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와 마주치기 전에는 삶이 그렇게 놀라운 것도 외로운 것도 아니었다. 네가 나에게 창을 던졌을 때 작살에 찔려 허공에 버둥거리는 물고기처럼 눈은 휘둥그래졌고 세상은 놀라움의 광채를 띠게 되었다. 죽음을 품고 햇빛을 더 강하게 죽음을 품고 어둠을 더 거칠게 그리고 낯섦을 더욱 낯설게 느낄 수 있는 회복기 병자들의 거울, 거울 속의 해골 바가지여, 너와 마주치기 전에는 삶이 그렇게 놀라운 것도 외로운 것도 아니었다. 최승호 시 p.25 ÷÷÷÷÷÷÷÷÷÷÷÷÷÷÷÷÷÷÷÷÷÷÷÷÷÷÷÷÷÷÷÷÷÷÷÷÷÷÷÷÷÷÷÷÷÷÷÷÷ 이 시집은 처음부터 민음사의 시선으로 뚝 떨궈져 나온 시집이 아닌 것으로 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오늘의 작가상이란 명분에 오랜 세월 이어져오던 시와 소설이 혼재하던 방식에서 어느해 부턴가 시 부문은 별도 로 나오면서 다시 출간된 것이 이 것일 것이다 . 이 시인은 그러니까 77년부터 맥을 한 오늘의 작가상에 서 제 6회 수상작 으로 안다. 한동안은 구하느라 애를 먹었는데..좋아졌다. 민음 총서로 전부 다시 만날수있기를 기대하면서 앞의 몇권 을 더 구해야 할테니..분발해야 할것 같다. 상상만 하던 시를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일... 죽었다 생각했던 이와 다시 만나는 일과 상당히 비슷하다. 반은 실감이 나질 않아서...이게 맞는지...싶고.. 다행스러운 건 우리 시여서 큰 변화가 없을거란 것. 최근에 푸쉬킨의 시를 읽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 의미따위 제대로 알았는지는 잘 몰라도 그 때 입에 착 감기던 그 시가 아니다. 번역에 있어 이젠 시대가 어쩔 수 없다 해도 어린 날 그것은 그것 대로 중독이었는데... 변하는 것은 어쩐지 모두 서글프다. |
|
얼룩덜룩하게 나타난다 악몽 속에 기울어져가던 판잣집이 발이 굵은 문어가 휘감은 가족들의 얼굴이 앵무조개의 화석과 내가 삼킨 자라의 피 모가지가 떨어지며 쏟아지던 피가 나타난다 하늘 궂은 이 여름 얼룩을 채 빼기도 전에 또 다른 얼룩들이 테를 치며 누추한 기억의 피륙 위에 늙은 문둥이의 얼굴이 백색으로 뭉갰던 숱한 밤들이 최승호 시 p.103 ~~~~~~~~~~~~~~~~~~~~~~~~~~~~~~~~~~~~ 낡은 집 천장 비가 새는 누추함을 아는 자는 알지.. 어떤 날은 쥐 구멍에 뼡들 듯이 눈이 부셔서 감히 도망을 치리라 맘 을 먹어도 아득하여 아무것도 할 수없단걸.. 또 하늘에 별 총총 지고 날이가고 비가 ... 얼룩위에 다른 얼룩은 어떤 식이든 그림으로 괴로운 전생을 불러내거나 깨기 싫은 환상으로 끌고 가곤 한다는 걸 누추하여 그런 천장을 가져 본 이는 알지... |
|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 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최승호 시 p.101 /102 ~~~~~~~~~~~~~~~~~~~~~~~~~~~~~~~~~~~~~~ 나희덕의 시에서 대종사 를 말하며 상위의 북어가 말갛게 그녀를 보고 있더란 시가 생각나는 밤... 죽어도 죽지 못해 또 다른 죽음 앞에 놓여지는 북어의 생 죽은 것의 이름이..말도 못하게 처연해져서 매운 고추가루 푼 물을 들쿤 것처럼 코뿐 아니라 머리 속까지 가슴 속까지 시커멓게 뜨거운 밤. 북어는 올리지 말자. 죽어서도 괴로운 저이를 그냥 물에 놓아줘... 해실해실 풀어져 그대로 흩어져 아무것도 아닌 걸로 다시 다 돌아가게... 내가 물 밑 바닥에 가라앉아..그런 생각을 했었네. |
|
