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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의 많은 희곡 중에 오늘은 두 개를 읽어보았다.
「구름」이라는 작품과 「새」라는 작품이 그것이었다.
두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대사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희곡은 연극무대에 올리는 것이 목적인데 아무래도 배우들이 애 좀 먹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사들 외우려면 정말 머리가 좋아야 할 것 같다.
희곡이 오래된 예술장르중 하나라는 건 알고는 있었다.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작품을 읽어본 건 이 작품이 요 몇 년 동안 처음이지 않나 싶다.
다른 장르, 예를 들어 소설, 시, 수필은 많이 접해보았지만 희곡은 많지 않았었다.
(아! 갑자기 생각이 난건데 요 근래에 읽은 작품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 작품이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이었다.)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은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주제도 확실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 구름이나 새 라는 작품 또한 그런 주제와 목적하는 바가 확실한 작품 중에 하나이다.
그냥 재미로 지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이라는 작품은 풍자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새 라는 작품은 조금은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한 작품이었지만 이것 또한 풍자적인 작품이다.
「구름」이라는 작품은 그 당시 소피스트의 교육에 대해 풍자를 한 희곡이라 할 수 있다.
소피스트는 누구나 학창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시험에도 곧잘 나오던 그룹들이라
다들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궤변론자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일까? 아닌 거 같은데 이건 작자가 소크라테스를 내세워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법 지키려고 하다가 죽는 것도 억울 할텐데 이렇게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곡 주연급 인물로
자기를 우스운 인물로 내세운 것을 안다면 지하세계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라는 작품은 참 황당했다. 새가 인간인가 인간이 새인가
이런 황당한 작품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황당하면 황당할수록 아리스토파네스의 상상력은 어디가 끝일지 생각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나도 아리스토파네스처럼 그 끝없는 상상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기력한 주인공들이 새의 왕을 찾아가서 제국을 세워보라는 사기극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작품을 어떻게 파악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새의 왕이라고 해봐야 새 머리가 좋지도 않을텐데
만약 사기극이 아니라면
아무리 무기력한 인간일지라도, 아무리 능력이 없는 인간일지라도 어떻게 새에게 가서 아첨이나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리고 사기극이라면 참으로 누워서 떡먹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새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머리가 참~ 나쁘다. ( 특히 닭 머리가 나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닭들은 이 말에 반발할지도 모르지만 -
당시에 아테네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몰랐다면 , 아마 이해가 잘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쟁이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이런 작품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되었다.
대사가 길지만 예술작품으로서의 이 두 작품은 황당하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 이 작품들은 나보고 기획해보라고 「새」 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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