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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물을 따름이다.
"끊임없이 물을 따름이다." 내용보기
소설 아닌 철학책 한권을 읽고난 듯한 느낌이 든다. 복잡하게 얽히워진 덤불숲을 헤매이다 이제 겨우 빠져나온, 온 몸 가득 긁힘으로 만들어진 상처들을 이제 겨우 발견한 듯한 그런 느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쓰라림이다. 스승 소크라테스를 보내고 혼자 된 이가 느끼는 그 감정.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그 느낌을 뛰어넘어 평생을 안고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죄책감
"끊임없이 물을 따름이다." 내용보기
소설 아닌 철학책 한권을 읽고난 듯한 느낌이 든다. 복잡하게 얽히워진 덤불숲을 헤매이다 이제 겨우 빠져나온, 온 몸 가득 긁힘으로 만들어진 상처들을 이제 겨우 발견한 듯한 그런 느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쓰라림이다. 스승 소크라테스를 보내고 혼자 된 이가 느끼는 그 감정.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그 느낌을 뛰어넘어 평생을 안고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죄책감. 그 안에서 한참을 허우적 거리다 제2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 어쩌면 이는 소설을 넘어선 현실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플라톤은 아팠던 것 같다는 그 설정 자체가 돋보인다. 스승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한 쓰라림으로 인해 육체의 병은 다 나아버렸지만, 한 동안 앓아야만 하는 정신적 방황, 고뇌는 스승이 마지막 남긴 말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그의 끊임없는 공황상태로 인해 지속된다. 이러한 그녀의 설정은 현실과 어우러져 더욱 빛난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처형이라는 그 사실이 역사속에 존재함을 결코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 솔직히 그리스의 철학을 알지 못하며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그 말 한마디 밖에 기억치 못한다. 그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에서 보여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에게 또 다른 화해를 불러 일으킨다. 자신의 지난 날을 부인하고 소크라테스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채우려 들었던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가 죽음 직전 리라를 연주하며 시를 읊었다는 그 사실은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와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고 굳게 믿었던 소크라테스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어쩌면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야만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다가가기에는 너무도 어렵다. 스승의 부재로 인해 플라톤이 느껴야 했던 감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에는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사이의 공간이 너무도 넓게만 느껴진다. 나를 가르쳐준 스승의 이미지를 벗어난듯한, 플라톤은 어쩌면 소크라테스를 자신의 반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로 생각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끊임없는 혼란속에서 나는 묻고 또 묻기를 반복한다. 진정 플라톤은 아팠던 것인가에 대해서...
q*****2 2002.08.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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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죽이기 - 상실의 고통, 그 헤어남
"소크라테스 죽이기 - 상실의 고통, 그 헤어남" 내용보기
에케크라테스 : 파이돈. 소크라테스의 임종 때 그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리고 그의 친구 중에서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파이돈 : 아테네에 사는 사람으로는 아폴로도로스 이외에 크리토불로스와 그의 아버지 크리톤, 헤르모게네스, 에피게네스, 아이스키네스, 안티스테네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이아니아의 크테시포스, 메
"소크라테스 죽이기 - 상실의 고통, 그 헤어남" 내용보기
에케크라테스 : 파이돈. 소크라테스의 임종 때 그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리고 그의 친구 중에서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파이돈 : 아테네에 사는 사람으로는 아폴로도로스 이외에 크리토불로스와 그의 아버지 크리톤, 헤르모게네스, 에피게네스, 아이스키네스, 안티스테네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이아니아의 크테시포스, 메네크세노스와 그 밖에도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기억에 잘못이 없다면 플라톤은 아팠습니다. - <파이돈> 中에서 르노의 소설「플라톤은 아팠다」는 <파이돈> 에 나오는 플라톤의 상상과 허구에 의한 파이돈의 말, "그리고 내 기억에 잘못이 없다면 플라톤은 아팠습니다" 에서 시작합니다. 그가 끔찍히 사랑하던 스승 소크라테스가 임종을 맞이하던 바로 그 날에, 이질이라는 추잡한 병으로 플라톤은 스승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알 수 없는 진실에서부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햇빛마저도 괴로워하며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가장 중요한 것의 부재. 