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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사라진 마을에는 노래가 없다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새가 사라진 마을에는 노래가 없다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내용보기
숲책 읽기 89새가 사라진 마을에는 노래가 없다―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필립 후즈 글 김명남 옮김 돌베개 펴냄, 2015.11.2. 15000원  새 한 마리가 있으면 집안이 시끌시끌합니다. 처마 밑에 제비가 찾아와서 둥지를 틀거나, 참새나 박새가 처마랑 지붕 사이 빈틈에 들어가서 새끼를 까면, 새벽부터 밤까지 새소리를 듣습니다. 마당에 우람한 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숲에서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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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89



새가 사라진 마을에는 노래가 없다

―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필립 후즈 글

 김명남 옮김

 돌베개 펴냄, 2015.11.2. 15000원



  새 한 마리가 있으면 집안이 시끌시끌합니다. 처마 밑에 제비가 찾아와서 둥지를 틀거나, 참새나 박새가 처마랑 지붕 사이 빈틈에 들어가서 새끼를 까면, 새벽부터 밤까지 새소리를 듣습니다. 마당에 우람한 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숲에서 아침을 여는 멧새가 마을로 내려올 적에 이 나무에 내려앉아서 다리쉼을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 새들은 모두 벌레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무마다 샅샅이 뒤지면서 벌레잡이를 합니다.


  오늘날에는 논밭뿐 아니라 나무에도 농약을 무척 많이 쓰는데, 예부터 시골사람은 새를 곁에 두면서 벌레잡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를 더 아름답게 누릴 줄 알았습니다.




부리는 뼈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 케라틴이라는 특수한 단백질이 덮여 있다. 굵은 밑동은 나무를 두드릴 때 받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 두꺼운 머리뼈에 깊숙이 박혀 있다. 콧구멍은 작은 틈처럼 찢어져 있고, 둘레에 털이 나 있어서 톱밥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 준다. 흰부리딱따구리에게 이렇게 크고 단단한 쇠지레 같은 상아색 부리가 필요했던 것은 나무껍질을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22∼23쪽)


알렉산더 윌슨이 흰부리딱따구리를 그리기 위해서 총을 쏘아 잡았던 1809년부터 조지 바이어가 그 새를 박물관에 진열하기 위해서 총을 쏘아 잡았던 1899년까지 90년 동안, 흰부리딱따구리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30쪽)



  필립 후즈 님이 쓴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돌베개,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 ‘흰부리딱따구리’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쩌다가 흰부리딱따구리가 모조리 자취를 감추어야 했는가를 살피는데, 미국에서는 흰부리딱따구리만 모조리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그네비둘기 같은 새도 몽땅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모두 죽고 말아 사라져야 한 새가 퍽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할까요? 한국에서는 ‘흰부리딱따구리’ 못지않게 자취를 감춘 큼지막한 딱따구리로 ‘크낙새’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크낙새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광릉수목원 언저리에서 한 쌍이 산다고 하는데, 한 쌍만 있어서는 크낙새가 더 퍼지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새가 여럿 살려면 숲이 넓어야 하지요. 조그마한 숲에서 이런저런 새가 한두 쌍쯤 산다고 하더라도 새끼를 퍼뜨리기 어렵습니다.




남부 목재에 대한 열광은 1849년의 금광열에 뒤지지 않는 기세로 타올랐다 … 돌아온 목격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혀가 꼬여 더듬거리면서 보고했다. 그곳에는 수백만 에이커의 삼림이 펼쳐져 있고, 숲 천장은 하늘을 완전히 가리며, 나무 둥치는 어른 남자 둘이 팔을 맞잡은 것보다 굵다고 했다. 자유인이 된 노예들과 가난한 백인들은 하루에 50센트만 주면 기꺼이 숲에서 일하겠다고 줄을 선다고 했다. (49쪽)


아서 웨인은 왜 흰부리딱따구리를 마흔네 마리나 죽였을까? 윌리엄 보르수트넌 왜 흰부리딱따구리 표본을 예순한 점이나 샀을까? 그 새가 멸종할 위기라는 사실을 몰랐나? 몰랐다면,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당연히 그들은 흰부리딱따구리가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65쪽)



