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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진보’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진화가 자신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이룬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개입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떨까? 저명한 SF작가인 아서 C. 클라크는 그의 저서 <유년기의 끝>에서 바로 이러한 강제 진화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가 묘사하고 있는 인류의 진화를 살펴보면, 마치 우리 인류가 수많은 동식물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품종 개량했던 일이 인류에게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유년기의 끝>에서는 ‘오버로드’라고 하는 강력한 외계인이 지구인들이 우주로 나아가려는 순간, 지구를 침략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우위와 존재감을 드러낸, 이 독특한 침략에 의해 인류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불가능할 것 같은 황금기를 맞이한다. 해결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핵의 위협이 완전히 소멸되고, 마치 이성적이고 조화를 추구하는 절대적인 군주 혹은 독재자를 인류의 지도자로 선출한 것처럼 인류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생산은 대규모로 기계화되고, 무인공장이 쉴새없이 소비재를 시장으로 내보냈으므로 일반 생활 필수품은 사실상 무료로 공급되었다. 사람은 다만 자기가 원하는 사치를 위해서 일을 하던가, 아니면 전혀 일을 하지 않던가 자기 마음대로였다.1)” 그렇다. 인류 모두가 각자 원하는 만큼 일하고 원하는 만큼 쓰는, 공산주의 사회의 이상향이 이 땅에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불과 100년만에!!!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불행히도 이러한 평화와 번영은 인류를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처럼 아무런 창조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고 사육되는 돼지처럼 살아가게 만들었다. 어느새 인류는 점차 개개의 독자성을 상실해 갔고, 그 결과 태어난 아이들은 기존의 인류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種)으로 변해갔다. 그들 신인류는 ‘오버마인드’라고 부르는 하나의 거대한 정신체의 일부로 통합되어 버린 것이다. 물질적 진화의 끝에 이르러 ‘오버마인드’의 일부가 될 기회가 없는 ‘오버로드’가 행복한지 아니면 강제적으로라도 정신적 진화의 단계에 도달해 ‘오버마인드’의 일부가 된 지구인이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서 ‘오버로드’ 고향 별로의 연락선에 밀항하는 지구인 잰 로드릭스가 그의 누나 미이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언급2)한 것처럼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어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1) 아서 C. 클라크,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 정영목 옮김, (시공사, 2001), p. 108 2) “누나도 내가 늘 우주 비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다른 행성들로 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또 오버로드들의 문명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늘 좌절감을 느꼈다는 것을 알지? 만일 오버로드들이 개입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지금쯤 화성과 수성에 도달해 있었을 거야. 물론 20세기에 개발한 코발트 원자폭탄을 비롯한 세계 파괴 무기로 우리 자신을 파멸시켰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 하지만 때때로 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발로 설 기회를 가지기를 바랐어.” |
| SF라는 장르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외계 문명, 경이로운 과학기술의 발전, 우주, 심해, 다른 차원의 세상 속에서 독특한 상상과 영감을 얻는다. 과학기술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그곳에서 미래를 그려낸다.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주는 답답함이 싫어서인지도 몰라도 미래는 언제나 현재만큼이나 중요한 관심사이다. ‘유년기의 끝’은 나의 이런 취향과 아주 잘 맞는 테마를 갖추고 있다. 로저 젤라즈니,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와 더불어 SF계의 거장인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이라는 간판만큼이나 흥미로운 내용과 주제의식이 강렬하다. 가이낙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모태가 된 작품답게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내용들이 이어진다. 인디펜더스 데이의 첫 장면을 연상시키는 외계문명의 접근, 알 수 없는 인류에 대한 호의와 인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끄는가. 