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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 착한 가격에 꽉 찬 내용, 풍부한 지식이 있는 책 - 박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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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에 리뷰(http://blog.naver.com/ksh387/20121482463)를 올린 '일본 정신의 풍경'의 모태가 된 책인 듯 하다. 저자인 박규태 선생의 주 연구 분야인 종교를 주제로 쓰여진 책이며 부제 또한 '종교로 읽은 일본인의 마음'이다. 실제로 이 책에 언급한 많은 부분이 텍스트 그대로 혹은 살이 더 붙여진 채로 동저자의 책인 '일본 정신의 풍경'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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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에 리뷰(http://blog.naver.com/ksh387/20121482463)를 올린 '일본 정신의 풍경'의 모태가 된 책인 듯 하다. 저자인 박규태 선생의 주 연구 분야인 종교를 주제로 쓰여진 책이며 부제 또한 '종교로 읽은 일본인의 마음'이다. 실제로 이 책에 언급한 많은 부분이 텍스트 그대로 혹은 살이 더 붙여진 채로 동저자의 책인 '일본 정신의 풍경'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신의 풍경과는 다르게 이 책은 문고판의 작은 책자로 나왔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인 책의 느낌이 힘을 뺀 채 무난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읽기는 이 책이 더 나을 듯 하다. 내용은 내용대로 충실하면서 접근성은 더 높다는 말이다.

 

책의 순서는 1장 신화로 읽은 일본인의 마음, 2장 신불의 타자론-신도와 불교의 만남, 3장 선악의 역설-일본 신도의 숲, 4장 또 하나의 불교-계율의 강을 건넌 일본 불교, 5장 일본에 기독교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 6장 신종교의 시대, 미완의 결론-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 로 진행된다. 이 중 1장부터 5장까지가 일본 정신의 풍경과 내용이 겹친다. 이에 대한 내용으로는 일본 정신의 풍경에 대한 리뷰(http://blog.naver.com/ksh387/20121482463)를 봐도 충분할 것이다. 6장과 결론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자 저자의 주요 연구 사례인 듯 한데, 인도에 더불어 신들의 나라라고 불려지는 일본의 현대 종교에 대한 연구 부분이라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2차 대전의 광기에 벗어난 일본은 궁핍한 전후와 이 후 기적적인 경제 성장으로 전통적인 종교의 얽개가 상당 부분 붕괴 하였고 지식인들에게는 아메리카식 민주주의와 소련식 코뮤니즘의 이상, 대중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물질만능주의의 이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70년대를 기점으로 혁명의 열풍이 지나가면서 이 이상의 시대는 붕괴되고 허구의 시대로 전환된다. 이 때 허구의 시대는 이 이상에 소외된 사람들이 적극 신종교로 몰린 시점을 뜻하기도 한다. 일본 신종교는 현세 지향적이던 구 종교와는 달리 물질적 풍요 속에 명상과 수행을 강조하는 성향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이상도 현실도 배제한 명상과 수행은 결국 허구적인, 자기 완결적인 종교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옴 진리교이다.