  흰부리딱따구리나 크낙새 같은 새가 숲에서 사라지는 까닭은, 이들 새가 살 만한 숲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숲이 사라지는 까닭은, 사람들이 나무를 너무 모질게 많이 베어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숲을 밀어내어 아파트나 공장이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을 지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새를 지키자면서 집도 짓지 말고 공장이나 발전소도 없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왜 숲을 밀어서 아파트를 지어야 할까요? 왜 숲을 밀어서 공장이나 발전소가 들어서야 할까요? 숲이 아닌 다른 땅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요. 숲이 없이는 사람도 살 수 없을 텐데요.


  사람은 누구나 숨을 쉽니다. 숨을 쉬자면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물건을 써야 하거나 전기를 써야 하더라도, ‘깨끗한 바람’이 없으면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려면 맨 먼저 깨끗한 바람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맑은 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뒤에 정갈한 밥이 있어야 하지요.


  개발을 하든 건설을 하든 무엇을 하든, 짙푸른 숲하고 깨끗한 냇물하고 넓은 들과 갯벌하고 아름다운 바다부터 곱게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숲에는 새가 날고 짐승이 달릴 수 있어야 하고, 냇물과 바다에는 물고기가 노닐 수 있어야 하지요. 이런 터전일 때에 비로소 사람도 사람다운 삶을 누립니다.




(앨런 박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새에게 겨눴다. 산탄총이 아니라 카메라였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흰부리딱따구리 사진을 찍었다. (82쪽)


싱어 보호구역의 흰부리딱따구리 서식지가 팔린 것은 사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건이었다. 태너는 감정을 쉽게 비치지 않는 편이었지만, 오듀본 협회의 존 베이커에게 보낸 연례 보고서에서는 좌절감을 드러냈다. (146쪽)



  새가 사라지는 숲에서는 노래가 사라집니다. 숲에서 새가 사라지면, 숲을 감도는 고운 숨결이 사라집니다. 무엇보다도 새가 사라진 숲에는 벌레가 들끓을밖에 없습니다.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린다 한들 숲에서 사는 벌레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사람으로서는 ‘벌레먹은 나무’를 베는 일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새가 홀가분하게 살 수 있는 숲이 있어야, 도시에 있는 사람도 마음과 몸을 달랠 만합니다. 매캐한 바람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서 몸을 쉬고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숲으로 갈 테니까요. 시골에 숲이 없으면 도시사람도 쉴 데가 없지요. 시골에 숲이 없으면 도시에서 부는 매캐한 바람을 씻어 주지도 못하지요. 숲에서 비롯하는 바람이 도시마다 어루만져 주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누구나 숨을 쉬면서 삶을 지을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숲을 바라보거나 마주하지 않더라도, 브라질에 있는 숲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숲이, 부탄에 있는 숲이, 서울 한복판에 고인 매캐한 먼지를 찬찬히 다독여 줍니다.




새들은 굶어죽고 있었다. 털룰라에 있는 시카고 제재 및 목재 회사의 거대한 띠톱은 최고 속도로 통나무를 집어삼키면서 흰부리딱따구리가 둥지를 짓고 잠을 자고 먹이를 구하는 데 쓸 최후의 나무들을 없애고 있었다. (163쪽)


