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8.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내용보기
▣ 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주인공 ‘나’는 사업을 하는 남편과 사이에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위로 딸 둘이 먼저 태어났고, 이후로 아들이 태어났다. 그녀는 딸도 물론 사랑하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이 두 딸을 합친 것 이상으로 크다. 한 집안의 대(代)를 잇는 아들을 낳아야 집안에서 엄마로서 위치가 분명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학교 교사
"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내용보기

▣ 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주인공 는 사업을 하는 남편과 사이에 딸 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위로 딸 둘이 먼저 태어났고, 이후로 아들이 태어났다. 그녀는 딸도 물론 사랑하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이 두 딸을 합친 것 이상으로 크다. 한 집안의 대()를 잇는 아들을 낳아야 집안에서 엄마로서 위치가 분명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학교 교사인 동생 대신 조카 유치원 재롱잔치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들은 없이 두 딸을 둔 남자와 만나는데, 남자는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그녀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남자가 아들을 원치 않다니.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남녀의 짝이 맞지 않아 문제가 될 정도로 성비 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 이 남자는 어떻게 이리 초연한 태도를 보인단 말인가. ‘는 남자가 자기 마음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없다는 건 결혼생활의 행복의 중대한 결격사유라는 걸 인정하셔야 돼요.”(194)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해가며 그녀는 남자를 자극한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는 참 이상한 여자다. 남자는 아내가 둘째 애를 임신했을 때 아들이길 바란 것도 사실이다. 이왕이면 아들딸을 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그녀 말처럼 아들을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조건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강압적으로 남자를 벼랑으로 몰아붙인다. 그녀가 남자에게 아들하고 야구 구경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 노골적인 질문이다. 남자는 물론 아들하고 어울려 야구를 보는 친구들이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딸이라고 야구를 즐기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남자가 어떤 말을 해도 그녀는 제대로 듣지 않는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집안에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새겨져 있다. 모든 일을 아들 얘기로 모는 남다른 재주(?)가 그녀에게는 있다. 남자가 아들이 없어도 된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그녀는 반드시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제라는 종교에 푹 빠진 맹신도 같기도 하다.

 

는 사실 아들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는 이 남자가 마음에 든다. 남자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할수록 그녀는 더욱 더 남자를 놓치고 싶지 않다. 마침 핑계거리가 하나 있다. 남자가 여자 대신 재롱잔치 비디오를 찍어주었는데, ‘는 녹화된 테이프를 준다는 명분으로 남자에게 명함을 달라고 말한다. 외간남자에 대한 매혹만으로 그녀의 행동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들이 없이도 불행하기는커녕 쓸쓸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인간이 이 한국 땅에 있다는 게 참을 수 없이 께름칙했다.”(202)는 말에 드러나는 대로, 그녀는 어떻게든 남자 입에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아들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 말을 듣지 않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거꾸러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는 한국 땅에서 아들 없이 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딸 둘만 있는 남자를 통해 어떻게든 확인하려고 하는 셈이다.

    

아들은 건강한 나무처럼 잘 자랐다. 근육은 유연하고도 단단했다. 긴 바지를 입었을 때도 아들의 정강이가 얼마나 곧고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이 그냥 집안을 왔다갔다 하는 것만 봐도 좋았다. 아들을 가슴에 안으면 온몸이 뿌듯하듯이 아들이 집 안에 있으면 온 집안에 가득해졌다. 그 애가 눈에 안 보일 때도 그 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있었다. 그 애가 있다는 것은 나의 최고의 성취감이고 그 애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 두 딸도 물론 사랑했다. 큰딸은 첫정이라 애틋하고 둘째는 막내딸이라 예쁘다. 한번도 사랑으로 딸 아들을 층하하지 않았다. 그러나 딸은 둘을 다 합쳐도 아들 하나만큼 나를 충만하게 하지 못한다. (204)

    

에게 아들은 모든 것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게 아들이다. 아들을 보는 일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끼는 이 여자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는 마음속에 아들을 품고 있다. 삶의 중심에 아들을 세웠으니, 아들에게 문제라도 생기는 날이면 그녀의 인생도 거기서 끝장이다. 그녀가 왜 남자를 굴복시키려고 하는지 알 만하다. 남자는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녀는 오로지 아들을 위해 살지만, 남자는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에 익숙하다. 아들 없는 삶을 꿈꾸는 남자가 미워 그녀는 아직도 딸이 더 좋다고 우길 거냐고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남자의 얼굴에 희미한 연민이 서린다. 남자는 여성이 상품화되는 사회에서는 남자 또한 제대로 된 삶을 살기 힘들 거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속도로 성비율이 허물어지면 이 세상 남자들은 여자를 얻기 위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종족을 번식하는 욕망만큼 뜨거운 본능도 없지 않은가. 더 튼튼하고 더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남자들은 이판사판 싸움을 벌일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자신을 좋은 상품으로 꾸미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라는 남자의 얘기다.

