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야, 너난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의 시조이다. 이 시조에서뿐만 아니라 국화는 우리 시가사에서 절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이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에서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말함으로써 이때까지의 상징성과 상반되는 이미지로 국화를 제시하였다. 필자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하였다. 즉, 우리네 심성과 다른 이러한 이미지는 과연 어디에서 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필자는 국화의 이러한 '원숙한' 여인네의 이미지를 서정주가 구할 수 있었던 경로로 일본 신화를 제시한다. 서정주가 일제 시대에 철저하게 일본식으로 교육받은 자임을 전제하고, 그가 철저하게 밝음 지향의 사람임을 전제한 후 그가 사용하는 이미지의 원류는 바로 일본 신화임을 밝히고 있다. 일본의 태모(太母, Great Mother)인 '아마테라스'가 바로 서정주가 마음 속에 간직한 국화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국화의 이미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잘 손질되어 고귀하게 우러러 보이는 품성을 지닌 꽃'이었고, '분별력과 단아함을 지닌 여인의 이미지를 지닌 꽃'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이미지가 서정주의 마음에 투영되어 나타나 우리네 전통적인 심성인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가 아닌 '원숙한 여인'의 이미지로 나타난 시가 바로 「국화 옆에서」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또한 국화는 일본에서 '명치 유신 이후에 권력의 정통성을 지닌 최고 통치자인 일왕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가진 꽃'이다. 필자는 원숙한 여인의 이미지와 일왕의 이미지를 따로 독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결합된 것이라고 본다. 1946년 서정주가 이 시를 지을 적에 일왕은 그 전까지 '신'의 존재였으나 패전 후 '인간'으로 정립된다. 적국인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현인신에서 범인(凡人)을 몰락한 일왕을 보면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라고 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이 시를 보면 이때까지 이 시를 해석해 오던 '젊은 날의 온갖 풍상을 다 겪은 후의 원숙한 여인'이 아니라, '내가 이때까지 신으로 추앙해 오던 우리 폐하께서 적국인 미국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인간임을 선언하신'이 된다. 고등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져 온 이때까지의 해석을 완전히 부정하는, 이때까지의 해석과 완전히 상반되는 해석이다. 기존의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이 해석을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결정을 하기는 곤란한 입장이지만, 단순한 하나의 발상으로 우리의 통념을 재치 있는 논리로써 부정하며 새로운 주장을 이끌어 낸 그의 논리력은 놀랍다. 다만, 서정주가 살아있었을 때, 이런 주장을 하여 이 시의 의미에 관한 본질을 끌어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서정주가 밝음 지향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시를 하나 첨부한다. 제목 : 전두환 탄신 56회 축시(1987) 한강을 넓고 깊게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 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와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밑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잉을 염원하는 남북육천만동포의 지지를 얻으셨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신 이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
|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를 확인하게 되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친일의 잔재는 아직도 우리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부끄러웠습니다. 국화꽃의 비밀은 이러한 부끄러운 우리사회에서 친일의 그림자를 걷고, 권력화되고 비대해진 우리 문학계를 바로잡는 큰 걸음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작가 혼자만이 가야할 길이 아닌 모두가 함께 가야하는 길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가슴깊이 깨닫는 계기가 된 소중한 경험을 이 책에서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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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은행나무 출판사가 ‘미당 서정주 전집’(전 20권)을 완간했다. 미당 문학상 심사위원인 황현산 평론가는 미당은 명백하게 친일시를 썼고 광복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과오를 저질렀지만 미당이 한국어를 아름답게 일으켜 세운 공로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말을 했다. 미당이 한국어가 말살될 위기에 처했던 1930년대와 40년대에 한국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깊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당은 찬반이 분명하게 나뉘는 시인이다.