 

옴 진리교는 이러한 일본 사회의 전환점에서 나타난 만큼 현대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투사한 사건이라고 칭할만하다. 그렇기에 옴 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은 다수의 일본인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만큼 그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어 왔고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관점 또한 그 연구 성과 중의 하나이다. (아주 흥미롭고 논리적인 해석이니 꼭 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현대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 일본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물음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나타나는 일본의 자연신앙과 타자론, 상생의 정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라는 미완의 결론을 해답으로 제시하면서. 적당한 가격과 꽉 찬 내용과 풍부한 지식이 있는, 좋은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b********m 2011.02.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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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접하게 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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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점에 들러 책을 한권 사는 재미를 더욱 즐거이 해주는 것은 그 책을 통해서 숙제를 받는 경우일테다. (그런 이유이기에 책내용 평점의 만점은 4개이다. 마지막 1개는 독자의 몫이기에....)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라는 제목을 가지고 저자가 서술하는 내용은 기존의 일본에 대한 시각과는 사뭇 달랐다. 특히 예전 유행했던, "있다. 없다"류의 책들에 이미 질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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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점에 들러 책을 한권 사는 재미를 더욱 즐거이 해주는 것은 그 책을 통해서 숙제를 받는 경우일테다. (그런 이유이기에 책내용 평점의 만점은 4개이다. 마지막 1개는 독자의 몫이기에....)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라는 제목을 가지고 저자가 서술하는 내용은 기존의 일본에 대한 시각과는 사뭇 달랐다. 특히 예전 유행했던, "있다. 없다"류의 책들에 이미 질린 상태이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종교를 통해 현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한 작업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일본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는 없을테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숙제들을 하나둘 하다보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듯 생각이 들었는데.... '巫로 읽는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부제를 단 글이 나오는 것도 재미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어떤 전제가 기정 사실로 굳어져 파괴적인 에너지로 타락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그 전제를 넘어서 가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를 결론은 항상 미완의 열려진 결론일 수 밖에 없다. 일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h******8 2002.11.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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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경계는 원래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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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문고 45권. 내가 읽은 책세상 문고의 3권째. 언제나 책세상 문고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기획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젊은 학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기회를 주고 독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된 그들의 신선한 연구를 접할 수 있어 좋다. 몇 년 전 아마테라스라는 생소한 이름을 만화책에서 처음 접했다. 그것은 라는 만화책이였는데, 이걸 그린 일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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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문고 45권. 내가 읽은 책세상 문고의 3권째. 언제나 책세상 문고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기획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젊은 학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기회를 주고 독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된 그들의 신선한 연구를 접할 수 있어 좋다. 몇 년 전 아마테라스라는 생소한 이름을 만화책에서 처음 접했다. 그것은 <파이브 스타="" 스토리="">라는 만화책이였는데, 이걸 그린 일본 작가는 평생 이 끝없는 스토리를 만들며 먹고 살기로 작정을 했다고 한다. 알 수 없고 어려운 그의 작품보다는 그가 이 끝없는 스토리를 평생동안 그리겠다고 한 것이 더 인상적이였다. 모노노케 히메. 내가 98년도에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열도는 미국의 헐리웃을 넉다운시킨 원령공주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었다. 마치 우리의 쉬리가 관객동원에서 1위를 했던 그 때처럼. 솔직히 <파이브 스타="" 스토리=""> 등의 일본 만화 혹은 롤프레잉 게임을 하다 보면, 그들의 소재가 신화에서 온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파이널 판타지="" 8="">의 캐릭터도 케찰코아틀, 세이렌, 켈베로스, 길가메쉬, 오딘 등등. <파이브 스타="" 스토리="">에서의 파티마는 카톨릭 신비주의 사건인 1917년의 성모발현사건의 세 목동 여자아이들에서 따 온 이름이다. 왜 이들은 신화에 그렇게 민감하고 그런 소재들로 구성하길 즐겨하는 것일까?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신을 접하고 섬기는 그들의 정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왠지 신비스런 몽롱함을 표현하는 것이 일본적인 것 같기도 하고, 절제된 미로 화려함을 만드는 그들의 굵은 선들이 살아 있는 예술품들을 볼 때에도 일본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일본인의 정서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어 이 책을 들었다. 