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애벌레이지만, 찬란한 비상을 꿈꾸고 있는 책벌레들에게... 저자의 책 머리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성경의 정신을 비단 생각하지 않더라도, '찬란한 비상'이라는 글의 끝맛이 언젠가 날아오를 웅지로 부푼 나에게 '그래, 너는 언젠가 날아 오를 것이다'라는 희망의 문구로 다가온 것 같다. 그렇게 그의 비상론이 이 책의 동기가 되어 다시금 나에게 독서욕의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바야흐로 세상은 넓고 읽을 건 많던가. 첨단의 과학문명을 경험하는 자본의 이 시대에. 출판, 활자술에도 산업화의 소나기는 어김없이 퍼부어 내렸다. 그리하여 현실의 우리는 하루에만도 수만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바다에 안착하게 되었다. 이제, 이러한 바다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겐 과제가 있다. 어떻게하면 이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중심을 잡고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땅에 정착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읽기위한 항해는 시작되었다. 나는 생산적인 책읽기가 이러한 항해를 효율적으로 해 나아가는 항해술의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충분히 고급(?) 항해술을 연마하기에 충분한 책이 아닐까? 이 책은 '겹쳐읽기'와 '깊이읽기'라는 두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겹쳐읽기에서는 같은 주제나 사상을 가진 몇 권의 책을 통해 자칫 획일화되기 쉬운 읽기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깊이읽기에서는 단순히 책 한권을 읽는 차원에서 진일보하여 이제 저자의 삶과 집필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심미안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대중들이 읽을 그런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류를 소개하지는 않는다. (정말 그런 책을 원한다면 同출판사의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를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숙련된 독서가라면 그런 저자의 의도를 겸허히 받아 들일 수 있다. 독서는 비단 대중문화의 한 장르라기 보다는 이미 그것을 초월해 애벌레같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자기만의 고독한 정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책읽기에 대한 고찰보다는 자칫 자신의 전기에 치중해버린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보다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으며, 김현 선생님의 방대한 '행복한 책일기'나 장정일씨의 '독서일기'보다 분량면에서 더욱 초보항해사들에게 부담없는 적절한 책이라고 본다. 의외로, 시중의 독서평론가들의 책이 대중적이지 못하고 너무 자신들만의 고등화된 미사여구로 쓰여진 나머지 소수의 독자들정도만이 공감할 수 있겠다는 한계성을 실감하던 나였는데. 그런 초보 항해사인 나에게 이 책은 적지않은 동기와 희망을 실어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항해를 시작하려는 정말 초보인 버진(virgin)들이 간혹 물어온다. 어떤 책부터 읽는 게 좋을까요하고 말이다. 그에 대해서 솔직히 나는 막막하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에게 정말 신선한 감동과 도전을 불어넣어 삶의 엑기스를 체험하게할 책을 감히 나라는 사람이 택해 줄 수 있는가하는 생각에서부터. 정말 그가 책을 읽고 싶은 욕망으로 충만해 있다면 우선 서점가로 가 보는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그가 책을 통해 읽고자 하는 항해의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도 하고. 하지만, 좀더 물음에 대한 배려를 생각한다면 이제 나는 감히 이권우씨의 책을 권해주고 싶다. 애정소설류나 대중화된 독서의 식상함에서 벗어나고자하는 항해사들에게 이제 이 책은 좀더 고차원적인 책읽기(자아를 찾아가는 방법?)의 매력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나브로 독서는 나에게 세상을 구경하는 창문이라기보다 어느새 세상을 체험하는 가상 현실로 다가왔다. 저자와 더불어 생각하고, 주인공과 더불어 행동하는 일련의 가상현실들. 그 속에서 나는 영웅이 되어보고, 외톨이가 되어도 본다. 그리고 나는 성큼 자라있다. 앞으로도 나의 항해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더 나을 내일의 책읽기를 기대하며 오늘의 번뇌하는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게 꿈많은 나.... 바야흐로 오늘도 찬란한 비상을 꿈꾼다. 아, 센티멘탈한 밤이여.. 꿈이여... 독서여... |
| 이 책은 두껍지 않으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내용 또한 간결하게 표현하여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내용으로 지루함을 덜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한곳에 편협한 생각에 치우쳐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선택할 때에도 내가 좋아하는 위주로 고르고 또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의 좋은점은 사람의 생각을 넓게 가져주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책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으며 관심 없었던 부분을 관심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예전보다는 책고르기의 선택이 다양해질 것 같다. 또 책을 소개하면서 표지가 나오는 것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자신은 우둔하고 게으르다고 말한다. 작가 뿐만 아니라 나또한 그렇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럴지도 모른다. 자식한테 주입식의 공부, 학원보내기를 버리고 책읽기의 습관을 기르게 해주며 동화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동심의 세계로 가고 싶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나중에 부모의 그림자로 가려줄 수 없을때 책을 통해 이 세상을 알아가길 바란다는 마음 동감되는 부분이였으며 자식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함께 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나 게으름뱅이이고 노신이 말했던 것처럼 걸어가야한다. 