태너는 숲이 결국 사라질 운명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머지않아 큰 나무가 듬성듬성해지고 숲이 조각조각 나뉘어서 흰부리딱따구리 한 쌍도 못 먹일 만큼 좁아질 것이었다. 진주만에 떨어진 폭탄은 텐사스 늪지 국립공원 설립 법안도 날려 버렸다. 다들 전쟁 말고는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177쪽)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나선 사람들과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려 애쓴 사람들은 바로 이녁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몸짓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 가슴에 고운 바람이 불 수 있기를 바라는 몸짓이었다고 느낍니다. 기껏해야 새 한 마리가 아닙니다. 새 한 마리가 지구별에서 모두 사라질 적에는 지구별 삶고리(생태순환고리)가 끊어지거나 흔들립니다. 어느 한 가지 목숨붙이가 모두 사라지는 지구별이라면, 아름다움이 차츰 깨지거나 빛이 바랜다는 뜻입니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곳에는 아름다움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에서도 다루는데, ‘나쁜벌레(해충)’를 잡아서 죽이겠노라 하면서 뿌린 DDT는 메뚜기를 거치고 ‘메뚜기를 잡아먹는 다른 생물’을 거치고 거쳐서 송골매한테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송골매는 이 때문에 껍데기가 흐물흐물한 알을 낳고, 이 탓에 송골매는 사라질 뻔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논밭에 뿌리는 농약은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사람’한테 도로 돌아옵니다. 나락에 뿌리는 농약은 쌀밥을 먹는 사람한테 돌아오고, 밀밭에 뿌리는 농약은 빵을 먹는 사람한테 돌아오며, 이런 농약은 빗물에 씻겨 바다로 들어가면서 바닷물고리를 먹는 사람한테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해충 방제 용도로 작물에 뿌렸던 DDT는 작물을 먹는 메뚜기 같은 생물의 몸에 오래 남았고, 나중에 그 메뚜기를 먹는 생물을 중독시켰으며, 계속 그런 식으로 먹이사슬 꼭대기까지 도달했다. 그렇게 하여 송골매에게 도달한 DDT는 알껍데기를 약화시켰고, 그 때문에 부모가 알을 품다가 제 알을 깨뜨리곤 했다. (232쪽)



  아침저녁으로 새가 노래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새소리를 흉내내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날갯짓하는 새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랬고, 쉴 새 없이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 새를 보면서 사랑을 헤아렸습니다. 새가 짓는 집을 가리켜 ‘둥지’나 ‘보금자리’라 하는데, ‘둥지·보금자리’ 같은 말마디는 따스한 기운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집을 가리키곤 합니다. 그러니까, 한겨레는 예부터 새를 늘 곁에 두면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사랑을 돌아보면서 살림을 가꾸었다는 뜻입니다.


  참새가 나락을 좀 쪼더라도 참새는 가을 한철에나 나락을 좀 쫄 뿐, 한 해 내내 벌레를 엄청나게 잡아먹으니 귀엽게 바라보며 ‘참새’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콩 석 알을 심을 적에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으며 한 알은 사람이 먹는다는 옛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도 벌레도 이 땅에서 저마다 맡은 구실이 있다는 뜻입니다. 벌레가 있기에 거름이 삭고, 벌레가 있어서 수많은 주검이나 나뭇잎이나 풀잎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흰부리딱따구리를 마지막으로 본 (1997년) 뒤에도 열 번 넘게 탐사를 이끌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전 세계에서 숲이 쓰러지고 있으니, 조류학계에서 쿠바의 흰부리딱따구리를 찾는 일은 청춘의 샘이나 앨도라도를 찾는 것에 비할 만한 중대한 모험이 되었다. (210쪽)



  미국에서 끝끝내 흰부리딱따구리를 건사하거나 지키지 못하고 만 이야기를 다루는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지 못한 미국은 그리 아름답지 못한 길을 걸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려고 애쓴 사람들은 ‘아름답지 못한 정책과 경제발전’이 춤추는 미국에서 숲과 마을과 사람을 지키는 새로운 길을 씩씩하게 열기도 했습니다. 오듀본 협회가 태어나고, 국립공원을 세우자는 물결이 일었으며, 지구 삶터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1940년대에 미국에서 터진 전쟁(진주만 폭격 뒤에 일어난 전쟁)은 그예 흰부리딱따구리가 살 숲을 모두 밀어내는 끔찍한 일로 이어지고 말았다고 하는 얘기를 돌아봅니다. 전쟁은 새도 사람도 모두 죽음이라는 구렁텅이로 밀어넣습니다. 전쟁무기를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바보가 되고,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서로 죽이고 죽는 짓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멍텅구리가 됩니다.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나아갈 적에는 너와 내(아군과 적군)가 모두 죽지요. 전쟁이 아닌 평화로 나아갈 적에 비로서 너와 내가 함께 삽니다.


