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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새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읽는 편이다.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이 사회적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가 말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무엇을 상상하며 쓴 것일까, 과연 그가 말하는 예술을 이번에는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까, 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실망했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있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나온 자신의 삶을 들려주며 애써 변명하는 이의 모습만을 보았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나만의 생각이다. 다른 이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외설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중에도 결코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삶이, 자신의 작품이 예술이라고 말하는, 하지만 결코 공감이 가지 않는 이의 모습을 보았다.
마광수 교수는 자신의 작품(?)에 도덕을 들이대는 이들을 반동분자요 잔인한 마녀사냥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상상의 자유를 제약하려 들며 예술에 있어서의 일탈적 백일몽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예술의 기준이 무엇일까?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외설일까?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흠,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과 상상의 자유를 외치던 그가 ‘나만 좋으면’에서는 문장이 너무 현학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작가들, 혹은 비문을 쓰는 작가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그러면서 가볍고 쉽게 읽히는 자신의 작품이 탁월하다고 말한다. 물론 소설 속 인물 사라의 생각을 통해서 말이다.
일견 그의 말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한국 문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상의 날개를 핀 예술에서 비문이면 어떻고 좀 난해하면 어떤가? 비문을 쓰면 좀 어떤가? 그저 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면 만화책이 최고일 것이다(물론 만화책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현학적으로 으스대는 글이면 좀 어떤가? 그 속에서 상상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것이 좋다는 말을 하기 위해 다른 것을 깎아내려야 한다면, 글쎄다.
어떤 의미에서 그가 이런 말을 던졌는지는 이해하지만 그의 말이 썩 깊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는 도덕주의자도 아니고, 문단이나 학계의 대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재미는 다르다. 그렇기에 만화를 그리는 이도, 무협지를 쓰는 이도, 대중 문학 혹은 장르 소설을 쓰는 이도 그가 말하는 훈민문학을 쓰는 이도 모두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광수 교수의 작품을 존중해야 하듯이 말이다.
한 때 마광수 교수를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가진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글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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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
나는 <어문학사>에서 펴낸 이 소설집 <나만 좋으면>을 읽어본 나에게 이책을 읽고난 느낌을 한단어로 나타내보라면 바로 위단어를 제시할 수가 있다.
나는 저자가 마광수교수님이시라면 왠만하면 읽어볼려고한다...
왜냐하면, 내가 예전에 그분을 최초 접하게된 에세이가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기때문이다...
그제목은 바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교수님은 많은 지탄을 받기도 하여 결국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에서 강의도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비롯하여 마광수교수님의 에세이 들은 물론이고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시집들, <권태>, <광마일기> 등의 소설들도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교수에 대한 비난도 가열차서 급기야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이 법의 심판을 받기도하여 징역형까지 선고받은 적도 있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충격파를 가져오기도 하였고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도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그러고보니 마광수교수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시인이요, 작가였다.
장소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그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의 문학세계와 인생관 등을 잘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래서 마교수님께서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이렇게 시,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 다소 적나라하지만 진솔하게 이야기하시는 분이 시구나 바로 그걸 느꼈다.
겉으로는 점잔을 빼다가도 실제로는 안그런 거짓과 위선보다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느낌들을 글로써 표현해내시는 마교수님이 더 진솔해보였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느낀 바를 실행으로 옮기기는 힘드시니까 글로써나마 일필휘지로 막 써내려간다는 그말씀에 솔직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아무튼 나는 그당시 마광수교수님의 강연회도 가서 그분의 강연도 듣기도 하고 그분의 각종 시집들과 소설들, 수필집들을 읽으면서 마광수교수님이 행간을 통해 알리려하시는게 무엇인지 어떤 의도로 그러한 작품들을 쓰게되셨는지 명확히 알게되었다.
그래서, 그후로 이분의 책이 출간된다면 사서 읽어보곤 했다...
그러던차에 이번에 <어문학사>에서 펴낸 이책 <나만 좋으면>을 읽어보니 중단편소설이 5편이나 수록되어 찬찬히 읽어나갔고 아주 흥미롭게 잘읽었다.
이책의 작품경향도 유미주의적 작품 두편과 요즘의 사회세태를 반영하는 소설 두편 글고 동화적 SF소설 한편 등 총 다섯편의 소설들을 참으로 흥미있게 잘읽었다.
마광수교수님이 펴낸 간만의 소설집으로서 예전의 작품세계와는 또다른 그분만의 개성을 보여주셔서 아주 잘읽었다.