우리가 결국에 맞이하게 될 것과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궁금증들을 점진적으로 증폭시키는 전개와 복선들의 은밀함이 아주 매력적이다. 마지막을 쉽게 예측 할 수 없으니 반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희망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비극적이지도 않은 결말은 백미 중의 백미라 생각된다. 그렇게까지 담담하고 정제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그 장엄한 장면을 하나하나 같이 지켜보는 느낌은 참 묘한 느낌을 준다. 우주에서 인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런식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심한 무기력감, 그러나 새로운 시작이 있기 위해서는 그 끝도 존재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당위성은 ‘유년기의 끝’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온갖 분쟁과 갈등으로 극을 치닫는 인류의 몰이성적인 역사의 진로를 이상적이고 절대적인 세계와 존재에 의하여 강제로라도 변경되었으면 하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것 같다. 올바른 힘이 곧 정의가 된다면 이상적인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라고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의 과정은 허무맹랑하고 너무 추상적이긴 하다. 물론 책 내용에서는 그것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집단에서 그 해법(?)을 찾긴 했지만, 우주 속에서 인류의 한없이 가벼운 존재성을 통하여 인류의 반성과 겸양을 찾기에는 약간 부족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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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 벌어졌을때 "왜?" 라는 의문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유가 무엇인지, 원인지 무엇인지 알고싶어한다. 특히, 연애할 때 수천번 수만번 듣는 질문이 바로 이 "왜?" 일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역사에 수천번 등장하는 그 "왜" 는 절대 아니다. 그런 쪽발스러운 한자어를 '사람은 누구나' 로 시작되는 문장 안에 넣을 이유는 지구가 두쪽, 아니 만쪽이 나도 있을 리 없다. 인류의 위대한 선각자들은 가끔은 "왜??? 왜요??? 왜인가요???" 라고 물어대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야 일단 믿어. 묻지 말고 믿어. 외워!! 무조건 외워!! 그게 바로 믿음이야!!! " 라거나 "야 너 지금 시장통에서 독화살 한대 맞은 사람이야. 치료부터 해야지, 누가 왜 내게 독화살을 쐈을까? 고민하지 말란말이다~~!! "
인류가 갖고 있는 수많은 욕구들 중 가장 강력한 건, "지식욕" 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 풀어본다면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 일터다. '수집' 이라는 단어에는 정리해서 기록하는 것을 포함한다. 인간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 중 가장 약하고, 가장 복잡한 시스템으로 조립되어있다. 이게 얼마나 복잡한지, 아주아주아주 작은 한 부분만 이상이 생겨도 외모가 변할 정도로 큰 이상이 나타난다. 예를들어, 유전자 염기배열이나 신경줄기들 중 하나, 림프샘 같은. 말도 안되게 작고 어처구니 없이 미미한 변이가 신체 전반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인간들은 이러한 모든 것에 "왜?" 라는 호기심을 가졌고, 그 무한한 지식욕을 발휘하여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쌓아대기 시작했다. 특히 인류의 생존 그 자체와 관련된 정보들은 개인의 의지에 관계없이 유전자에 자동으로 저장된다. 인간들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인간의 두뇌와 엄청나게 비슷한 연산 시스템을 갖춘 기계를 개발했다. 이 과정 역시 정보수집에 대한 욕구에 의해 발현된 것이다. 인간의 뇌 용량으로 저장할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저장하고, 연산을 통해 예측한 정보를 원한 것이다. 인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식과 정보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어떤 방향과 어떤 모양으로 진화하게 될까?
SF라는 장르가 탄생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 생물학적, 물리적, 화학적. 모든 과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려보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소위 'SF의 3대 거장Grand Master' 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 거대한 칭호를 획득한 것은 그들이 작가의 영역을 벗어나 '과학적 상상력' 의 극한으로 실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진짜 미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3대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은 모두 실제로 일가를 구축한 뛰어난 과학자들이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 특화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특히 아서 C 클라크는 우주와 행성 전문가였다. 