유종호, 이남호 등의 평론가가 미당 마니아라 할 수 있고 반대 진영에서는 미당의 시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볼 수 없으며 그렇다 해도 그의 친일, 친독재를 도외시하고 시만을 푱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함돈균 교수는 최근 황현산 평론가가 미당의 시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가 친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 미당의 시가 윤동주, 소월, 백석, 김수영, 김춘수 등의 시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를 정교하게 분석할 여력이 없다. 다만 지금보다 많은 시를 읽을 필요가 있고 거장 시인들의 시를 본격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환희의 ‘국화꽃의 비밀’(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비롯 서정주 시세계 전반을 분석한 책. 2001년 출간)을 지난 2013년 8월 읽은 이래 4년여만에 다시 읽고 내용을 정리한다. 1.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황국(黃菊)은 일본 왕실과 태양 상징.(‘국화 옆에서’) 2. 시인들은 그냥 꽃이라 말하지 한 송이의 꽃이라 말하지 않음.(“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는 예외적.) 한 송이 꽃: 일왕. 3. 일제 강점기에 경성부의 남산에 세워졌던 신사(神社)인 조선신궁(朝鮮神宮)에 청동 거울이 있었음. 청동 거울, 청동검, 곡옥(曲玉)은 삼종신기(三種神器)라 불림.(“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4. 일왕의 인간 선언 시점은 1946년 1월 1일. ‘국화 옆에서’의 창작 시기는 1947년 1월. 인간선언으로 현인신(現人神)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히로히토왕의 이미지와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이란 구절의 이미지 비슷. 술술술술 시를 쓰는 서정주도 엄청난 상징과 비밀이 깃든 시를 쓰는데 1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는... 5. 아마테라스(일본 신화의 태양의 여신) 신화에 최초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신(神) 이자나기의 아내 이자나미는 불의 신 카쿠쓰치를 낳다가 너무 뜨거워 타 죽고 만다. 이자나기는 죽은 신들이 사는 황천으로 간 아내 이자나미를 따라 간다. 이자나미는 저승의 음식을 먹은 탓에 돌아갈 수 없자 남편인 이자나기에게 저승의 신들과 의논할 테니 그때까지는 자기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이자나기는 참지 못하고 머리에 꽂았던 빗을 뽑아 불을 붙여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불빛에 비친 이자나미의 온몸에는 온갖 구더기들이 들끓는다. 이자나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이자나기는 도망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함께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는 이를 번개의 신(뇌신: 雷神)으로 표현.(“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6. 사별한 아내가 그리워 황천국으로 여행하는 남편, 몸의 부패, 천둥신 등의 시상은 미당 시의 소쩍새와 천둥이 형성하는 모티브와 상응, ‘고사기’에 등장하는 동굴 칩거, 누님의 귀환, 거울 앞에 선 여인 등의 여러 모티브들은 ‘국화 옆에서’의 천둥, 거울, 무서리 등의 시어들과 맞물림. 7. ‘고사기’에는 아마테라스가 남동생인 스사노오의 잘못으로 베틀을 짜는 자신의 하녀가 죽자 동생을 피해 동굴로 숨는 장면이 나온다. 천상계와 지상계가 암흑에 빠지고 각종 재앙이 생겨난다. 신들이 지혜를 모아 거울로 아마테라스의 호기심을 자극해 아마테라스를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한다.(“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누님의 귀환) 아마테라스는 손자 니니기에게 자신을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한 거울을 징표로 주며 그것을 자신의 혼으로 여기고 자신을 모시는 것처럼 우러러 모시라고 말한다. 8. 일본 신화 속의 대모들(이자나미, 목화(木花), 토요타마비메)은 하나 같이 소복하고 거울 앞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서정주의 시집 ‘귀촉도’에 수록된 시 ‘목화’는 목화(木花) 즉 코노하나노사쿠야비메이다. 9. 야마토 민족과 한민족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은 아마테라스의 남동생 스사노오를 단군 내지 신라인으로 간주. ‘국화 옆에서’, ‘누님’, ‘목화’ 등 서정주의 시들에 나오는 누님은 일본 또는 아마테라스로, 남동생은 우리나라 또는 서정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 10. 아마테라스 신화를 구성하는 사별한 님을 향한 통곡, 수를 놓거나 베를 짜는 지고지선한 누나, 여인의 고독한 은둔, 천상계에서 추방되어 세상을 떠도는 탕아 등은 서정주의 시세계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이미지들이다. 4년 전에 비해 열의가 더한 느낌이다. 당시에는 나만을 위해 불친절하게 정리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친절하게 정리했다. 나는 김환희의 입장에 적극 공감한다. |
| 창비무명인 김환희의 이 책은 문단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신화가 되고 있는 한 시인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에 대한 재평가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학창시절, 어딘가 낯선 이 시의 이적 이미지에 당황스럽던 제게는 이러한 해석이 참으로 반갑고 또 신선한 것입니다. 그러한 점만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한 시인의 시가 어딘가 수상스런 해석을 법률처럼 성문화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새로운 그리고 비판적인 해석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논문은 충분한 평가와 충분한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으며, 또 독자의 구매가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일부러 이책을 구매하였으며 이는 이 글의 저자인 김환희씨에 대한 지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직 이글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필히 구매를 권합니다. 