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보이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두 뚱보는 어쩔 수 없이 친구가된다. 우정을 키워나가던중 한 친구가 볼거리라는 병 때문에 살이 빠지는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그 친구와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관계가 된다. 이에 아직 뚱보인 여자친구는 분노 반,노력 반으로 다이어트에 성공, 우정을 나눈 예전 뚱보친구외 여러친구를 얻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곤경에서 구해준 과자집 뚱보를 학교에서 조우하게 되고 단지 뚱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그 친구를 위해 곁에서 친구와 대항할수있도록 도와주고 이것을 계기로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과자집뚱보를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줄거리다. 이책을 읽고 공감하는 부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의 단점을 정말로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 여자 아이는 자기와 똑같이 뚱뚱한 단점을 갖고 있는 남자아이를 친구로 좋아하고 있다. 또한 타의로든 스스로든 그 단점에서 벗어났을 때도 같은 문제로 따돌림 당하는 또 다른 친구를 도와준다. 어려움을 겪고 한층 성숙해진 결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의 단점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그 단점을 똑같이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은 더 더욱 싫다. 또한 어떻게해선 그 단점을 벗어났을때는 다시는 뒤돌아보고 싶지않는 것은 우리 대다수의 심정이다. 이 주인공처럼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똑같은 어려움에 있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 쉽지않다. 동화를 통하여 엄마인 나는 반성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바른 가치관을 일깨워주는 동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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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크리스티네 뇌스틸링거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전에 읽은 <콜라주의 비밀>도 별로였다. 어린이 문학의 대부분이 교육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교훈적인 내용을 담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노골적'인 것은 싫기 때문이다. 참, 어려운 요구이고 까다롭기까지 하지만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이 책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의도적인 내용, 작위적인 상황 전개, 그리고 뻔한 주제...그런데도 이 책은 <이야기 꺼리>가 굉장히 많다. 책을 다 읽고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책>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외모지상주의>가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도 예쁘면 끌리고,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가 된다. 이걸 흔히 <인지상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이 그러고, 나 역시 끌리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예쁘기라도 해야 한다며 <성형천국>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다. <외모>에 현혹되어 <본질>을 흐리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도 이런 진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은 얼마든지 많다. 우선 [표리부동]한 사람은 경계대상 1호였고, 예쁜 짓을 하면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고 하여 홀대한 것은 물론, 서양에선 예쁜 것이 죄가 되어 [마녀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예쁜 것, 자체가 나쁘다거나 죄가 될 수는 없지만 [포장(외모)]에 현혹되어 폐가망신 당한 예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엔 이 [포장]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변형되었다. 다시 말해, [포장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고 [포장]의 부정적인 의미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포장=노력]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다. 즉, 못 생긴 이유는 <관리 소홀=게으름>이라며 <얼짱, 몸짱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포장]의 <환골탈태>다. 마치 예전엔 착한 흥부가 인기였지만, 지금은 능력 있는 놀부가 인기를 끄는 것처럼 말이다.
뚱뚱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뚱뚱하면 온갖 성인병을 달고 다니는 <전염병자>처럼 느껴지고,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피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유기농이나 웰빙음식 같은 비싼 음식을 먹지 못하고, 패스트푸드나 트랜스지방,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고서도 건강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빈곤한 사람>으로 여길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히 뚱뚱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건 '흥부가 좋으냐, 놀부가 좋으냐'와 같이 개인의 성향에 따른 문제일 뿐이라서 대수롭지 않은 문제이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억울하면 얼짱, 몸짱 되렴!>이다. 즉, <본질>보다는 <외모>를 따지겠다는 문제다. 적어도 <본질>보다 <외모>가 우선이 되는 현상, 이것이 문제이다.
이 문제는 어른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엔 <개>에 관련된 욕보다는 <돼지>에 관련된 욕에 더 열받는 것 같다.
부정할 수 없는 <날씬한 아름다움의 유혹>. 얼굴 큰 것도 죄가 되는 세상. 제발 우리 아이들은 <바르게> 자랐으면 하지만, 한편으로 뚱뚱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동시에 절실하다.
난 <이야기 꺼리>가 많은 책을 좋아한다.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적어도 요즘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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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날씬한 사람도 있고, 뚱뚱한 사람도 있다. 뚱뚱하다는 것이 놀림과 괴롭힘을 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무척 뚱뚱하면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다. 여기 나오는 디디와 펠릭스는 무척 뚱뚱한 아이였다. 펠릭스는 몸이 아파서 살이 빠지고, 디디는 방학 동안 운동을 해서 살을 뺀다. 살이 빠진 펠릭스를 여자아이가 좋아하고 늘 놀리던 빌리는 함께 여름캠프에 가기까지 한다. 그리고 펠릭스는 디디와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 것을 깨뜨렸다. 겉모습이 달라졌다고 마음까지 달라지다니……. 펠릭스의 차가운 마음 때문에 디디가 살을 뺀 것이기는 하다. 디디 앞에 또다른 아이가 나타난다. 빵집 아들 프란츠다. 프란츠는 뚱뚱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친절하다. 디디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도와주었다. 그런데 디디는 그런 프란츠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니 아이들 모두 디디를 보고 놀란다. 이 날 프란츠가 전학 온다. 아이들은 이제 프란츠를 놀리며 웃었다. 디디는 다른 아이들처럼 웃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서는 프란츠와 친구라고 말한다. 디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이 자란 것이다. 프란츠를 놀리는 아이들과 대항해 싸운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디디와 함께 한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놀리면 자기 마음이 그렇지 않아도 함께 놀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때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놀림은 끝날 것이다. 전에는 그런 아이가 없었지만, 디디가 해냈다. 그리고 아이들은 프란츠에게 좋은 점이 많다는 것도 알아간다. 뚱뚱하고 날씬한 것을 떠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희선 [인상깊은구절] "바보같이 굴지 마! 도대체 무엇에 적응한다는 말이니? 우린 싸워야 해! 알았어?" 디디는 늘 프란츠를 놀리는 아이들과 당당히 맞서 싸웠다. 날씬한 디디와 뚱뚱보 프란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디디와 프란츠를 도와 주는 아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날씬한 디디가 뚱뚱보 프란츠를 돕는 데에는 뭔가 별다른 까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디디를 도와 준 아이들의 생각이 옳았다. . . . 디디의 도움으로 반 아이들은 뚱뚱하다고 무조건 같이 놀지 않고 놀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