상실. 모든 것을 게워내는 고통.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소크라테스는 어땠을까' 그래서 그는 그 날, 소크라테스가 분명 그답게 숨통을 버리던 날 그와 함께 했던 이들에게 간곡히 물어봅니다.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은 무엇이었냐고. 소크라테스는 어떤 모습이었냐고. 여느 때처럼 대화를 사랑했을까? 격정적인 로고스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에로스를 대체했을까? 하지만 친구들의 대답은 모두 제각각이고, 때로는 실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직전에 리라(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파이돈을 욕망으로 얼룩진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욕실에서 늙은 돼지처럼 지쳐 쓰러져 있었다! 플라톤의 영원한 안식이자 모든 것, 사랑, 존재의 이유, 빛, 생명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임종에 대한 친구들의 이야기와, 그 순간에 이질을 겪고 있었다는 자신의 나약함. 그리고 가장 커다란 아픔인 소크라테스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의 고통". 이런 것에 갇힌 플라톤은, 이질을 앓던 순간부터 주욱 아프기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 부재. 상실. 고통.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합니다. 소크라테스를 상실하고 그의 마지막 순간의 상황을 알 수 없는 플라톤. 가졌던 것들을 상실하고 소크라테스를 알 수 없었던 알키비아데스. 조국 멜로스를 상실하고 그의 출생 성분을 확신할 수 없는 노예 멜레지아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잃어버림으로써, 마치 그라이아이 세 자매가 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듯, 자신의 눈 한 쪽을 잃어버렸으며 아디만토스가 데리고 온 말 발리오스가 바다를 두려워하듯 빛을 두려워 하고, 소크라테스가 존재하지 않는 바깥 세상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물들은 각자에게 있는 하나씩의 상실 때문에 다른 것들을 잃어버리고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1인칭(플라톤)과 3인칭을 넘나들며 전개됩니다. 때로는 플라톤 고통의 심연에서, 때로는 모두의 고통에서, 그리고 모두의 고통 밖에서. 그러나, 멜레지아스가 플라톤과 같듯, 동굴로 은신해버린 플라톤은 멜레지아스의 순수함과 로고스와 무관한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의 에로티즘에 휩쓸려 차츰 상실의 고통에서부터 벗어나게 되고, 멜레지아스가 아끼는 말 발리오스가 바다에 스스로 들어가게 되듯 세상에 점차 대면하게 됩니다. 죽은 소크라테스가 살아 생전에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부재한 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일러주지 않았어요. 다만 상실의 고통에서 스스로 벗어나, 플라톤 스스로 그렇게 하였던 것이죠. 만일 플라톤 자네가 그걸 원한다면, 자네가 하면 되는 거야 (아폴로도로스)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천천히 -그들의 고통이 비록 플라톤의 그것보다는 현저히 약했더라 하더라도- 스승의 부재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모습이 어떠했든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상실의 원천이 무엇이었든간에 그 상실을 죽임으로써 상실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마치 플라톤이 그 자신이 고수하던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를 죽임으로써 새로운 소크라테스를 받아들이고 성장하듯이- 「플라톤은 아팠다」는 가장 쉽고 생생한 성장 이야기 입니다. 어떠한 사상도 이야기 하지 않는 플라톤. 욕정에 달아오를 때는 지극히 탐미적이고 쾌락적인. 민주파 크리티아스와 사랑하는 소크라테스 사이에서 고뇌하는 플라톤. 유약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늙은 어린아이와 같은 플라톤...... 지금도 수많은 소크라테스가 죽어갑니다. 그 소크라테스는,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소크라테스일 수도 있고, 혹은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기억이 조작해 낸 존재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일 수도 있습니다. 방금 내 안에서 죽은 소크라테스, 나의 가장 중요한 실재도 어쩌면 내가 사모해 마지 않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허나 설사 그런 소크라테스가 잘려 나간대도, 플라톤은 지리한 고통과 역겨움의 악몽을 이겨내고, 반드시 세상과 대면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상실이 가져다 주는 고통을 죽임으로써, 그리고 상실의 틀에 박힌 모습을 개조해냄으로써 상실 그 이상의 것을 얻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플라톤은 그러기 위해 아팠겠지요.

[인상깊은구절]
그는 자고 있을까? 논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비존재에 대해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세계는 바스락거리며 빠져나가고 있다. 어두운 꿈들이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테르프시온과 에우클레이데스, 그리고 나 사이에서 가끔식 오가는 말들은 맥 없고 덤덤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추진시켜 나갈 때의 그 엄정함과 자유로움의 조화를 나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YES마니아 : 로얄 c******u 2004.12.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