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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읽은 거라고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제외하면 몇 개 한 손으로 꼽을만큼도 안되지만, 그 매력은 거시적인 시각으로 현재의 인류를 통찰하는 데 있다는 점을 느낀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들의 의존성을 새삼 깨닫게 하고, 사회적 관습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지난 세기에 쓰여진 현재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소설이라면 독자는 소설속에서 상상한 미래의 기술과 이미 구현되었거나 쓸모없는 기술, 그리고 앞으로 갖게 될 기술들 사이에서 그 소설의 예언적 혹은 예측적 능력을 후세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평가하는 즐거움도 얻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전기의 부재는 상상할 수도 없다. 어제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휘발유 차 대신 한 번 충전으로 시속 180Km 이상을 300km 이상 달리는 전지와 전기 자동차 기술이 GM에서 이미 20년이나 앞선 199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그 기술로 인해 정유회사의 계략으로 모든 기술이 폐기되었다는 내용인이다. 이런 음모설에 대한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최초의 자동차 역시 전기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보다 먼저 나왔고 19세기 말 100km/h를 달리는 것도 가능해서 반짝 유행한 적도 있지만, 값싼 화석연료와 대형 정유회사들의 등장으로 쇠퇴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최근 테슬러의 활약을 보면 머지 않아 전기 자동차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은 자명해 보인다. 바르자벨은 궁극적으로 오늘날 정유회사들의 막강한 파워를 원자력 회사들에게 부여했다. 해수를 발효하고 증류해서 얻은 정제원료 0.5리터로 1천킬로미터 이상을 주파 가능한데, 원자력 회사들이 은밀하게 반대를 했음에도 그 수가 계속 증가했는데, 이 정제원료의 단점은 값싼 대신 대량의 산소를 많이 필요로 했고 그래서 도시는 산소부족으로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대재난은 전기가 어떤 이유로 동작하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르네 바르자벨은 60여년 전 미래 2058년에 기술과학이 도달할 동력의 원천으로 해처럼 달처럼, 늘 그자리에 있게 될 어떤 힘으로 전기를 상상했고, 그것의 갑작스런 소멸이 몰고올 미래를 그렸다. 늘어난 인구는 도시 전체를 거대한 100층 이상의 마천루로 이루어진 공중 도시로 변모시키고, 300km 속도의 열차는 지나간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낡은 교통수단이며, 사람들은 도시와 도시를 거미줄처럼 연결한 거대한 모노레일로 시속 2~3천km의 속도로 '한가로이' 여행하는 것을 즐겼으나 도시의 대기위로는 최첨단 항공기들이 새처럼 거미처럼 내려앉고 올라가곤 한다. 오늘날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은 서울과 같은 도시의 전력이 하루 이틀이라도 완전히 끊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건 엊그제 집에서 경험한 일인데, 당연히 전기가 정지되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엘리베이터와 냉장고는 물론 전기 없이는 가스 점화도 불가능하다. 한두시간이 아닌 하루 이틀이 되면 냉장고의 모든 음식들은 썩을 것이며, 고층 아파트에 사는 우리들은 드나들기도 어려워지고, 먹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점화가 안된다는 건 겨울에 난방이 끊어진다는 말이니 얼어죽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세계적인 전력 중단이 일어나기 때문에, 상수도 설비도 모두 중단되고 물마저도 수돗물마저 얻을 수 없다. 이 소설에서 2058년 세계는 조지오웰의 <1984>처럼 대륙 단위로 지배하는 군주가 있는데, 전체주의의 군주 대신 기술문명과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가 예언한 것들 중 현재 이미 실현되었거나 어느 정도 실현된 것들은, 초고속 열차, 화상 전화, 유전자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생물종의 탄생, 공장화된 식용작물 재배 시스템, GM 기술이 실현한 빠르게 성장하는 농작물, 핵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것 등등이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의외로 신용카드, 오늘날과 같은 SNS와 휴대폰 등이고, 가장 바보스러운 아이디어는 수도꼭지에서 우유가 나오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저자의 상상은 꽤나 치밀하고 구체적이어서, 그럴듯하다. 특히 고위층의 인간이 점차로 제 손으로 뭔가를 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설정은 정말 그럴듯하다. 제롬은 단 한번도 무언가를 제 손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대기하며 요구에 부응하는 부하 직원들과 완벽한 장비들이 한 트럭씩 있었다. 