또한 책읽기를 멈춰서는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완전한 낙오자가 되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늪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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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류의 글이건 서평이라면 눈길이 자연스레 가닿고 더러는 책을 읽은 다음 나름의 울림을 직접 남기기도 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 늘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는데 도대체 서평은 어떤 장르에 속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평의 장르적 정체성은 모호하기만 하다. 이론적 관점을 토대로 본격적인 작품 분석을 시도하는 문학 평론의 영역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에세이와도 격을 달리하는 독자적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학문이나 예술의 분야 혹은 장르가 독립성을 인정받으려면 그것이 다루고자 하는 고유의 대상과 이에 다가가는 체계적인 접근 방법,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이론이나 작품의 축적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서평은 대상이 명확하고 결과물도 많이 축적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독립 장르로의 승격의 관건이라 하겠다. 이권우는 다양한 방법의 글쓰기를 통해 서평의 독자성 확보와 품격 있는 독립 장르로서의 위상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겹쳐 읽기와 깊이 읽기를 통해 펼쳐 보이고 있는 그의 방법론의 모색은 실로 눈부시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선재가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는 '호밀밭에서 부르는 아름다운 아이들의 노래'는 압권이다. 홀든과 선재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통해 책의 내용이나 지향, 작가의 의식 등을 명료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두 책의 소재와 주제에 대한 격조 있는 대화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내면세계와 그것의 현실적 좌절 등을 실감나게, 그리하여 안타깝게 그려 보이기도 하고 있다. 정형화된 서평의 틀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파격을 우아하게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란하게 방법론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담겨진 글의 내용도 진지하고 문체도 품격이 있다. 읽다보면 누구나 가슴 서늘해지고 머리 가뿐하게 맑아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처럼 이권우가 펼쳐 보이는 서평의 세계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정도의 부수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품적 완결성을 갖고 특유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흡인하는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서평이 독립된 장르의 품격 있는 창작물이 아니란 말인가 반문하고 싶다. 이권우는 그 외에도 원전과 패러디물의 대조를 통해 작가의 의식세계를 드러내 보인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두 가지 변주곡', 페루 여행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다른 장르의 창작물로 표현하여 작품의 소재적 동질성을 숙고해 보게 하는 '꿈꾸는 거대한 상처 잉카로의 여행'이나 거꾸로 읽음으로써 전복적 세계의 원형 탐구를 시도한 '거꾸로 읽으면 제대로 보인다.' 등의 글을 통해 서평에 관한 방법론을 다원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가 독자적 장르로서의 서평 문학의 방법론적 모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의미하다 하겠다. 이권우의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새로운 장르로서의 서평의 독립을 염원하는 이들이 이권우의 시험적 작업에 대한 후속 조치로써 나름의 다양한 방법론을 개발해 내어 책의 세계를 심원하게 탐색해 나가는 가운데, 이들의 연대로 서평문학이라는 독자적인 장르가 점점 또렷한 실체를 갖추며, 만인이 공감하는 고유의 정체성을 인정받게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 서막을 연 이권우의 모험적인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
|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소감은 '도서평론가 이권우씨의 독서일기'였다. TV 독서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도서 소개와 평론을 말해 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나는 오히려 TV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좋았다. 이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는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평과 함께 감상을 말해서 '너무 간단하잖아.'하고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처음부터 이 책에는 대개 내가 전에 읽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반가움이 앞섰다. 그런 책들에 대한 도서펑론가답게 깊이 있는, 그러면서 어렵지 않은 평론을 기대했던 내가 좀 무리였던 것일까. 그래도 생각보다 간단한 글이었지만 다양한 도서편련을 보여주듯이 화려한 책 제목들의 면면은 즐거운 잔치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실은 이 책을 읽은 지도 이제 꽤 지나서 느낌이 새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책에 대한 책'에 대해서는 항상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책에 대한 책이 눈에 띄면 우선 읽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이 책 또한 그래서 좋아한다. 무리한 기대를 해서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좋다. 이러한 책에 대한 다양한 책이 많이 많이 출판되어 내게로 와서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