다만 이러한 의미와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완성도의 측면에서 완성된 분석이라고 평가하기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이는 이글을 아끼는 제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의 논리가 가지는 결정적인 문제는 이 시가 해방후에 창작되고 해방후에 발표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시의 국화꽃을 일본왕과 일본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만, 해방후의 상황에서 친일에 대한 어지간한 배짱과 소신이 없다면 친일파로 낙인찍혀 영원히 사라질 위험을 감수하고 시인이 그런 의미를 두어 시를 발표할 수 있을까요? 설사 창작시점이 해방전이라고 하더라도 발표시점이 1947년인 이상 그런 위험은 동일한 것입니다. 필자는 1947년에는 이미 시인의 문단권력이 확립되었고, 또 시인은 자신의 시적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의 시속의 그런 의미를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으로 확신하여 발표한 것으로 추측하면서 이러한 발표시점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국화는 일본왕-일본신이라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필자의 주장은 소신을 가지고 살았다기보다는 항상 당시의 시대상황에 영합하고는 후일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변신해온 시인의 삶의 태도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한국전쟁 이전의 사회분위기상 친일파 숙청의 예봉은 무뎌졌더라도 아직도 친일파의 표식은 시인의 사회적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논리라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필자께서 분석한 시인의 시어가 가지는 상징성에 대한 지적은 탁월한 것입니다. 시인의 국화는 분명 일본의 태양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시인이 이 시를 만들때 그러한 시적 상징성이나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인식하여 시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러한 국화의 이미지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시인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만(그렇다면 이 시는 시인의 친일찬양의 '의도'가 반영된 것은 아니니 이를 친일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감성이나 이미지가 아닌 일본의 감성을 가진 시인 서정주는 일본시인이라고 보아야 겠죠) 이 역시 제 추측에 불과하겠습니다. 여하간 김환희씨의 노력과 연구에 경의를 표하며 제 생각으로는 필자께서 아직 서정주 귀신을 벗어 던지실 때가 아니고 더욱 더 연구하셔서 이 글의 몇가지 의문점을 메우고 이 평론을 완성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바람을 담아 다시 한번 책을 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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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문학은 소수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 유명 문학가들에게 좌지우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그들은 공통적인 특징은 유명대학의 교수로써 수많은 제자들의 눈이 먼 지지와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자신의 권력이나 위치에 타격을 주는 논지의 글이라면 무조건 그들의 권력을 내세워 일명 '왕따'를 시켜버리고 그들을 재야문학인으로 일축시켜버린다.
이미 고인이 된 미당 서정주와 그의 제자들도 소위 말하는 문학권력의 표본이다.미당의 제자들은 그의 스승의 뚜렷한 친일행각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성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위해서 수많은 반미당파들의 문학적숙청(?)을 감행해왔다.그들의 스승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일제시대엔 천왕을 위해 80년대엔 군부권력을 위해 시를 쓰는 기회주의 시인이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들은 타당한 애국시인들을 탄압해왔던 것이다.
나는 친구의 소개로 창비게시판에서 '국화꽃의 비밀을 처음 읽어보았다.'창비무명인'은 9회 연재로 논문을 내면서 깊은 논지와 뚜렷한 근거로 권력자들의 미당론에 일격을 가했다.사람들은 그를 인터넷의 논객이라 하지만 그녀는 외면된 진실을 뚜렷한 증거와 함께 눈먼 우리 사회에게 들이대며 진실을 추구하는 한 학자일 뿐이다.그로인해 창비계시판은 반박론으로 쑤대밭이 되긴했지만....나는 그곳에서 눈 먼 사람들의 말도 안되는 억지 속에서 꿋꿋이 진실을 추구하고 자기의 소리를 굽히지 않는 소수의 양심스러운 학자들을 보았다.
그러던 중 교보문고에 나와있는 국화의 비밀을 보고 반가워마지 않았다.이 글은 사이버세계의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미당을 애국시인인 마냥 배우며 눈 먼 사람이 되어가는 우리 사회에게 큰 깨우침을 주리라 난 믿는다.이 논문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오랜 세월 파묻힌 진실을 깨우기위한 시초로 우리사회에 큰 화두를 던져 주엇다.앞으로 미당주의자들은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더 많은 학자들이 미당에게 진실을 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미당은 자신을 종천순일파로 칭한 저의는 스스로의 친일행위를 '하늘'의 뜻을 따른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했던 수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위해서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명칭은 미당의 삶전반을 통해 지속되어 온 그의 독특한 인생관내지 세계관을 가장 잘 정의한 단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