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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였을 때 마음이 일렁였다, 제목에서부터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젖어 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아이러니하게도.) 읽으면서도 특정한 이미지가 떠올라 마음 속에 강렬한 한 장의 그림을 남겨야 '아, 이 시는 좋다'하고 품평하고 마는 내가 많이 부족한 줄 알지만.... 이 책이 가진 독특한 흙냄새, 밤의 공기, 바스락거림....따위가 좋다. p.s. 아직도 시는 어렵다. 검은 강 _강연호 나는 저물어가는 강변에서 부글거리는 거품처럼 고여 있었습니다 해질녘의 강물은 더이상 흐르지 않고 제 몫의 흘러온 기억을 열어보고 있었습니다 검은 강, 둥둥 떠다니는 기름띠 사이로 저렇게 아름다운 승천이 가능하다니 노을빛에 섞인 거품들은 너울너울 날아올랐습니다 금세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습니다 나는 맨질거리는 돼지머리처럼 후회의 뒷덜미를 밀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순결한 청춘과 슬픈 연애를 꺼뜨리고 싶었습니다 한때 가슴 뜨겁게 움켜쥐던 책들 모조리 던져놓고 싶었습니다 허나 검은 강, 너무 더럽혀진 댓가인 듯 거품들은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거품은 거품일 뿐이라지만 꺼지지 않고 다만 격렬하게 부글거렸습니다 나는 폐수 뒤엉킨 강물 속에 검은 광목천이 펄럭이는 걸 보았습니다 (p.45) 적멸 봄밤 _강연호 이런 밤에도 강물은 흘러갈까 물음인 듯 중얼거리는 소리 나는 홀연 듣는다 끊어진 시선을 다시 이어보면 방금 지나쳐간 늙은 여자의 밀린 분자국과 어둠을 토해내는 비닐봉지의 하품이 겹치고 있다 꽃놀이의 봄밤인데 그러니까 나는 지금 놀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곧 뜨거운 날들이 닥쳐올 것이므로 이 밤의 흐드러진 벚꽅들이 완성하는 욕망에 대해 터질 것같이 조마조마한 애인의 앞가슴에 대해 생각하지 생각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자 흩날리는 꽃잎들이 한심하다며 어깨를 친다 몇 무리의 사람들 지나치면서 잘 발효된 밀가루 반죽 같은 웃음이 터진다 허나 어떤 왁자지껄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밤에도 어딘가에선 부음이 오고 누군가는 또 강을 건너가리라 다만 탄식인 듯 중얼거리는 소리 나는 듣는다 때아닌 우레의 고요의 뒤섞임 고장난 수도꼭지의 물방울처럼 똑똑 듣는다 꽃놀이의 봄밤인데 (p.49) 우물 _강연호 너는 내 시를 읽지 않고 잠들었어 나는 잠든 네 얼굴을 우물처럼 들여다보지 우물, 하늘을 향한 통로 그러니까 나는 지금 내려다보지만 실은 올려다보고 있는 거지 내려가면 거기가 바로 하늘일까 우물답게 골똘한 생각으로 나는 가라앉았지 너는 내 시를 읽지 않고 잠들었어 네가 늘 말하듯 세상에는 과연 배추흰나비 때문에 농약을 고르는 사람도 있고 배추흰나비 때문에 시를 쓰는 사람도 있찌 달은 가자 하고 구름은 머물자 해서 난감한 표정의 하늘이 머뭇거리는 우물 속 나는 비명도 없이 허우적거리는데 퐁당퐁당 돌이나 던지겠다는 듯 너는 내 시를 읽지 않고 잠들었어 (p.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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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깨달음으로 고단한 ‘비단길’에서의 청춘의 환멸과 좌절을 뒤로 하고 그리운 그대에게로 되돌아오고자 하였던 시인이 육 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지도이다. 그러나 그 지도에는 그대가 없다. 시집 첫 머리에 놓인 시 「적멸」에서부터 그는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라고 그대의 부재를 고백하고 있다. 첫 시집 『비단길』(1994년)과 두 번째 시집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1995년)를 통하여 그리운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약속하였던 그가 마침내 우리에게 펼쳐 보인 지도에 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오랫동안 새 시집을 묶는 것을 주저한 이유도 분명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을 아직 읽지 못했기에,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가 향했던 그리운 세계로서의 그대의 존재를 그의 지도에서 지워버리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이번 시집의 시들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비단길에서 그리운 그대에게로 되돌아오면서 의지한 것은 기억이다. 그 기억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숱한 흔적과 상처는 그로 하여금 기억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이정표들이다. 