| 이번해에 접어들면서 책읽기에 조금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근데 사실 서점에 가서 보면 무슨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런내가 주로 의지?? 하는 것이 일반 독자들의 평이고 그래서 선택한 책중의 하나가 게으름뱅이의 챍읽기 이다. 학교때도 그리 독서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상식에의 결핍과 잘 읽여지는 소설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나에게 뭔가 길을 제시에 주진 않을까 하는 의도에서 였다. 그런 나의 의도를 충분히 소화시켜줄만큼 다양한 종류의 책을 다양한 방법의 책읽기를 통해 잘 표현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책장을 덮은 나의 소감은 적어도 나에게는 쉽게 읽여지는 책은 아니다 (평을쓴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마도 나의 독서수준 이상인듯 싶다). 소개되는 대부분의 책들이 생소했고 작가가 설명하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이해하기도 쉽진 않았다. 솔직히 그냥 넘어가버림 페이지도 몇장된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현재 내가 얼마나 책읽기에 편식을 하고 있는지만은 확연히 느끼게 한다. 또한 책의 위대함이 단지 상식을 넓히고 논리적인 사고에만 있지 않고 삶의 고비를 맞이 했을때의 고민의 실마리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
| 요즘 내가 참 재미있어 하는 '테마'다. 게으름뱅이이가 책읽기를 좋아한다. '게으름뱅이'와 '책읽기'라 서로 연관짓기가 어려운 낱말들이지만 이 책의 저자 이권우의 약력을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최근에는 자칭 '도서 평론가'로 심야 방송에도 책이야기로 가끔 출연하는 그를 보며, 한편 부러운 생각도 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보고 싶은 책을 읽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다? 대학 때부터 책읽기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불과 3-4년전만 해도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나 스스로조차 모르고 읽어댔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늘 편향된 독서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올바른 책읽기인양 착각하며 살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도 우습다. 책! 이것은 요즘 나의 사상과 삶을 지탱하고 힘이 되주는 굵은 동앗줄이다. 비로소 내가 읽어야 할 책과 읽지 못했던 책, 더불어 읽어야 할 책, 책이 주는 가치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아울러 책을 읽는 요령도 터득하고 책이 내 주변에서 어떻게 맴돌게 해야 할지도 알게 됐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말이 거짓이고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이제 알 것도 같다. 굳이 더 언급하자면, 책읽기의 게으름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관심이 없어서라고. 몸이 불편하고 내 가족사에 문제가 많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고. 활자를 오래토록 보는 것이 도저히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시간이 없다는 말은 적어도 책을 좋아하고 책의 가치를 아는 이에게 거들먹거려서는 안될 말이다.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는 이러한 변명들의 거짓을 틀어막아줄 지극히 주관적인 책읽기에 대한 감상문을 써 놓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책들의 접근과 그 접근방법에 대한 소개를 잊지 않고 있다. 이권우의 책읽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겹쳐 읽기와 깊이 읽기. 겹쳐 읽기는 마치 논문을 쓸 때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로빈스 크루소에 대해 읽는 다면 단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두 세가지의 책(방드르디, 원시의 삶/로빈스 크루소의 사랑)을 같이 읽으면서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갖춰 나가는 책읽기를 권한다. 다음으로 깊이 읽기는 흔히 우리네들이 하는 아는 방식인데, 그는 책 한 권을 그야말로 깊이 천천히 음미하며 사고하면서 읽는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덧붙여 재해석하듯 하는 책읽기를 권한다. 저자 이권우의 직업이 '도서평론가'이듯 그의 책읽기의 영역은 참으로 다양하다. 사회과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문학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책읽기의 묘미를 선사하려 한다. 최근에 그가 쓴 또 하나의 책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라는 책은 또하나의 책읽기 감상문을 써 내려간 책인데, 그를 통해 책읽는 방법과 책감상문쓰기의 기술적인 습득을 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책읽기 영역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가져 보았다. 책이 가져다 주는 기쁨이 어느 영역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다만, 그 책읽기가 이른바 '--인체','--아는체', '--든체'하는 이른바 '사회귀족'들의 겉멋든 편협한 교양차원이 아니라, 책을 통해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내 삶에 내가 만족하는 수단으로 실천의 동력으로 쓰여야 함을 다소 경직됐지만 구태여 언급하고 싶다. 그건 이러한 책읽기가 이제 나의 삶의 중요한 한 축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각주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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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2001 저자 : 이권우 출판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작성 : 2008.07.18. “나는 아직 읽을게 너무 많이 남아있었으니…….” -즉흥 감상- 도서 ‘소설처럼 Comme un Roman, 1992’ 다음으로는 또 무슨 책을 읽어볼 것인가 고민하던 저는, 무엇인가 얄팍하게 생겼으면서도 감상문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 책을 집어 들게 되었는데요. 