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난하지만 그리 비참해하지 않고, 불행하지만 그리 절망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소시민적인 행복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권태로움을 느끼지 않으며 냉소적이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소박하지도 않다. 그들은 모든 일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현재의 생활을 그저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들이다. 모든 상황을 제 스스로 혼자만의 힘으로 짊어지고 갈 뿐이다. 그들은 매우 조용조용하게 자기 희망을 찾아나선다. <레고로 만든="" 집="">에서 가장 압권은 복사기에 얼굴을 갖다대는 것 보다도 새끼 고양이가 갇힌 굴뚝에 돌을 던지는 행위와 오빠의 바퀴 달린 레고를 으스러지도록 밟아버리는 장면이었다. 이전까지 주인공은 자기 처지에 대해서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아침마다 먹이를 주던 고양이와 잘 보살펴 주던 오빠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감정의 정화를 느끼게까지 해주었다. 소리 없이 한겹 한겹 가슴 밑으로가라앉혔던 피로감과 막막함을 그렇게라도 표출시키는 게 진짜 인간의 감정이 아닐까. <이 방에="" 살았던="" 여자는="" 누구였을까="">의 주인공은 사라져 버린 '은오'라는 여자와 닮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의 흔적을 쓰다듬는다. 주인공은 은오의 스웨터, 반지, 어릴 적 가족사진, 그녀 방의 양감있는 벽지를 누른 손톱 자국을 통해서 자기존재를 찾으려 든다. 고아원에 버려진 여자는 어쩌면 은오와 쌍둥이었을지도 모르고 친척 사이일지도 모른다. 여자는 내심 그런 걸 희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은오는 내 존재의 근원을 모르는 이가 붙잡는 지푸라기와도 같고, 그리고 정말 이 세상에 나 말고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갖게 한다. 특히 소설 첫 단락의 '제 발에 나를 묶고서, 그림자가 나를 잡아당겼다'는 문장은 도플 갱어의 의미로까지 그 의미를 확대하게끔 했다. 소설을 읽고 나서 키에로프스키 감독의 <베로니까의 이중생활="">에 나오는 베로니끄와 베로니까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계단>의 주인공인 태양 연립의 104호 남자와 504호 남자는 서로의 집을 맞바꾼다. 변화된 환경을 통해서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하나 그 의지는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104호는 죽은 어머니의 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504호는 떠난 아내로 인해 생긴 울렁거림의 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집은 똑같은 평수였다. 하지만 104호는 없었던 소파가 생겼는데도 집이 휑하니 넓게 느껴졌고, 504호는 여전히 비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504호는 아내가 혼수로 사온 소파가 너무 커서 늘 집안이 좁다고 생각했기에 그 물건만 없어지면 더 넓게 살 수 있다고 여겼다. 104호가 느낀 넓음은 바로 얼마 전까지 병석에 누워있다 떠난 어머니가 곁에 없음으로 인해서 생긴 허전함이었다. 504호가 느낀 비좁음은 아내와 동일시한 소파를 마음에서는 버려두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남자는 서로의 이삿짐을 옮겨주면서 가까워지고 놀이공원에 간다. 외로움과 상처에 물들어 살던 그들은 서로의 짐을 맞바꿔 들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위로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등이 따뜻해져온 소설이었다.계단>베로니까의>이>레고로> |
|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따뜻함이다. 작가는 낮은 목소리로 그가 추구하는 따뜻한 일상에 관해 조곤조곤 되뇌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소설 속에 펼쳐진 일상들은 그리 평탄하지가 않다. 표제작인 레고로 만든 집에는 몸이 불편한 오빠와 아버지와 함께 근근이 하루를 이어나가며 집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내가 있고 칼로 생명선을 연장시키는 여자 (서른 세 개의 단추가 달린 코트) 의 이야기나 경품 추첨으로 살아가는 (악수) 남자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집이 따뜻하게만 기억되는 까닭은 화려하지 않은 윤성희의 소박한 문체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녀의 문장들은 그리 프로답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그녀는 놀랄만한 속도로 사색의 결과물들을 쏟아놓고는 있지만 아직 작품 마다의 뚜렷한 차이를 느낄수는 없었다. 하나의 작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만큼의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틈틈이 안타까움을 유발해내기도 한다. 아무쪼록, 그녀의 정진을 빈다. |
|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가. 왜 이토록 가슴 아픈 사람들이 많은가. 글을 쓴 사람도, 글 속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리고 글을 읽고 있는 나 자신도.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아무 데도 들려 줄 곳이 없을 정도로 외로운 사람들. 그래서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아픔을 달래는 것인가. |
|
윤성희는 소설 잘 쓰기로 소문난 작가다.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올해의 좋은="" 소설="">등에 이름과 작품을 당당하게 올려놓은 실력있는 신인이다. 워낙 소문에 약하다보니, 그래서 윤성희의 소설집을 읽었다. 며칠에 걸쳐 느리게 그녀의 소설을 읽어나갔다. 차분하게, 진지하게 읽혀지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모두 넘기고나서 든 느낌은, 소설 잘 쓴다, 역시 소문날만 하다...이런 식의 '확인'이 아닌 그저 쓸쓸함이었다. 어쩌면 소설의 느낌처럼 작가 또한 무척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굴뚝에 떨어져 가느다란 목소리로 울고 있는 고양이(레고로 만든 집)처럼.
