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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랑의 태풍은 멈추지 않았다.
오가와를 중심에 둔 아이들의 연애 전선에 진한 먹구름이 끼었고, 그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읽는 나도 놀랐던 건 이 정도로 크게 번질 줄 몰랐다는 거다. 그저 한 소년의 가슴앓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건 뭐 꼬리에 꼬리를 문 것처럼, 굴비 엮어놓은 듯 연관된 아이들이 계속 나온다. 그 강렬한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하려는 아이들이라니... 웃기기도 하면서 그 눈빛에 살인이 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공포심도 동시에 인다.
어쨌든 또 한 번 산을 넘을 시간이다. 이걸 풀고 넘어가지 못하면 스즈키 선생의 반은 여전히 소란스러울 테니까. 결국,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들의 입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오가와의 마음과는 다르게, 오가와를 추종하는 남학생이 폭발하고야 만다. 여기저기 있는지도 몰랐던 지뢰가 빵빵 터지고, 스즈키의 머리는 뱅뱅 돌고...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진심이 하나씩 들려오면서 오가와를 둘러싼 ‘오가와바라기’는 잠시 조용해진다. 그렇게 태풍은 물러간 듯한데...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오가와가 주인공이 된 소문은 다시 일어난다. 새로운 체육 교사 쓰즈키가 부임한다. 그리고 그가 출근한 첫날 오가와와 마주친 후 시작된 소문은 이런 것. 오가와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쓰즈키가 오가와의 첫사랑이다, 혹시 오가와는 스즈키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아니다, 스즈키 선생님이 오가와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등등. 어디서 근거를 찾은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귀가 따가울 정도로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끝이 없다. 그에 상처를 받게 되는 건 어김없이 소문의 주인공은 오가와다. 이 소문을 근거로 또 한 번 오가와 추종자들은 들고일어나고, 곧 전쟁이 발발할 것 같은 분위기다. 누가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대형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다. 도대체 아이들의 이 사랑은 어디로 튈 것인가.
역시, 사람 모이는 곳은 말이 많아지기 마련인가 보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고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고통만큼 큰일은 없다. 3편의 주요 내용은 아이들이 품은 연정에 관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누굴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시작되는 일에 어떤 끔찍한 결과가 이어지는 건지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게 스즈키가 어떻게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고 가는가 하는 거다. 스즈키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선생이라는, 어른이라는 입장에 서 있지만, 그도 아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배경에 두고 보는 게 재미있다. 모든 일에 완벽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애쓰는 모습에서 땀 흘리는 것도 눈에 훤히 보인다. 스즈키를 옹호하면서 그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게 아니라,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알 것 같아서 웃음이 나면서 응원하게 된다. 그의 사생활도 파이팅 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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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방송에서 사춘기가 몇 살이냐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중2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만, 한 출연자가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사춘기가 온다고 해서 아차 싶었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2의 이미지 때문에 당연하게 사춘기라 여기고는 있었지만, 그 시기는 시작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최정점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겁니다. 아이들의 성장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 때'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속사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표면적인 이유가 화장실에서 큰일 본 걸 소문내서였다니 너무나 유치해서 살짝 어처구니가 없긴 합니다. <짱구는 못 말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니까요.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학교 화장실에서 큰일 보는 게 창피한 일이 돼버려서 수업 중에 집에까지 가서 해결하고 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죠. 한창 민감할 시기이니 이해는 가지만,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여기며 권리를 요구하는 것 치고는 어딘가 앞뒤가 안 맞아 보입니다. 덩치만 큰 어린애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교육 현실인 거죠. 반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않자 아이는 결국 할 말 못할 말 다 퍼부으며 폭주하고 맙니다. 어쩌다 어른이 돼버린 저로서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일이 일상다반사라 남일 같지가 않네요. 저도 덩치만 큰 어린애일지 모릅니다.