영국 왕실 천문학회와 영국 영국 행성학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이더 장교로 복무하며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되기 12년 전에 이미 정지궤도상에 위성을 띄워 통신에 이용하는 저서를 발표해 큰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우주 정거장이나 인터넷과 비슷한 개념의 광범위 쌍방향 통신 수단, MP3와 같은 음악 재생기등을 입안한 뛰어난 과학자였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개념이 실제 로봇공학으로 연결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서 C 클라크는 과학 지식과 판타지 전반을 아우르는 SF라는 장르 안에서도 소위 '하드 SF' 라 불리우는 세부 장르 안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하드 SF' 란 말 그대로 엄격한 과학 지식 토대 안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를 말한다. 당시의 SF소설들은 대부분 비슷한 기조를 갖고 있었다. 수많은 매니아들이 작가의 작품 발표회를 찾아가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며 질문을 퍼부면서 작가의 진땀을 쏙 빼놓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서 C 클라크는 후대의 SF작품들을 평가하는 지나치게 높은 기준점이 되기도 해서 과학적 지식을 어느정도 무시하고 우주를 날아다니며 로맨스와 스펙타클을 추구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라는 또다른 세부 장르가 탄생하는데 일조를 하기도 했다. 아서 C 클라크는 특히나 외계 문명과의 조우에 관해 다루는 것을 좋아했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외계 문명의 존재를 굳게 믿은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적의가 있는지, 선의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문명과의 조우. 그리고 그 미지의 문명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지대한 영향. [유년기의 끝] 은 그런 경향을 무척 잘 드러냄과 동시에, 제목 그대로 인류 진화의 최종형태를 고민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날 아침, 눈 떠 보니 전 세계의 주요 도시 위에 거대한 원반들이 꽉 차 있다. 지금은 '외계인의 침공' 하면 누구나가 상상하는 장면이지만, 도시의 전체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원반에 대한 상상과 달 뒷편에 위치한 외계인들의 중계기지와 같은 발상은 아서 C 클라크가 최초다. 그렇게 세계 주요 도시 위에 그 도시만큼 거대한 원반을 띄움으로써 지구를 점령한 외계인 종족은 스스로를 '오버로드' 라고 부르는 종족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인간을 섭식하거나, 지구의 자원을 강탈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추구한다. 엄청난 과학력으로 인간들의 무기는 그 어떠한 것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버로드는 무력으로 인간을 제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진정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으려는 의도는 "인간들끼리 서로 죽여도 좋소. 하지만 당신들이 음식이나 방어 외의 이유로 다른 동물을 죽인다면 당신들에게 책임을 물을것이오." 라는 명령과 그 책임을 묻는 방식에서 드러나게 된다. 오버로드가 투우를 즐기는 스페인 투우경기장의 관객들을 징벌한 일이었는데, 모든 관중들을 투우장 한 가운데의 황소와 공감을 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투우사의 창이 황소의 몸에 닿는 순간, 그 고통을 경기장 안에 있는 모든 관중을 다 함께 느끼며 비명을 지른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관중들은 자신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알아채지만 그 이후 지구상에서 투우는 사라지게 된다. 오버로드는 인간들이 어리석은 영토분쟁과 자원고갈로 스스로 이룩한 문명들을 파괴하며 자멸해갈 것을 방지하는 진정한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인류는 오버로드의 관리 감독하에 세계연방을 이룩하고, 그에 반대하는 운동가들과 대치하기도 하지만 차근차근 진화의 단계를 밟아나간다.
인간의 문명은 사실 전쟁을 통해 급진적인 발전을 이뤄냈지만, 그렇다고 인간 문명의 발전에 전쟁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속도 차이는 있었겠지만, 인간들은 모두가 지극히 순수한 지적인 욕구가 존재하고,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으로 폭력적인 시기를 만나 수집한 정보와 지식들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쟁이 없었으면, 로켓은 달로, 우주로 나가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을 것이고, 인공위성은 통신과 탐사의 용도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무인 정찰기와 로봇은 지금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미지의 행성들에 보내지거나 재난 현장에 투입되었을 것이며, 해저 깊은 곳에 있는 풍족한 자원들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오버로드의 점령은 인간의 다른 욕구들을 제어하고, 지식적 욕구를 통한 종의 진화를 앞당기는 방아쇠가 된다.
