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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단순히 나무를 형상화했구나 에 머무는데, 이중적 의미로 다가왔다. 새싹일 수도 있고, 이미 고목이 되어 잔 가지는 다 잘려나간 쓸모없는 보다는 단순해짐의 의미.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함 같다. 아울러 자신도 그렇게 되고 있다는, 될 것이라는 암시 내지는 관망 혹은 바람.
제목을 보고는 자신을 위하여 행복하라는 의미인 줄로만 딱 생각드는데, 책을 읽고 나니 책 안에서 유년의 고독하고 서글펐고 몸과 맘 둘 데 없었던 자신에게 행복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역시 이중적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이책은> 파란 토끼 13호 님의 개인 이벤트 작년 당첨 선물.
<저자는>
<책읽은 소감> 저자의 전작 '환상'은 진즉 읽었지만 못 썼고, '나에게도 너에게도 상처로 기억될 시간이 지나간다'를 읽고 썼는데 그 책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때문에 이미 읽었던 내용들이 오버랩되고 때론 생소했다. 모호한 경계는 여전했다. 실제 이야긴가 싶으면 소설이고, 소설이라고 읽다 보면 실제 이야긴가 싶다. 소설인 책 속에 소설이 여러 편 등장한다. 소설책 안의 '나'는 소설가로 서영이다. 이 책의 저자도 서영이니 여기서 묘한 복선을 주는 것. 책 안의 소설가가 쓴 소설이 저자 이야기 같기도 그냥 소설인가 싶기도 하다. 이런 경험은 짜증을 유발시켰다.
'나'는 상처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상처 없는 삶이 있으려나, 상처 없는 인생이 쉬울까. 모든 글은 개인의 삶이든 지인이나 타인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는다고 본다. 그렇게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하기도, 유사하게 모방하거나 변형시켜서라도 이야기가 만들어질테다. 글 뿐이 아닌 노래말도 그럴테다. 아무런 연유없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모름지기 소설이란 어떤 모티브가 영향이 되어 파생되거나 비스무리하게 쓰여진다는 생각이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사람일까. '나'의 바람일진대 그건 '나'의 유년 시절의 상처가 하도 많아서 소설만큼은 상처 없는 소설을 극구 쓰길 염원하지 싶었다.
결말 부분에서는 저자 스스로의 이야기라 확실하게 알겠는 부분이 등장한다. 먹먹하다는 표현도 적당하지 않고 아리다는 표현이 더 가까우려나. 저자는 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전도유망한 법대생이 되어야할 사람이 청춘을 분질러야하는 싯점. 모친과 고모가 희귀병에 걸려 돌볼 사람이 없는 상황. 장남(장남은 뭔죄?)도 아니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봄을 실천한 분. 돌아가시면서 고모가 미안했다 란 말을 하지 않고 고마웠다 라는 말을 했기에 희생(?)의 시간들이 속절없지 않았음으로 평생 위안이 된 분. 허나, 불어난 빚들은 살던 곳을 떠나야했고...돈 개념이 없던 어머니가 떠나고 무뚝뚝한 아버지와 살게 된 사내 아이.
그야말로 부모의 정만을 오롯이 먹고 살아야했던 사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감정 표현에 인색한 아이가 되었다. 일언반구 말도 없이 멀리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며 배고파서 고사리 손으로 설익은 밥을 짓고, 남의 채소 푸성귀를 따고, 딱히 여긴 사람들의 온정이 아주 조금 보태지고, 깐난이가 보여 주는 친절하며...아버지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소용없음을 체득할 때마다 더 말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아버지의 잇따른 실패, 실패. 그럼에도 보채지 않는 사내 아이. 보채야 받아 주지 않을 걸 일찌감치 알아버린 사내 아이.
