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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치인 김부겸과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 김태훈이 인터뷰를 통해 만든 대담집이다. 처음에는 문화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심도있는 대화가 쉽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서문을 비롯해 책의 전반에서 보여준 김태훈의 내공은 단순히 정치적 격동기에 운동권 학생으로 살았다는 경험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정치에 대한 충분한 식견으로 정치인 김부겸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이에 인터뷰이 김부겸은 자신만의 정치 사상과 철학을 논리 정연하게 펼치며 여유롭게 답한다. 지금까지는 김부겸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이름과 정당외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가 야당으로 전향한 여당출신의 국회의원이고, 4선이 보장된 군포 지역구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대구에서 시장으로 출마해 야당출신의 의원으로는 파격적인 40퍼센트이상의 득표를 하였으며, 내년 총선에서 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당선을 목표로 신선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의 정치 철학과 소신은 무엇일까. 책 제목처럼 우리가 단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 공존의 공화국에 대한 어떤 비전과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김부겸의 서문에서 김태훈과의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딸을 연예인으로 둔 아빠인지라 문화판을 좀 알고 있고, 그래서 김태훈이 재기 넘치고, 시크하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것보다도 진짜 두려운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김태훈은 대중문화평론가라는 것이다. [대중]은 정치를 싫어하고, [문화]는 정치를 비웃으며, [평론]은 정치를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걸 다하는 전문가가 김태훈이라는 것이다. 인터뷰어에 대한 존중과 찬사이겠지만, 그 속에는 정치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 겸허한 김부겸의 자세가 포함되어 있다.
무능하면서도 기득권화한 현실정치 때문에 정치 혐오감과 반정치주의가 창궐해 있다고 하면서 남루한 한국정치를 향해 던져진 질문에 대답을 자처한 것은 무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을 바꿀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정치뿐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정치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정치에 대한 변명이 마음으로 전해지길 바라고 있다.
야당 정치인이지만 야당만을 옹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당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는 여당이고, 진보는 야당이라는 전제가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지금의 야당은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없고, 계급을 대변하지도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저 정권을 못잡은 보수라고도 볼 수 있다는 냉정한 시각을 견지한다.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수가 아닌 [자본중심론자]들일 뿐이라는 비아냥거림에 대해 직시한다. 보수란 기본적으로 애국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 왔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소위 친일 세력이 해방 이후까지 잔존하면서 집권 세력의 중심축을 형성했기에 애국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사회적 강자로부터, 그것이 정치적 강자든 경제적 강자든 문화적 강자든 간에, 그 강자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공공의 가치, 연대의 가치로 묶어 주고, 당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알려 주고 손잡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현 시기에 대한민국 진보와 개혁적인 정치 세력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김부겸은 책에서 정치라는 것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넉넉한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여기에서 [다른], [함께], [기회]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닿았다. 학연, 혈연, 지연 등으로 끈끈하게 뭉쳐져 있는 패거리 문화, 기득권층의 자기 보호를 넘어선 배타주의, 수도권의 식민지화된 지방, 을에 대한 갑질의 횡포, 부의 양극화, 불평등과 불균형 등이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 다름을 포용하고, 함께를 지향하며, 동등한 기회가 보장됨을 의미하기에 김부겸의 정치에 대한 소신이 우리에게 희망과 공감을 느끼게 한다.
조그만 파이(pie)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조금 덜 배고픈 사람과 조금 더 배고픈 사람도 있다고 가정하자. 이 파이를 어떻게 나눠먹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두 사람이 먹고도 남을 만큼 파이가 충분히 크다면 그나마 고민은 덜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파이는 그럴 만큼 충분히 크지 못하다. 그냥 똑같이 둘로 나눠 먹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덜 배고픈 사람이 조금 더 배고픈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옳을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파이는 제한돼 있고, 파이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늘 그보다 더 크다는 데 문제는 본질을 두고 있다. 물론 그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한과 권위를 누구에게 어떻게 위임하고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굳이 '힘센 놈이 먼저 먹어버리는' 폭력적인 상황이거나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식의 약탈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어떤 배분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 본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일게다.
사회적으로도 자원(resources)은 한정돼 있고, 그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는 늘 그렇듯 대단히 본질적인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된다. 누구나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경쟁하지만, 그렇게 과열된 경쟁은 곧 갈등으로 비화되기 십상이고, 그런 과정에서 또 누군가는 경쟁에 뒤처지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상황마저 연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시카고대학의 정치학 교수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정의(definition)는 공동체 내에서 자율적이고 방임적인 자원의 배분이 아니라 위임된 권위에 따라 정치적으로 고려된 자원의 배분을 말한다는 점에서 행정적으로 기계적이거나 시장적으로 자율적인 배분이 아닌 조정되고 협상된 타협적인 배분을 의미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그 배분의 결과는 사회적 공정성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보완하는 방향으로 지향했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민주적으로 위임된 권위의 행사를 통해 배분의 합리성을 제고하는 길일 것이다.
김부겸은 [상생]과 [공존]의 정치가 자신의 일관된 철학이라고 밝힌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분열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성숙한 타협과 공존을 통한 대변혁의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면서 자신이 그 길을 묵묵히 걸으며 실천하겠다고 한다.
새누리당이 탐욕스럽고 욕심쟁이라는 것은 알지만 세상을 거덜 낼 자들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야당은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기기에는 불안하다고 한다. 마치 어린애 같아서라는 이유이다. 공감이 되었다.
지금의 야당은 전 비대위원장인 문희상이 지적한 것처럼 침몰해가는 배에서 서로 선장이 되겠다며 싸우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수권정당으로서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보이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이른바 피아식별, 즉 적과 아군을 구분짓지 못한채 여당과의 경쟁이 아닌 집안싸움같은 내분으로 스스로 좌초하고 있다. 안철수의 탈당이 그래서 지지를 못받는 것이 아닐까. 집권당과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극도로 팽배해진 지금, 야당이 그 대안이 되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유아적인 행태에 국민은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야당이 집권당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설득력을 잃었고, 대다수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야의 진영논리가 아니라 일 잘하는 정당이 집권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여야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그룹을 지향한다. 기존의 여야 혹은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에 갇혀서 사고하는 구태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가지는 철학과 노력이 기존의 정치질서라는 틀을 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김부겸의 미약한 몸짓이 울림이 되고 반향이 되어 나비효과처럼 상상 이상의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현안과 현실을 외면한 채 권력을 위한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버린 정치 현실에서 국민이 공감하고 국가발전에 필요한 상생의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인의 철학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남은 과제는 국민이 올바른 정치 지도자를 선출해 낼 수 있느냐이다. 한 나라의 국민은 꼭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게 되어 있다라고 말한 윈스턴 처칠의 지적처럼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문도 필요할 것이다. 내년 총선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 투표권을 행사할 유권자로서 선택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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