부하들이나 장비들이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자신의 몸 장기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주변에서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1천개에 달하는 그의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그 자신이 모든 일을 손수하도록 그를 홀로 남겨두었다. (P146) 프랑스가 배경이지만, 대재난은 전세계를 포괄한다. 처음으로 전세계를 강타한 약 10분 동안의 종류를 막론한 모든 전력의 전압의 급격한 하락은 태양의 흑점, 급격한 지구 기온 상승, 폭염 등을 원인으로 크게 대수롭지 않게 지목되었으나, 이것은 마침내 데뷰를 앞둔 블랑슈의 데뷰 공연이 벌어지던 날, 100층의 방송국에서 시작된다. 때마침, 아프리카로 강제이주당한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 황제는 전세계를 향해 천발의 항공 어뢰와 10만대의 전투기 공격으로 인류 절멸을 꾀하고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공중에서 비행기들이 폭파되어 도시의 곳곳으로 내려앉았으며, 전력을 잃은 시민들은 공항상태에 빠져 높은 계단을 빠져나오다가 계단에서 압사당하고, 상점들은 약탈당한다. 그나마 남아있던 얼마 되지 않은 남쪽 시골에서 전통적 방식의 육체 노동으로 삶을 살아오던 프랑수아는 블랑슈를 구해내고 팀을 조직해, 아비규환의 재앙의 도시를 탈출하는 과정이 엄청난 스케일과 세심한 묘사로 이루어져있다. 만일 그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프랑수아는 고향에서 사랑하던 블랑슈가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블랑슈를 돈으로 매수한 방송사 예술국장 제롬의 계략으로 학교 입학도 거절당한 채 권력의 힘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완전한 루저로서의 인생을 살아갈 팔자였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재난을 헤처 나가는 프랑수아는 때로 잔인하다. 의인처럼 등장한 그의 잔인함이 처음으로 묘사된 곳은, 정신을 잃은 블랑슈를 지키기 위해 말을 얻는 과정에서 말주인인 정원사를 죽이는 일이다. 도시의 마천루들 사이로 거대한 정원을 지키는 수석정원사가 아이들을 태워 산책시키는 마차를 기억해내고는 자신의 짐을 싸서 피난을 하려하는 정원사에게 자신들을 조금만 태워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가차없이 그를 죽이고는 마차를 탈취한 것이다. 약탈이 일상이 된 도시에서, 프랑수아는 혼자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팀을 꾸린다. 자연적 재앙이 일어나면, 자연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인간들이 더 큰 적이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절박한 현실, 팀원들조차 실수를 하면 죽여버리는 카리스마를 통해 프랑수아는 원시부족의 리더로서의 능력을 키워간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은 화재를 몰고 왔고, 도시는 구석구석 화재로 뒤뎦혔으며, 콜레라가 창궐한 도시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괴물이 되어갔고, 그 괴물들은 어디에서건 나타난다. 물과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 걷고 걷고 또 걸어 찾아낸 곳에서, 새로 시작한 원시적 생활 그리고, 거기에 도사리는 또다른 반전과 그 반전. 재난이 인류의 기술을 모두 끝냈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인간이 스스로의 몸을 움직여서 만들어내던 모든 에너지를 기술적 동력으로 대체하게 되었을 때 무기력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그 인위적인 것들과 대척점에 서게 된 프랑수아의 선택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미 기계와 도구의 사용이 DNA처럼 몸에 감각에 본능처럼 간직된 인간은 모든 책을 태워버리고 모든 과학 기술적 진보를 금지시켜도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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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나오는 미래도시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공중도시와 도시의 대기위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항공기를 제외하면 이젠 미래의 모습도 아니다. 시속과 연비만 다를 뿐이지 고속열차와 전기자동차는 지금도 운행 중에 있으니 말이다. 조상들의 모습을 축소하여 집안에서 모시고, 가정마다 수도관이 있듯이 우유가 공급되는 우유관이 따로 있는 가정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생활양식과 식생활 변화의 필요성이 있다면 가까운 미래에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SF 장르치곤 미래도시의 모습을 너무 평범하게 묘사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소설이 쓰여진 시점이 1942년이라고 한다. 소설 속의 시점은 2052년, 지금으로부터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저자가 쓴 시점과는 한 세기가 훌쩍 넘는데 마치 예언자가 된 것 마냥 저자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매우 자세하게 미래를 설계하였다.