혹자들은 미야자끼 하야오의 작품들은 일본 극우의 시각으로, 일본적 시각으로만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극단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난 이 저자가 말하는 미야자끼 하야오에 대한 생각도 알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앞의 내 생각과 많이 다른 것은 없었다. <아마테라스>에 대한 <고사기> 전설. 신교와 불교가 마치 용광로 속에 각종 물질들이 혼합해 들어가는 것처럼 뒤섞여 들어가는 점. 숲에 대한 일본인들의 남다른 생각. 사실, 하야오의 작품에는 일정한 요소가 존재한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하야오의 아버지는 비행기와 관련이 있는 직종이였다), 하늘을 날아 다닌다던지, 아님 하늘의 구름의 움직임, 그리고 숲이다. 그리고 그 숲은 절간이 나올 것 같은 한적하고 울창한 숲이다. 그들에게 숲은 신들이 사는 공간이란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있다면, 신들이 사는 공간도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절대적인 믿음이 없는 일본 사회에서 방랑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교조를 내세우면 종교단체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왜냐고? 어디에나 신은 있고, 그 신들은 제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모시는 사람은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기독교처럼 절대적인 선의 상징도 없고, 절대적인 악의 상징도 없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서양에서도 인간의 선악이란, 디오니소스와 아폴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인간의 마음은 선과 악의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지도 그르지도 않는다. 곧, 태어나 살아 숨쉬는 동안 각자의 능력껏 ‘그저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난 하야오의 작품을 여러 편을 수집하고 보아왔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살면 되는 거야. 자연과 더불어..” 그가 극우파이건, 극좌파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평생 살아가는데, 그리 욕심 내고 달리면 죽음이 나를 비켜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한 번 태어난 인생 막 살기도 인간인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아마 교육의 영향이겠지만, 이웃집과 건넛집과 마음 편히 행복하게 잔 걱정들을 안고 죽음으로 가는 길을 편안히 마음 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자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어느새 일본인이 되어가는 건가? 아마 그것은 내가 일본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현실과 현상에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고 듣는 것을 나도 같이 보고 듣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k*****a 2002.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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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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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을 '미신'의 나라로 믿고 있습니다. 몇 천개의 신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 귀신의 나라! 일본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편견임을, 지독히 편견임을 알았습니다. 종교는 한 사회 문화체계의 가장 심연을 움직이는 코드입니다. 어느 민족과 나라에 종교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자기가 무신론자로 외칠 지라도 그는 이미 무신론이라는 특정 종교를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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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을 '미신'의 나라로 믿고 있습니다. 몇 천개의 신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 귀신의 나라! 일본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편견임을, 지독히 편견임을 알았습니다. 종교는 한 사회 문화체계의 가장 심연을 움직이는 코드입니다. 어느 민족과 나라에 종교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자기가 무신론자로 외칠 지라도 그는 이미 무신론이라는 특정 종교를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일본 역시 각양 각색의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박규태는 [아테라스에서 모노놑케 히메까지-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에서 일본이라는 나라,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본을 종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합니다. 민족과 문화, 정치의 관점 즉 식민지배라는 관점에서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인류 보편성에서 일본을 바라보고자 하였습니다. 박큐태는 일본신화를 아프리카의 조그만 부족들도 가지고 있는 우주 기원신화와 인간 기원신화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대신 국토의 기원에 대한 서술이 강조되고, 성적 상징와 몸의 담론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상당히 재미 있는 주장이다. 왜 일본은 우주 기원과 인간 기원보다 국토에 관심을 가진 것일까? 신도와 불교의 관계, 일본은 '관용'의 문화가 상당히 크다고 말하고 있다. 신도가 비록 교리와 경전 중심이 아니지만 불교와 쉽게 교감을 가졌던 이유를 관용에서 찾고 있다. 일본은 특정 종교에 이단시비가 없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의구심과 호기심을 낳게 하였다. 하지만 갑자기 그들은 불교를 훼절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76쪽에서 박규태는 야스쿠니 신사를 잠깐 언급하는데, 일본인들이 전범을 모신 야스쿠니를 다른 나라가 반대하는데도 끊임없이 참배하는 이유를 '원령신앙'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령신앙이란 "전쟁터에서 비정상적으로 죽은 자는 원령이 되어 산 자를 괴롭힐지도 모르니까, 그 원령을 위무해주어야만 하고 그게 바로 야스쿠니 신사의 역할"이기에 정치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범들은 태평양 전쟁 때 죽은 것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로 단죄된 것이다. 원령신앙이 개입될 수 없다. 박규태의 글을 보면서 일본은 정말 다양한 종교를 가진 나라이며, 그 다양성이 타종교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 과연 일본을 종교라는 특정 이유로만 접근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에 말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더라도 가야 할 것은 분명하다.
