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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한다. 나도 사람이 생각하기에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주 생각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지 않은가보다. 사는 게 바빠서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쁘지 않은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 차라리 좋은 생각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 텐데. 예전에는 책을 보아도 쓰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는 아주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무엇을 보았는지 잊어버렸다. 잘 모르는 건 더 빨리 잊었다. 책을 읽고 그것을 쓰지 않아도 생각했다면 좀 나았을 텐데, 바로 다른 책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책을 보고 그게 아주 좋아서 오랫동안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책을 내가 만나지 못한 건지. 좋아하는 건 여러번 되풀이해서 보는 사람도 있다. 쓰지 않아도 여러번 보면 잘 잊지 않고 무언가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 거 부럽다. 부러운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여러 책을 이어서 말하는 거다. 책은 한권 한권 다를지라도 이어져 있기도 하다. 그걸 잘 잇거나 합쳐서 생각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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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사고(思考)의 완성법 <책의 힘>(오월의봄,2015) <책의 힘>의 저자 오사와 마사치는 일본의 대표적 이론 사회학자이다. 일본에서는 <사고술(思考術)>로 출판돼 사회학자인 그가 안내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기술을 정리한다. 즉, 그가 생각하는 책 읽기의 세계를 담는다. 저자는 30년 넘게 독서- 사고 – 집필을 업(業)으로 삶아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 삶의 전부라 말한다. 그는 1958년 생으로 도쿄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지바대학 문학부 교수,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 환경학 연구와 교수를 역임, 2009년에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가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알려진 건 90년대 오타쿠에 의한 연쇄 살인 사건, 옴진리교에 의한 사린가스 테러사건 등 사회 현상들에 대한 명쾌하고도 독창적인 분석 덕분이다. 저자는 탈냉전 체제의 세계와 일본 전후 사회 등을 배경으로 자유, 정의, 내셔널리즘, 극단주의와 테러리즘, 위험사회론 등을 거침없이 다뤄왔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진재라는 재앙이후 기존 사회 이론이 봉착한 한계를 인식, 더욱 과감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간 저서로는 <허구 시대의 끝>,<문명 내 충돌>,<불가능성의 시대>,<내셔널리즘의 유래>,<‘세계사’의 철학>,<자유라는 감옥> 등이 있다. <책의 힘>은 ‘들어가는 글’에서 생각에 대한 원론을 이야기한다. 이를 1장 사회과학 분야, 2장 문학, 3장 자연과학분야로 나눠 어떻게 읽고 사고할 것인가를 저자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마지막 ‘나가는 글’에서는 쓴다는 행위로 마무리한다. 저자는 여러 분야와 주제들을 책을 통해 제대로 사고하는 방법과 ‘파국’ 이후에 놓인 인류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시한다. 저자는 사고(思考)를 ‘대화’라 한다. 대화란 ‘라이프워크 적 테마’를 지정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답 없음은 사고를 멈추게 할 가능성이 있기에 “답이 없을 수도 있는 질문에 대해서도 반드시 답이 있다고 상정하고 달려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질문을 중기 혹은 단기의 것을 전환해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사고를 멈추지 않기 위해, 즉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p.15)이라 설명한다. 이때 중요한 건 ‘사건의 반복’이다. 이는 ‘자기 안에 계속 잠재돼 있던 테마가 있어서, 그것이 자극을 받아 다시 떠오르는 일종의 데자뷔 같은 감각을 품으면서 언어로 표현한 것만 같은 느낌’(p.23)을 중심으로 ‘왜 이 느낌을 다시 느끼는 것일까’라며 사고를 밀고 나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1차적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 사고를 함으로써 언어화 할 수 있고, 타자와 조우하게 되며, 스스로의 논리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3월11일 사건(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이래, ‘윤리적인 과제로서 미래의 타자와 마주하게 되었다.’라고 한다.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타자가 읽기에 값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p. 49)이 사고의 궁극적 목적이라 밝힌다. 