어찌되었든 그 당시 작가가 설계한 미래는 전기가 바탕이 된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대재난은 바로 이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서 시작된다. 순간 전기가 사라지면서 달리던 자동차가 서게 되고, 날고 있던 비행기가 지상으로 떨어진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하고, 수도공급이 중단되는 등 인간이 사용했던 모든 것이 정지한다. 이제 이 세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 이런 대재난의 시작점에서 블랑슈 데뷔공연은 취소되고, 재난 앞에 속수무책으로 갇히게 된다. 이런 블랑슈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프랑수아가 나서게 되고, 공황상태가 된 도시를 탈출하는 과정으로 사건은 전개된다.
그 과정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했다. 비록 방주를 만들어 탈출하지는 않았지만 불타는 재앙의 도시를 최소한의 사람들을 이끌고 탈출하여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한 프랑수아의 모습에서 노아의 모습을 엿 보았기 때문이다. 화염이 도시를 파괴했고, 더 이상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것은 없어졌다. 이제 원시생활로 돌아가게 되었고 개척할 땅은 너무나도 많아졌다.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땅을 개척해야하는 원시시대로의 회귀는 지금 기술에 집착하고 있는 현대인을 질책하는 듯하다.
이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은 한번 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현재 전기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이 소설 안에서 펼쳐진다면 소설의 내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현대인이 얼마나 지구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화려한 세계의 종말이 지구의 종말이 아니고 원시시대로의 회귀라는 결말이라서 위안이 되긴 하지만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력만 진보시킨다면 이 소설처럼 무서운 결과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젠 인간성 회복과 자연 보전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할 때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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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년에 이 소설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래에 일어난 현상과 상황을 눈으로 본 것 처럼 아주 자세하고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2052년에 일어날 일을 소재로 거의 100년 앞을 예상, 상상해 가며 글을 전개한다는 그 자체가 경이롭지 않다고 할 수가 없다.
2052년 미래, 전기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이용하고, 매일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것들, 입는 옷 까지도 전기와 연결 될 정도로 전기가 전부인 세상을 그려냈다. 작가의 이런 놀라운 상상력의 결과물은 미래에 현실로 맞딱뜨렸을 때 어지간히 맞아져서 SF 소설이 예지 문학이라 불릴 정도였다 한다.
대재난의 제목을 보고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상상 하는가? 무슨 큰 일은 벌어질 것 같은데 어떤 경로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 될 지는 독자로서는 예측 불허이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 어떤 위기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누가 짐작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소설은 정말 벌어질 만한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수 많은 비행기들과 촘촘하게 연결된 고속도로 망 위의 자동차 들이 미래에 분명 나타날 수 있는 교통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모두 전기로 동작을 하고 있다는 것. 전력 부족이나 전력을 사용할 수 없을 때 그 세계는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작가는 시종 현실감 넘치는 전개를 해 가고 있어서 독자가 전혀 황당함을 가지지도 못한 채 작가에게로 쏠려 읽어가게 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삶, 사랑, 함께 이루어 가고 극복해 가는 무리, 이런 명사들, 생활 속에서 늘상 보여주고 있어서 자칫, 소중함을 잊기 쉬운 고귀한 명제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지는 삶이 아니라 함께 뭉쳐서 헤쳐가는 무리,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이 인간이므로, 죽지않고 살아가야 하므로 더욱 부각 되어지는 것 같다.