'나'가 쓴 책 안의 소설들은 저마다 한자락씩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읽어냈다. 아린 마음으로 싸아한 가슴으로. 안쓰럽고 딱하고 가여운데 글이 덤덤하고 건조해서 섣불리 동정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떡하면 짜내듯 구절, 구절이 힘겨운지. 저자는 글을 쓰고 나면 몇 킬로그램은 감량되지 않았을까. 감정이 다 지나간 자리가 아닌, 벗어던졌다지만 기저에는 여전히 살아 있어. 상처로 점철된 유년 시절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색채는 늘 그 색. 그 어둔 색에 실린 무게들이 알지 못하는 새 서서히 가벼워지고 있는 중으로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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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은 나서영. 멜러 드라마 여자주인공 느낌이 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 소개를 보니 이름이 주는 느낌과 달리 남성작가에, 그것도 이십대였다. 놀랍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대체 이 팔팔한 작가에게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형식이 조금은 복잡하다고 할까. 생소하다고 할까. 젊은 작가의 패기라고 받아들이긴 했지만 내가 나이를 많이 먹긴 먹었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될 때가 이렇게 생소한 소설형식을 만날 때이다. 전통적인 형식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안그런데, 머리가 굳은건지 시간 구성이나 이야기 구성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이야기를 잘 좇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새롭고 흥미로운 전개라고 받아들일 마음은 갖고 있는데 일단 이야기를 좇아가게 급급하게 되니, 긴장하게도 되고,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최대한 여유를 갖고 천천히 완보하듯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헷갈렸다. 작품 속 주인공 작가이름이 나서영이라. 자전적 소설인가. 아이가 주인공인 작품을 쓰는 나서영. 상처받은 아이였다. 그러다 이 이야기를 더 써야 망설이는 상황에서 익명의 편지가 전달되고..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리고 다 읽고나서는 자신이 없었다. 이 이야기의 내용을 내가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는건지. 아이,깐난이, 보라,(나서영작가),'너'의 이야기가 혼재돼 있었다. 다만 이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가 '상처'라는 것만큼은 감지할 수 있었다.
생채기 하나 없는 소설을 쓰기를 원하는 작가 나서영. 그는 주인공에게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한다. 그런 바람과 달리 그의 작품에서나 현실에서나 상처투성이 인물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그의 소설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독자도 있었고, 그가 상처줘서 떠나게 만들기도 하고.
인상적인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말아달라는 '너'와, 서영의 작품을 읽고는 이거 너의 이야기냐고 묻는 서영친구의 물음이었다. '너'는 서영이 행복한 이야기를 쓸 수 없는 작가이기에 소설 속에서라도 불행해지기 싫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 행복하란 말은 '너'가 떠나면서 서영에게 남긴 말이었다. 행복해져서 행복한 소설을 쓰라는 당부였는데, 그렇게 떠난 '너'가 서영에겐 상처로 남게 된 아이러니라니. 나서영은 과연 행복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는 다 읽고 나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진 작품이었다. 재미있었던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작품인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정리가 안되는 건지..생각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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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단 하나의 생채기도 없는 소설이 존재할까? 행복하기만 한 소설, 상처를 주지 않는 소설이 존재하기는 할까? 평소 단편소설을 좋아하지 않고 장편소설을 더 많이 읽었던 이유는 난해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책을 오랜 시간 동안 읽게 되면서 단편 소설의 난해함을, 생략됨을, 몽환적인 분위기를 어느 정도 즐기게 되었다. 그로 인해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은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뭐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 읽고 나서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젊은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무엇을 느끼라고 이런 글을 쓴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특별히 줄거리라고 말할 그 무엇이 없다. 주인공 나(작가와 같은 이름의 서영)는 글을 쓰는 작가다. 그는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있다. 그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아버지는 상처를 안고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이의 생활을 그린다. 동네 형들에 의해 도둑질을 강요당하고 그 형들로부터 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잘 살아간다. 그리고 또 한 이야기는 서영이 주축이다. 서영에게 어느 날 익명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그 편지는 서영의 작품 때문에 죽겠다고 한다. 자신의 소설이 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그로 인해 작가 서영은 상처를 받지만 그 익명의 편지 주인공에게 다시 답장을 쓴다.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어떤 구분 없이 펼쳐진다. 누구나 상처는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때론 상처가 너무 커 그 상처에 매몰되어 슬프게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무심히 바라보기도 한다. 상처를 입었지만 이 순간도 지나가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어떤 축에 끼는 사람일까? 