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나는 내 자신의 것들을 위해서 싸우는데 급급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나의 싸움이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그것이 내 자신을 위한 것인 이상 다른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고, 어떠한 결과도 보장받을 수 없는게 현실임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내 자신을 위해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을 위해 살기에는 나의 삶이 너무도 짧기 때문이었고, 그 짧은 삶은 내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에도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서점에 가면 늘 체 게바라의 사진이 실린, 그의 이름이 쓰여진 책을 들춥니다. 의사였고, 혼자만을 위한 싸움, 즉 자기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국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이 택한 길의 쓰디쓴 대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외롭진 않았습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외롭지 않은 삶을 살다간 이를 마주대합니다. 검은 피부에, 큰 눈을 가진 프란츠 파농이라는 사람입니다. 마르티니크 사람이었던 그는, 나치의 잔악함에 맞써 싸웠고, 프랑스의 식민정책에 맞써 싸웠으며, 더 나아가 시대를 풍미하던 제국주의의 흐름에 대항했습니다. 전쟁의 영웅으로, 저명한 정신과 의사로, 성공이라는 단어에 근접한 삶을 살았던 그가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바탕일 수 밖에 없었던 검은 피부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훈장을 받아도 그에게서 검은 피부는 없앨 수 없었고, 그를 향한 뭇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차별 역시도 늘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강직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생각치만도 않았습니다. 그에겐 늘 실천이 뒤따랐습니다. 그는 실천을 인간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창조라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과 더불어 세상을 창조하며 살았습니다. 그에겐 하나된 아프리카의 꿈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다름으로 인해 받았던 차별을, 자국에서조차도 받아야 하는, 그와 같은 검은 피부로 인해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 아프리카. 그는 그땅에 어떠한 국경도 존재치 않는, 다름으로 인해 자유로울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함을 건설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좌파로 불리길 거부했습니다. 그저 흑인만을 위하는 민족주의자가 되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하나되길 바랬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곁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외면친 못했습니다. 아프리카엔 너무도 많은 전선이 그어졌습니다. 부족간의 갈등,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직각 국경선들, 그 안에서 쫓고 쫓기는 싸움이 계속 됩니다. 파농이 보았던,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것을 갈구하던 그 비참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김병현이 홈런 한방에 무너졌을 때 미국인들은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동양인들은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한다고, 굳이 동양인을 세웠어야만 했느냐고.... 그네들의 가슴엔 하얀 피부를 가진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여전합니다. 그것은 파농이 존재하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변한게 있습니다. 우린 우리 스스로 다르기에 자랑스러워합니다. 우린 우리의 다름을 내세워보입니다. 우린 분명 다르기에, 다름으로 인해 진정 해방될 것입니다. 우린 더 이상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린 더 이상 지금의 현실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말아닌 저항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 투쟁으로, 나의 세상을 그리고 우리의 세상을 건설할 따름입니다. 지난 날 파농이 그랬던 것처럼... |
|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처절하게 고뇌하고 회의했던 한 인간에 대한 생생하고도 처절한 기록이다. 이 책 내용에서 정말 감명깊은 부분입니다. 나는 흑인이다. 또한 백인이다. 흑인은 단순히 피부색을 통한 한 인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쪄면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한 부름일 것이다. 자신이 흑인이면서 백인이라는 것은 그 획득된 정체성에 대한 경계와 집착을 넘어섰을때 비로소 진정한 정체성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고보면 지나침은 정말 동양이나 서양에서도 좋치 않은 주제인가보다. 한번쯤 다시 읽어보면서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어디에 있고 무엇인지 고민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