그러나 그 흔적과 상처가 지시하는 세계는 지금 여기에 없으며 되돌릴 수 없다는 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흔적을 온전히 되살리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흔적은 무게를 더하>며, 그래서 시인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가 한참 뒤에 부러지는 것도 바로 <흔적의 무게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흔적」). 또한 시인의 <가슴 밑바닥 돌쩌귀처럼 박힌 상처는> 이제는 <고요>하고 <하나도 아프지 않>아서, 그 깊은 속내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상처」). 조개가 <온 내장을 다 동원하여 이물질과 싸>워 만든 <처절하게 빛나는 상처>인 진주를 사람들이 경배하는 이유가 그 아픔에 있지 않듯이(「진주」), 아픔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상처를 기록하는 시인의 언어는 그 상처의 과녁인 아픔에 적중하지 못한다.
이렇게 부실한 이정표로는 기억의 길이 완성되지 않는다. <청춘을 다해 도망쳐온> 시인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 옛날의 옛날부터 기억은 괄호 속에 머물러> 있을 뿐 <기억은 돌아오지 못>한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길은 겁먹은 짐승처럼 엎드려 있다가/ 전조등마다 벌떡벌떡 일어>서지만 <어떤 길은 채 일어서지 못해/ 바퀴에 낭자하게 깔리기도> 하기 때문이다(「폭주족」).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어서(「적멸」), 기억의 한계에 갇혀 그리운 그대의 온전한 모습은 복원되지 못한다. 그대가 없는 세계는 쓸쓸할 수밖에 없다. 그대가 없는 세계에서는 <초록이 없으므로 햇살은 더 이상 빛나지 않>으며(「겨울의 빛」), 입춘에 시인이 보는 것은 봄기운에 움트는 새순이 아니라 <저만치 핏발 선 등불의 정육점에 펄럭이는> 고깃덩어리이다(「입춘」).
이러한 시인의 상실감은 이제 흔적들과 상처들로 <언제나 가득 차고 무거웠던 그의 가방>을 비워내도록 만든다. <마침내 더 이상 버릴 것 없이 가방이 텅 비었을 때/ 그는 결국 마지막으로 빈 가방을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바로 고쳐 말한다. <아니 지금 남은 것은 빈 가방이고 그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그는 빈 가방 대신 그 자신을 버린 것 같기도 하다>고(「빈 가방」). 그대의 부재가 스스로를 무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이 깨달음은 시인으로 하여금 다른 전략을 채택하도록 한다. 그것은 바로 시인이 자서(自序)에서 밝힌 것처럼 <흔적의 글쓰기>이다. 탁자 위의 물방울이 마른 흔적처럼 흔적의 글쓰기는 그대를 돌이킬 수 없지만, 시인은 <지금은 없는 그대를 기록한다. 아니 그대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대와 그대 흔적 사이의 <그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고 시인은 믿기 때문이다. 사실 시인에게 있어 흔적의 글쓰기는 <그대의 부재가 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다시 謫所에서」)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차이는 말 그대로 차이일 뿐 정본이 아니다>라는 결함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시집의 표제로 쓰인 시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시인의 대답처럼 여겨진다. 물 위에 떨어진 나뭇잎 한 장이 만드는 파문, 즉 흔적에서 나이테로, 나뭇잎들로, 그 나뭇잎들의 흔들림으로, 흔들리다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그리고 다시 떨어진 나뭇잎이 물 위에 만드는 파문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흔적과 실존은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움직임이 정지의 무수한 연속이거나/ 혹은 모든 정지가 움직임의 한순간이듯>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흔적이며 동시에 실존이다. 정본은 어디에도 없으며 또한 모든 것이 정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 위에 떠서 머뭇거리는 저 나뭇잎의 고요는/ 사라진 파문의 사라지지 않은 비명을 숨기고 있다>. 흔적이 숨기고 있는 이 실존의 비명은 고요하다. <그러므로 글썽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뿌리가 젖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시인이 상가(喪家)에 가면서 <나는 부의금도 없이/ 이 곳에 왔으므로 슬픔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고 <상가에서 정작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폐가」).