나도 한때는 상처 속에서 나를 아프게 했던 것 같다. 그 기억을 지우지 못했고, 때론 그 기억으로 복수하듯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는 적극적으로 아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금방 효과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오랜 흉터로 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세상에 행복하기만 한 사람도 없지만, 상처로 아프기만 한 사람도 없다. 그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것은 어떨까? 또한 나에게 상처 준 것만 생각하지 말고, 혹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면... 상처 자체에 너무 깊게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가능하면 행복한 소설을 쓰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환하고, 살아갈만하고, 살아볼만 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 없이 성숙할 수 없고, 아픔 없이 자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엔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이나 상처, 연인에게서 받은 사랑이나 상처가 모두 포함 될 것이다. 지난 상처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자. 잊을 수 없다면 그 상처에 약을 뿌리고, 소독을 해 빨리 딱지를 만들어 새살이 돋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리뷰를 다른 이웃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올라오면 좋겠다. 다른 분들은 이렇게 해석했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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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가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작업실을 만들고, 6인용 탁자에 앉아 소설을 궁리한다. 쓰고 싶은 소설은 상처가 뭔지도 모를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 시작은 하지만 그런 소설은 결코 쓸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삶은 그렇게 상처하나 없이 살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는 깐난이라는 난쟁이고 등장하고, 그 깐난이는 어린 서영이의 단 하나 뿐인 친구가 된다.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 소설가에게 사람들을 구분하라면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미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된 소설가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소설을 쓰기만 한다. 그러면서 간절히 바라게 된다. 자신이 쓴 소설이 좋은 소설이기를. 좋은 소설의 의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좋은 소설이란 작가의 삶과 일치될 때 나온다는 깨달음. 그래서 아마 이번 소설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 소설에 자신의 삶을 담아보기.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한 나는 ‘상처’에 유독 민감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상처도 주고받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힘들다. 감당하기 힘든 폭력 앞에 너무 빨리 노출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려 든다. 어린 시절 상처를 준 아버지는 어느덧 늙고 병든 모습으로 삶의 비밀을 말해준다. 삶은 승과 패가 순환하는 구도이니 승리했다고 자만할 것도 없고, 패배했다고 절망할 일도 아니라는 것. ‘나’는 젊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의 말에 수긍하지 못한다. 부모의 부재와 폭력이 만들어낸 상처는 어느 새 남의 상처에 둔감해질 뿐만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입혀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을 만들어 내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와 젊은 시절 자신이 낸 상처를 이야기한다. 이 상처가 이렇게 세상에 나온 만큼 이제는 아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가미된 소설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기를 읽는 듯 몰입되기 쉽지 않았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독자가 읽고 싶은 내용이 일치되는 일은 어렵다. 작가가 꼭 쓰고 넘어가야할 이야기였다면 이 이야기를 디딤돌 삼아 좋은 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가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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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각을 뛰어 넘는 얘기를 만났다. 특별한 호흡을 지니고, 특별하게 얘기를 이끌어 나가는 시선을 만났다. 이런 방법의 얘기 진술도 있나, 이런 것도 소설이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무시하게 만들고 있다. 타성에 젖은 독자들이 읽기엔 조금 힘들겠지만 의외로 신선함도 있었다. 무한히 반복되고, 잡다한 많은 얘기들이 섞여 있는 우리의 혼란스러운 일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주된 이야기의 흐름은 소설가가 소설을 쓴다는 내용이다. 그 소설은 ‘얼굴이 희고 작은 입술이 붉은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그런데 그 겪는 이야기가 또 가지를 쳐, 다른 이야기들로 변화해 간다. 문제를 가진 형들에 의해 강요당해 가게의 물건을 훔치는 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연이 들어 있다. 그것이 들켜 가게 주인에게 혹독하게 당하고 있는 현장에 어떤 여인이 도와준다. 그리고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행해 진다. 그런 후에 이야기가 이어나가기 쉽지 않자 여인을 난쟁이로 만든다. 상처 입은 어린 아이의 삶 속에 난쟁이는 소중한 벗이 된다. 그런데 난쟁이는 세상의 험악함 속에 이용되다가 죽게 된다. 아이는 그 슬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난쟁이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밑도 끝도 없는 내용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내용 속에 곳곳에 들어와 있다.
