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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000권이 팔리면 그 중에 시집이 7권 정도라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 있다. 몇 년 전 통계이니 아마도 요즘은 시집 판매부수가 더 감소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내 독서 이력을 되짚어도 그렇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연간 시집 구입이 30권은 넘었으나 작년에는 10권 남짓이다. 게다가 읽지 않고 책장 자리만 차지하는 시집도 있다. 그 중에 한 권이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이다. 물론 내 손에 쥐어지자마다 통독했지만 머릿속에 저장되는 이미지가 바닥에 가까웠기에 다시 손대기가 저어되었다. 이러다 영영 읽지 않을 것 같아 올 5월에 다시금 도전했다. 허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위안을 삼자면, 바람의 세월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의 겉 뿌리처럼 조금은 형태를 그릴 수 있겠다. 다시 끝까지 읽었음에 스스로 칭찬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와 닿는 시는 시인의 마지막 작품인‘풀’과 어디선가 우연찮게 만난 ‘폭포’이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태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부분)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부분) 민중의 저항으로만 바라보기 싫은 까닭에 억지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본다. 고요한 카메라의 이동. 렌즈로 보이는 영상, 틈틈이 박히는 사진, 인화되었으나 이미 그것이 아닌 광경. 순간의 이미지로만 박혀오는 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소리, 담을 수 있는 그릇은 대체 뭘까. 난 언제쯤 이 시집을 다 읽었다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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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에게서 ....허수경에게서...서로를 본다.. |
| 시라는 장르가 사라져 가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김수영이 활동했던 시기는 때론 시쓰기가 어려웠다고 해도, 시가 읽히는 시대였다. 문득 21세기에 이르러 그의 시집을 읽으면 거대한 뿌리 아래 거대한 시인 김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릇 위대한 시인이란 시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시인이 그렇게 불림직하다. 김수영은 일찍이 일상성을 시 안에 도입하여 한국 현대시의 장르를 개척한 대단한 시인이다. 그의 고뇌와 시대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식이 그대로 시에 녹아 들어갔으며 그것을 일상적인 어투로 인해 시를 좀더 쉽고 경제적으로 만들었다. 마땅히 옛 시인들의 시선집 하나를 꺼내어 읽고 싶다면 김수영이 이 책도 참 좋다고 생각한다. 옛 시도 읽히고, 요즘 시도 읽히는 그러한 세상이되었으면 좋겠다. |
| 나는, 소위 말하는 글을 쓰는 아이들 중 하나이다. 재능이 출중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쓰고 싶은 욕구를 누르지 못해 쓰기 시작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그야말로 우연찮게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최근, 대체 내가 쓰는 시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그 자체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남들이 "슬럼프"라고 말하는 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예뻐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시인 "김수영"을 말씀하셨다. 그의 시에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이있으리라 말씀해 주신 것이다. 김수영의 시는 풀과 폭포밖에 모르던 나는, 그날로 서점으로 뛰어가 이 책을 사들었다. 과연그랬다. 김수영 그 한 사람의 혼이 담긴 펜 끝에는, 민족의 혼이 담긴 역사가 숨쉬고 있었다. 역사가 머무른다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런...! 40,50,60년대의 그 치열한 시대를 작가는 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다. 그런 경험과 작가의 고뇌하는 생각이 김수영 자신의 펜 속에 고이 스며든 것이다. 흐느끼는, 모로 누워버린 갈대마냥 작가는 시 속에서 울부짖고 흐느낀다. 그리고는 탈진해 쓰러져버렸는지 스스로를 어르고 달랜다. 그의, 송곳의 끝마냥 예리한 영혼은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어느 한 토막을 떠올리게 한다. 찌들어 버린 어느 영혼의 한토막..! 현실속에 안주해 버린, 아니 안주하지 못한채 현실의 대기 중에 흩어져버린 그의 혼. 세상이 어수선한 지금, 다시금 그의 문학론이 빛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