| 나는 내가 아니다-프란츠 파농 평전. 한국지식인 100인이 뽑은 유일한 흑인지성 국제 테러리즘의 원조 프란츠 파농 별로 연결되지 않는 것 같은 세 가지의 문장이 한 책의 표지에 쓰여 있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왜 이런 말이 써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나는 예전에 프란츠 파농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이름을 본 후에도 이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음, 사실 지금도 확실치는 않군)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없었다. 표지만으로 알 수 있었던 건 흑인이구나, 그리고 테러리즘하고 관계있나보지? 의 두 가지 하지만 파농은 그 두 가지 평가 모두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프랑스의 식민지 하에서, 또한 흑인이라는 사실에서 느꼈던 자기 정체감, 그리고 그로 인한 수많은 고뇌는 오히려 모두가 이런 평가를 넘어서야 한다고 느끼는 한 사람의 생각을 알게 한다. 사실 그의 말이나 생각은 독선적이고 일방적이며, 그가 흑인이 아니었다면 인종차별주의자와 다를 바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파농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판단은 섣부른 것일 수 있겠지만) 결국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결국은 모두 같은 '인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파농 자신 때문인지, 아니면 이 책의 저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은 후에 위대한 인간을 볼 수는 없었다(위대한 인간을 보기 기대한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책 읽는 중에도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던 듯 한데,,, 평전을 읽은 후에도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듯 하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에 대해 뭔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
| 프란츠 파농을 아는 사람은 몇 안된다. 아니 그보다 마르티니끄라는 섬을 아는 사람도 몇안된다. 프랑스 영토(유럽에 있는)를 메트로 폴리탄이라고 부른다면 서인도제도나 여기저기에 있는 프랑스영은 우트르 메르라고 부른다(outre mer)다른 말로 하면 바다 건너라는 뜻이다 암튼 마르티니끄는 서인도 제도에 있는 프랑스령이다.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의 체게바라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의사였고,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아프리카의 연합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자였다. 그는 사회주의도 아니고, 오히려 자유주의자였지만 게바라처럼 여러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도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열정에 놀라게 된다. 책을 쓰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열정에 불타 여기저기에 뛰어드는 그는 자신의 피가 죽어가는 백혈병에 앞서서도 열정을 불태웠다. 나는 그가 한 말을 사랑한다. 나는 내가 아니다. 파농은 어려서 프랑스인으로서 강요받고 살았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것보다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속이고 살아가는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는 순간 파농은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우선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실천은 한때의 폭발이 아니다. 실천은 인간 세상의 질서를 지속적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
|
프란츠 파농에 대한 간단한 평전이다. 프란츠 파농의 한 생애에 대해서 간단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용 정도 아닐까 한다. 어쨌던 이 책 덕분에 나는 일반 백과사전보다는 더 많은 내용을 알게된다. 서인도 제도의 원주민 출신의 하급 관료의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는 알자스 출신의 혼혈 백인이라고 하고, 프랑스어를 잘 구사하였고, 아버지도 하급 관료이니까, 비교적 중산층 이상 가정으로 중등교육 이상을 잘 받았다. 당시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식민지는 프랑스인 출신의 상류층과 혼혈등의 중간 계급, 마지막으로 원주민 (원주민이 있긴 하나?)과 흑인 노예 출신의 하층 계급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교육은 프랑스 일반 교육을 받아, 나는 프랑스인이다 란 것을 처음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은 서인도 제도의 프랑스 식민지도 예외 없이 변화를 가져다 준다. 프랑스의 패전과 Vichy 정권의 출현으로 정체성의 혼란 및 프랑스에 대한 긍지를 잃게 된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아미에 세자르라는 걸출한 민족주의자이자 문학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 돌아오면서 식민지 흑인의 정체성을 알고 강의하는 그런 분 이였다. 세자르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나치에 대한 전 인류의 대표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2차 대전에 드골 프랑스군으로 참가하게 된다. 2차 대전에 북아프리카에 처음 가게 되서 느끼는 것은 자신의 숭고한 의지와는 별도로 차별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유럽군이 있고, 프랑스 아프리카 군이 있고, 프랑스 서인도제도의 흑인의 경우에는 유럽군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차별이 존재한다. 전쟁에 대한 의지에 초기 용맹한 세네갈군(아프리카 흑인)에 소속하여 전공을 세우기도 하고, 부상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세네갈군이 겨울 전선에서 빠질 때, 또 다시 겨울에 강한 유럽군이 되어 참전하고, 마지막 독일 진군에서 위험이 없을 때는 흑인들은 배제된다. 정체성에 대해서 확실하게 느끼는 시절일 것이다. 그가 다시 서인도제도로 돌아오고, 이제 전쟁군인의 특혜로서 프랑스 유학을 준비한다. 처음에는 치과의사를 꿈꾸지만 다시 리웅에서 의사를 꿈꾸고 학업에 임한다. 그리고 의사로서의 재능은 없다고 생각하고 정신과 의사로서의 일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 학위를 마치고 마침내 전문의가 된다. 이때 첫 저작 ‘검은 얼굴 하얀 가면’을 쓰게 된다. 전문의 이후 정신과 의사로서 알제리의 병원에 지원하여 근무하게 된다. 알제리는 2차대전에서 군인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곳으로 애정을 지니고 있던 곳이다. 하지만 근무 1년 후 알제리는 민족주의 해방의 프랑스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초기에 그가 정신병원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바꾸려고 하고, 그리고 알제리 원주민에 대해서 점점 가까이 가려고 한다. 