보라의 얘기가 있다. 보라는 소설가인 내가 ‘의식의 흐름’이란 작품의 모델로 쓴 인물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주변의 인물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여인이다. 너무나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녀는 작가에게 묻는다. “과거는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는가?” 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작가의 말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이 소재가 되어 써진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도 소설가를 소재로 해서 글을 쓰겠다는 얘기도 한다. 그만큼의 아픔이 소화되지 않는 상태로, 체념의 상태로 나타난다.
또 소설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미지의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당신 때문에, 당신의 글 때문에 죽겠다는 협박이다. 자살을 암시하는 편지는 나에게 큰 고통이 된다. 그래서 미지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게 되고 답장을 받는다. 그러다가 그 독자를 찾아 나서게 되고 깐난이를 만난다. 그리고 어릴 적 소중했던 추억인 깐난이에 대해서도 얘기를 한다. 늘 아버지가 술주정하는 어려운 나의 삶 속에서 위로가 되어 주었던 깐난이, 어려울 때면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의 기억은 내 삶의 아픔이다. 어린 아이가 만나는 세계는 정적하지 못하고 가난한데, 그런 것들이 깐난이를 통해서 떠오른다. 현실 속에서도 어려운 아이를 만나면 깐난이가 연결되어 나타난다.
결국 이 글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작가가 된 나의 어린 시절이 어린아이의 얘기로 만들어 지고, 그 어린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슬픔의 얘기를 액자 형식으로 넣어두고 있는, 그러면서 두 개의 이야기가 축이 되어 이루어져 나가고 있는 글이다. 얼굴 붉은 아이와 소설가인 내가 서로 교차하면서 시간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 속의 내용들이 참람함을 너머 깊은 상처로 그려진다. 세상이 이렇게 사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파편처럼 그려내고 있는 글이다.
커다란 피로는 일층에서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마저 오르지 못하게 한다. 계단 몇 개만 오르면 작업실이었지만 약에 취한 것처럼 머리조차 가눠지지 않는다. 털썩 주저앉자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차라리 이대로 잠에 들어 영원히 꿈속을 헤매고 싶다. 깨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깨어나 봐야 별 볼일 없는 현실, 다시 깨어나 봐야 하릴없는 삶, 의미가 없다. 나의 의식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의식 상태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의 연속, 작품의 아픔이 느껴지는 일상이다. 이러한 일상이 작품 전체로 흐르는 주인공의 모습이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되어 가슴이 끔찍하다. 소설가는 아프다. 그런 그에게 ‘얼굴이 희고 작은 입술이 붉은 아이’가 다가온다. 27살이 된 소설가는 그에게 듣는다.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하는 소리를. 읽지 않았더라면 더 나을 뻔했던, 전체적으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많이 아프다.
당신이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 있습니다. 오직 당신에게만 이 소설을 읽도록 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많은 상처가 담겨 있습니다. 저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단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단락이다. 이 단락은 주인공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익명의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들어 있는 글이다.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해 두고 있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이 되리라.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아픔으로 일관되어 있어, 읽기에 피곤함이 몰려온다. 건강함이 사라진 오늘의 사람들, 그 한 부분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지 않나 여겨진다.