이 작품 전에 인류 진화의 최종 형태를 묘사했던 작품을 두 작품 만난 기억이 있다. 우선 배명훈 작가의 [신의 궤도] 에서는 우주 여행을 위해 최적화된 최종 진화형태가 등장했었고, 아서 C 클라크와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던 스티븐 백스터의 [타임십] 에도 등장을 한다. (한편, 현대 SF작품인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에서는 우주 전쟁에 최적화된 진화형 인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현대 SF에서 인류의 진화에 대해 깊이 다루는 작품은 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또한 스타니스와프렘은 [솔라리스] 에서 거대한 행성으로 진화한 외계 종족을 그리기도 했고, [사이버리아드] 에서는 조물주를 거대한 인공지능 연산장치로 표현하기도 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과연 인류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다. 정말로 서로 싸우다 자원도 다 써버리고 결국 절멸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로운 공존공영을 통해 우주로, 우주로 나아갈 것인가. 인류가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구 안에서 모든 분쟁을 끝내야만 한다. 각 국가의 소모적인 군비경쟁이나 무의미한 자원소모는 우주에 대한 꿈을 끊임없이 녹여낼 뿐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다른 동물들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진화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 또한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진화한다면, 왜 인간에게만 지성이 있을까? 지구에 있는 모든 종족들을 말살하고 혼자 살아남기 위해 생긴 지성일까? 지구의 모든 자원을 소모하고 함께 죽어가기 위해 생긴 종족일까? 자아를 깨닫고, 타자를 인지하고, 완전한 타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선한 마음들은 단지 인류의 보전만을 위해 발달한 돌연변이일까? 인류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는 수많은 철인들이 고민해왔고, 가장 편한 대답은 '신' 이었다. 신을 위해 살고, 나아가 타인을 위해 산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길이기에 '신의 길' 이다. 남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인간에게도 쉽지 않다. 때문에 '희생' 이라는 덕목은 인류에게 가장 고귀한 가치이다. 모든 욕망과 본능을 이겨내는 유일한 능력이다. 희생이야말로 인간 지성의 정점이다. 이 작품 안에서는 인류의 최종 진화형과, 지성의 최종 진화형이 동시에 그려진다. SF는, 누구나 '허무맹랑하다' 고 촌평한다. 그 허무맹랑함은 무엇에 기준하는가?? 그렇다면, 순문학은,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을까? 오히려 SF는 독자들이 기를 쓰고 '현실에 빗대고자' 한다. 바득바득 '야 이 소설에서 1998년엔 인공지능 로봇이 나온다잖아. 근데 안나왔어. 그러니 허무맹랑하지.' 라고 한다. '야 이 소설은 배경이 2010년인데, 핸드폰도 안나와' 라고 한다. 물론 그 소설들은 대부분 1950~7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고. 외려 SF는 지나치게 현실과 맞닿아있는 장르이다. 뛰어난 과학지식을 갖고 그에 걸맞는 통찰력을 지닌 작가들은 현실과 상상을 절묘하게 이어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향한 등불을 밝혀준다. 동시대의 수많은 독자들이 SF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고, 우리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세계를 그리게 해준다. 그를 통해, 누군가는 소설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시킨다. 이처럼 현실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문학장르가 있을까?? 바로 이 작품. [유년기의 끝] 은 대담하게 인간에게 조물주의 정체를 묻고, 범인류적인 평화의 방법을 모색하며, 나아가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낸다. 물론,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세상이 그려진다. 가끔은, 동네, 나라, 지구, 달. 나아가 무한의 우주와 인류의 잠재능력을 향해 시선을 돌려봐도 좋지 않을까? 실제로, 우주의 끝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지구상에서 인간에게만 가능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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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주선이 내려와 하늘을 뒤덮고 인류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덕에 시각적으로도 선연해진 이 장면에서 인류는 공포보다 안도감을 느낀다. 애써 찾아나가려 했던 세계가 직접 찾아와 준 덕에, 넓은 우주에 홀로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깐, 덕분에 유토피아라 할 만한 평화로운 세계와 지적 발달을 맞았지만 떠나지 않은 '오버로드'들에게 모두가 호의적이진 않다. 인도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오버로드들의 '인간 다루기'에도 불구, 미지의 대상에게 지배 받는 상황을 점차 의심하는 부류들이 늘어간다. 가만히 인류를 관찰하고 탐구하며 돕는 외계인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지 인간들은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주 20시간의 근무 여건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이 영위되는 여유로운 생활 안에서도 '인류는 여기에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을 놓지 않는다. 