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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법률회사에서 antitrust 부분에서 일을 하던 Michael Brock은 어느 날 회사에 총을 들고 들어와서 변호사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가 경찰에게 사살 당한 한 홈리스의 인질이 되는 경험을 한다. 사살 당시 인질범 바로 뒤에 있다가 인질범의 피로 흠뻑 젖어 충격을 받았던 마이클은 왜 인질범이 자신들을 인질로 잡았었는지 궁금해 하다가 홈리스의 세계로 들어 간다.
결국 인질범이 살던 창고에 살던 다른 노숙자들을 강제로 거리로 내 몰아 다른 노숙자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자신이 다니던 법률회사라는 것을 알고 법정 투쟁을 통해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이 저자의 최신 작품인 Appeal과 비교하면 점점 시니컬해지는 저자의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street lawyer에서는 비록 법률회사가 잘못했지만 그 잘못은 법률회사의 조직적인 잘못이라기 보다는 한 파트너의 잘못이고 나중에 법률회사의 수장은 홈리스를 위한 무료법률 서비스에 기꺼이 자신 회사의 변호사들을 합류 시킨다. 책의 출판연도를 보니 1999년이다. 아마도 911이전의 미국의 가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appeal에서는 고통 받은 민초들은 끝내 소송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다.
마이클의 독백대로 30일 동안 여피 변호사의 삶이 거리변호사로 변하기까지 매우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
| 나는 이 소설이 문학적인 완성도가 있는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진국 중에서도 사회적, 경제적 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는 평판을 받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존 그리샴의 다른 소설들을 읽은 적은 없지만 영화는 몇 편 본 적이 있다. 헐리우드 영화의 단골소재로 이용될 정도로 그의 소설은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게다가 문장도 간결해 영문판이지만 읽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이 소설은 미국 워싱턴의 대형 법률회사에 있던 젊고 유능한 변호사가 노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한 법정 소설이다.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미국 대중 소설이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던지고 있는 소설이었다. 이제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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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우리들은 가난의 되물림이라고 말을 합니다. 가난 할 수 밖에 없어서 계속 가난 할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을 구제에 힘을 써야할 정부나 재벌이 오히려 더 무섭군요. 책을 읽는 동안 우니나라의 현실에 대한 생각이 나네요. 가난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그 부담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현실...
총앞에서 당당한 변호사의 홈리스들을 위한 전쟁... 자신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법률회사를 그만두고 거리로 나선다는것 굉장히 부럽군요. 중간중간 시련이 다가 오지만 그 시련보다 더 큰 연민의 정(?) 이란것이 생겨 나니 포기 할수 가 없는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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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이던 마이클을 중심으로 읽는다면 틀림없이 존 그리샴의 다른 책들보다 지루하고 평이하고 읽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홈리스의 생활과 그들의 빼앗긴 권리, 자원봉사자들의 희생,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가진자의 욕망등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나름대로 의미있는 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
마이클처럼 곧 파트너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대형 로펌 변호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거리의 부랑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질수도 있을만큼 돈과 명예, 지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현대사회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을 나누어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와 로펌의 대결구도는 좀 식상한 감이 없지 않지만 홈리스의 생활을 묘사하는 부분을 통해서 법정스릴러로서보다 사회문제제기로서 빛이 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깊은구절] The law was all we had. |
| '거리의 변호사'의 주인공 마이클은 워싱턴의 대형 로펌의 잘나가는 변호사로 몇 년내에 파트너가 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회사에 무장을 한 흑인이 들이 닥치고 마이클과 변호사들은 인질로 잡힙니다. 흑인은 결국 스왓에게 사살당하고, 마이클은 그가 왜 자신들을 인질로 잡았는지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존 그리샴 씨가 너무나 좋아하는 대형 로펌과 숨겨진 비리, 그에 맞서는 젊은 변호사 얘기라 좀 질리는 감도 없지 않은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돈과 명예만을 바라보고살던 변호사가 홈리스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은 꽤나 교훈적이고, 납득할 만한 스토리 전개를 가진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법정 싸움을 기대했지만 미지근하게 끝나버리는 것이 좀 아쉬운 점입니다. 영어 수준은 그리샴 씨의 소설중에서도 쉬운 편 같습니다. 페이퍼백 치고는 글씨도 큼직해서 더욱 읽기 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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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그리샴 소설 중에서 잔잔한 편에 속합니다. 재판과정이 자세히 나오지 않으니 어려운 법률 용어는 별로 없어요. 처음 챕터에 등장하는 홈리스 관련 사건이 충격적이고요. 그 다음 챕터부터는 이 사건을 하나하나 돌아보는 다큐멘터리같은 구성이었습니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훈훈한 마무리였지만, 다른 소설들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요. 홈리스의 생활이나 급식소 같은 곳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우리나라의 실태는 어떨지 관심을 갖게 만드는 점이 있었습니다. 너무 무심하게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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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나 다름없는 노숙자가 로펌에서 변호사를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왜 노숙자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인질로 잡혀 있던 평범한 로펌소속의 변호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일과 돈 그리고 여자를 쫓느라 죽을 시간도 없는 변호사들. 소설 속에선 그렇게 묘사되고 있다. 아마 사실이 그러하니까 그렇게 묘사했을테지. 죤 그리샴 역시 변호사였으니까. 반면에 찢어지게 가난한 변호사들도 많다. 그러나 가난한 이유엔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은 로스쿨을 나와 객관적으로 능력이 부족해서 빌빌거리는 변호사. 공익, 정의, 양심을 쫓느나 가난한 변호사. 각자의 행복추구의 방향은 다르다. 또한 만족도도 다르다.
