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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양반들을 읽으면서 우리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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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1392년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건국하여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50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더군다나 조선왕조가 계속되는 동안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르고도 나라를 유지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은 명나라는 청나라로 그리고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조선은 여기서 비켜나 왕조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하다못해 왕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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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1392년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건국하여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50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더군다나 조선왕조가 계속되는 동안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르고도 나라를 유지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은 명나라는 청나라로 그리고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조선은 여기서 비켜나 왕조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하다못해 왕조차 바뀌지 않았다. 곧이어 닥친 병자호란도 마찬가지였다.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서도 조선왕조는 끄떡 없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조선을 지배했던 지배세력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조선을 건국한 주도세력은 신진사대부와 무인이었다. 그리고 건국 이후 조선을 이끌어간 세력은 양반사대부였다. 양반은 합법적인 신분제의 토대 위에서 건국한 조선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관료이자 학자였다. 그런데 이런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양반은 법적으로 규정된 지위는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천인을 제외한 모든 양인에게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과거에 합격하면 관료, 즉 양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상 양인이 과거에 합격한 경우는 드물었고, 과거를 통해 획득한 양반의 지위 또한 관료와 그의 직계가족에 주어졌기에 원칙적으로는 세습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세습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러한 과거 역시 문과와 무과를 균형 있게 실시하여 관료의 충원에서 문무를 고루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국가이념은 성리학이다. 초기에는 부국강병을 수용했지만 중기 이후 수신을 중시하면서 점차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양반제이였지만 실제로는 무관의 고위직을 문관이 겸임하는 것과 같이 문관이 우위를 점하였다. 그러나 하위 실무직에서는 문반직과 무반직을 동시에 거치도록 하는 등, 성리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무에 대한 경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조선초기에는 성리학의 정치적 지향인 덕치주의보다 부국강병책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문보다 무를 우선시 한 것이 이후 조선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중기 이후 문관 우위를 취하면서 문관이 무관직을 겸임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문반관료에게 무관의 직임을 수행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료들은 자연스레 문무를 겸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찰사는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를 겸하여 군사권까지 장악했고, 지방의 수령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목민관으로써 대민업무를 수행하는 지방관의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임의 역할을 갖추어야 했다. 이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이 가지고 있던 군사지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조선초기 북쪽 국경선을 확정한 최윤덕과 김종서가 무인이면서도 의정부 관료가 된 사례나, 이이와 조식의 국방에 대한 식견,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곽재우, 김면, 정재홍 등이 모두 유림이었음을 통하여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조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지배계급이었던 양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반에 대한 편견과 오류를 바로잡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조선의 양반이 문반만이었다는 우리들의 편견을 조선의 관료제도와 과거제도, 그리고 국난 당시의 의병장들을 통하여 그들이 문무를 겸비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조선의 양반은 우리에게 분명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정신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갖추었던 소양을 알아가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들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k*****1 2016.01.04. 신고 공감 6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