이것으로 작가의 소설이 더 빛나 보이기도 했다. 감동을 주는 요소이기도 했고. 등장인물인 프랑수아와 블랑슈가 원점으로 돌아갔다가 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가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 편, 있을 법직한 이야기라서 더 무서워지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읽어 두면 좋을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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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난>은 1943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약100년 뒤의 일을 쓴 작가의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비단 상상력뿐만 아니라 상상한 것을 생생하게 써나간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눈앞에 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2052년에 일어난 일들을 묘사한 단어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2052년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전기를 비롯한 모든 에너지원이 실종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이미 기술에 의존하여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었으며, 식량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기계들이 키워냈기 때문에 전기를 비롯한 모든 에너지원의 실종은 소설 속의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재난을 야기하였습니다. 요즘 인터넷을 통하면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거의 모든 생활이 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에다가 많은 부분을 전기, 기계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다 보면 아주 먼 미래로 느껴지지 않아 곧 다가올 시대가 이렇지 않을까 상상이 되어 조금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으며 물 부족에 대한 피해의 심각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2014년과 2015년의 가뭄을 보고 있으면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곧 느낄 날이 머지않은 듯 해보입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사실은 물 부족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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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재난
이 책은 제목처럼 대재난을 다룬 책으로 전기가 사라진 SF디스토피아 종말문학이다. 게다가 1943년에 씌여진 오래된 글인데 미래 배경을 해서 그런지 꼭 현대작가가 쓴 글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프랑스 SF문학의 선구자라는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닌 것 같다. 2052년 여름, 프랑스 파리. 이 시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뭐든 이루어지는 최첨단 과학의 시대다. 하늘을 나는 날개없는 비행기, 초고속열차, 화상 전화기, 초고층빌딩,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를 생산하는 인공배양육 공장, 채소 재배 공장, 우유가 나오는 수도, 바디수트, 고인 보존 기술, 굉장히 놀라운 것은 이 중에 몇은 현실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나머지 것들은 더 미래에 계발될 지도 모른다. 거기다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 농촌 황폐화, 도시 인구 밀집, 규격화된 예술 등등. 지금 현재의 문제점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예지문학"이라고도 부르던데, 그녀의 상상력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던 어느날 전기가 사라진다. 그래서 세상 모든 기계들이 중단되고 고층건물들도 빛이 모두 사라져 암흑이 된다. 거기다 가스도 물도 전기가 없으니 모두 중단이 된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자 주인공 프랑수아는 약혼녀 블랑슈와 몇 친구들과 함께 도시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프랑수아는 농사꾼 집안 출신 이라 농사를 잘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과연 기계에 의존만 하던 그들은 새로운 곳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사건과 문제들을 보여줘서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원시적으로 살게 되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 삶과 사랑, 우애.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줘서 공감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또 다시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려 하지만, 그것 대신 다른 것을 택한 것에 감명깊었다. 가끔은 손가락 까닥하지 않고 모든 것을 누리는 게 참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연 그게 행복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해본다는 것. 그것이 소소하지만 인간적인 행복이 아닐까 싶다. 지금 현대인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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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발표된 르네 바르자벨의 <대재난> 르네 바르자벨은 작품 속에서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닌 그러나 이 놀라운 문명은 어느 날 불현듯 전기가 사라짐으로써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전기가 사라짐으로 시작된 대재난은 낯설지 않다. 만약 바로 지금 전기가 사라진다면 즐거운 책읽기였다. 일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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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르네 바르자벨은 그리 익숙하거나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 SF소설의 선구자이자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예지문학'을 이끌어 온 작가로서 프랑스에선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필수 작가라고 한다. '예지문학'이라니. 르네 바르자벨이 작품 속에서 묘사된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 현실로 이루어졌다니 정말 놀랍다.
<대재난>은 194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1부 새로운 시대 앞부분에서 2050년 주인공의 시대를 설명하고 있는데 약 100년을 내다보고 미래를 묘사하고 있다.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에 앞서 그 시대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 2015년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대가 너무나 미래지향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매년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고 실용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35년 후의 시대가 <대재난>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대와 같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2052년, 프랑수아 데샹은 중요한 시험 결과를 앞두고 고향에서 파리로 돌아가고 있다. 가장 바라는 일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당연히 자신의 짝으로 생각하는 블랑슈를 만나는 일. 한 과학자의 엄청난 발견으로 인해 원자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 후 이제 세계는 하루 생활권이 되었고 좀 더 간편하게 좀 더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힘을 들여 일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원자력을 이용한 전기를 활용하여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더이상 사람의 능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된 세상,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좀 더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죽음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모든 조상을 실제처럼 완벽하게 처리하여 집 안에 모시게 되었고 여성들에겐 정숙함이 요구되며 마치 중세시대의 그것처럼 되돌아간 것이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시작되었다. 아니, 사실 예고는 있었다. 태양의 흑점 활동으로 인해 전기가 방해되어 가끔 정전이 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것이 멈춘 적은 없었다. 아직은 어리고 아름다운 블랑슈가 TV 스타로 거듭나려는 바로 그 순간, 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들의 나라 대통령이 그동안 참아왔던 백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그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모든 전기의 멈춤! 단순한 정전이 아니다. 어떤 힘에 의해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멈춘 것이다. 이미 모든 연료가 전기로 움직이던 때였으므로 하늘을 날던 비행기나 새로운 동력기,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전력 기기와 심지어 자석처럼 붙이는 형식의 인간들의 옷까지.