호기심 왕성한 인간이 이 답을 찾아나가는 동안, 외계 존재들 또한 그들의 진짜 목적을 알릴 때가 왔음을 깨닫고 인류를 다음 단계로 안내한다. 진화하는 인류의 미래는 지금껏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이 거치듯, 태어난 생명은 죽는다. 인류의 진화는 종말과 다르지 않았고, 외계 존재들의 역할은 인류가 믿어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이상 물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인류는 세상을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태양계 너머의 우주의 시선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쯤 사라져도 티 하나 나지 않을 지구에서, 우리는 얼마나 부푼 꿈을 안고 살고 있나 생각하면 허망하다. 대부분의 종말론은 지구의 끝과 많은 인명 손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저 생명이 다하는 것으로서의 종말만을 말이다. 하지만 <유년기의 끝>에서는 생각지 못한 종말을 말한다. 새로운 이성적 존재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화를 맞는 인류는 안락사 되듯 빛으로 소멸되는 행성을 떠난다. 진화가 곧 종말이 되는 이 이야기는 공포를 안겨준다. 반 백년도 더 묵은 소설에서 오늘 날 인류의 바람이 그대로 유토피아로 묘사되고, 현대의 불안이 고스란히 엄습해 있다는 점에서 왜 아서 C. 클라크가 거장이라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꾸준히 재생산 되며 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그의 이야기. 인류의 끝에 그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가고자 하는 더 나은 미래는 결국 그가 그린 모습과 닮았을까. 더 이상의 진화를 맞지 못해 처연하게 살아가더라도, 오버로드가 더 나은 것일까. 우리 인류는 그 수많은 종말론들과 꿈들 사이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나는 잰처럼 운이 좋지도, 용기가 있지도 않을 테니 그 끝을 보진 못하겠지만 자못 궁금해진다. 일평생의 작업이 한순간에 쓸려가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었다. 라인홀트는 인류를 별에 도달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막 성공할 찰나에 차디찬 인간에게 초연했던 별이 인류에게로 내려온 것이다. 역사가 숨을 죽이는 순간이었고 빙산이 자신의 모체인 얼어붙은 절벽에서 떨어져 나와 외롭고 당당하게 바다를 항해하듯, 갑자기 현재가 과거로부터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과거의 세월들이 이룩해놓은 것은 이제 무에 지나지 않았다. 라인홀트의 머릿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치고 있었다. '인류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15~16쪽) 인간은 아직도 자신의 행성에 포로로 잡혀 있었다. 지구는 1세기 전에 비해 훨씬 발전했지만, 행성 자체는 더 비좁아졌다. 오버로드들이 전쟁과 기아와 질병을 없애버렸을 때, 그들은 동시에 모험도 파괴해버린 것이다. (141쪽) "별들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오." (209쪽) "그럼 우린 어쩌란 말입니까? 왜 이런 일이 우리한테 일어난 겁니까?" "누군가에게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당신한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원자탄의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첫 중성자에 특별할 것이 없듯이 말입니다. 그냥 우연히 첫번째가 된 것뿐이죠. 다른 중성자가 그 일을 해도 무방합니다. 제프리도 세상 여느 아이와 똑같을 수도 있는 거죠." (267쪽)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어쩔 수 없는 일에 화를 내지 않지요." (3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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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작품입니다. 멋진 에스에프 소설이에요. 제목도 멋지지 않습니까? 사실 이 책은 제목 때문에 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집어들고 보니 이 저자 분이 에스에프계의 대부시라더군요. 으흠, 그래. 그러고보니 이름이 어쩐지 익숙하더라. 그리고 또, 번역자 분도 정영목 님이신지라 별 망설임없이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일단 말하자면 작품이 제게로 왔다고 보는 쪽이 옳습니다. 제가 왜, 종종 말씀드리잖아요. 제가 찾기 전에 먼저 알아서 인사하러 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얘가 그런 애에요.
사실 저는 에스에프 소설에 관한 편견이 없었음에도 그리 많이 접해본 경험이 없고요, 그나마도 존 스칼지의 뻑 가는 작품 <노인의 전쟁>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눈여겨 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딱히 싫어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면서 묘하게 잘 떠오르지 않는 그런 아이들이었달까. 어쨌거나 존재감이 좀 희박한 편이었죠. 그러다가 존 스칼지 덕분에 에스에프 소설에 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겨버려서,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뭐 그리 올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관심을 둔 상황에서, 슬슬 발동 걸듯이 한 두편씩 보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제가 지금까지 봤던 에스에프 소설과는 그 성격이 좀 다르네요.