그런데, 역시 사회도 문학계도 억압과 탄압보다는 자유로운 창작을 허용하고 개방적 분위기이기에 이책에서는 예전같았으면 비평을 가했을 내용이지만 지금에서는 어떤 구애도 받음이 없이 아주 적나라하게 쓰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의 사회세태들을 약간의 사회비판적인 상황도 덧붙이시면서 서술하셨고 또 포송령의 전기소설인 <요재지이>를 연상케하는 환타스틱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셔서 정말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이소설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책은 마광수교수님의 팬들께서는 물론이시고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고계시는 분들께서도 한번쯤 읽어보실 것을 권유드리고싶다...
나는 또 기대된다... 마광수교수님께서 또 어떤 상상의 세계들로 우리들을 안내해주실지...
그분의 작품들은 정말 세파에 찌들고 메마른 이사회속에서 한줄기 빛같은 시원한 청량제같은 그런 작품세계를 보여주시는 분이시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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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마광수의 소설은 외설과 야설 그 경계에서 우리가 가지는 성과 욕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우리가 알고 있는 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문학작품에 그대로 오픈함으로서 세상 사람들은 마광수 그의 이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 그 당시에는 마광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였을까..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받아들였던 소설과 문학은 순수 국문학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외국 문학은 대부분 걸러진채 국내 독자들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그럼으로 인하여 문학에 대해 철저한 통제가 이루어진 시기에 국내 작가가 쓴 외설 소설은 낯설었다는 걸 알 수 있으며 그가 쓴 소설들은 그 당시 통념에 반하는 행동이라 할 수 밖에 없었다..그러한 시대상 속에서 그의 소설을 가두어야만 자신들의 통제가 사회에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그의 문학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언론과 정부의 통제의 중심에 서 있었던 마광수..그러나 세상은 변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세상이 바뀌면서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외국 문학을 접하게 되었으며 마광수의 소설은 지극히 상식적인 우리들의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이처럼 마광수 소설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짐으로서 그가 쓴 과거의 소설은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서게 된다.. 한편 시대가 바뀌었다 하여서 마광수에 대한 편견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은 몇년전 언론에 의해 드러난 마광수 교수의 책 강매에서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선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데 있어서 교재가 필수라는 것은 상식이다..600명의 학생중에서 자신의 책을 가진 이가 50명 밖에 없었다는 그 사실을 언론은 쏙 감추어 버린 채 마광수에 대한 1차적인 팩트만 내보내면서 마광수 교수는 또다시 대중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된다.. 마광수의 소설을 읽게 되면 우리의 과거 추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시골 속에서 풀벌레와 대나무 숲..그 숲 사이에서 남녀간의 뜨거운 욕망을 일깨우는 일련의 행동들,그 욕망 그 자체가 문제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비록 마광수 교수 스스로 시대를 잘못 타고 났기에 문학에 대한 자유로움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었으며 그동안 금기되었던 것을 먼저 행하였기에 그가 가져야 했던 많은 비난의 화살들..그렇지만 그가 대중들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세월이 흘러 우리들 곁에 가까이 할 것이며 사랑 받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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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마광수 교수를 외설작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그의 작품에대한 평가 역시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를 보게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소설들 보다 마광수 교수의 소설은 뚜렷한 하나의 주제가 담겨져 있다. 바로 성(性)에 대한 주제이며 그에대한 마교수의 상상은 오히려 당당한 자기 발견이며 자기 존재를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대하는 모든것에 대해 우리는 고정적인, 확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수 많은 생각의 다름이 있기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 할 수 없을 뿐이며 예술도, 문화도, 문학도, 성(性)도 그러한 경향은 동일하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죽을때 까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교수처럼 너무도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존재한다. 누가 그에 대해, 그를 향해 돌맹이를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예술과 외설이라는 경계를 가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뿐이며 대부분 독자적인 판단 기준일뿐 그 경계를 타인들에게 강요하거나 전체를 대상으로 그런 규범이나 규칙을 정하는것은 제고해 볼 필요성이 있겠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 조차도 제고의 가치가 없다는 도덕론자들이 존재하기에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끓어오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성적인 유희를 통해 삶을 구가 할 것이고 다른 이들은 좀더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성적 유희를 통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에서 보여주는 내용들이 적나라하고 조금은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보이지만 상상력에 비춰진 마교수의 성적 판타지성은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의 성적 판타즘이 지향하는 방향속에 시답지 않은 문학가들의 현학적이고 가시적인 문학 작품들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 있어 일면 그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전적인 동의는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 자신만의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품, 그것도 외설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의 성적 판타지가 녹아있는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마교수가 아닌 나의 성적인 판타지는 무었인지 고민하고 나는 이렇다고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은 있는지 생각하게된다. 소설집의 제목처럼 '나만 좋으면' 나는 철저히 나를 위한 판타지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고려해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