 서술과 합리성과 재미가 적절히 조화되어 단 3일만에 독파를 하고 말았다.. 덕분에 다른일 하는데 지장은 있었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이책의 가장 큰 특성은 '역사란 한 개인의 영웅적 행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발전단계에서의 그 시대의 환경과 제도의 상호작용에 의해 전개 된다.'라는 이른바 거시사관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저자는 시종 철저하게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진시황에서 명조까지를 해석하고 있다. 또한 중국사와 서양사를 비교하며 현대에 미친 영향까지 해석하려는 시도도 종종 보인다.. 흠이라면 전반적으로 중화사상의 구태를 버리지 못한 점은 좀 아쉽다. 또한 일부분은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 싶다. 편집상 아쉬운 점은 각주를 책 말미에 배치하여 읽는데 불편함을 겪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중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권하고 싶은 책이다.. |
| 이야기 있는 글을 좋아해서 역사책을 자주 읽는 비전공자입니다. 단시 관심만 가지고 있을 뿐인 수동적인 독자인데요, 저같은 분들도 많으시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책은 결코 만만하게 볼 책은 아닙니다. 특히 이제껏 재미로만 읽으셨던 분들, 그리고 역사속의 인물을 자신의 인생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으시던 분들이라면 '허드슨강~'은 더더욱 추천하기가 곤란해집니다. 황인우라는 작가분은 당신의 삶이 20세기라는 변화무쌍하던 시기를 지나오셨기 때문인지 역사는 한 인물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관점을 지니고 글을 쓰셨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체재하는 기간이 길어서 자본주의에서 바라본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입니다. 경제학자가 아닌 분이 꿋꿋이 같은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보는 관점은 기존의 사학자들과 다르면서, 정치,경제만큼은 중앙집권-봉건주의-전제정치-군국주의-민주주의라는 구태의연한 정답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한 듯한 느낌이 들어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흥미로운 주제로 역사를 보는 시각을 넓혀준 것은 사실입니다. 책에서 누누히 강조한 것처럼 이제껏 도덕이라는 잣대로 인물을 평가하던 방법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서 결국 "악인은 없다, 사람은 사회적 역할에서 평가받는다" 라는 결론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회색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후 악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주어진 역할에서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석이 책의 마지막에 몰아있는 것도 독자의 편의를 무시한듯 하더군요. 마치 시험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역사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보통의 독자에게는 참 어려운 글이었습니다. |
|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던 자로서 이 책은 한 사람의 역사적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 우선 중국사를 보려할때 그 복잡함과 다양함때문에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하기란 몇년의 공력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하고 그 역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지명과 시대별 특징을 어느정도 이해한다면 볼 수 도 있겠으나 그리 쉽지 않다. 저자는 국가의 자원동원과 관리의 능력을 가지고 시대가 얼마나 건전하고 효율적인지 평가하였고 그것이 위기때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하고 실패했는지를 분석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황인우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듯이 군대에서 인사분야 활동 경험이 역사적 시각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 듯 하다. 한나라의 재정관리와 그것의 역동성을 가지고 시대를 바라보는 것은 나름대로 중국인의 시각을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한 모습이 보인다. 역사를 자신의 경험으로 형성한 안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이 필요한 것이고 남의 안목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내가 참고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라면 보람이라고 할까? 다만 내 지식이 받쳐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 역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역사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반성 겸 새로운 지식도 얻을 겸 '허드슨~'에서 책을 골랐다. 무엇보다 거시적 역사관이란 표현이 낯설었고, 그래서 좀더 큰 규모의 역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쁜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훌륭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이유는 첫째 거시적 역사관이라 말하고 있지만, 역사 비전공자가 보기에는 일반적 역사관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일례로 양귀비 때문에 당이 망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 어째서 거시적 역사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의 모든 현상을 한 개인에게 귀결시키는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은 별로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책의 지루함이다. 역사책이 재미있을 이유는 없지만, 신문에 연재된 글들의 모음이라 그런지 처음 한두편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으나 뒤로 갈 수록 비슷한 생각과 구조가 읽은 재미를 반감시킨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중국사의 주요 대목에 대해 사회와 자연환경과 관련한 저자의 의견은 충분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 큰 시간을 투입하지 않고 읽는다면 나름대로 중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 제본 상태는 나쁜 편이다. 책을 과격하게 펼치지도 않았는데 책의 앞 표지가 너덜너덜해졌다. 좀더 신경써서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
| 독서광고와 신문의 실린 독서평론을 통해 저자 레이 황과 이 책의 제목을 접하게 되었다.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중국사를 접한다는 문구가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게 되었다. 왠지 선뜻 구입하기가 두려웠는데, 과연 두고두고 읽을만한 책인가에 대한 판단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지 않을 생각이다. 이유는 "거시적 관점으로 본" 중국사는 오히려 미시적인 관점의 세세한 중국사 보다 접근하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2000년간 분열과 통일을 거쳐 현대중국의 영토를 가지게 된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이유로 오랫동안 인민의 머리속에 "통일된 중국이 비로소 중국이다"라는 마음이 심어졌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납득할만 하다. 하지만, 그런 사회 발전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백성들이 무고하게 허무하게 죽어갔는가에 대한 그 따뜻함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인들의 저작을 읽으면 언제나 느껴지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을 나사 쯤으로 취급하는 전체주의적 시각이다. 그 속의 구성원들은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삶은 좀 어그러져도 상관없다는 생명경시가 느껴진다면 지나친 오류일까? 한 왕조가 사라진다해도 "국가 중국은 영원하다"라는 믿음이 전해져왔다. 한국인이 같기 얼마나 어려운 감상인가? 새로운 제국이 생길때마다 제국안정을 위해, 여러부족간의 통혼과 이주등을 통해 현재의 한족은 여러민족과 혼혈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라는 설명으로 한족우월주의를 덜어내는 듯했다. 또한 단 10 ~ 20페이지로 이루어진 한 제국에 대한 설명은 기초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중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독자들이 저자가 말하고 자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나는 기초지식이 너무없구나 하는 부끄러움까지 느꼈다. 중국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읽기 힘든 책인 듯 싶으며, 역사전공자에게는 권할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