그는 미래의 타자를 위해 ‘자신이 포착한 것 완전히 언어화하진 못했지만 알맞은 말이 찾아지기를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 그것을 우선 종이 위에 불완전한 언어라도 우선 써 모아’(p.28)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조망감’. 자신의 생각을 한 장의 종이에서 조망할 수 있게 풀어내야 한다.‘쓰기에는 타자가 내포’(p.31)되 있기 때문에 종이에 적는다는 행위는 자신의 사고가 도달할 지점에 타인과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이 대화는 지속하게 하며 논쟁을 벌여 개인의 독창적인 생각을 하게 돕는다. 저자는 전방위적 독서가 필요한 이유로 지속성을 꼽는다. 책은 유사한 사고(思考)를 전하기에 ‘라이프워크 적 테마’를 찾게 돕는다. 그는 이를 3개의 장에 담는데, 먼저 사회과학분야의 책을 통해 ‘시간’을 제시한다. 그는 ‘무한한 시간에 대한 관심과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자아)를 절대화 하는 것 사이의 모순’(p.84-5)이라며, 인간은 자본으로 불안전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 뉴컴의 패러독스의 게임으로 설명하는데, 투명한 A라는 상자에는 1,000만 엔이, 불투명한 상자 B는 비어있거나 10억 엔이 들어있다고 가정한다. 행위자는 A상자를 고르는 게 여러모로 이익이지만, B상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B상자를 선택한 행위자는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경우가 크다. 선택 이후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행위자는 감내해야 한다. 이를‘예언자=신’으로 설명한다. 신에 대한 존재론으로 본다면 인간의 선택은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문학으로 이어간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의 윤리적 행위란 무엇이며, 인간은 속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나스메 소세키의 <마음>을 시작으로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 벌>, 이언 매큐어의 <속죄>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죄’를 둘러싼 양상, 정당화 되는 죄, 신의 죄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제시한다. 독자는 이를 통해 문학을 읽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 접근해 볼 수 있다. 마지막 자연과학분야는‘신’의 존재론으로 풀이한다. 뉴턴이 최종 도달한 해답 ‘기계론 적으로 있을 수 없는 제 1원인은 비물체적이고 생명과 지성을 갖고서 편재하는 존재자’(p. 257)라며, 이를 ‘세속적인 것(신에게서 분리된 사물)이 미학적인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반대로 초월적 신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했던 것’(p.268)이라 설명한다. 양자역학 현상에 의하면 ‘물질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상습적으로 돈을 빌려다 쓰는 사람은 사실 영속적으로 부채를 지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빚으로 곧바로 반제하기 때문에 장부에 쓸 때는 항상 부채가 없는 상태처럼 보인다. 같은 일이 물질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함의”(p. 281)라 설명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존재’에 대해 자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고(思考)한다는 의미는 아닐까. 오사와 마사치는 동일본 대지진 이전과 이후를 나눠 사회를 바라보고 삶과 연결시켜본 듯하다. 이에 그의 ‘라이프 워크 적 테마’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로 보인다. 일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은 우리나라에 일어나 사건과 연결지어볼 수 있다. 어쩌면 유사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한 바람으로 저자는 사회에 대한 이해와 문학, 신의 존재론의 설명한 건 아닐까. 그의 문제제기는 날카로웠고, 설명은 명쾌했다. 하지만 ‘사회과학분야’비중을 둔 것은 자칫 균형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가 선택한 17권의 책에 대한 설명은 ‘조망감’이 부족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고(思考)의 완성과 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자. 그리고‘나만의 테마’로 확장시켜보자. 그가 말하는 미래세대까지 이어지진 않더라도, 개인의 성취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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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이해가 그러하듯이 읽는 것은 주는 것 이상을 받아내는 것에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 저 책을 자신의 관점으로 읽어내는 것이 '읽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므로 주는 것으로서의 '책의 힘'이 아니라 읽어 내고야 마는 '인간의 힘'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