 

는 남자의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그러니까 여자는 수적으로 흔해도 천하고 귀하면 더 천해진다는 전망 아닌가요? 그런 줄 알면서도 딸로 만족한다면 그건 허세부리는 거지 본심은 아닐 겁니다.”(209) 남자 입장에서 보면 가관이다. 도대체 왜 이 여자와 만나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섞어야 하는지. 남자는 딸들이 얼마짜리 성적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이 되길 바랄 뿐이다.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여자로 태어난 게 아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니 여자로 사는 것이다. 아들로 태어나면 환영을 받고, 딸로 태어나면 걱정을 들어야 하는 사회가 과연 제정신인가? 아들은 아들이고 딸은 딸이다. 딸이 아들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딸이 지닌 주체성을 함부로 허물어버리는 것이다. 남자는 이런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딸들이 딸로서 자기 주체성을 갖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여자 말대로라면 한국사회에서 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자의 말을 듣는 의 심리는 이중적이다. 성비율의 균형이 깨지는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는 남자의 말에 그녀는 무엇에 찔린 것처럼 뜨끔해진다. 싸고 싼 비밀을 찔린 기분이었다. 나는 내 비밀을 누구한테 들킬까 봐 늘 전전긍긍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걸 들키기를 갈망해왔다.”(210) 그녀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 성비율이 깨지는 사회현상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그 비밀을 감추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그 비밀을 까발리고 싶다. 마음 속 갈등을 애써 숨기며 는 아들에 의해서만 대()가 이어지는 문제를 끄집어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가 이어진다. 이대로라면 남자 집안은 대가 끊어지는 것이다. 남자는 대를 잇는 게 후손이면 족하지 왜 반드시 성()이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자식을 낳으면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게 가부장제 사회의 원칙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가부장제는 사유재산이 생긴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이다. 가부장(家父長)은 남자이다. 남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가부장제 사회라는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사유재산을 남자들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남자들은 힘으로 여성들을 누른다. 가부장제의 밑바탕에는 권력과 폭력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모은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길 원한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다. 왜 하필 아들일까? 딸도 아버지의 성()을 받는데, 아버지는 왜 아들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일까? 외부로부터 재산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는 폭력으로 유지되는 사회이다. 힘이 셀수록 사유재산을 지킬 수 있는 힘도 강해진다.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제 사회는 그래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른 부족이나 국가에서 여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전쟁도 수도 없이 일어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자를 빼고는 모두가 사물일 따름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힘을 얻으려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 남편이 집안을 지배할 때는 ()어머니가 권력의 중심에 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권력이 이어지면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자연스레 권력이 이전된다. 여자들에게는 아들이 권력이 쥘 수 있는 매개가 되는 셈이다. 남자들의 힘만으로 가부장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가부장제를 지배하는 남자들은 어머니라는 이름의 권력을 여자들에게 부여한다. 물론 아들을 낳은 어머니=여자이다. 아들을 낳으면 살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죽는다. 이러니 가부장제에 흠뻑 빠진 여성들이 아들 타령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잡지사에 근무하는 남자는 작년에 아들을 낳고 싶어 하는 부부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산부인과 병원 몇 군데를 취재한 적이 있다. 아들 고민을 해결해준다니 가부장제에 익숙한 여자들에게는 얼마나 솔깃한 말인가. 어떻게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을까? 남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

    

하늘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실패할 리 없는 방법이라는 게 여아(女兒) 살해를 전제로 했으니까요. 치밀하게 계획적이고 과학적이고 감쪽같이 태아가 단지 여아라는 이유만으로 없애버리는 겁니다. 의학은 그게 틀림없이 여아라는 걸 보증할 뿐 아니라 살해까지를 책임지지요. 남자애를 밸 때까지 몇 번이고 그 짓을 하는 겁니다. 그게 소위 과학의 발달이라는 거구요.” (213)

    

아들은 낳는 비결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뱃속 여아를 끊임없이 죽이는 것이다. 이게 과학의 힘으로 저질러지는 아들 낳는 비결이다. 의학은 뱃속에 여아가 있다는 걸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입증한다. 입증을 할 뿐만 아니라 살해까지 한다. ‘는 어머니 시대를 들먹이며 인구 조절을 위해서 중절수술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식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아이를 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어머니 세대가 살던 가난한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생존권의 위협을 전혀 받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여아라는 이유로 살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는 이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여자들이 오죽하면 그 짓을 했겠느냐며 여자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강변한다. 남자는 아내와 남편은 공범자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아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동시에 책임질 문제라는 것이다.

