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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브룩하이머쯤 되는 거대 헐리웃 사단이 이 책을 영화화해 준다면, 그래서 '미사고의 숲'이 소위 말하는 '세계적으로 뜨는 책'이 된다면 이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세계를 확장판으로 한번 더 만나볼 수 있을텐데...
작가의 또다른 저서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것에 이렇게까지 실망한 적도 없다. 출판사는 홀드스톡의 '라본디스'와 '켈티카'를 어서 번역해달라. 이 책을 구입한 것은 몇 년 전이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신화세계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다. 미사고 아이디어는 톨킨의 세계에 비견해 봐도 전혀 철학적으로나 스케일적으로 뒤지지 않는다. 그 현실과의 밀접함이나 보편성을 고려한다면 톨킨을 거론한다는 것이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세계관의 매력만을 가지고 논한다면...정말 '환상적'이다.
번역도 매우 만족스럽다.
자기 안에 상상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기 전에 각오를 단단히 다지는 게 좋으리라. 자칫하다간 라이호프 숲에 매료된 나머지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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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미쳐 있지 않는 사람에겐 권하지 않는다.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머리 속에 자기 세상을 무엇보다 매혹적으로 재구성해 그 안을 거닐수있는 사람에게만 이 책은 천국일거라 믿는다.
현실과 신화와 환상의 놀라운 조화! 따위의 상투어는 말하지 않겠다.
호프만의 '모래사나이' '브람빌라 공주' 헨리 제인스의 '나사의 회전'를 읽으면서도 그 안을 거닐수있고 스티븐 킹의 '검은 탑시리즈'와 미쉘 폴코의 '사형집행인'의 뒤편이 번역되지 않음을
한탄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물론 책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는 모든이에게 '기호'의 문제가 우선하겠지만 모든 책에는 수준이라는 게 있는 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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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고의 숲="">, 이 이야기는 평범한 가족 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 형 그리고 나.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스티븐은 전쟁이 끝나고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다가 형의 이상한 편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거진 숲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집에서 형인 크리스찬은 스티븐에게 실종된 아버지의 연구물을 보여주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준다. <미사고란 미스(myth,="" 신화)와="" 이마고="" (imago,="" 심상)의="" 합성어이고,="" 이상화된="" 신화="" 속="" 등장="" 인물의="" 이미지를="" 의미해.="" 이런="" 이미지는="" 자연="" 환경="" 속에서="" 실체화되지.="" 피와="" 살,="" 의복,="" 그리고="" -너도="" 봤다시피-="" 무기="" 따위를="" 가지고="" 말이야.="" 이상화된="" 신화의="" 형태인="" 영웅상은="" 문화적인="" 변천과="" 함께="" 변화하고,="" 그="" 시대="" 특유의="" 정체성과="" 기술을="" 취하게="" 돼.="" (...)=""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사고의="" 심상이="" 형성될="" 경우,="" 그것이=""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 속에="" 형성된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미사고는="" 우리의="" 집합="" 무의식="" 속에="" 그대로="" 남게="" 돼.="" 그리고="" 세대를="" 넘어서="" 전승되는="" 거지.=""> 이것은 크리스찬이 스티븐에게 설명한 내용이다. 독자로서는 아무리 읽어도 그 용어와 정의 모두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용어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면 정의가 좀 쉽게 설명이 되어있든지, 설명이 새로운 내용이면 용어는 좀 이해하기 쉬운 합성어를 쓰든지... 물론 다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야기 도입부에 있었던 내용은 암튼 어렵기 짝이 없었다. 인내심이 좀 적은 독자라면 중간에 포기할 것 같다. 중반부터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고 호흡도 빨라지고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사랑이 등장하므로... 아버지, 형 그리고 나의 아니, 어쩌면 모든 이의 미사고로 이루어진 사랑의 정령일지도 모르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원초적인 여자, 귀네스가 등장한다. 숲에는 아버지, 형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정령들이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실체라고 말하기에는 언어적인 어폐가 있지만, 육체와 정신을 지닌 실체긴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내가, 내 정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이자 실체이다. 이야기는 현실과 신화를 넘나들며 계속 전개되고, 사랑을 되찾으려는 스티븐은 이미 최초 원시 상태로 돌아간 아버지를 보게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어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형, 크리스찬을 만난다. 귀네스를 사이에 두고 크리스찬과 스티븐의 쫓고 쫓기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고 실존이며 둑음과 삶 중 둘 중 하나다. 귀네스, 그녀는 말한다. <난 저쪽=""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스티븐.