  우리 삶에 아름다운 숨결이 흐르려면 마을에 새가 날아들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마다 숲이 넓게 드리울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도 곳곳에 크고작은 ‘숲 공원’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손길 하나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작은 마음 하나로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며, 작은 새 한 마리가 짝을 찾아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4348.11.17.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5.11.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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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절한 흰부리딱따구리를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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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던 나무들 뒤에서 새벽 첫 햇살이 분홍 줄무늬를 그리기 시각하면, 아메리카올빼미가 “후 쿡스 포 유, 후 쿡스 포 유 올”로 들리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부르면서 야간 근무를 마쳤다. 사방으로 퍼지는 햇살은 낮의 생명들을 잠에서 깨웠다. 새들도 하나씩 깨어나 차례로 노래했다. 맨 먼저 갈색지빠귀사촌이 거친 목소리로 새벽의 합창을 이끌었다.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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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던 나무들 뒤에서 새벽 첫 햇살이 분홍 줄무늬를 그리기 시각하면, 아메리카올빼미가 “후 쿡스 포 유, 후 쿡스 포 유 올”로 들리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부르면서 야간 근무를 마쳤다. 사방으로 퍼지는 햇살은 낮의 생명들을 잠에서 깨웠다. 새들도 하나씩 깨어나 차례로 노래했다.

맨 먼저 갈색지빠귀사촌이 거친 목소리로 새벽의 합창을 이끌었다. “추르르” 하고 반복하는 소리는 찔레 덤불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다음에는 흰목참새가 장단을 맞추어 결혼 행진곡의 첫 네 소절처럼 들리는 고음의 멜로디를 연주했다. 다음은 놀라운 겨울굴뚝새가 무대 중앙에 나설 차례였다. 꼬리가 몽땅한 이 난쟁이는 고개를 젖히고 온몸을 달그락대면서 누구보다도 길게 불러 젖혔다. 그때쯤에는 늦잠꾸러기 흰부리딱따구리도 구멍으로 나와서 깃털을 손질했다. (154-155쪽)

 

새는 밤에도 노래한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고요한 시간을 선호하는 새가 있다. 이른 새벽부터 많은 새들이 노래하고 해 뜨기 직전에 가장 많은 새가 노래한다. 그때 숲 속에 있으며 새벽의 합창을 들으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흰부리딱따구리 같은 귀한 새라도 볼라치면 황홀함은 최고조로 달한다.

 

흰부리딱따구리는 어떤 새인가. 딱따구리 중에서 가장 크고 흑백 깃털, 붉은 볏, 흰 부리 덕분에 강인함이 두드러졌다. 어떤 원주민 부족은 그 부리를 지니고 있으면 새의 강인함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전사들은 흰부리딱따구리 머리를 빻은 가루를 호신부로 담아 다녔다. 그러면 적에게 구멍을 뚫는 새의 능력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돌연 화살처럼 나타나서 1미터나 되는 날개를 깃발처럼 활짝 펼치고 숲 천장 나뭇잎을 뒤흔들며 날아왔을 때, 그러고는 이윽고 휘익 위로 솟구쳐서 두꺼운 사이프러스 나무에 강력한 발톱을 박아 넣었을 때,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Lord God, what a bird!” 흰부리딱따구리의 이름은 그렇게 ‘Lord God  bird’가 되었다. 그 만큼 멋진 새였다.

 

그토록 멋진 흰부리딱따구리를 우리는 볼 수 없다. 지구에 사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다. 한때 미국 남부 강가의 저지대를 뒤덮었던 에메랄드빛 숲에서 수천 년을 군림했던 새는 아예 사라졌다. 미국에서 전문가가 흰부리딱따구리를 마지막으로 본 ‘공인’된 사례는 돈 에클베리다. 돈 에클베리는 오듀본 협회의 휴대용 도감을 그린 화가로 1944년 4월에 루이지애나에 도착했다. 지역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 암컷 흰부리딱따구리가 매일 밤 잠드는 물푸레나무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통나무에 앉아서 햇살이 이울기를 기다렸다. 저녁 여섯 시가 넘어 드디어 짝을 불러들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신호가 더 들리더니 드디어 새는 나팔을 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잠자는 나무로 돌아왔다. 새는 커다란 날개로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똑바로 날아와서는 단번에 근사하게 솟구쳐 나무에 앉았다.