"자연이 모든 걸 제자리로 되돌리는 중이야."...102p
경제적으로 자유롭지도 않고, 당연히 합격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직장에서도 떨어졌으며 짝으로 생각했던 여인에게 실연의 편지를 받았음에도 이 문명의 이기주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오던 프랑수아 데샹은 침착하며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우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다음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쓸모없어진 것은 바로 수고로움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간은 수천 가지의 기계를 만들었네. 그것들 각각이 인간의 행위와 노력 각각을 대체했네. 기계들이 인간을 대신해 일하고 걷고 보고 들었네. 인간은 더는 자신의 손을 쓸 줄 몰랐지. 더는 노력하는 법도, 보는 법도, 듣는 법도 모르게 되었더."...333p
왜 세상에 재난 따위가 닥쳤는지에 대한 것은 나오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믿음이다. 스스로 했어야 할 일을 모두 기계에게 맡겼기 때문에 자연이 다시 되돌리려 한다는 믿음. 그러니 그것에 맞춰 다시 삶을 일구어야 한다는 믿음.
2050년에 정말 이런 세상이 올까를 생각해 보면 아직은 좀 더 과학의 발전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역시나 작가의 통찰력과 예지력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분명 지금 2015년 또한 그런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괴해 놓은 자연을 되돌리려는 노력보다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을 보면 르네 바르자벨이 예상하는 "대재난"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나. 모든 재난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주인공 프랑수아 데샹은 이 모든 재난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모든 기계가 사라져도 인간의 힘으로 다시 생활 터전을 일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 지구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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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SF문학의 선구자'이자 '예언자'라는 별명을 가진 르네 바르자벨의 SF소설이다. 그 범상치 않은 칭호답게 「대재난」은 아주 오래 전(1943년)에 집필된 작품일지라도 마치 오늘 상상한 만큼 새집에서 나는 포름알데히드 냄새가 나고, 방금 잡은 생선처럼 바닥을 치며 파닥거린다. 「대재난」에는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기상천외하고 신비한 기술로 가득하다. 처음 출판된 당시(1943년)에는 없고 지금(21세기) 있는 기술을 가뿐히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도할 만한 흥미로운 미래기술을 소개해준다. 또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뛰는 신기한 기술도 만날 수 있다. SF(Science Fiction)소설을 접할 때면 막연히 어려운 용어를 맞닥뜨릴까 봐 조금 걱정이었지만 이 책은 그런 부담 없이 미래로의 길을 터 주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기술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우유가 나오는 수도꼭지'이다. 우유는 각 가정집의 수도관을 통해 배달되는데 여기에 크롬 도금이 된 장치를 곁들이면 몇 분 만에 버터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요새는 커피(아메리카노)가 나오는 정수기도 개발되어서인지 무척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날마다 우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정수기를 씻은 다음 신선한 우유로 다시 채우는 작업은 사양하겠다. 그 우유를 온수와 냉수처럼 온도를 쉽게 조절할 수 있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먼' 미래에는 어떨까? 우유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뿐 아니라 똑같은 맛과 영양소를 가진 '진짜 같은 우유'를 개발하여 실시간으로 공급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유가 나오는 수도꼭지' 다음으로 인상적인 기술은 '고인 보존 기술'이었다. 각 가정집마다 영하 30도로 얼린 보존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고인들이 평소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자주 취하던 포즈로 세팅되어 있다. 그 모습은 흔한 사후경직과는 다르고, 피골이 상접한 미라의 몰골과도 달라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듯한 생기발랄한 모습이다. 심지어 압축 공정 덕분에 고인의 몸을 0.5센티미터 길이로 축소한 후 프레스로 압착해 앨범에 붙이기까지 한다. 가까운 세대의 조상은 본래의 크기로, 먼 세대의 조상들은 작아진 채로 자손들의 가정집에 보존되는 것이다. 부패라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그 기술을 진보되고 평범한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미래인의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마치 다른 종족처럼 느껴졌다. 