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어김없이 태풍이 불어닥치곤 했다. 남도땅은 거의 언제나 태풍의 길목이었다. 그 바람이 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어른들은 종종걸음으로 불안하게 허둥댔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남쪽에서부터 수런수런 바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아이들 가슴속에도 은근한 설레임의 바람이 불었으니까. 그 바람에 무엇이 실려올까 기대했으니까. 그러나 막상 만나보면 그 바람은 사나왔다. 기왓장이 날아가고, 사과가 떨어지고, 밤나무가 뽑히고... 그 때쯤 아이들은 나름대로 바람과 대화를 시작한다. 살살해라! 배 다 떨어지겠다! 너무 하는 거 아니니? 이제 그만 하렴! ............ 바람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냇가 플라타너스가 센 바람에 시달려 한쪽으로 쏠린 몸을 추스리지 못한 채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씩 웃는다.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흠, 바람이 내 말을 들었군. 내 말대로 이제 잠잠해진 거야!' 질 다우니의 '바람을 따라서'에는 바로 그 '태풍'과 바로 그 '아이들'이 있다. 가을빛을 닮은 파스텔톤의 따스한 그림 속에 환상같은 실제, 실제같은 환상이 스며있다. 아니, 환상과 실제의 경계 자체가 없다. 그저 서로가 서로와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소년과 바람이 있을 뿐이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동심만이 있을 뿐이다. 그 환상적인 동심, 그것만이 진실이다. 이 가을, 우리 아이들이 질 다우니의 '바람을 따라서'를 만난다는 것은 바로 그 은밀한 저희들만의 세계를 확인하고 만끽하는 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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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봄을 타고 누구는 가을을 탄다는데 나는 환절기마다 계절을 다 탄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기 시작하면 바람이 바뀌었다는 증거다. 마구 설레이기도 하다가 끝없이 곤두박질 쳐서 쓸데없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비탄하기도 한다. 서른에서 몇 년 넘어섰는데도 마구잡이로 뛰노는 마음의 주파를 걷잡을 수가 없다.
가끔 미친 듯 날뛰는 그 마음의 파동을 나는 사실 즐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바람의 마술을 나는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민이 생겼다. 밤을 바람을 그리고 온갖 형태없는 것들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고 즐기지만 정작 아이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들은 말해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아이에게 설명해주기란 참 곤란스럽다. 가끔 나는, 무시하고 내가 느끼는대로 얘기해 주기도 하지만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수준으로 얘기하면 아이는 고개만 갸우뚱한다. 그건 내 눈 높이의 문제일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나의 이해부족 혹은 상상력 부족이라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질 다우니도 똑같은 고민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바람은 계절을 만들고 나무를 휘게 하고 집을 휘고 하고 많은 것들을 혼란에 휩싸이게 하고 가끔 난폭하기도 하지만 바람개비를 돌리고 빨래를 말리고 혼곤한 낮잠을 만든다는 것을. [인상깊은구절] 새들은 다시 날아올랐고 바람개비도 산들바람을 맞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나를 부른 것 같아요. 바람은 어디로 갔지? 내가 꿈을 꾸었나? "그 폭풍 속에서 어떻게 잠이 들었니?" 엄마가 물었습니다. "가을의 첫 번째 질풍이 지나갔단다." |
| 바람은 정말 변덕장이군요 자기가 기분이 좋을 때만 살랑살랑 바람을 불어주는 군요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바람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 졌니? 응 바람은 거센 비바람과 폭풍우로 다가오기도 하고 따뜻한 봄바람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자 그럼 바람이 아주 세세 불어서 폭풍과 회오리 바람을 일으긴다면 어떤 일이 생겼었니? 풍차가 막 돌아가고 문짝과 창문에 덜커덩 거렸어요. 그래 그럼 우리 이 바람에게 우리가 느낀것을 편지로 적어서 종이 비행기로 날려 볼까? 그런 바람이 종이 비행기를 자기가 데려 가고 싶은 곳까지 날려 보내겠지? 자, 시작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