에스에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정적입니다. 일단 우주 나오고 외게인 등장해주시면 뭔가 부서지고 나자빠지는 등 대단히 소란스러울 거란 선입견 같은 게 저한테는 있었나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죠. 어쨌거나 이 작품도 그런 계통일 거라고 생각하며 읽어서 그런지 오호, 대단히 신선했어요. 완전 잔잔하거든요. 그리고 묵직합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스토리 작렬의 이야기 소설 타입이 아니고요, 외계인과의 첫 접촉을 통해 인류의 지나온 날들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관해 다소 철학적인 접근 방식을 택해서 바라본달까? 엄청 진지하게 주제를 끌고 나가니까요. 그 영화 뭐였죠?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에스에프. 거기서 지구에 온 외계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 지구인들에게 더 이상 지구를 맡겨놓았다가는 완전 말아먹게 생겼다. 지구에는 너희 인간 말고도 생명체가 많은데 문제는 니들만 일으키니까 모월 모시에 너희들만 싸그리 지구에서 없애버리겠다, 뭐 그런 거였지요. 그래서 키아누 리브스가 철판 볶음 판위에 당근처럼 뛰어다니는 그런 영화였는데 이 작품도 어쩐지 살짝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가늠하지도 힘든 초 지성체가 지구에 와서는, 인간 사회가 일으켰던 모든 위협적인 요소, 그러니까 전쟁, 질병, 기아, 기타 등등 문제가 되는 모든 것들을 해결해줍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인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말해주지 않지요. 마치 자선 사업하듯이 말이죠. 그르니까 이제 인간들은 파가 갈립니다. 아따, 저거들은 우리 편이고마잉, 그런 아저씨들이 있고요, 글씨 지는 그리 생각 안 한당게요? 저러코롬 의식부터 차근차근 점령한담시롱 한방에 훅 말아 드실라고 하는게 분명한게롱,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당께요? 뭐 그런 식입니다.
이렇게 오버로드라고 하는 외계 지성체와의 첫 접촉을 다룬 챕터는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진행됩니다. 문제는 2부나 다름 없는 다음 챕터 황금시대였지요. 오버로드가 만들어놓은 새로운 지구에 적응하여, 이른바 꿈에 그리던 유토피아-일을 안해도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질병이나 전쟁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지상낙원-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는네요, 확실히 착한 건 지루해. 제5원소의 게리 올드만이 그랬듯 그릇은 깨져야 산업이 활성화되고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생겨 덜 심심한 법, 깨지지 않는 그릇은 고요하니 심심하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챕터에서 추욱, 하고 이야기가 처지고 맙니다. 그리고 다음 챕터 최후의 세대에 이르러서는 다소 초자연적인 접근법으로 다시금 흥미를 끌어올리는 데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차분했다가 그게 마지막 챕터에 와서 다소 허무주의적인 느낌으로 진행됩니다. 어둡고 고요하고 고독한 느낌의 잿빛이랄까?
이 작품은 상당히 많은 에스에프 창작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나 봅니다. 건담이라든가,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등 말이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그 영화도 그렇고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지구 상공에 둥둥 떠 있던 거대한 우주선들도 그렇고 어디선가 본 장면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 데요, 그것들이 모두 이 작품의 아류라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1953년에 발표한 소설이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이 더 대단하다고 평가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60년 젼에 쓴 에스에프 소설이 지금 읽어봐도 시대적으로 낙후된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아마 과학적 테크닉으로 무장된 이야기 소설이 아니라, 그런 달라진 환경을 토대로 인간 사회를 철학적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도 같아요. 어쨌거나 대단히 재미 있어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번쯤은 읽어줬어야 할 작품을 읽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리고 묘한 여운이 있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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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 꽂혀 급하게 구매한 다섯 권의 책 중에 한 권이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추천글을 보고 충동구매를 하였다. 내 독서에 대한 의욕이 다시금 떨어져가는 타이밍에 펼친 책이다. 기존에 읽었던 두 권과는 다르게 굉장히 쉽게 읽혔다. 지금 다섯 권을 다 읽고 난 이후 느끼는 것이지만 앞에 읽었던 두 권이 가장 읽어 내려가기 힘든 작품이었다. 특히 스타십 트루퍼스가.. 하여튼 밤을 새서 다 읽어 버렸다. 잡설이 너무 길었다. 제목이 참 특이하다. 유년기의 끝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일지 아무런 감도 오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은 의도를 굉장히 일찍 드러내 주었기에 제목이 의도하는 바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줄거리부터 써보겠다. 