 

그는 영원을 응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천 년 동안 미국의 방대한 늪지 삼림을 호령했던 흰부리딱따구리 중에서 이제 남은 것은 이 외톨이 암컷뿐이었다. 콜럼버스보다, 혹은 예수보다, 심지어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먼저 세상에 나타났던 생명에서 이제 남은 것은 그가 알기로는 이 새뿐이었다. 화살 같은 비행, 어둑한 숲에 메아리치는 두 음조의 나무 쪼는 소리, 나무 전체를 벗겨 내는 재주…… 그런 오래된 행동들을 마지막으로 간직한 존재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다. (191쪽)

 

돈 에클베리가 본 뒤로 미국에서 흰부리딱따구리를 공식으로 본 사람은 없다. 흰부리딱따구리의 목격은 십여 년 뒤에 쿠바에서 일어난다. 쿠바는 섬이라서 그곳에서 진화한 종이 많다. 조류 중 21종은 쿠바에서만 살고 그 중에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새인 꿀벌새도 있다. 따뜻하고 벌레가 많은 몇 달 동안 미국에서 번식하는 철새 중에는 나머지 기간을 쿠바에서 보내는 종이 많다. 쿠바의 흰부리딱따구리는 미국의 흰부리딱따구리와 같은 종으로 두 집단으로 오래전에 갈라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그러한 흰부리딱따구리를 미국 생물학자 조지 램이 1957년에 쿠바의 미국 기업 소유 땅에서 열세 마리를 목격한다. 쿠바 생물학자 오를란도 가리도가 1968년에 다시 목격하고, 히랄도 알라욘이 이끈 쿠바 탐사대가 1986년 또 목격한다. 히랄도 알라욘은 1987년에 산길에서 흰부리딱따구리 암컷을 다시 목격하는데 그게 이 세상에서 흰부리딱따구리를 확실하게 목격한 마지막 사례다.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려는 노력의 성과가 없지 않았다. 흰부리딱따구리를 계기로 꾸려졌던 1935년의 코넬 대학 녹음 탐사대는 100종 가까이 되는 다른 새들의 소리도 기록했다. 앨런 박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흰부리딱따구리에게 자극받아 새들의 모습과 소리를 선명하게 기록하는 방법을 개척함으로써 새를 죽여서 연구용 표본을 수집할 필요성이 줄었다. 짐 태너가 오듀본 협회를 위해서 3년 동안 수행했던 흰부리딱따구리 연구는 특정 조류 중에 관한 연구 가운데 상세한 보존 계획까지 포함한 최초의 보고서였다. 존 베이커가 싱어 구역에서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보라고 내려 보냈던 리처드 포는 훗날 국제자연보호협회(The Nature Consevancy)라는 단체를 설립하는 데 한몫했다. 1970년대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흰부리딱따구리 소리가 들렸다는 제보만으로 주 정부가 강가 늪지 삼림 40제곱킬로미터에서 벌목을 금지했다. 흰부리딱따구리 덕분에 쿠바 동부의 수백 제곱킬로미터 산지가 보존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흰부리딱따구리를 지켜낼 수는 없었다.

 

많은 종이 빠르게 줄고 있는데, 대개는 새들이 변화에 적응하거나 물려받은 습관을 바꿀 여유가 없을 만큼 서식지가 빠르게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흰부리딱따구리가 숲이 벌목되고 굼벵이가 드물어지는 동안 때맞춰 얼른 식성을 다양화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지구라는 방주에 탄 생물들 중에서 깃털 달린 종들의 번식 개체수를 지키려면, 즉 새들이 계속 번식하여 종을 유지할 수 있는 개체수를 지키려면, 우리는 새들에 대해서 어서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좀 더 진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234쪽)

YES마니아 : 골드 g*******g 2017.06.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