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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에게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배운다.
"조선의 선비에게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배운다." 내용보기
우리는 조선시대를 이야기하면 의례 선비를 떠 올린다. 양반제라는 신분제도아래서 양반이라면 곧 선비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런 양반을 우리는 다른 말로 사대부라 부른다. 사대부는 조선시대 지배집단을 이루는 광범위한 지배계층이며, 일반 백성들이 모방해야 할 기준이 되는 인간상이기도 했다. 현재에 이르러 조선의 사대부라는 단어가 조금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기도 하지
"조선의 선비에게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배운다." 내용보기

우리는 조선시대를 이야기하면 의례 선비를 떠 올린다. 양반제라는 신분제도아래서 양반이라면 곧 선비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런 양반을 우리는 다른 말로 사대부라 부른다. 사대부는 조선시대 지배집단을 이루는 광범위한 지배계층이며, 일반 백성들이 모방해야 할 기준이 되는 인간상이기도 했다. 현재에 이르러 조선의 사대부라는 단어가 조금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조선사대부의 윤리문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대부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성리학에 맹종하는 지배집단이 생각나지만, 사대부를 이루는 선비 개개인의 윤리적인 삶은 고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려말 성리학의 유입과 함께 유학적 소양을 지닌 엘리트집단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사대부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권력을 획득한 이성계 일파의 토지개혁과 함께 성장했다. 과전법의 실시는 권문세족과 불교사찰의 경제적 기반을 해체함과 동시에 이들 신진사대부의 기반을 확고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리학을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채택하였으며, 이후 500여 년간 실질적인 관료로써 지배층을 형성하고 국가경영의 주역이 되었다. 조선초기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이나 태조 이유의 '계유정난'은 이들에게 윤리규범의 정도와 현실권력의 힘 사이에서 갈등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기반인 성리학적 정치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충효와 오륜의 윤리로 국가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백성의 삶을 윤리적 공동체 속으로 편입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중기 소위 사림파가 등장하면서는 성리학적 의리를 도통의 본질로 삼으며 당시 지배층을 이루던 훈구파대신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사대부들은 올바른 선비의 길을 가고자 했다. 그것은 국가와 백성을 위해 인의공동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대의를 삶의 지표로 삼고,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를 수양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들 사대부들은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또한 독서는 올바른 실천으로 이어져야만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에, 사대부의 독서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평생을 노력해야 하는 수양공부이기도 했다. 이러한 수양의 목적은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려는 의도 외에 벼슬에 나아가 성리학적 이념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려는 대의에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독서를 오늘날 우리가 하는 독서와 비교해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과연 나는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려고 얼마나 노력 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대의는 관두고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방법으로라도 제대로 했는지 선뜻 대답이 나오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읽는 것은 아닌지, 무엇인가 자기수양 이외의 목적이 있어서 읽은 것은 아닌지 자꾸만 의문이 든다.

 

물론 조선의 사대부들이 성리학적 신분질서 속에 사로잡혀 삼강오륜이라는 사회통합원리를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를 강조하면서 지나친 형식주의로 흐른 면은 있지만,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양반이라는 신분계급을 놓고 볼 때는 그들의 탐욕과 타락상이 먼저 들어오지만, 선비 개개인은 근면 검소하고 예절을 중시하며, 부끄럽지 않게 죽는 것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바른 생활의 삶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밟히고, 오래도록 남는 것은 영조 때의 유림 김상정이 썼다는 [석당유고]에 나오는 구절이다.

 

"가장 좋은 모습은 부끄러운 행위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의 모습은 부끄러운 행위가 아주 조금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의 모습은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들을 바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모습은 부끄러운 행위가 부끄러운 짓 인줄 아는 것이다. 그 다음의 모습은 부끄러운 행위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가장 나쁜 모습은 부끄러운 행위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다. 대개 선비 된 사람의 가장 큰 걱정은 부끄러운 행위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없어진 상태이다.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조차 전혀 없으면 하지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하지 못하는 짓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시초는 부끄러운 행위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서 비롯된다." (103,104)

요즘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이 사회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못하는 짓이 없다는 걸 느낀다. 유림 김상정의 말마따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부끄러워 하는 마음조차 없는듯하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부끄러워하는 행위를 했는지, 그리고 그것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는지를 생각해본다. 다행히 못하는 짓이 없다는 소리는 안들었기에 안도하면서, 그래도 무엇이 부끄러운지는 알기에 조선의 선비들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본다.

k*****1 2016.01.06. 신고 공감 5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