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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죽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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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바탕 위에 조각칼로 새긴 것 같은 제목과 몸에 줄이 감겨 있는데도 웃고 있는 토끼에 이끌려 책을 고르게 됐습니다. 토끼가 죽던 날은 일곱 살 어린 소년이 토끼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가족과 마을 주변 이야기들을 그린 소설입니다. 제목 없이 1장부터 37장까지 되어 있는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장별로 잘 나뉘어 있어서 잠깐씩 읽기에도 편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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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바탕 위에 조각칼로 새긴 것 같은 제목과 몸에 줄이 감겨 있는데도 웃고 있는 토끼에 이끌려 책을 고르게 됐습니다. 토끼가 죽던 날은 일곱 살 어린 소년이 토끼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가족과 마을 주변 이야기들을 그린 소설입니다. 제목 없이 1장부터 37장까지 되어 있는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장별로 잘 나뉘어 있어서 잠깐씩 읽기에도 편해서 좋았습니다.

 

어릴 적 시골 풍경과 우리 부모님 모습들, 그리고 친구와 형제들의 이야기가 퍼즐 조각처럼 퍼져 있네요. 토끼가 죽던 날은 분명 슬픈 이야기지만 온기 때문에 슬프지만은 않은 소설입니다. 짧은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여운이 남네요. 책을 다 읽고 나니 토끼가 왜 웃고 있는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고향과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지금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따뜻한 책이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네요.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표현들이 중간중간 웃음을 짓게 합니다. 그 웃음은 마냥 밝고 즐거운 데서 오는 미소가 아니라 비 갠 하늘처럼 슬픔 뒤에 다가오는 맑은 웃음입니다.

 

소설에 나온 몇 부분을 옮기며 짧은 감상을 마칩니다.

 

“이젠 너도 컸으니까 책임이란 걸 좀 알아야 해.”

작은형이 붉은 눈의 새끼 토끼를 내 품에 안겨 주며 말했습니다. (21페이지)

 

엄마는 아프고 슬플 때마다 간호사네 집에 가서 오래도록 누운 채 포도당 영양 주사라는 것을 맞았습니다. 나는 벽에 매달린 둥근 병에서 엄마 팔을 향해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세다가 엄마 곁에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36페이지)

 

나는 어른들 기분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일요일만이라도 주인아저씨 기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옆집 누나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집 누나가 시큰둥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순 없을 거야. 우리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어.” (41페이지)

 

엄마와 아버지가 자식들을 책임지기 위해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토끼를 책임지기 위해 좀 더 열심히 씀바귀를 뜯어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학교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공부하는 게 토끼를 책임지는 일보다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58페이지)

 

그러나 논바닥에 추락한 미군 헬리콥터 주변에 있던 사람들처럼, 어른이 된다는 게 남의 불행이나 구경하는 구경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습니다. (65페이지)

 

어른이 되면 슬픈 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모든 슬픈 일들도 처음엔 기쁜 일로부터 시작되었을 겁니다. 크고 검은 개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기쁨, 하얗고 작은 개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 큰외삼촌이 샘터 외숙모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이 결국엔 슬픔으로 변해버렸습니다. (88~89페이지)

 

난 아직 기다란 주소를 다 외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엄마는 장롱 속이든 장독대든 내가 집안 어느 곳에 숨어 있더라도 정말 나를 잘 찾아냈습니다. 아버지가 알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까 내 몸의 주소는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1페이지)

 

 

 

 

“토끼는 죽거나 사라진다. 인간은 죽거나 살아진다.”

 

토끼와 인간은 모두 죽어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라지기 전에 살아집니다.

그 살아지는 과정에서 만나는 좋은 책은 인간을 보다 나은 길로 이끄는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지러운 시절에 좋은 작품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b*****7 2015.11.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