k****e 2005.1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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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심성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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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백지 수준이지만, 6살 때부터 지금까지 만화를 끼고 사는 내게, 일본 만화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이다. 어릴 때 감동적으로 봤던 우리 만화들이 대부분 일본 만화를 베낀 것임을 알았을 때부터 의식적으로 일본 만화와 우리 만화를 구분해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일본풍'이라는 게 확연히 구분이 된다. 흔히 과격한 폭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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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백지 수준이지만, 6살 때부터 지금까지 만화를 끼고 사는 내게, 일본 만화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이다. 어릴 때 감동적으로 봤던 우리 만화들이 대부분 일본 만화를 베낀 것임을 알았을 때부터 의식적으로 일본 만화와 우리 만화를 구분해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일본풍'이라는 게 확연히 구분이 된다. 흔히 과격한 폭력 장면이나 과도한 성적 표현, 아니면 엽기적인 상황 묘사 등을 이유로 일본 만화를 매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것들은 만화를 재미있게 만들려는 장치일 뿐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어차피 만화는 만화일 뿐이니까. 정작 내가 일본 만화를 보며 가끔씩 섬뜩해지는 것은 만화 속에 은연중 표현된 일본인들의 기질, 사고 방식이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어쩐지 수긍하기 힘든 그 어떤 것. 오해를 무릎 쓰고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일본인에게 과연 기본적인 도덕률, 선악의 관념이 존재하는가 하는.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를 읽으며 이런 의문이 나만의 과민 반응은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부분에 소개된 일본의 신대 신화부터 무척 재미있다. 일본 신화가 이렇게 체계적이고 버라이어티한 것에 좀 놀랐다고나 할까. 천황가의 신성함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탁월한 '몸의 상상력'을 엿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전통적인 신도(神道)의 독특한 선악관을 알려주는 글을 읽고 나의 과민반응에 대한 해답이 보였다. 저자의 설명은 자못 신중하지만 그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악은 단지 더럽혀진 상태일 뿐이며, 그것을 씻어내기만 하면 본래의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고, 생명력이 충만한 상태를 선이라고 보는 신도의 상대적인 선악관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선과 악이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래 선이라고 하는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낙관적이고 체제순응적이지만 어떤 경우 매우 파괴적인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신도와 불교가 구분 없이 '신불'로 합쳐진 이유나, 초기 전래시 열정적으로 전파되었던 기독교가 현재 무기력해진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앞의 논의와 이어진다. 타자를 타자로서 객관화하고 대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쉽게 자기 속으로 포용하였다가, 어느 순간 '망각'되었던 자기가 '회상'되면 격렬하게 타자를 내쳐버리는 일본인의 심성 구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계율을 지킨다는 의식이 없는 일본 불교의 극단적인 현세 긍정·욕망 긍정 사상도, 맥락에 따라서는 대단히 매혹적인 것이지만 대단히 위험한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옴 진리교를 종교 사회학적으로 꼼꼼히 분석하고 '모노노케 히메' 에서 일본인의 심성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보편적 문제점까지 읽어내는 저자의 폭넓은 시야도 미덥다. 물론 1억이 넘는 사람들을 '일본인'이라는 단일한 개체로 파악하는 단순무식함을 경계하고 뛰어 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야 하겠지만, 일본의 심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을 듯 하다. 기본적으로 경계의 눈길을 늦추지 않지만 그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나 다르구나' 하는 거였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문화가 흘러들어 일본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일본과 우리나라 문화가 비슷하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피상적인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은 양국 모두를 위해 좋지 않다는 생각이다. 타자를 타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관계 설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만들어진 고대』를 보면, '근대 일본에게 한국은, 구미와 동일화하고 싶어하는 자기에게 부끄럽게 여겨야 할 자기, 부정해야 할 자기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어쩌면 우리도 일본을 그런 식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운 자기 비하와 터무니없는 오만함이 엇갈린 감정으로, 증오와 선망이 뒤섞인 눈길로 일본을 볼 필요는 없다. 일본을 타자로서 인정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연구 작업이 아쉬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올바른 관계 맺기는 타자화, 객관화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므로.