아아아.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면서도 폭넓은 독서의 장을 열게 해준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대학 2학년 때로, 교지를 만들겠다고 편집실의 문을 두드렸다던 것을 이 모든 것의 시작으로 1980년대를 회상하는 것과 ‘도서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 그리고 그동안 ‘책동네’라는 곳에서 몸담고 썼던 글들을 소개해보게 되었다는 [책머리에]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1부 책, 그 견고한 성채를 여는 첫 번째 주문-겹쳐 읽기]와 ‘김남천전집’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2부 책, 그 견고한 성채를 여는 첫 번째 주문-깊이 읽기]로 본론으로의 장이 열리기는 하지만, 딱히 어떤 줄거리를 가진 기록이 아니었던지라 간단한 요약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을 알려봅니다. 그렇듯, 이 책은 각 부의 작은 제목 마냥 어떤 한가지의 공통된 부분을 통해-개인적으로는 ‘입체적 감상’이라 말하는-겹쳐 읽는 방법과 특정 한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감상의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게 되었는데요. 처음 들어보거나 아직 접하지 못한 작품들일 경우에는 도서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You've GOT to Read This Book, 2006’을 읽을 때 마냥 소화불량에 걸린 기분이 들어버렸지만, 중간 중간 아는 작품들이 등장하거나 철학과 수업을 청강하면서 익숙해진 이름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면서는 알고 있던 지식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는 기분이 있어 즐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저자의 위치인 ‘도서평론가’보다도 일단은 좀 더 넓은 개념이라 생각하는 ‘평론가’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작품에 대해 나름대로의 감상을 기록해보자는 일념으로 작성하게 된 기록이 공식적으로 700회를 넘어서면서, 최근 들어 ‘평론가 같다.’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함에 ‘그저 감상을 기록할 뿐입니다.’라고 답을 하고 있는 편이다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저 또한 훗날 이런 식으로 ‘감상’을 정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썼었다지만, 최근에는 뮤지컬이나 인문도서들도 접하기 시작함에 점점 입체적인 방향으로 감상을 하게 되었으며, 이전부터 있었던 철학과 심리학으로의 관심도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꼭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한 작가의 작품을 통한 다양한 형태로의 각색이나 비슷한 주제 분야로의 감상이 조금씩 형성되는 기분을 스스로도 인식하기 시작함에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평론가’와 같은 반응을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감상’과 ‘비평’은 분명 다른 것이라는 것을 염두 해둬야 할 것 같군요. 우리는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영화를 보며, 한 회의 연속극 등 다양한 하나의 작품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이 던져주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저처럼 무한한 감상의 영광을 위해서일까요? 이유야 무엇이 되었건 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멋진 ‘감상기록장’를 만날 수 있었음에 행복하였노라 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Ps. 무슨 일인지 시끄럽고 요사스럽게 울어대기 시작한 낭만고양이들. 안 그래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고민이었던 이번 감상 기록에 대해 슬슬 짜증이 나는 순간 뮤지컬 ‘캣츠’를 보기로 했다는 친구의 다짐이 떠올라버렸습니다. 영화와 책은 어떻게든 저렴한 방법으로 접하고 있다지만, 이런 뮤지컬들은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모르겠군요. 혹시 아시는 분 혹시 계시다면 살짝 조언을 부탁드려보는 바입니다.
TEXT No. 737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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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현재 자칭 직업은 도서평론가라고 한다. "비싼 등록금이 아까울 정도로 대학에서 배운 것은 없다." "나는 스승을 오직, 책에서 만났다." 이런 저자의 소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하는 얘기와 완전히 같다. 저자의 서평을 읽다 보면 책을 참 꼼꼼히 읽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제목의 '게으름뱅이'는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차근차근'을 의미하는 것같다는 것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이다. 요즘 인터넷 서점이나 신문의 리뷰를 통해 접하는 도서 정보는 대부분이 신간 위주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좀더 두터운 시간대의 책을 만날 수 있다. 단, 저자의 기호에 맞는 책들 뿐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객관적인 리뷰를 추구하지 않는다. 저자의 주관적인 느낌을 꺼리낌 없이 구사한다. 이런 취향을 특별히 싫어하는 타입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다가 몇 권의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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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론가인 저자가 자신이 읽었던 책들에 대한 평가를 모아놓은 책이다. 옵니버스식으로 마치 서평을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이다. 책을 분류한 기준은 겹쳐읽기와 깊이읽기다.