="" 만약="" 당신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는다면,="" 어느="" 날="" 내가="" 당신을="" 떠나갈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강하니까="" 내가="" 없어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 난="" 피와="" 살이="" 아니라,="" 나무와="" 돌로="" 되어있어요.="" 나는="" 당신과="" 달라요.="" 숲은=""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지배하고="" 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적당한="" 단어가="" 생각="" 안="" 나요.="" 지금,="" 당분간="" 우린="" 함께=""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영원히="" 그러지는="" 못해요.=""> 어느 정도부터 이 작품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빠지기 시작하면 내가 마치 그 이야기 속, 환상에 푹 빠져있는 걸 느낀다. 그들이 헤매면 나도 함께 헤매고, 그들이 사랑을 나누면 나도 함께 사랑을 나누고, 그들이 쫓기면 나도 함께 쫓긴다. 그 팽팽함과 박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후에 잊혀질 즈음,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난>미사고란>미사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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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은 열린책들에서 '장르'를 넘어선 도서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책이다. 말 그대로 로버트 홀드스톡의 이 작품은 환상문학, 과학소설, 그 외에 다른 여러가지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듯 하다. 그런 자질구레한 형식상의 문제를 떠나서 보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숲에 대한 이 이야기는 깊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곳만큼이나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인물들은 숲의 동물들을 연상시킨다. 아버지와 두 명의 아들, 그리고 조력자인 키튼의 눈을 통해 우리는 바깥에서 숲을 관조하다가, 서서히 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숲은 견고한 외피로 자신을 둘러싸고 가끔씩 우연인 것 마냥 비밀을 살짝 드러내보인다. 태양 아래에서 잠시 드러나보인 숲의 안 쪽을 목격한 이들은 두려워하고 매혹되며 자신의 내부에 잠자고 있던 유령같은 죽은 이미지들을 하나씩 깨우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독자는 1, 2부에 이어지는 작가의 세심한 필치를 통해 작품 내의 인물들과 똑같이 느끼게 된다.
하나의 이야기가 언제나 똑같이 시작되고 똑같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신화 속의 영국, 혹은 오늘날의 영국을 체험해보지 못한 이국의 독자들일지라도 냇물처럼 어디선가 시작되어 우리 머릿속을 관통해 흐르는 이 신화(혹은 그저 이야기들)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홀드스톡이 숲의 심상과 자아내어 만들어낸 투박하고 일견 조악해보이는 오래되고 약간 닳아빠진 신화의 조각들은 이런 점에서 매혹적이다.
환상은 '이곳에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이야기를 쓸 때에만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요소들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을 솎아내었을 때에도 우리는 역시 현실로부터의 일탈 곧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스티븐과 크리스챤, 그리고 키튼이 이미 이야기속의 일부가 되어버린 3부가 앞부분에 비해 조금 여상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저런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미 많은 글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독자들은 익숙해져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1부와 2부는 이탈로 칼비노의 몇몇 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현실위에 겹친 흐릿한 다른 한겹의 세계가 겹쳐져 묘한 향수와 이질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작가인 로버트 홀드스톡이 '숲'에 대해 깊은 지식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숲이라는 짧은 하나의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막연한 이미지들을 넘어서, 그의 세심한 묘사는 하나의 장엄한 공간을 창조해낸다. 고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숲(특히 밤의 숲)이 외경의 대상인 이유는 우리 자신이 그 곳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숲은 우리 바깥에 있기 때문에 그 마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숲의 중심을 향해 걸어들어가며 그것 자체와 동화되어버린 인물들은 더이상 그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걸으며 그들의 시각을 통해 훔쳐보기를 하고 있던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3부의 조금 맥이 풀린 듯한 분위기는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하간 로버트 홀드스톡은 이 책 한권으로 인해서 내 머릿속에 인상깊게 각인되었고, 이 <미사고의 숲="">을 필두로 하여 이어지는 라본디스 사이클의 책들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신들의 사회="">를 비롯하여 로저 젤라즈니 역서의 명번역자이신 김상훈님의 맛깔스러운 번역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깊은 웅덩이에 있는 커다란 잿빛 바위를 향해 허위적거리며 헤엄쳐 가는 물고기. 나는 이 물고기를 작살로 잡는 어부의 딸. 나는 우리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높고 하얀 돌이 떨어뜨리는 그림자. 그림자는 해와 함께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강을 향해 움직이고, 파란 꽃들이 피어 있는 누른도요의 공터를 향해 움직인다. 나는 산토끼를 달리게 만들고, 암사슴을 수풀 속으로 보내고, 둥근 집 한가운데에 있는 불을 끄는 비. 나의 적들은 천둥과 밤에 돌아다니는 짐승들,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의 심장이기 때문에. 달군 쇠처럼 밝고, 화살처럼 빠르고, 떡갈나무처럼 강하다. 내 이름은 대지이다."신들의>미사고의> |