어린 시절과 현재가 교차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가 고스란히 재현되는 모습이 아프다. 사랑과 이별의 내용이 그렇고, 가난한 삶이 그렇다. 지난 시절 가난 때문에 험악하게 살아야 했던 삶이 고스란히 녹아 흐르고 있다. 헌데 그것이 삽화 형태로 들어가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흥미보단 그 내용이 주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이 다음에는 보다 더 긍정적이고 환한 세상을 담았으면 하는 마음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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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지난 작품 <나에게도 너에게도 상처로 기억될 시간이 지나간다>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소개되어있다.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작을 읽고 다시 읽어봐야하는 것 아닐까?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라는 제목때문에 행복에 관한 책이라고 지레짐작해버렸다.그런데,읽는 내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계속 멈추어 생각해야했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라고 얘기했는데,상처를 주는 사람,상처를 받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전적 소설인가라는 생각을 했다.소설 속 주인공 이름이 서영이어서일수도 있고,직업이 같아서일수도 있고,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많으니까.소설의 전개방식이 너무 복잡하다.숨은 그림찾기를 하는 느낌.너무나 여러가닥으로 흝어져 있다.복잡함 속에서 무언가 명확한 걸 끄집어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그래도 너무 복잡하다. 얼굴이 희고 작은 입술이 붉은 아이가 만들어 가는 이야기.그 속에는 깐난이와 아버지의 삶이 있었다.행복했다고만은 할 수 없는 그들의 삶.뜬금없이 그녀의 고백을 막기위해 등장한 소설 속 소설 난쟁이가 있었다.난쟁이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오히려 그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고 아픔이 느껴졌다.하지만 소설 속 화자 서영은 난쟁이를 사라지게 했다. 또 다른 인물 보라.의식의 흐름이란 소설 속 인물이면서 실존 인물.그녀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차라리 읽지 않는게 좋았을 걸싶었다.하지만 서영과 보라의 대사 속에서 나오는 말처럼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는 걸로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걸까? 소설은 소설뿐이라는 게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과거는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냐라는 보라의 반복적인 물음은 뭘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또 다른 줄기는 몇 번인가 서영에게로 날아오는 편지.무거운 죽음을 담고 있지만,누가 보낸 편지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결론도 없이 숨어버렸다.커단란 비중을 차지한다는 느낌이었는데,흐지부지 되어버려서 정말 중요한 이야기였나하는 의심이 들었다.알고 싶었다.그 편지들의 의미를.다시 이 책을 전작으로 하는 새로운 책이 등장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오빠,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약자래,그래서 나는 항상 약자야." 끊임없이 이 말을 반복하며 서영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여자.이 여자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메세지는 분명했다.행복해져서 행복한 이야기를 쓰기를 바란다는 것.그녀 스스로는 서영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불행했지만.서영의 행복을 비는 사람이었다.그게 사랑의 힘이란걸까? 그러면 자신도 덜 상처받게 되는 걸까?