1)겹쳐읽기는 같은 주제의 책들을 읽는 방법이다. 각 책들을 비교, 대조하면서 설명한 것을 보면 그 주제에 관해 흥미가 생길 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갖출 수 있는 진짜 좋은 독서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깊이읽기는 책 한권씩만 소개되어있다. 깊이읽기란 이름을 왜 지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책 한권에 대한 서평을 읽는 기분이다.
- 주제 : 겹쳐읽기와 깊이읽기를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 구성
옵니버스식 구성
겹쳐읽기 1.로빈스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의 사랑, 방드르디·원시의 삶 2.오래 전 집을 떠날 때,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신의 지문 3.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호밀밭의 파수꾼 4.김윤식과 심현의 사르트르를 위한 추도사 5.한국문학 상징사전(전2권), 중국문화 중국정신,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문학상징사전, 문학의 상징·주제 사전 6.프로이트 자서전, C.G.융의 화상·꿈 그리고 사상 7.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 가지 이론, 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8.플라톤의 대화, 소크라테스·악법도 법인가? 9.어른이 되는 이야기, 동화 속의 남자와 여자,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
- 내 생각 1.비평 : 비평이란 것은 과연 필요할까? 소위 비평가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창작자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리 못난 작품이라도 그것이 창작물이라면 그 어떤 사람도 그것에 대해 뭐라 할 자격은 없다. 물론 재미없다, 재미있다 등의 자신의 느낌을 말할 수는 있지만 평가를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그들이 뭘 그렇게 잘났다고 감히 창작물을 비평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 친구는 이런 내 생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창작자가 다음에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비평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잘못된 비평들이 넘쳐나고 있다. 자신이 재미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재미없을까? 비평가들은 그 직함이 주는 힘 때문에라도 결코 자신의 주관을 평가할 때 넣으면 안 되지만 당장 네이버의 영화나 도서 비평한 글들을 보면 대부분 아니 나는 지금까지 단 하나라도 객관적으로 창작물을 평가한 글을 본적이 없다. 게다가 글에 겉 멋만 번지르르 나타내어 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하게 만든다. 말 줄임표를 작작 쓰던가, 왜 그렇게도 쉼표가 많은지, 에세이 쓰는 것도 아니고 단어의 배열을 마음대로 바꾼 문장이 왜 그리도 많은지 이해하기도 싫다. 이런 저급한 글들을 어린 아이들이 보고 따라할까봐 걱정될 뿐이다. 비평이 발전하려면 1)비평가들이 어떤 기준을 통해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글을 써야한다. 2)비평가들이 겉 멋만 가득한 글을 쓸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문장을 구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도 문장에 너무 멋을 내려고 노력했다. 어떤 문장을 보면 정말 깔끔하고 담백하게 잘 썼다. 하지만 겉 멋 내는 문체가 그 당시부터 유행을 했는지 이런 문장들이 너무 자주 보인다. 그래서 쉼표가 너무 많다. 읽다 보면 숨이 턱턱막힌다.
2.주제별 읽기 이 책의 저자에게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주제별로 겹쳐읽는 독서법이다. 주제별로 독서하면 그 주제에 관한 이해력을 높여주고 독서 속도를 올려주며 다양한 관점을 갖도록 해준다. 단 한 가지 조건은(어떤 방식으로 독서를 하던 마찬가지지만) 책을 읽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가까운 지인이 직접 경험한 바로 그는 독서법에 관한 분야를 40권 정도 원페이지북을 작성했더니 솔직히 그 분야에 대한 책은 챕터만 봐도 거의 내용이 예상되고 실제로 그 예상이 맞다고 한다. 그 때부턴 한 책에서 새롭게 배우는 양이 10~20%고 나머지는 복습이다. 물론 40권을 원페이지북을 작성하지 않고 그냥 읽어도 어느정도 이해력을 높일 수 있지만 자신이 읽은 것을 어떤 식으로도 표현하지 않으면 내용은 금방 잊혀진다. 독서토론을 하던가 글을 쓰던가 반드시 읽으면 표현해야 주제별 읽기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