| 누군가 극찬한 책이었기에 손꼽히는 판타지 문학이라는 중압감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중에 첫 페이지를 읽게 되었다. 판타지라... 마시면 젊어지는 샘물 혹은 뭐든 뚝딱 이루어내는 도깨비방망이 그도 아니면 퍼내도 퍼내도 가득 고이는 화수분 같은 어린 시절 동화속 고도의(?) 판타지적인 장치들은 케케묵은 채로 인줄 알았더니 얼마전 톨킨의 <반지의 제왕="">의 반지의 모습으로 그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판타지는 통속적인 재미나 지극히 게임 시나리오적인 색채가 강해 사실 온당한 문학으로 대접받지 못해왔던 게 아닌가 싶어 아쉽다. 도무지 현실감없어 보이던 것들이 현실화하고야마는 근래에는 판타지가 현실의 은유인지 아니면 반대로 전복인지 더 헷갈리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떨치지 못했던 상념 두 가지를 먼저 밝혀두고 싶다. 첫째는 숲 자체를 문명의 대립항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단죄(?)로 거칠 것없는 파괴와 정복욕, 약탈을 드러내는 유럽인들의 집단 무의식이 이 작품의 토개가 되지 않았난 하는 점이다. 숲, 더 확대하자면 자연과 공존하지 못할 바에야, 그 두려움에서 놓여나지 못할 바에야 자연을 공공의 적으로 만천하에 선언해 버리고마는...... 다음으로는 숲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듯이 덤벼드는 외지인, 외부인, 아웃사이더의 이름이 바로 크리스찬이었다는 점! 여러 가지 신앙 형태에서 찾아볼 수 없이 엄격한 일신교인 '크리스트(교)를 믿는 자'는 이교도들의 은신처인 숲을 무자비하고도 철저하게 유린한다. 본인의 신경과민으로 우연의 일치를 작가의 주도면밀함으로 오해하지 않은 것이길 바란다. 누군가 말했지만 소설이란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은 없나니 소설 또한 그러하다는 건 다소간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판타지는 어떤 식으로든 현실과 조우하는 접점이 적어지면서 바야흐로 리얼리즘을 대체할 판타스틱한 무언가가 절실해지고 있다. 문득문득 느끼게 되는 기시감이나 무방비상태에서의 돌연한 섬뜩함에 어리둥절한 일이 한 두 번쯤 있는 나는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이 두렷두렷 형태를 갖추고 마침내 내 눈 앞에 현현할 것을 기대한다. 그게 바로 내 미사고가 될 터.반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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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읽다보면 깊이를 알수 없는 미지의 숲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책은 4차원의 공간을 보여준다. 이 공간은 끝이 없으며 무궁무진하게 확장된다. 저자는 독자를 이 4차원 공간으로 이끈다. 아니면 당신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그 공간으로 들어가 버린다. 다른 SF소설에 비해 이책은 더 확장된 몰입도를 제공한다. 미야자키 하야호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식의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다. 신화와 이미지등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가 처음에 약간은 당신의 사고를 어지럽힐 수 있다. 하지만 참고 읽다보면 그에 대한 보상이 바로 찾아온다. 신화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당신은 모를 것이다. 나도 모르며 알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독자가 신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이 책은 독자에게 더 재미없어질 것이다. 사랑은 투쟁과 기다림이다. 이책은 그렇게 내게 말하는것 같다. 이책의 후속편인 "라본디스"를 사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참기로 했다. 주인공의 사랑을 위한 기다림의 결과는 독자의 마음속에 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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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중세, 역사 이전의 시대가 혼재하는 숲, 미사고(Mythago)란 신화Myth와 심상Imago를 결합한 합성어로 이 책의 기본 맥락을 이루고 있다. 기존의 판타지 소설과는 전혀 다른 구성,신화와 역사에 대한 정밀한 지식과 연구, 고대어에 대한 작가의 연구 등 지적인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렇게 말하면 재미없겠군~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주인공 스티븐과 함께 그 숲으로 밤마다 동행하는 꿈을 꾸게 될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미사고의 숲이라 불리는 그 숲의 흙냄새,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까지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왜 이런 책이 이렇게 늦게 나왔을까 하는 안타까움으로 처음엔 무시무시한 속독으로, 지금은 다시 눈깔사탕을 아껴먹는 마음으로 한 페이지씩 정성스럽게 읽고 있다. 등화가친의 계절~ 가슴 속 나만의 숲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인상깊은구절] 나는 원초의 숲과, 얼음의 숲과, 돌의 숲과, 높은 산길과, 불모의 황야에서 사는 여자 사냥꾼이다. 나는 달과 토성의 딸이다. 시디신 약초가 나를 치유하고, 쓴 과즙이 나를 부양하고,반짝이는 은과 차가운 철이 나를 지킨다. 나는 언제나 대지 안에 있었고, 대지는 영원히 나를 부양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원한 여자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들, 페레더와 아홉 사냥꾼들을 필요로 할 때는, 나는 너희들을 부를 것이고, 내가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가야한다.... |