여러 이야기가 얽혀 있어서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고,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어려웠다.내가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 책을 덮으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 받는 사람들은 많고,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내가 상처 입지 않으려거든 타인에게도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것.그렇게 하다보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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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금은 비겁하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가보다. 그것이 상처인지도 모른체 하고 말이다. 그것을 모른체 하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경험이 되겠지만 자꾸만 아프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치유가 필요한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속의 보라가 서영을 찾아와서 계속 확인하듯이 되묻곤 했던 질문이 과거가 정말로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느냐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일것이다. 우리는 안다.과거는 분명 지금에 영향을 미쳤고 그것을 어떻게 내가 극복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교과서적 답편을 알고 있다. 그런 말을 한 서영 역시도 자신이 위선적이라고,가식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것은 본인도 그렇게 믿고 싶어서 일것이다. 소설속의 많은 인물들은 다들아프다. 그것을 표출하고 사느냐 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느냐의 차이일뿐이다.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이냐의 근본적인 질문이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일이다. 처음 소설속의 소설의 얼굴이 희고 작은 입술이 붉은 아이의 이야기 부터 시작하면서 역시 이것은 자전적인 소설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마치 소설은 과연 어디까지가 소설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을 쓰면서도 괴로워하고 죽음을 생각한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고 부터 더욱더 서영은 힘들어하면서 결국 외면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말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속에서도 말했듯이 무심히 내뱉는 말에도 업질러진 물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정말 의도하지 않지만 어떤때는 마구 나쁠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얼마나 고민하고 있었는지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난쟁이가 태평사에 갔다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찢어버리고 말았을때 나도 이샹하게 아팠다. 난쟁이가 내키지도 않은 사진작업을 응하려는 까닭은 오히려 순수했지만 다가오는 것은 상처이기도 했으니까... 정말 좋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마음은 어쩜 가장 순수했다. 그러하기에 그 편지에 답장을 쓰고 그를 찾아나서고... 그리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않는 소설을 쓰려고 하고 그래서 그는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었다. 그리고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말들이 존재했다. "소름끼치는 이질감 속에서 현실감을 되찾는다.(중략)소설을 쓰던 나는 늘 두어 걸음 물러난 채 서 있었다고, 늘 도망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현실은 더 이상 비겁한 따위에 속아주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거싯과 속임을 모른 척 속아줬던 인내심은 바닥났다. 비겁함으로 외면할 수 있는 현실은 없다."p136 이런 현실이 내게도 있기때문일까? 성장한 아이가 병상의 아버지에게 가서 깐난이가 어딨는 지 묻지전에 아버지에 이야기에 하려던 말도 그러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찾으려 했던 그 주인공은 그에게 부탁한다. 그 부탁처럼 나도 그렇게 바라게 된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으니까...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결국 그 것을 바랬으니까...모두가... 행복 소설<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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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내가 느낀 느낌을 남기고싶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리뷰를 읽으면서 참, 같은 소설이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고 생각했네요. 어쩌면 살아온 살아가는 환경이 달라서인지도 모르겠네요. 리뷰를 남기는데 전문성이필요하다면 저는 남길 자격이 없겠어요. 허나 느낀 바를 쓰면 되는 거라면 좋겠네요.
이곳은 예술의 거리라고 설명하면서 소설은 시작했어요. 그리고 작가가 등장하고 작가는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순수한 소설을 쓰려고 한다고 합니다. 작가가 쓰는 소설은 그대로 이야기가 됩니다. 어린아이가 등장하고 혼자서도 잘 노는 그런 아이에요. 시골에서 살고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불량배가 아이를 괴롭힙니다. 아이는 불량배들과 어울리기 싫지만, 후에 보니 덩치가 작은 것에 콤플렉스가 있어 불량배와 어울리는 것을 원하기도 하면서 원치 않기도 하는 거였어요.
소설은 작가의 현재와 작가가 쓰는 소설 이야기를 왕복하는 것 같지만 뒤에 보니 주인공 1인칭 시점이었어요. 아마 다른 분들은 대충 읽거나 아니면 놓친 부분이었을 거에요. 작가가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소설에 고스라니 드러나며 진행됩니다. 작가가 현실에서 밥을 먹으면 밥을 먹는게 소설이고 소설을 쓰면 그 이야기가 소설이고 누군가를 만나면 누군가를 만나는 이야기가 소설이고 편지를 읽으면 편지를 읽는게 소설이에요. 그저 작가에 몰입해서 하루하루를 같이 보내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가는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쓰면서 순수하고 상처가 없는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해요. 처음에는 왜? 왜 그럴까? 싶었지만 어린아이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난쟁이와 깐난이의 이야기를 마저 읽으면서는 왜 작가가 소설을 쓰다가 거듭 멈추고 이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써도 될지 고민했는지를 깨달았어요. 소설의 뒤에 작가는 단 하나의 생채기도 없는 소설이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이제야 이해한다고 스스로 깨닫는데, 참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슬펐어요. 작가가 쓰려는 어린아이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였거든요. 그래서 억지로라도 상처가 없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는 탓에 그럴 수없어 괴로워했어요.