또 살육하지 않더라도 고기를 배양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기술도 선사하니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대재난」의 진목은 상상을 초월한 기술의 진보를 예측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공정이 원터치식으로 매뉴얼화되고 지구 한 바퀴를 몇 십 분 만에 돌파하던 생활이 21세기도 아닌 1943년에 못 미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기다리고 뛰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기계의 도움 없이 단순히 생존하고자 맨몸으로 재난에 맞서야 한다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평범하고 단순한 상상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종말을 다루지 않은 적은 없으니깐. 그럼에도 「대재난」이 흥미롭게 읽히는 건 멸종으로 치닫는 결과론적 예언과 달리 어떻게서든 살아남으려는 미래인의 집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살인이 덤덤해지는 과정과 한순간 그동안 보호했던 가치를 단숨에 포기해야 할 때를 지켜보며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대재난을 겪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한 번쯤 상상해보지 않으면 안 될 일인 건 분명하다.
![]() ※ 위 서평은 본인이 읽기를 희망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아 작성했습니다. - 지원경로 : 북카페 책과 콩나무(http://(http//cafe.naver.com/booknbeanstalk) - 출판사명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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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SF 소설의 선구자로 불리고 이미 20여 개국에 번역 출판된 1943년 발표된 책을 한국에서는 이제야 만나게 되는 책이다. 2052년의 미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뭐든지 자동으로 이루어 지는 완전 자동의 세계이다. 하늘을 나는 날개없는 비행기도 수없이 많고 특급열차는 세계 어느곳이던 급행으로 달린다. 초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빌딩마을들이 형성되어 있고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고기를 부위별로 공장에서 맞춤 생산하고, '벌거벗은 임금님' 이나 입었음직한 화려한 body suit등...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전력과 에너지 고갈로 하늘을 날던 비행기나 초고속 열차등의 탈선, 그리고 빛 하나 없는 암흑은 고층빌딩이 수두룩하고 물하나 나오지 않는 곳에서는 사람이 살수 없게 된다. 프랑수아가 사람들을 이끌고 도시를 탈출하는 과정이 스펙타클하게 이어지는 내용인데, 1940년에 쓰여진 100년 후의 미래이야기가 섬뜩하게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거대한 메스미디어의 파워라거나 TV를 통해 일약 스타로 부상하는 꿈을 꾸는 소녀이야기도 그렇고 전기로 모든것이 이루어지는 지금의 도시생활에서 '블랙아웃'은 말 그대로 대재난인데 이책이 그 소재라는 점도 그렇다. 초고속 초특급 생활의 미래의 도시생활로 시작해서 원초적 부족생활의 모습으로 끝을 맺으며 인간은 공동체의 삶을 살아야 하며 노동력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인간이 쓸모없어진 것은 바로 수고로움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간은 수천가지의 기계를 만들었네. 그것들 각각이 인간의 행위와 노력 각각을 대체했네. 인간은 더는 자신의 손을 쓸 줄 몰랐지'. p333 작가가 상상한 2052년은 현재로선 그리 멀지 않은 미래다. 인간이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해 만든 기계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무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것 같다. 작가가 오판한 인종적 분리 (흑인나라 왕이나 아시아 왕같은 대목)나 책 끝 부분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부족사회에서의 일부 다처제등에서 보이는것 처럼 남성우월적 모습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도시에서의 필사의 탈출과정에서 생필품을 사수하기위한 살육과 거대한 화마와 물을 찾아 헤메는 과정이 긴장감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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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old와 new를 나누는 기준이 뭘까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돌고도는 유행에 옛것이 다시 새로운 것이 되는 상황에서 도대체 '낡은'이란 구분을 하는데 '시간'만을 적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단순한 모험인가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책속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