그리고 초기 전쟁 기간 동안에는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A)에 비밀 지원 활동을 하고, 얼마 후 병원은 해체되고 알제리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추방 후에서도 프란츠 파농이 알제리에 대한 애정이 변함 없다. 프랑스 내에서 사르테르 등의 지식인등과 함께 여론을 바꾸는 지원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알제리를 지원하기 위해 튀니지로 다시 옮겨간다. 그곳에서 여러 아프리카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아프리카의 공동체를 꿈꾸기도 하고 알제리의 지원을 위해서 힘쓴다. 하지만 여러 테러 활동을 비켜나가면서 살아가지만 백혈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이 평전이 짧은 내용이고, 앞에 선 내용 자체가 행적만을 다시 정리한 것이라서 더 내용을 줄여 버리고 말았다. 일단 어머니와 형제애가 대단한 집안이고, 8형제자매이지만 3남매가 프랑스에서 유학한 엘리트 집안이고, 특히 바로 위의 형과 그의 의로운 친구들과의 우정이 깊음을 알 수 있다. 프란츠 파농을 비롯한 3명이 같이 입대 및 군 생활을 같이 했으며, 이후로도 비슷한 길을 가는 동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비록 검은 색 피부를 가진 서인도 출신의 식민지 출신이었지만 결국 북아프리카 알제리 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죽어간 인물이다.
|
|
체게바라 평전의 대성공 이후 바야흐로 전기 서적의 출간이 러쉬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스코트니어링, 헬렌켈러, 레닌, 최근에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과 프란츠 파농 전기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전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두 가지 부류이다. 한 부류는 공명심과 야망에 불타는, 그래서 위인들의 삶에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겹쳐보려는 이들이고 다른 부류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래서 위인들의 삶에서도 내 몫의 삶처럼 평범하고 누추한 부분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다지 잘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독자에 불과하니... 단연코 후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나치게 잘나고 똑똑하며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삶을 훔쳐보는 일은 내게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 '나는 결코 그렇게 살 수 없음'을 확인시키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파농 평전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자 출신인 저자는 파농의 삶을 가족사, 어린시절, 성격 등 정체성 탐구에서부터 추적하여 파농이 남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섬세히 분석하는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은연중에 파농이 본질적으로 잘난(?) 인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확인시키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저자는 강압적으로, 파농을 존경하든가 아니면 외면하든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진뿐인 삶, 실수가 없는 삶에는 감동이 없으며 이런 식의 전기는 솔직히 평범한 이들에게라면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철저한 비타협정신과 강인한 의지, 날카로운 이성을 바탕으로 늘 제 몸을 먼저 내던져 투쟁하는 그의 삶을 우리네 나태한 사회운동가들에게, 책상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식인들에게, 말싸움에만 전념하는 정치가들에게는 꼭 보여주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물음을 원칙으로 삶을 선택했던 것 같다. 과연 이 선택이 사슬에 묶인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길인가? 더 나아가 이 길로 가면 더 큰 인간 해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끝없이 자문하며 파농은 나찌에 저항했고, 자기 자신과 싸웠다. 병든 정신을 치유하기 위해 분투했으며, 알제리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에게 처절하게 항거했다. |
| 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 체 게바라(1928. 6 ~ 1967. 10)와 프란츠 파농(1925. 7 ~ 1961. 12)이 살았던 20세기 초에서 중반은 1930년대 전세계적인 대공황과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세계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고,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수탈 강도가 심해지던 시기다. 제국주의 수탈에 대응하여 그 당시 제3세계 진영에서는 민족주의 성격의 반제국주의 운동이 한창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두 혁명가-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를 그들의 평전을 통해 만나 본다. "하지만 저 같으면 백만장자 미국인이 되는 것보다 알파벳도 모르는 인디오로 있는 편이 더 낫겠는데요!" <체 게바라> UPI 통신사에서 일한다는 어떤 기자가 '중남미대륙이 영어만 썼더라도 미국처럼 발전했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체 게바라가 던진 말이다. 그는 철처하게 제국주의에 기반한 국가발전을 부인하고, 민족주의적 해방운동은 주장했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출신으로 1967년 볼리비아에서 사살될 때까지 쿠바, 아니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해방에 몸을 던졌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민중들의 가난한 생활을 몸소 겪고, 그 해결점을 농지개혁법 등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보았다. 그는 쿠바에서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 당시 정부군(바티스타 정부)에 대항하는 게릴라 조직에 가담하여 의무대장을 맡았고, 1959년 쿠바혁명이 성공한 후 쿠바 시민이 되었다. 