지금은 없는 그대를 복원하려는 이 안타까운 노력은 <스스로 놓은 덫>이며 <서슬 시퍼런 집착>이어서 시인은 두려워한다(「다시 謫所에서」). 그 두려움이 더 깊어지기 전에 그가 덫에서 빠져나오기를, 집착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간절히 기대하는 것은 그의 덫이, 그의 집착이, 그의 두려움이 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진주 조개 속에서 큼직한 진주가 나왔다 온 내장을 다 동원하여 이물질과 싸웠는지 기진맥진한 듯 조개는 제 몸을 순순히 열어주었다 저건 티눈이나 옹이가 아니다 악성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종양인데 그 상처와 싸우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그걸 사람들은 귀하다고 한마디씩 주절대다니 처절하게 빛나는 상처에 입 맞추며 사람들은 진주를 경배한다 경배의 이유는 물론 딴 데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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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연히 이 분의 시집을 몇 권 얻었었다. 펼쳐보았을 때의 그 생생한 느낌이 아직도 꿈틀거린다. 뭐랄까, 아, 이 시인은 천재로구나 하는 느낌. 참으로 치열하게 생각하고, 살아내고, 시를 쓰는 사람이구나 하는... 열정적이고, 삶에 대해서 패기에 차 있고, 무엇보다도 시의 냄새에 아주 민감한 딱 시인의 운명을 지닐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한동안 강하게 다가왔었다. 시가 펄펄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대한 고뇌가 진하게 끈적거렸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너무 천재스러워서 차가운 박재가 되어지다못해 금속성의 날카로움까지 벅차게 느껴야 했었던...
그리고 한참만에 새로운 시집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으로 다가온 느낌은 참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 그리고 깊어졌다는 것. 그렇게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는 내게로 왔다. 천재성은 여전하지만 이젠 세상의 깊이를 느껴내고서야 필을 든 사람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젊은 날의 열정이 인생의 깊이로 젖어들어갔는가. 그래서 시를 대하기가 참 편하다. 맘을 조리게 하는 찌릿함이 사라졌다. 시를 대하는 시선이 참 많이 부드러워졌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많이 누그러지고, 여유있어졌다. 벼가 익은 것처럼 시가 익었다. 그래서 맛있게 햅쌀로 지은 밥을 먹듯 맛있게 시를 대하게 해준다. [인상깊은구절] 우듬지에 겨울 햇살이 이명처럼 매달려 있다 초록이 없으므로 햇살은 더이상 빛나지 않는다 나무는 제 발치께를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발로 쓸어모으는 기억은 누구에게나 허전한 법이다 한때 우숭깊었던 그늘의 넓이를 가늠하며 나무는 체온계를 문 아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텅 빈 고요가 압박붕대에 묶인 허리춤을 더듬는다 동그랗게 말린 이파리 몇 장이 마저 떨어져 이미 탕진한 삶을 둔탁하게 덧칠한다 저 잎들이 움켜쥔 허공조차 내 몫이 아니었구나 바람도 없는데 나무는 진저리친다 나뭇잎 대신 이명의 햇살이 떨어져내린다 그늘이 있던 자리를 비춘다 배추 속같이 환하다 나무를 지탱하는 힘은 이제 고요가 아니다 -<겨울의 빛>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