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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은 신경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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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에게도 은총이] 베로니크 오발데 소설“덜 착한 사람들이 더 착한 사람들보다 오래 산다. 이 불완전 세상은 그렇다.”인간에게 유일하게 공평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죽음일 것이다. 그가 누구이든 그는 반드시 죽는다. 예외 없는 죽음이 모두에게 공평한 반면 생은 그 자체로 불공평하고 잔인하다. 착한 사람이 내일 당장 여타의 이유로 죽을 수도, 덜 착한 사람이 오래오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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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에게도 은총이] 베로니크 오발데 소설


“덜 착한 사람들이 더 착한 사람들보다 오래 산다. 이 불완전 세상은 그렇다.”


인간에게 유일하게 공평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죽음일 것이다. 그가 누구이든 그는 반드시 죽는다. 예외 없는 죽음이 모두에게 공평한 반면 생은 그 자체로 불공평하고 잔인하다. 착한 사람이 내일 당장 여타의 이유로 죽을 수도, 덜 착한 사람이 오래오래 자기 수명을 다하고 생을 마칠 수도 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생과 불가항력적 죽음이라니. 잔인하다. 생과 죽음이 우연적이라면 그 사이는 의지의 영역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 역시 무수한 우연과 조우하는 불안한 의지일 뿐이다. 그렇다면 삶은 세포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우연과 의지의 투쟁에서 인간은 자유 결정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프랑스 소설 <불한당들에게도 은총이>는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짧은 생의 기록이자 자유의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자신을 억압하고 가두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성공한 작가가 된다. 


그녀가 떠나온 곳은 무기력한 아버지와 광신적인 어머니가 “부모의 이름으로 자식을 가축처럼 매질”하고, “적과 동지”의 관계를 오가는 심술궂은 언니의 간섭이 있으며, 여전히 종교적 엄숙주의와 금기가 지배하는 극지방의 차갑고 황량한 세계다.


저 까마득한 극지에서 온 “냄새나는 소녀”가 도달한 세계는 수영장이 딸린 빌라에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하녀를 두고 초록색 머스탱을 몰고 멀홀랜드 언덕을 달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곳은 마약과 도박, 섹스와 돈을 신으로 모시는 온갖 문학 사기꾼과 출판 협잡꾼들이 난무하는 불한당들의 세계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의 이동은 하나의 목표를 향한 전진인 동시에 기이한 우연과의 끓임 없는 조우가 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는 그녀의 열망은 실현된 것일까?


"책이 성공한다는 것은 오해의 소산"


비록 십대의 나이로 직관에 의존해 쓴 자전적인 첫 소설이 클라라문트라는 미국 문단의 거장의 도움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래 작가로서 주류 세계에 적응해나간다. “작가들, 그들은 단지 불안을 쫓으려는 것”이며 “이 길드의 성원 거의 전부가 줄무늬 벨벳 바지를 입고 고무 밑창 단화를 신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난 척 하기 위한 농담, 험담, 거짓말 밖에 없다. 아니면 폭탄 선언을 하기도 한다.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불의이자 요행"


남자를 항상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는 남성을 자극하고 “미쳐버리게” 만든다. 온전한 자유의지를 지닌 개인으로서의 삶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

그녀에게 가해진 성폭행은 결코 그녀가 그 세계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한 개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남자를 흥분시키는 건 그도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남자가 필요한 것은 금붕어에게 핸드백이 필요한 정도만큼”이라는 각성과 “책 한권을 집필하는 일이 술책과 회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한 층 성숙하고 진지한 작업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이제 직관에 의지하지 않고 현실적인 토대를 갖춘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자기가 바라보여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성 특유의 자아분열을, 여자들은 일지감치 배우게 되는 일을, 즉 자기가 바라보여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경험”했다.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권리를 누리고 나와 네가 뒤섞이는 ‘우리’를 거부하며 고독에만 의지하는 삶”을 준비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과거의 문제를 해결해야한 한다. 그것은 화해가 아니다. 현재의 불완전한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기가 떠나온 세계에 남겨 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못된 여동생’ 마리아가 자신의 언니에 대해 지고 있는 짐을 덜어내는 것, 그녀의 피부에 붙어있는 죄의식을 털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삶을 꾸리려는 의지는 또 하나의 우연과 조우한다. 언니의 아들이 거기 있었다. 아이를 맡는 문제는 그녀만의 삶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우연, 아이와의 만남은 족쇄가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도한다. 우연이 의지의 산물이 되는 순간이다. 가족의 재구성. 우연적인 가족의 구성을 그녀는 필연적이고 의지에 의한 것으로 만든다.


가족과 고향, 그리고 미국문단, 남성들이 지배하는 불한당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조용한 눈으로 차분하게 지켜주는 운전기사와의 결혼은 새로운 가족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시 삶은 온전하게 자유의지에 속하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진으로 인한 사고로 그녀는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우연과 만난다. 

그 죽음은 "불완전한 세상과 그 추악함으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새로운 피난처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 우연의 절대적 승리로서의 죽음, 이렇게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생성과 소멸의 이야기를 마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극지의 어둠 속에서 데려온 아이가 있다. 이모가 자기를 찾아 올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이 아이는 마리아의 아이가 되고 마리아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서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멸을 향한 대 질주"는 끝이 났으나 이야기는 계속 된 다는 것.


불한당들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은총이 필요한 순간, 그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으므로, 그들을 비난하거나 세상을 탓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생성과 소멸 사이의 ‘이야기’, 그 사이의 이야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불한당들은 "신경 쓰지 마, 평화롭게 망하게 내버려둬, 루저들에게도, 표절꾼들에게도, 불한당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은총이 있게 마련이니까”

h******u 2015.11.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