| -책 이야기를 하기전 나의 산이야기..(숲이야기)-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일요일이면 우리집 뒤에 있는 삼성산 초입의 조그마한 암자에 가곤 했다. 어린시절 새벽잠이 없던 나는 일요일 만화프로그램을 놓치지 않았는데 마찬가지로 절에 가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었다. 법회가 끝나면 종종 개구장이 친구녀석들과 함께 삼성산 정상에 올랐다. 낮은 산 정상이기는 하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다닥다닥 붙은 산동네를 바라보기도 하고 넢적한 바위에 드러누워 잠시 졸기도 하고 촐랑대다가 땅위로 불거져 나온 나무 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기도 했다. 그 조그마한 산은 지금이야 조그맣다고 생각되는 것이지 그때는 참으로 넓 놀이터였다. 하루종일 죽자고 뛰어다니며 놀아도 끝없이 놀 것이 생기는 곳이였다. -미사고의 숲이야기- 미사고의 숲은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숲의 이야기였다. 난 숲이 신비롭기는 하나(그 자연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낯선 곳은 아니였다. 어린시절 내가 뛰어 놀았던 산은 날 거부한 적이 없었고 가끔 산딸기를 따먹거나 아카시아 나무가지를 따먹으며 때로는 약수터에서 줄을 서던 기억이 있는 익숙하고 친근한 생활 그 자체의 장소였다. 내 어린시절 숲속에서의 상상은 나무의 요정이나 산신령 혹은 죄를 짓고 산에 숨어들었을지 모를 무서운 아저씨 정도랄까? 그 나이또래의 아이가 할 수 있는 상상의 정도를 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숲을 생각하면 바람과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가지의 소리나 나뭇잎 사이로 빠져드는 햇살..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 어찌보면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의 산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로버트 홀드스톡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미사고의 숲은 너무나 신비로운 곳이다. 신비롭고 낯선.. 숲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연동해서 유기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곳이 미사고의 숲이고 자신이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 신화가 되어버리는 곳이 미사고의 숲이며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 비일상적인 신화로서 실재하는 곳이 미사고의 숲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동양적인 사고의 틀에서)와는 다른 원형적 무의식을 가졌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서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만들어낸 가장 멋진 상상은 숲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연동해서 유기물을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화적 이미지가 씨앗이 되고 숲의 돌과 흙과 나뭇잎으로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는 실로 기막힌 상상이다. (이 이야기의 모든 것은 로버트 홀드스톡의 개인적인 상상의 산물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상상-숲속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은 우리네 산신령이야기나 선녀의 이야기처럼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넓게 퍼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숲의 모습이 아닌 새롭고 신비로운 상상으로 가득찬 숲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사족 : 그래도 난 우리네 산 이야기가 더 좋다. 도끼를 숨겼다가 되돌려주는 깜찍한 산신령이 있고(가끔 금팬티 은팬티로 변하기도 하고 ㅋㅋ) 가끔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주면 선녀가 목욕하는 장소도 알려주고 도깨비 방망이도 훔쳐올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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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소설을 많이 접하는 편이지만, 딱히 눈을 확 끄는 책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은 제목과 표제에서부터 나를 잡아당기는 뭔가가 있었다. 유채화 느낌이 나도록 두텁게 그려진 하드 커버의 표지, 그리고 '숲'이라는, 확실히 산보다는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지만 처음부터 재미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숲의 이야기가 나올 수록, 귀네스라는 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소녀가 등장하면서..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책장을 넘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태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숲, 그 숲에 빨려드는 세 남자.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현재, 이 반대되는 개념이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모습이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리얼하게 그려진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는 물론 서양 신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정말 깜짝 놀랄만한 소설이다. [인상깊은구절] -에드워드 당장 산장으로 돌아오게.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숲 내부의 길숙한 영역으로 이어지는 네 번쩨 통로를 발견했네. 시냇물이었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수로가 존재한단 말일세! 이 시내는 바깥쪽의 물푸레나무 와륜을 직접 관통해서, 소용돌이의 오솔길과 <돌 폭포="">너머로 이어지고 있네. 이것을 이용하면 숲의 심장부로 진입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바로 시간, 시간이야!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