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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생생한 사례가 많았던 책 하지만 밀턴에릭슨만의 독특한
최면치료 무작정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언어적인 메시지에 대한 예리한 통찰,
치료자의 적극성, 단호함이 배울만한 점이다. 서점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서 눈에 띄인 책 제목이 심리치유수업이어서 보편적인 심리치료로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밀턴 에릭슨은 최면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였다. 물론 책을 읽으면
내용 중에 최면 기법이 많이 나오진 않는다. 밀턴 에릭슨이 어린 시절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긴 시간 동안 그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 기간 동안 누나들이 no라고 해야 할 상황에서
yes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과 사람들의 비언어적인 반응, 말투, 어조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밀턴 에릭슨은 뛰어난 관찰력과 직관, 핵심을 꿰뚫는 질문으로 환자를 한
번에 정신적으로 봉인해제시킨다. 마치 점집에서 한 방에 맞추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래서 책에 역사상 가장 많은 이들이 찾았던 작은
심리상담소라고까지 적혀 있나보다. 정말 어떤 사례들은 단시간에 치료가 되는 마법같은 힘이 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치료를 무작정 따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책을 한 번 읽고 필사를 하다 보니 적어놓고 싶은 구절이 많아서
팔 아프게 썼다. 특히 아홉번째 수업부터 열번째 수업, 마지막 수업의 내용 중에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다. 내가 책 읽다 빵 터졌을 때가
딱 한 번 있었다. '저도 간을 먹는 건 싫어해요'라고 말하는 의사를 보고 말이다. 나도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미친 척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한 마디로 중단시켜야겠다.
카렌 호나이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환자가 치료자를 찾는 이유는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환자가 상담 시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도록 스스로 결정하게 둔다면, 백이면 백,
무의식 중에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으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틴다. 따라서 환자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길에 서 있다면
치료자는 환자를 그 길에서 끌어내려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위의
말이 특히 와 닿았다. 환자들은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서 치료실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과거의 패턴대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반 이상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치료자가 환자의 핵심과 증상의 원인과 결과, 전체 맥락을 알고 있다면 주제 또한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내적 차원에서 우리는 '당위'가
지나치게 엄격할 때 슬픔이나 자기 혐오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개인이 스스로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능력은 '마취제' 효과,
곧 내면의 고통과 의심을 덜어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위, 역할, 명분에 따른 행동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또한 자신의 욕구보다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
자식으로서의 역할에 따라 살다보니 정작 자기는 소외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요즘 부모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동네에 부부가 서로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번갈아 케어하는 걸 봤는데 참
좋은 방법이다. 엄마 또한 사람이니 자기 안에 있는 내면 아이부터 잘 돌봐야 자녀를 볼 여유가 생긴다.
내가 스스로를 잘 돌볼수록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
어떤 치료는 대리부모 역할을
한다. 제한된 재양육이 필요하다. <위기의 청소년>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아이들에게 모델링이 되는 치료자 치료자가 먼저 아이의 욕구에 반응,
공감 아이 내면의 초자아가 만드는 비난에 대항하여 자기를 수용할 수 있는 자아의 힘을 키우는 것, 그 역할을
치료자가 눈에 보이게, 아이가 알아듣게끔 시작하면 아이는 그걸 배워서 스스로에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아이와 저녁을 먹다가 어린시절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의 내면아이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보듬어주어야겠다. 예전에도 들었던
생각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그 아이가 더 귀여워 보여서 자주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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