광산촌에 구리거울 같은 달이 뜬다 둥글다 훤하다 만월이다 헛간 지붕 위를 기면서 일제히 훤한 하늘로 뻗어 나가던 덩굴에 달린 청둥호박도 만월이다 마음만이 흐리게 일그러진다 복스럽게 이뻤던 얼굴들이 돌에 얻어맞은 늪 속의 달처럼 주름살과 슬픔의 혹을 달고 일그러진다 늦도록 키가 넘는 두레우물 두레박줄을 당기는 눈 우묵한 여인이 보인다 등에 업힌 아기가 보인다 이제는 흙이 들어앉은 눈두덩뼈 석기시대의 골짜기와 옛사람의 눈을 비추던 해는 저물어도 늙은 산맥 저쪽에서 빛나고 있다 쥐들이 날아온다 너펄거리는 날개 큰 쥐들이 쥐라기 이전의 까마득한 어둠을 끌고 널찍하게 텅 빈 밤하늘을 날아다닌다 구리거울이 반사하는 묵은 시간들 철갑의 기계들이 주둔하는 광산촌에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죽탄이 쏟아진다 갱 속에 곡괭이질하던 광부들이 보이지 않는다 철야하는 유령들의 검은 공장이 덜컥거린다 사느라고 등이 굽은 쥐며느리의 마을에 가슴팍도 등뼈도 다 굽은 난쟁이 안팎곱사등이의 마을에 늦도록 유령들의 검은 공장이 덜컥거린다 최승호 시 p.121 /122 ########################################## 부끄러운 마음. 이태전 사북에 다녀와서 내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녹이슬어 무너지고 있는 탄광의 무엇도 아닌 빗장을 다 드러내어 보인 낡고 낡은 빈 집 들였다. 밭에는 아직 손대면 자라고 말듯한 모종의 기운이 여전한데도 신기하게 사람의 흔적만 홀연 하게 없던 사람이 불을 ..살가운 정을 나눠주지 않음 집들은 금방 그 빈 곳을 다 드러내 보이며 주저 앉았다. 마치 남편을 잃은 늙수구레한 여편네처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속 이 다 드러나 보이는 것 따위 알바 아니란 듯이... 거긴 사진이고 남은 세간살이고 고스란히 바람을 같이 맞고 있는 광경에 내 빗장뼈가 열리는 통증을 느꼈다. 충동적으로 나선 길... 뭔가 찾아보겠다 간 게 아니었다. 볼 수있을거란 기대도 없었더랬다. 뭘 기대하는지 나도 몰랐으니... 그저 이름에 끌렸던가... 어쩐지...부끄러운..지금... 검운 공장의 유령들을 위해 술한잔 뿌리고 왔더라면.... |
| 1982년 제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이 시인은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듯 싶다. 문학상도 많이 받았고 산문도 여러 편을 발표했다. 그의 시 쓰기는 여타 시인의 시와 다르다. 그의 시는 지적이며 문명적이면서도 아이러니칼하게 문명 비판적이다. 그의 시는 서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의 감정을 절제하면서 논리적인 사유 방식으로 시어를 연결한다. 그러나 이 사유 대상은 원칙적으로 부조리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시 속에서 보여주는 문명 비판에 대한 고뇌는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의 부조리성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해일처럼 굽이치던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굶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 시 '대설주의보' 앞 부분 일류 배우가 하기엔 민망한 섹스신을 그 단역 배우가 대신한다 은막에 통닭처럼 알몸으로 던져지는 여인 얼굴없는 몸뚱이로 팔려다니며 관능을 퍼덕거리는 - 시 '세속도시의 즐거움' 앞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