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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성은 일제시기 대구지역의 유력한 항일운동가이면서 공산주의자.
박정희가 존경했다는 형 박상희와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박상희의 중매를 선 사람도 바로 황태성. 박상희는 얼굴도 보지 않고 그 소개를 받아 결혼했다고 한다. 그 딸이 바로 김종필의 배우자.
해방 후 월북해 북한 무역상 부상 등 고위직을 역임했으나 지병인 폐병으로 요양 중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와의 친분을 고려 남북협력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밀사로 남파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3명이 번갈아 업어 가며 휴전선을 넘어 왔다고.
그러나 남로당 전력 등으로 인한 미국의 의심을 우려했던 박정희와 쿠데타 세력은 결국 황태성을 간첩으로 몰아 총살시키고 만다. 전쟁중에도 서로 밀사는 죽이지 않는다는 전례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고 국가보안법상의 법리 다툼에서도 밀리는 판결. 대법원에서 한차례 파기환송까지 했으나 결국 재판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
황태성을 사형시킨 날, 박정희 정부는 2만여 명에 달하는 범죄자들을 사면했다고.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잡범들은 풀어주면서 항일독립투사이면서 밀사로 파견된 중요 인물은 끝내 죽여야만 했던 건 민족사의 비극일까?
대충 이런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고 설명한 황태성의 전기나 평전 같은 책. 죽기 전 옥바라지를 했던 조카에게 했다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는다.
"왜정시대에는 네 엄마가 나를 옥바라지하더니 이제는 네가 나를 그렇게 하고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