작가에게 편지가 도착해요. 작가가 쓴 소설을읽고 죽겠다고 말하는 불길한 편지에요. 작가는 그 편지를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 답장을 보내며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배우는 것 같아요.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지만... 작가는 깐난이가 보냈다고 생각하고는 깐난이를 찾아가요. 그리고 너무도 아픈 재회가 이뤄졌어요...
작가는 난쟁이를 찾아가고 슬피 울어요. 그리고 시골집을 찾아가요. 시간속에서 낡고 허물어지는 집이에요. 바로 어린아이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골집이었어요. 저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무너져가는 시골집에서 작가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바라보기 시작해요. 어린아이가 견디고 바라보는 삶의 무게와 상처를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워하지요. 지나간 시간은 그대로 가버리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게도 그런 시간 그런 사람들이 존재할거예요... 작가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바라보며 차라리 도망치라고 외치지만 닿지 않아요. 그래서 더 서글펐던 것 같아요. 지나간 시간 속에 깃든 상처는 어떻게 해야 아물 수 있는 걸까요?
"나를 위해 행복하세요."
저는 이 대사가 너무도 마음이 아팠어요.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마주봤을 때 지나간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는 미래의 내게 결코 험한 말을 하지 않을거예요. 어떤 아픔 속에 놓여있더라도 나는 괜찮다고,,, 그러니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할거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너무도 마음에 아팠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두 명의 여자,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줘요. 아픈 이야기지만 그 상처가 봉합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비춰줬다고 믿어요.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진짜고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초반에 말해요. 소설은 내 마음에 담긴 그대로 존재하게 나두라고. 어쩌면 저같은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가짜인지 진짜인지 고민하지 않고 내 마음에 느끼는 그대로 담아두려고 해요. 나에게도 너에게도 상처로 기억될 시간이 지나간가, 라는 소설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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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현재 시점으로 독백하며 진행된다.
주인공은 이십대 후반의 남자이며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 남자가 쓰는 소설 이야기가 드러나며 이야기
는 두 개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의 시점, 주인공이 쓰는 소설의 시점.
(나에게도 너에게도 상처로 기억될 시간이 지나간다, 를 읽은 사람들은 이해가 쉬울 것이다.)
주인공은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순수한 소설을 쓰고자 한다. 허나 자꾸만 소설은 나아가지 못한다.
주인공은 그 이유를 알고 있으나 애써 모른 척 하며 고민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현재 시점에서
다른 등장인물이 나와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주인공의 친구, 편지 그리고 보라 등등.
주인공은 자신의 현재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삶과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러고나서야 다시 소설을 쓸 수 있는데, 주인공이 쓰는 소설 안에서 아이는 난쟁이와 깐난이 그리고
동네형들에 의해 상처를 입고 받는다. 어쩌면 상처를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소설을 쓰는 내내 고민하고 두려워한다. 소설을 쓰고자하는 의지와 누군가를 소설에 쓴다는
마음의 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익명의 누군가가 소설에 등장하는 누구라고 생각하고는 현실에서 찾는다.
그리고 바라보게 된 과거의 상처, 그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맞닦드리고 아픔을 느낀다.
허나 그런 상처를 견딘 자신은 미래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소설은 우울한 빛을 띠고 있다. 밝고 명랑한 소설이 독자들에게 지지를 받기에 그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기를 고사해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소설 안에는 많이 이야기가 담겨있고 많은 상처와 그 상처를 견디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 상처를 바라보며 나는 내 주변의 지나간,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나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었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상처로 기억될 시간이 지나간다, 를 처음 읽었을 때처럼 내게는 좋은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