소설 속엔 흑인 변호사가 나온다. 노숙자들의 밥을 챙겨주고, 그들에게 무료법률상담을 해준다. 인생상담은 덤으로. 길거리에 떠도는 인생들의 말을 누가 들어주겠는가.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느끼고, 위안을 얻는다. 그것이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입이 있으나 그 입에서 나온 말은, 권리는 힘이 없다. 흑인 변호사는 그들의 입을 대신한다. 대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도 로스쿨이 도입되었다. 아주 빠르게 미국형 법문화로 변화해나가겠지. 이미 사회전반적인 형태는 미국을 닮아있다. 그들을 닮아야만 살아날 수 있겠지.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므로 슬프하거나 분노한다는 건 어찌보면 부질없는 일.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는게 급선무이니. 그들은 우리를 닮을 필요가 없다. 한국에 온 미국인이 굳이 한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듯이. 그들은 어딜가나 간단한 한국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이 바보인 것이지, 한국어를 못하는 미국인은 당연한 것이다. 우라질.
소설 속의 문제의식 중의 하나는 그렇게 법문화가 발달해 있고, 변호사가 많이 있어도 그것들이 제대로된 기능을 하고 있는가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최후의 보루인 법의 보호를 공평하게 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각자는 각자의 만족을 위해 달려갈 뿐이다. 영화 <데블즈 에드보켓: Devil's Advocate>의 키아누 리부스처럼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들은 그들의 행복과 야망을 쫓아갈 뿐이다. 엄청난 학비와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투입해 얻은 변호사라는 직업적 기능을 자본의 논리로만 귀결되는 사회체계에서 그 무엇을 위해 사용하겠는가.
수 백명의 변호사들을 둔 거대 로펌, 그 로펌과 거래하는 거대한 기업이 있다. 어느 지역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고, 당연히 개발이익은 짭짤했을테고, 그 과정에서 한 건물을 철거해야 하는데, 그 건물엔 살아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무허가 세입자인지도 모르고, 주인행세를 하는 누군가에게 월세를 내고 있었다. 권리가 없으므로 그들은 쫓겨났고, 그 중엔 애딸린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겨울이었고, 갈 곳 없는 그들은 그녀의 고물차에서 시동을 켜놓은 채 밤을 지내다가 질식사한다. 그들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무지하고 힘없는 죽은 여자의 책임인가. 철거반들의 몰인정한 처사때문인가. 아니면 그놈의 권리때문인가.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영화 <1번가의 기적>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1번가의 기적>에서의 삼류건달 임창정이 그러했듯이 서서히 변화한다. 왜 그랬을까. 임창정은 또 왜 그랬을까. 무지했기 때문이다. 돈만 알든 임창정이나 법만 알든 주인공이나 삶엔 또다른 삶엔 무지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선 무지했기 때문이다. 굳이 알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다. 죤 그리샴이 본 로펌과 그 주변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회의적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지극히 낙관적이다. 변호사가 많아진다 하더라도, 세상이 아무리 돈이 많이 돌아다녀도 소수에게만 집중되듯, 그들은 그곳으로 집중되겠지.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깨어나는'변호사가 그리고 조영래처럼 '깨어있는'변호사는 언제든지 있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