어느 순간부터 오버로드가 지구 상공에 머물게 되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에 의해 인류의 행동 교정이 시작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인류의 폭력 행위를 제한하면서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 오버로드의 압도적 능력과 함께 행동의 제약이 생기면서 인류의 탐구심은 죽어버리고 그러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위험한 모험 행위가 유행하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 오버로드를 속이고 오버로드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하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이는 출발과 동시에 발각이 되지만 가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이 사람이 오버로드의 행성과 지구를 오가는 사이 인류가 진화를 겪는다. 점층적인 진화가 아닌 새로운 세대들의 급격한 진화가 벌어진다. 오버로드 행성에 갔던 이가 지구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그가 알고 있던 지구의 모습은 다 사라진 이후이다. 기존 인류들은 모두 죽었고 진화한 인류만이 지구에 남아 그들의 능력을 이리저리 쓸 뿐이었다. 오버로드들은 최후의 구(舊)인류에게 오버마인드의 존재를 언급하며 진화한 인류를 대신 관찰해줄 것을 요구한다. 관찰 이후 결국 진화한 인류는 육체를 탈피하고 지구를 없애버리며 단일 정신체로 거듭나게 된다. 초중반 까지는 굉장히 재밌게 읽었지만 급격하게 전개되어 버리는 후반에 굉장히 난해함을 느꼈다. 오버로드들은 이미 진화의 한계점에 다다른 종족이며 아마도 그 진화의 끝이 이 소설에서 인류와 같이 유년기를 지나고 있는 종족들을 멸망하지 않고 진화의 길에 이르게 해주기에 최적화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버로드들도 차원이 다른 오버마인드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그저 중간자의 역할만 하고 있다. 진화한 인류는 결국 정신체로 거듭나 오버마인드와 합치게 되지만 오버로드는 그러지 못한다. 오버로드도 그러한 역할의 한계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진화를 돕는 입장에 있어서 관찰을 한다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커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진화한 인류는 본인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다 없애버리는 모습을 보인다.(지구의 풀을 전부 날려버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육체,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지구마저 날려버리는 모습) 자연에 휩쓸리고 어리숙한 정신에 휩쓸리던 유년기적 인류의 모습을 탈피하고 모든 것을 초월해버리는 것이 바로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인류는 계속 발전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체한 느낌이 강하다. 기술의 발전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말 인류의 문명이 더 발전 했느냐 자문해보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 풍성해지는 면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정신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결핍 현상을 겪고 있다고 본다.(지금 시기는 정말 분노로 가득찬 시기이다.) 과도기가 될 것인가 혹은 쇠퇴기가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인류에게 달려있다. 우리에게 오버로드 나타날 확률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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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영화로 봤고 3대 SF 저자라는 명성도 들었기에 그의 대표작이 어떠할지 기대가 컸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다. 1953년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시대를 앞서는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권말의 해설은 저자의 소설을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나 또한 진화의 새로운 단계에 대해서 공감이 크게 가지 않는다. 진화론에 대한 상상에 있어 도가 지나쳤다. 그리고 오버마인드, 오버로드 그리고 인간의 관계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왠지 찜찜하다. 진화론과 범신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감히 평해본다. 우주의 광대함에 도전하는 것은 개미들이 세계에 있는 모든 사막의 모래알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를 하려는 것과 같다. -- 209 |
| SF 문학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다고 여기 올리고 있으니 부끄러움마저 느껴진다. 아서 C 클락이야 소위 빅 3 중의 하나인데다 인공위성의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사람으로 굉장히 유명한데 그 사람의 최고작이라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 스스로 할 말이 없다. 암튼 '유년기의 끝'은 명성이라는 것이 그냥 달려와서 엉겨 붙는게 아니구나 하는 걸 알게 해주는 수작이다. 이 소설도 수많은 SF 소설들처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굉장히 독특하다. 인류가 드디어 우주여행이란 것을 실현하려는 시기에 거대한 비행체가 세계 각국 모든 주요도시의 상공에 나타난다. 인류는 그 비행체의 출현에 처음에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점차 그 우주선을 달이나 해처럼 그냥 하늘에 떠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 우주선에 타고 있는 외계인을 인간들은 '오버로드'라고 부르는데 지구에 온 오버로드들의 대표자는 카렐렌이란 외계인이다. 