<악수>에서 혼자, 손 잡아줄 사람도 앞에 없으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흉내를 내던 사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서관 입구에서 남의 학생증을 흔들며 웃어보이는 여자, 그 여자가 훔쳐다 읽는 전공서적들, 그 책에 적혀있는, 여자의 것이 아닌 학번들(레고로 만든 집)을 찬찬히 살펴보며 혹시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무심히 스쳐지나간 사람들 중 한명이 아니었을까 생각에 잠겼고 하나같이 가난하고 외로운 인물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동시에 느끼며 가슴을 쓸어야했다. 그런데 그토록 가난하고 외로운 소설 속 사람들은 담담하게 독자를 마주보고 위로한다.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아마도 작가는 외롭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인가보다.(*) [인상깊은구절] <악수> 나는 내 옆에서 연신 눈을 훔치던, 낮에 할머니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앉아 있던 자리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와 악수를 하는 시늉을 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알맞게 촉촉하고, 알맞게 따뜻한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아, 할머니도 이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구나.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사람과 악수를 했다. 그리고는 친구의 어깨를 두들겨주듯 의자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의자는, 미끄럼틀은, 그네는, 그리고 바닥에 묻힌 동전들은,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악수>악수>올해의>이상문학상> |
|
윤성희를 주목하기 시작한 건 2003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그 남자의="" 책="" 198쪽="">을 읽으면서다. 간결한 드라마 같은 구성. 김영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에 읽은 책이었는데 오히려 김영하의 작품은 별로였고 윤성희의 작품이 가장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기대를 갖게했던 윤성희의 소설집, <레고로 만든집="">을 읽었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던 것. 작은 이야기들로도 슬플 수 있구나. 윤성희의 이야기들은 작고 촘촘하다. 왜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남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괜히 나 혼자 눈물이 핑 도는.
윤성희의 이야기들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듣지만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후에 물래 훌쩍이게 하는. 신경숙의 이야기들이 갖고 있는 관계나 본질에 대한 슬픔과는 또 다른 슬픔.
그녀가 펼쳐갈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어디서 만났죠.”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침마다, 조깅하면서……” 아! 그는 보고 있던 신문을 접어 겨드랑이에 끼우고는, 아침마다 인사하는 식으로 한쪽 손을 살짝 들었다. 그런데, 빨간 운동복이세요, 아니면 흰색에 감색 줄이 쳐진 운동복이세요. 내 운동복은 하늘색이었다. 그가 내 어깨를 스칠 듯 지나갔던 것은 그냥 우연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그가 만나는 몇 개의 운동복 중 하나였다.레고로>그> |
|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에 나는 윤성희의 글을 좋아한다. 억지로 잘쓰려는 기교도 보이지 않으며 자신을 꾸미지도 않기 때문에 더 매력이 느껴지는 작가이다. 윤성희의 소설들은 때로는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얼핏보아서)줄거리를 읽으려고 한다면 재미없지만 그 안에 숨겨진 알레고리를 찾아가며 읽노라면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들을 나또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도록 해주기도 한다. 데뷔작 <레고로 만든집="">은 신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놀라운 글 구성력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복사기에 자신의 얼굴을 직접 대본다거나 어미를 잃은 고양이의 등장등... 직접적인 재미나 여성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행과 행사이에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게 윤성희 작품들의 특성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앞으로 발표될 그녀의 작품이 기다려진다.레고로> |
|
요즘 눈에 뛰는 신인들을 찾기가 어렵다. 윤대녕, 김영하, 은희경, 전경린 등 드라마틱한 등장을 통해 한국문학의 물줄기를 바꾸게 한 즐거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는 요즘의 우리나라 문단이 퍽이나 따분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윤성희는 돋보이는 신예작가이다. 각봉 문학상 후보작으로 그녀의 작품이 꼭 올랐다는 것만은 아니다. 꼭 그녀의 소설이 교과서석인 모범, 단정함을 보이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윤성희 자신이 인터뷰 상에서 밝혔듯이 그녀의 작품은 고루하다. 어떤 생생한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질투를 느낄만큼 기말한 기지를 발견할 수도 없다. 비록 위악적이라 할 지라도 세상에 대한 도발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그러나 그녀의 소설은 현실을 딱 그만큼만 묘사하는 어떤 날건조함이 있는 듯 하다.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어둡지만은 않게, 구질구질하지만은 않게, 영 감정적이지만은 않게... 냉담하게... 가일상의 단면을 딱 꼬집에 느낄 수 있게 묘사하는 실력이 안정적이다. 그 안정함이 그녀의 성실함에서 비롯되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기에 앞으로 그녀의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부엌 창으로 달빛이 어렴풋이 들어온다. 옆집 옥상에 볼품없이 솟아 있는 굴뚝이 달빛을 받아 부엌 쪽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그 그림자의 끝을 바라본다. 그림자 끝이 전기 밥솥의 그림자와 한데 어우러진다. 전기밥솥에서 보온을 알리는 불빛이 깜빡거리고, 나는 그 불빛 주기에 맞춰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