YES마니아 : 플래티넘 s******m 2002.04.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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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게 보는 일본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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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마테라스"나 "모노노케 히메"를 처음 접한 것을 모두 만화에서 였습니다.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라는 만화나, "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해져있던 이름들을 책세상 문고에서 만나게 되고 사실 적잖게 놀랐습니다. 그동안 그 이름이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친숙해져있었던 것이었는데, 특히 '아마테라스'는 일본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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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마테라스"나 "모노노케 히메"를 처음 접한 것을 모두 만화에서 였습니다.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라는 만화나, "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해져있던 이름들을 책세상 문고에서 만나게 되고 사실 적잖게 놀랐습니다. 그동안 그 이름이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친숙해져있었던 것이었는데, 특히 '아마테라스'는 일본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답니다. 이런 호기심에 얼마 전부터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쩍 는 일본에 대한 호기심으로 결국 책을 사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왜 이렇게 신도 귀신(정령이나 원귀등)도 많은지- 그래서 교파도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또 일본에서의 기독교 교세가 우리나라에 비해 보잘 것 없는지, 일본의 불교는 떠 어떤 형태인지 이 책을 읽고나면 어느 정도 시원해 집니다. 일본 종교에 대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거기다 오랜 말썽거리인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문제도 잠깐 나옵니다. 일본의 종교는 '신사'를 모르고서는 절대 접근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일본 신사 역시 우리나라 기독교 교파 처럼 많은 종류가 있더군요.) 그리고 종교를 통해 나타는 일본사람들의 마음과 사회모습을 엿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책이 작고 가벼워서 주로 버스나 전철 안에서 읽기 좋구요, 짜투리 시간에 교양을 쌓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렇게 이런 저런 일본 종교얘기를 잘 풀어나갑니다.

[인상깊은구절]
일본 신화는 정치적 통합을 위해 조작된 이데올로기 측면을 내포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거기서 몸적인 것을 중시하는 일본인의 신화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장에서 바로 이런 몸적인 상상력을 중심으로 일본 신화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p*****a 2002.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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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종교의 특징은 神佛習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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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일본 종교에 대해서는 책의 표지에도 있듯이 나의 이해 지수는 제로 상태이다. 그래서 일본의 이해의 한 차원으로 일본의 종교는 어떤 것이가를 알고자 하고, 특히 일본에 대해서 잘 아는 신뢰를 주는 저자이고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짧은 내용으로 충분하게 일본의 종교의 대강을 알 수 있는 책이었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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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일본 종교에 대해서는 책의 표지에도 있듯이 나의 이해 지수는 제로 상태이다. 그래서 일본의 이해의 한 차원으로 일본의 종교는 어떤 것이가를 알고자 하고, 특히 일본에 대해서 잘 아는 신뢰를 주는 저자이고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짧은 내용으로 충분하게 일본의 종교의 대강을 알 수 있는 책이었고, 종교를 통해 본 일본인의 의식구조에 접근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종교는 고유 종교인 신도, 그리고 동양의 전통 종교인 불교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도의 경우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변형된 것으로 보이고, 이것은 신도가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독창적인 부분을 찾아가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또 불교의 영향을 받아 체계화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이것을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고 특징지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일본에서 어떻게 도입되고, 탄압되어 왔는지에 대해 1장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일본에 기독교가 공식화된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기독교인은 1%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만큼 기독교가 일본 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종교와 신신종교에 대한 설명에서보면, 종교라는 것이 심신이 피곤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위안이 주는 형태로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종교에 신도가 10%에서 20%에 이른다고 한다. 옴 진리교의 예로 신흥 종교의 발생과정과 문제점을 알아볼 수 있다. 산업화와 정보화가 이루어지면서 우리사회에서도 이러한 일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서 경계를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일본 종교를 종합해보면, 일반적으로 전통 종교인 신도가 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웬만한 기업에서도 신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하고, 주요 풍습이 전통적인 신도와 연결되어 있다. 아울러 신도와 불교를 나누기가 어렵다는 느낌이고, 불교는 우리 한국의 불교와는 다르게 훨씬 세속적인고 현실적이다는 느낌이다.

 

 일본 문화에 대해서도 성(誠)의 문화와 치(恥)의 문화로 이해할 수 있는데, 誠은 경(敬)의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리(理)부정과 일치한다는 것이고,  치의 경우에도 객관적인 악의 개념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객관성을 잃어 버린다는 것이다. 일본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 리의 부정인 객관성의 부정으로 보인다. 원령에 대한 기원과  원령사상이 일본인의 마음을 읽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자칫 야스쿠니 참배의 배경으로 사용될까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결론으로 모노노케 히메의 해설이 너무 재미있었다. 챙겨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애미메이션 거장 감독이 주는 메세지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어울리는 훌륭한 말씀이다.

z******g 2010.04.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