카렐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국제연합의 사무총장을 통해 인류를 교화한다. 그 결과로 전쟁, 폭력은 점차 사라지고 국가의 개념은 점차 모호해져 간다. 그리고 카렐렌은 우주여행이란 것에 대한 생각을 금지시킨다. 카렐렌은 인간의 세상을 평화만 있는 유토피아의 세계로 이끈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카렐렌에 대한 극도의 신비주의로 그를 불신하는 세력도 있었다. 카렐렌은 인류를 초월하는 지혜와 지배력으로 그 세력의 반발을 무마시키고 50년 후에 모습을 드러내겠다는 말을 남긴다. 시간은 흘러 50년이 지나고 카렐렌은 그 모습을 인류에게 드러내는데 그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악마의 형상이었다. 이건 이 소설의 1부에 해당하는 줄거리이다. 카렐렌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무지, 질병, 빈곤, 공포, 전쟁등은 존재하지도 않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소설은 이 유토피아라는 것의 권태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로 부터 2부를 시작하지만 뒷 얘기는 생략하자. 이 기묘한 인류 미래사는 끊임없는 비유와 암시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유년기의 끝"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지금의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결국 인류의 "유년기"의 끝일 뿐이다. 인류는 오버마인드의 존재로서 다음 세대로 넘어서게 된다. 이것은 적자생존 법칙의 진화와 수태시의 변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순간의 한세대 전체의 진화를 설정한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자면 카렐렌을 비롯한 오버로드들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천사로 설정되어 있지만 소설은 기독교적 관점을 모조리 엎어 버리는데 인간은 결국 천사(오버로드)들을 통해 신(오버마인드)의 위치로 진화하게 된다. 신으로 넘어서는 인간의 세상이 진정한 유토피아라는 클라크의 시각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인류/사회의 신격화라는 소재로 영적인 문제를 이렇게 파고들었다는 점은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
| 오래 전부터 SF 소설의 팬이었던 내게 이 책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과장된 표현같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은 딱 그랬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한 장면처럼 어느 날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우주선 속의 존재인 외계인에 대한 묘사가 드러날 때쯤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책을 덮었다가, 다음 날 새벽 출근하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 연결되는 부분을 읽어 버렸다. 뒷 내용이 너무나 궁금해서였다. 어렸을 때 읽은 추리 소설이나 모험 소설 외에 이처럼 흥미진진하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하는 소설은 참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인류의 기원과 종말, 나아가 인류의 진화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세계를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 작가에 대한 경외심까지 들었다. 뭔가 새로운, 정말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읽어 보길 권한다.! |
| 이 작가를 또 소개할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혹시 모르니까 테너3인방(호세카레라스,프라시도도밍고,루치아노파바로티)보다 매니아들한테는 더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계의 빅쓰리로 꼽히는 아서 C. 클라크의 초기작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해 '인간과 우주' 등 주로 우주 비행이나 외계에 관한 소설과 글들을 출판하였다. 한 일화에 의하면 비행기 추락사고시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 승객이 혼란의 와중에서 크라크의 소설을 보고 있었다는 기사를 저자가 동봉해서 약간의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아시모프에게 보내면서 '만약 자네 소설을 읽었다면 잠들어서 사고가 났는지도 몰랐을거네'라며 농을 할 정도로 자존심과 자만심 고집이 약간 세면서 재미난 인물인 듯 하다. 줄거리를 극도로 압축하자면 악마의 모습을 한 위대한 정신의 외계종족 오버로드의 도움으로 인류는 유년기를 벗어나 우주의 절대종족인 오버마인드의 일환으로 진화한다는 내용. 수십년전에 씌어졌지만 현실 또는 미래감각이 뛰어나서(하지만 오버로드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세계정부라던가 전쟁종식, 학살금지, 완벽한 복지, 인류공영 구현이 가능할지는 의문) 전혀 고전냄새 맡을 겨를 없이 흥미진진하게 후딱 읽었다. 중간중간에 엉뚱한 상상으로 너무 재미난 부분이 많았는데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뿐만 아니라 순전히 혼자 생각이지만 게임(스타크래프트)까지도 패러디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오버로드 종족은 프로토스와 비슷하고 오버마인드는 저그족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다. '에볼루션 챔버'라던가 프로토스의 소환도.. 진화인지 뭔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껍데기와 지구는 소멸된다. 웬지 슬픈 이야기다. 영원히 그런 형태의 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조력자의 역할만 하는 오버로드가 부럽다는 생각이다. 재밌게 읽고 나서 뭔가 생각하게 하고 우주를 관통하는 영원한 시간속에 먼지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