| 윤성희 작가에 대한 평단의 평판은 한 마디로 ‘재능 있는 신예’ 라고 한다. 나도 이 말에 한표 던진다. 그녀는 이제 30대 초입에 들어선 기대주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작 <레고로 만든="" 집="">으로 등단한 그녀는 ‘올해의 좋은 소설’, ‘이상문학상 수상집’등에서 간간히 작품을 대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내면과 외면에 대한 섬세한 필치로 기억된다. 단편과 단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였지만, 하나하나 대할 때마다 작가와 더욱 밀착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화두는 ‘가난’. 그녀의 등장 인물들은 항상 가난하다. 그리고 세상을 어렵지만,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등단 작품인 <레고로 만든="" 집="">을 읽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픈 존재로서의 인간’, 즉 삶에 체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녀의 다른 작품 속에서도 가난아래 인간의 체념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가난은 경제적인 가난만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난한 인간성이기도 하다.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 공간에서 마음과 몸이 가난한 인간이라는 존재에 우리는 작가와 공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작가는 항상 누군가를 추억하며 잊혀진 흔적들의 조각 맞추기를 시도한다. 혹은 전혀 모르는 어느 사람의 조각 맞추기도 시도한다. 이런 시도는 누군가와 더불어 살고자 는 욕망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 <계단> 등의 작품이 인상적이였고, 외로움과 이에 탈출을 기도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필력을 느낄 수 있었다.계단>당신의>이>레고로>레고로> |
| 윤성희 단편집 『레고로 만든 집』을 읽어보고 싶어진건, 작가의 이름 때문도, 제목이 와 닿아서도, 내용이 흥미로워서도 아니었다. 1973년생. 지금 나이 29살. 등단 1999년. 윤성희의 프로필을 결론 내보면, 27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는 것인데, 등단이란 것이 서른을 넘은 나이에서도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어쩌면 부러움일 수도 있고, 혹은 도대체 어떤 글이길래, 라는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등단 후 첫 단편집 레고로 만든 집에는 총 10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자 제일 앞에 있던 레고로 만든 집을 읽은 하날이는, 사실, 어떠한 설명도 부연도 없이, 그저 주인공의 행동만을 묘사하는 소설의 의미를 찾아내기가 너무 어려워서였는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이 책이 마음에 다가온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책을 찌라시에 소개하지 않는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만큼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작품 두 작품, 읽던 나는, 이 단편집에 수록된 주인공들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각기 다른 직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다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이들은 상황은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외로움. 혼자.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그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때로는 다른 사람을 통해, 때로는 자신을 통해, 찾아가고 있었다. 전부 같아 보이는 그들을 보며, 지루하다기보단, 어떤 한 사람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 나중에는 읽기가 매우 즐거워지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한편을 읽을 적마다, 나는 프로필을 들춰 윤성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했다. 혼자 있는 주인공들, 외로운 주인공들, 그럼에도 버티는 주인공들,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는 주인공들.. 그 모습들이, 너무도 직설적으로 느껴져서, 혹시 작가 당신의 모습 역시 그러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성희의 소설을 보면, 어떤 행동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냥, 가볍게 읽어보면, 약간은 싸이코틱한 행동들의 묘사를 그저 늘어놓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은 복사기에 자신의 얼굴을 프린트하고, 종이 비행기에 동전을 올려놓고 날려보기도 하고, 자동차를 멀리서 보면서 손으로 조종하기도 한다. 그 행동을 읽다보면, 그 행동을 왜 하게 되었는지 뭔가 설명을 원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런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 단편집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설명이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결국은 그 주인공이 다른 사람도 아닌, 결국엔 혼자여서 외로운, 우리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생활에 혹은 자신의 가면에 가려져 스스로도 때때로 망각하는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아를 찾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읽어본 사람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도 윤성희의 소설을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소설을 읽음으로서 스스로를 찾아가고, 위로 받음은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됨과 동시에 내 스스로가 인간임을 즐기는 일이 될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걸 알고 있는 넘들은 한번 읽어봐라.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혹시, 또 아는가, 이 외로운 세상에서 동지를 얻은 기분이 들지도. 반드시, 혼자라고 생각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넘들만 읽어봐라. 그렇지 않은 넘들은, 공유하긴커녕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기묘한 가게( http://www.odd-shop.com )의 하날 씀, |
