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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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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먼저 해롤드와 에릭의 자기 정체성을 살펴보자. 영화에서 거듭 강조가 되듯이, 해롤드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이라는 자기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또한 에릭은 기독교 선교사의 아들이며 또한 자신도 선교사로서의 소명이 있다고 믿었다. 이런 차이가 두 사람의 삶의 양식을 결정짓는다. 해롤드의 경우, 자신을 둘러써고 있는 편견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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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먼저 해롤드와 에릭의 자기 정체성을 살펴보자. 영화에서 거듭 강조가 되듯이, 해롤드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이라는 자기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또한 에릭은 기독교 선교사의 아들이며 또한 자신도 선교사로서의 소명이 있다고 믿었다. 이런 차이가 두 사람의 삶의 양식을 결정짓는다. 해롤드의 경우, 자신을 둘러써고 있는 편견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 육상을 선택한다. 반면, 에릭은 자신의 소명을 이루기위한 수단으로서 육상을 선택한다. 더 나아가, 해롤드는 당시의 귀족적 아마추어리즘이 자리잡고 있었던 시대로서는 파격적으로 직업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 그리고 100m 경기를 "나의 전 존재를 정당화해주는 고독한 10초(ten lonely seconds to justify my whole existence)"라고 표현할 만큼 육상에 집착한다. 그러나 에릭은 단지 최선을 다할뿐 결과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많은 이들 앞에서 설교를 했으며, 이런 삶의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영광의 정점에 있을 때 주저없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국 선교사로 떠난다. ◎ 성공의 길 해롤드의 경우를 좀 더 파고 들어가보자. 사람들이 해롤드를 보는 시각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이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비단 유대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수자에 대한 핍박이었다. 해롤드의 코치 무사비니가 반 아랍계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케임브리지의 고루한 이들의 반응을 보라. 해롤드는 이런 것에 대하여 너무나 민감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해롤드는 일탈을 하지 않았다. 터부시되었던 프로 코치의 가르침을 받았을지언정, 결코 부정한 수단을 쓴다거나 육상 금메달 자체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육상 선수로서의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을 뿐이다. 그것은 해롤드는 유대인으로서의 핍박에 대한 저항의 유일한 수단으로서 육상을 선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해롤드의 경우에도 에릭과의 대결에서의 패배, 이후 200m 등 다른 종목에서의 패배를 하면서 해롤드는 의기소침해지지만, 결국 자신의 주종목 100m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만약 에릭의 자리에 해롤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육상이라는 유일한 수단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에릭과 비교된다. 해롤드에게도 육상은 수단이었지만, 에릭에게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에릭은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이미 그는 스코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의 왼쪽 윙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육상을 포기했다한들 중국으로 떠나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주일(主日)에 달리기를 하는 것은 삶의 목표였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길일 뿐이었다. ◎ set apart form Above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적대적인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다함으로써 온전한 영국인이 되고자 했던 해롤드와, 영국 사회에서 주류인 백인 기독교인 (그것도 선교사인) 에릭이 세상을 향하여 저항을 했다는 점에 있다. 비주류는 순응하고 주류는 저항하는, 언듯 모순되는 듯한 일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들의 뜻대로 되었다. 해롤드는 뮤지컬 배우 시빌과 결혼하고 영국에서 주류로 자리잡았고, 에릭은 먼 중국땅에서 순교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주류/비주류의 틀로는 이 영화를 온전히 해석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은 결정적으로 에릭은 하늘을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앞서 해롤드의 경우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음을 상술하였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하고, 무사비니의 코치를 받고, 경쟁자들의 기록과 장단점을 꿰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에릭은 육상선수로는 다소 엉성한 모습을 보인다. 럭비를 온전히 포기하기 전까지 한동안 럭비와 병행하였고, 적지 않은 시간을 설교하는 데 보냈으며, 그 달리는 폼마저 엉성하기까지 했다. 시선을 자기가 달려가야 할 목표점을 향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양 팔은 마치 권투선수가 샌드백을 두드리듯이 마구 휘저었다. 그리고 다리는 마치 무릎으로 턱을 마주치려는 듯이 높고 꼿꼿하게 치켜올리며 뛰었다. (영화에서 400m 결승의 슬로우모션 장면을 통해 이 점을 자세히 보여주려는 듯 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늘로부터의 소명이 있다는 확신 가운데서 그저 앞으로 달려갔다. 그의 스피드를 보고 다른 이들도 희미하지만 에릭에게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힘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100m경기가 일요일에 잡혀 있었던 것은 에릭의 하나님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무사비니 코치가 눈치챘듯이, 에릭은 400m 선수로 더 적합한 선수였다. 400m 경기를 통해, 에릭은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장을 찾은 것이다. 사실 에릭과 해롤드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회자되었던 그 이유는 에릭 쪽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에릭은 100m 경기를 포기했다. 앞서 부분에서 에릭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 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에릭이 황태자 앞에서 말하는대로, 그는 육상을 위해 럭비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동생 제니 리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육상을 위해 흘렸던 땀과 눈물의 열매를 거둘 날이 멀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포기의 댓가는 좋지 않을 것이었다. 육상선수로서의 영광도 포기하고, 영국 국민으로부터도 단절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실제 포기했을 당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만약 400m 금메달을 얻지 못했다면,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그 때의 비난 그대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에릭은 순교자의 삶을 택했다.
l*******e 2003.08.22.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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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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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목사님의 추천으로 청년들과 함께 봤다. 81년작. 어느 덧 20년이 넘은 고전이라고나 할까. 반젤리스의 유명한 음악은 익숙했으나 그게 영화 도입 부분에 나오는줄은 몰랐다.   스포츠정신을 뛰어넘은, 인간의 신념을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영화는 잘 그려낸 것 같다. 실화라서 더욱 그런거겠지. 특별히 기독교인이라면 에릭의 삶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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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목사님의 추천으로 청년들과 함께 봤다. 81년작. 어느 덧

20년이 넘은 고전이라고나 할까. 반젤리스의 유명한 음악은

익숙했으나 그게 영화 도입 부분에 나오는줄은 몰랐다.

 

스포츠정신을 뛰어넘은, 인간의 신념을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영화는 잘 그려낸 것 같다. 실화라서 더욱

그런거겠지. 특별히 기독교인이라면 에릭의 삶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무엇을 위해서 뛰는가' 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물음 앞에

그는 용기를 발휘했고, 결국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 뿐 아니라

선교사로서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우리

인생에 있어 '무엇을 위해 사는가' 란 질문과 연결시킬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선택에 따라 우리 인생의 열매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잠깐의 생각할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결국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이들의 공통점은

멈추지 않는 열정과 도전,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라자는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역설적으로 승부를 초월하게 하며 삶의 순간을

즐기게끔 만든다. 나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아직도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게 너무 많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너무 늦은 시간대에 영화를 본 것.

아무래도 몸이 피곤하면 영화의 감동도 감소되지 않을까.

여하간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이다.



l*****7 2009.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