혁명 이후 쿠바의 고급 관료가 된 뒤에도 끊임없이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리용에서 파농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오직 군중들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었으며, '프랑스적인 것'도 '백인성'도 없애는 것이었다.<프란츠 파농> 카리브해에 위치한 프랑스령 작은 섬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프란츠 파농은 어릴 적부터 백인 식민주 의자·흑인 중산계급(백인성을 따르는)·원주민(노동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는, '가장 백인다운' 사람이 되어야 출세가 보장되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20살이 되던 해, 나치에 대항하여 공훈을 세운 그였지만, 정작 그에게 쏠리는 관심은 살가죽의 색깔이라는 것에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 그 후 파농은 1956년 알제리 해방 투쟁에 가담하고 흑백간의 차별을 없애고, 서구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아프리카 연대전선을 형성하는 데 힘쓰다 1961년 백혈병으로 숨진다. 파농은 폭력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프랑스는 순순히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프랑스군의 여러 대응방식을 통해 이런 사실이 확실해졌다고 맞섰다.<프란츠 파농>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도 하지 않을 겁니다.<체 게바라>" 이처럼 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은 둘 다 의사출신으로 다른 나라의 혁명(각각 쿠바와 알제리)을 이끌었다는 점 외에도 해방을 위한 투쟁의 수단으로 '무력' 사용을 지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농의 경우 '국제 테러리스트의 원조'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테러'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었다. 물론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제국주의 국가에 대응하기 위한 이들 제3세계 국가의 무력 게릴라전에 있어서의 가치판단은 독자들이 내릴 몫이다. '제국주의 침탈도 나쁘고, 그에 대항하는 무력 대응도 나쁘다'는 식의 무책임한 양비론은 경계해야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달러의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 초록색 지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증오했던 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눈 하나 깜짝 않고 라틴 아메리카에 멍에를 지우는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기업가들이었다.(체 게바라 평전) 50년 전 체 게바라가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했던 이 말은 현재진행형이다. '지폐'의 위력은 대단해서 전세계를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대규모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가치는 자본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되어지고 있다. 사람을 키우는 교육에서조차도,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지는 요즘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혁명'이라는 말 자체가 심한 거부감 혹은 할 일없는 사상가들의 공상쯤으로 치부되는 오늘날, 20세기 중반을 살다간 혁명가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돈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돈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는 일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라는 제국은 고철무기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이 나라의 국방부는 그 무기를 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이 현실이 '제3세계' 국민인 우리가 두 혁명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역사가 보여주듯, 세상은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 가능한 선으로 조정된 꿈'이 아니라 '불가능한 꿈'이다. 모든 크고 작은 역사적 성취들은 그것이 성취되기 직전까지 언제나 '불가능한 꿈'이다. 인류는 한치도 쉬지 않고 그 사회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자본주의 역시 결국 더 나은 체제로 극복될 것이다. 믿겨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잠시 눈을 감고 중세의 암흑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 근대사회가 올 거라 믿겨지는가? -김규항, '꿈이야기' |
| 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아마 인종 차별도 여기에 속하리라 난 인권운동가 하면 마틴 루터 킹 목사만 알았다 그리고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니 말콤 엑스를 알게 되었고 지금에서야 프란트 파농을 알았고 그의 평전을 읽게 되었다 책 내용은 그가 자라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그냥 심심(?)하게 적은 것같다 그에 대해 워낙에 아는 것이 없으니깐 무턱대고 읽은 것같다고, 아쉬움이 남는다고 내가 느끼는 것일수도 있고......그의 얘기를 좀더 자세히 세밀하게 소개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 흑인이 옛날부터 차별을 받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읽었더라면.....근본적인 인종차별이라는 걸 알고 그리고 프란츠 파농이라는 인물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고 난 후에 읽었더라면 그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을 텐데.........다음엔 말콤엑스 평전을 읽어야겠다 예스 이십사에 그 책이 들어오면 말이다 그 이전에 그에 대해 좀 알아야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