|
제목 : 레고로 만든 집, 2001 저자 : 윤성희 출판 : 민음사 작성 : 2009.11.12. “다른 모습으로 조각된 삶이라도, 결국 우리는 닮은꼴이란 말인가?” -즉흥 감상- 아무리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 예상되는 반복에 가까운 일상이라도 예기치 않은 변수는 존재하나 봅니다. 아무튼,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버린 만남이었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와 어딘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은 오빠와 함께 살고 있으며, 본인은 이런 생활이라도 유지해보고자 복사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한 여인의 이야기인 [레고로 만든 집]으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던 또 다른 여인이 집의 이전 주인이었던 다른 여인과 자신을 혼동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로 계속되는 이야기의 장이 열리게 되는데요. 아무튼, 앞선 이야기에서 종적을 감춘 여인으로 인식되는 사람과 관련하여 그녀의 옷과 수첩이 식당에서 발견되었지만, 찾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의 수첩에 기록되어있는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서른세 개의 단추가 달린 코트], 기념일 안내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 [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은 잠시,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자신이 받아왔던 경품들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 [악수], 자살과 일상의 다양한 죽음들의 경계를 마주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림자들], 개인의 운세를 알려준다는 ‘달력자판기’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그림을 맞춰나가는 두 여인의 이야기 [모자], 검은 정장의 남자들을 피하는 중이라는 남자, 죽음이 자신을 피해간다 말하는 남자,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사망소식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 여인의 이야기 [터널], 같은 연립주택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층만 아니라면 된다는 두 남자가 서로의 집을 바꾸게 되면서 또 하나의 인연이 꿈틀거리게 되고 [계단], 늦은 밤의 시간. 정전과 함께 울려 퍼지는 어떤 여인의 비명소리를 저 멀리서 듣게 되었다는 것으로, 주인공 여인은 자신의 친구와 함께 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게 되는데 [새벽 한시]와 같은 이야기들이 하나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간추림만 보셔도 눈치 체셨겠지만, 이번 작품은 단편집입니다. 그것도 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 Heartbreak Library, 2008’을 통해 알게 된 윤성희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 만나보게 된 이번 책은, 음~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읽기 힘들었습니다. 뭐랄까요? 초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부드럽거나 자연스럽지 않았다기보다는 아직 더 다듬어질 수 있을 원석과 보석의 중간 단계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러면서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가지를 조금씩만 더 뻗게 될 경우 하나의 덩어리가 되지 않을까 나름 긴장(?)하면서 만남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 197페이지. 그곳에 저의 시선을 잡아끌었으며 위의 즉흥 감상을 이끌어낸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결국 우리들은 모두 닮은꼴이에요.’인데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야기들은 서로 닮아있는 체로 두는 것이 가장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그 어떤 이야기들과도 차별화 되어있습니까? 아니면, 무수한 닮은 속의 일부분 입니까? 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바쁜데 그런 생각이나 할 시간이 있긴하냐구요? 음~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상대적인 입장차이니, 비슷함 속에서 자신만의 맛이 나는 삶을 인지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지 않을까 해보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이야기 묶음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 하나 가득 우울하고, 이가 빠져있는 것 같기에 서로의 조각을 맞춰보고 싶어 안달 나게 한 이야기들의 묶음. 그럼,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던 일상 속에서 놓쳐버리고 말았던 저자분의 또 다른 단편집인 ‘감기, 2007’을 만나보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군요.
TEXT No. 1069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