스즈키 선생님은 근육 강화에도 적당한 부하와 휴식이 필요하듯 이번 일로 아이들의 마음이 단련되기를 바라며 진지하게 설득하고, 반 아이들도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스즈키가 여신처럼 숭배하고 있는 여학생과 새로 부임한 선생님 사이에 근거 없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학교는 또 다시 시끄러워지고, 스즈키 선생님은 스트레스로 쓰러지기까지 합니다. 성숙한 몸과 미성숙한 정신의 아이들 사이에서 스즈키 선생님은 과연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요? 4권엔 훨씬 더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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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별 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 때는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작품일 거란 기대를 했었겠지만, 1권부터 4권까지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게 틀림없다. 일본의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즈키 선생님이 그간 보아온 일본 드라마나 영화 속 열혈 교사들의 또 다른 복제품일 거라는 생각만 빼면 말이다. 정말로 나는 이 작품이 그런 일본 특유의 교훈과 해피엔딩을 품은 만화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얄팍한 기대는 1권을 채 반도 보지 않은 시점에 와르르 무너졌고,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던 손이 빨라졌다. 그만큼 스즈키 선생님이란 작품은 다소 자극적이었고, 생소했으며, 당황스러웠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날 가장 당황하게 만든 건 주인공인 스즈키 선생님이다. 그는 여지껏 내가 가져왔던 당연한 상식들, 교사의 모습이 과연 옳았던 걸까, 란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비록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스즈키 선생님이지만 그가 가르치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 또한 주인공이다. 때로는 아이들이, 때로는 스즈키 본인이 혹은 동료교사가 중심에 서 있는 가지각색의 에피소드를 통해 내가 가볍게 지나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예를 들면 1권의 에피소드 중 '탕수육'을 보자. 학교의 급식 메인 메뉴에서 늘 절반 가까이 남는 탕수육을 제외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스즈키가 담임을 맡고 있는 클래스의 한 학생인 가바야마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녀는 탕수육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사소한 일이 교직회의는 물론, 스즈키로 하여금 전교적으로 탕수육을 빼느냐 마느냐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나 많은 탕수육이 남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한 반에 4명 정도만 탕수육을 못 먹는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밝혀졌을 때, 난 무심코 '아, 못먹는 애들이 많은 건 아니니까 탕수육은 사라지지 않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록 4명 뿐일지라도 그 아이들이 먹지 못하는 메인메뉴를 급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논의를 시작한다. 아차, 싶었다. 탕수육을 좋아하는 아이가 그 메뉴가 제외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계속 탕수육이 나온다면 전혀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다수결의 맹점이다. 다수가 찬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사실은 알고 있던 것이지만 무심코 잊기 쉬운 그 사실을 뼈저리게 지적당한 기분이 들었다. 한 반에 네 명이나 먹지 못하는 메뉴보단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당연히 더 나은 메뉴다. 또 4권 거의 전부를 할애한 중학생 간의 성관계에 관한 에피소드 역시 인상적이었다. 작중 다케치의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일반론에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 칼로 자르듯 스즈키가 그녀를 부정하고 나섰을 때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스즈키가 꺼낸 말들이 초반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주장을 끝까지 읽고나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작품을 읽고난 후에야 처음 읽었을 땐 보이지 않던 디테일한 묘사들이 눈에 들어오고 스즈키의 주장이 전혀 말이 안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그의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옳다고 배워왔던 것들과 조금 다를 뿐. 사실 만화책을 보면서 내 사고방식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느끼는 당혹스러움 아닐까. 한편으로 이 작품은 스즈키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 스스로는 성인 남자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을 상대로 그런 마음을 갖고 상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했기에 스즈키를 보는 마음도 줄곧 곱지 않았다는 걸 고백한다. 사실은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선 스즈키를 이해한다거나 공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는 스스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흔들리고, 흔들리지만 그는 꿋꿋하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자신을 추스른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교사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되려 그런 스즈키의 모습을 통해 교사 역시 또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곤 하는, 그런 평범한 인간. 무조건 안된다고만 배웠던 내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만약 스즈키와 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사소한 투정 같은 일이라도 진심으로 마주해주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주는 완벽하지 않은 어른. 사실 중학교 2학년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다양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랬었으니, 지금의 그들도, 앞으로의 그들도 그렇지 않을까. 부디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않고, 자격과 책임을 설명해주는 스즈키 같은 교사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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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어째 폭풍이 조용하게 지나간다 했다. 하지만 아직 사랑의 폭풍은 지나가지 않았다. 갈등은 갈등을 낳고, 오해는 오해를 낳았다. 선생님들간의 감정도, 아이들간의 감정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감정이 증폭되어 간다. 3권의 목차를 보면 학교인가 러브스쿨인가 구분이 안 될 정도. 사랑의 태풍과 사랑의 끝이란 제목의 목차가 전부다. 오가와에 대한 스즈키 선생의 감정정리가 되기도 전에 남자 아이들 사이에도 오가와에 대한 연정이 싹트고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끼리의 묘한 유대감이 생긴다. 게다가 오가와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쓰즈키까지 등장. 꽃미남 외모의 선생님이 등장함에 따라 교무실도, 교실도 술렁이게 된다. 쓰즈키가 인기있을 것 같다는 말에 인기 순위 2위인 오카다 선생을 좋아하는 여선생은 흥분을 해서 교무실이 시끄러워지고, 쓰즈키와 오가와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그 사연을 궁금해한다. 과연 오가와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걸까? 극한의 감정대립 끝에 옥상으로 뛰쳐올라간 오가와. 늘 어른스럽고 아름다운 오가와이지만 아이들의 추궁에 견디지 못하고 극한 선택을 한다. 결국 오열하며 내뱉은 말 “어째서 내버려 두지 않는 거야? 나도 그런 감정은 알아. 그래서 이해가 안가. 왜 참지 못하는 거야. 연모하기만 해도 되잖아. 도저히 전하지 않고 못 버티겠다면 한번 몰래 전하고 그걸로 충분한 거 야냐. 누구를 좋아하든 상관없잖아.” 어른을 부끄럽게 하는 오가와의 말에 오히려 차분해진 스즈키 선생. 과연 스즈키 선생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들의 사랑의 줄긋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될까?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스즈키 선생님 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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