 

공범자라는 말을 곱씹는다. 그녀 또한 아들을 낳기 위해 여아를 없앤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양수 검사를 하면 아들인지 딸인지 판별이 된다. 아들이면 낳는 것이고, 딸이면 지우는 것이다.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그녀는 양수 검사를 했고, 딸이라는 걸 알고는 곧바로 중절수술을 했다. 얼마 후 다시 임신을 했다. 양수 검사를 하니 아들이었다. 아들은 무사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낳은 후 는 시어머니, 시누이와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살았다. 딸을 지우기 가랑이를 벌리고 수술대에 누울 때도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곁에 붙어 있었다. 지극정성이었다. 나는 그들이 확인 사살을 위해 지키고 있는 사람들처럼 무서웠다.”(224)라는 진술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남편은 어디 가고 시어머니, 시누이가 그녀와 같이 한 것일까? 그녀는 지금까지 이 일을 남편과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다. 남편까지 미워하면 가정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가 공범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 것이다.

  

인큐베이터 속에서 내 아기가 꼼실대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아기였다. 너는 엄지아가씨로구나. 가엾어라. 불면 날아가게 생겼네. 인큐베이터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누가 훔쳐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졸음이 와서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프지 않아서 이상했다. 그때였다. 검은 옷을 입은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투실투실한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 안이 가득해졌다. 시어머니가 그들에게 그 큰 애를 넣기 위해 우리 엄지아가씨를 내보내라고 요구하는 듯했다. 안돼요. 그 애는 그 애는 그 안에서 나오면 당장 스러지고 말 거예요. 나는 소리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돼 나오지 않았다. 검은 옷 입은 사람하고 흰 옷 입은 사람하고 저희들끼리 흥정을 했다. 얼마 주면 엄지아가씨를 내쫓고 그 아이를 넣어주겠냐는 흥정 같았다. 사람들은 악마처럼 웃으며 액수를 자꾸 올리고 나는 그 짓을 말려야겠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몸도 안 움직여지고 말도 안 나왔다. 그러다 보니 인큐베이터 속의 엄지아가씨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슬처럼 사라져구나. 나의 슬픔엔 상관없이 방 안이 사람들의 무례한 홍소로 가득 찼다. (225)

    

인큐베이터는 여성의 자궁을 의미한다. 자궁은 생명이 피어나는 장소이다. 지금 그곳에서 엄지아가씨가 꼼실대고 있다. 검은 옷을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큰 애를 들고 와 인큐베이터에 넣으려고 한다. 엄지아가씨가 있는 인큐베이터이다. 큰 애를 넣으면 엄지아가씨는 어쩌란 말인가. 그녀는 엄지아가씨를 지킬 힘이 없다. 검은 옷과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흥정을 하더니 엄지아가씨를 자궁에서 내쫓고 대신 큰 애를 집어넣는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여자다. 아들을 낳기 위한 여자들의 연대가 결국은 아이를 죽이는 상황에 이른다. 여자들은 독하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은 하지 마라. 낙태 문제를 끄집어내지도 마라. 가부장제는 남자들이 권력을 쥔 사회이다.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 구조 하나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여자들이 전면에 나서 가부장제를 옹호한다. 남자들은 여자들 뒤에 숨어 그녀들이 벌이는 무서운 일을 방조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언제나 여성을 희생물로 만든다. 여아라는 이유로 뱃속 아이는 쉽게 제거되고, 아들을 얻기 위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자궁에서 딸들을 내몬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공범이 된다. 시어머니가 벌인 일을 시간이 흐르면 며느리가 반복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무엇을 하느냐고? 여자들 뒤에 숨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다. 아들을 낳으면 좋고, 그러지 못하면 다른 여자를 얻어 아들을 낳으면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벌일 일을 알기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고 한다. 중절수술을 못하던 사회에서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았고, 지금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여아를 살해한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가부장제는 무엇보다 이러한 구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를 잇기 위해서라면 가부장제는 여아 살해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여아는 인간이 아니라 사물이기 때문이다. 여아가 인간이 되는 길은 오로지 아들을 낳을 때뿐이다.

 

는 첫딸을 낳았을 때 친정에서 산후 조리를 했다. 남편도 아기가 보고 싶어 처가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녀는 남편 앞에서 예사로 아기 기저귀를 갈았고, 남편에게 기저귀를 갈아달라고도 했다. 어느 날 그걸 본 어머니가 질색을 한다. 남편한테 그 흉한 계집애 아랫도리를 보였다는 것이다. 아들의 고추는 여봐란 듯이 보여도 되지만, 계집애는 그러면 안 된다는 어머니 말을 떠올리며 그녀는 내가 나의 인큐베이터됨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던 소인은 그러니까 기저귀 찰 때부터 비롯됐던 것(228)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자궁을 관리한다. 그 대신 가부장제는 아들을 낳은 여자에게 권력을 준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된 권력.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는 스스로 도태되게 만드는 무서운 권력. 박완서는 이 소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왜 가부장제 사회에 저항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o*****s 2019.07.15.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 박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연작은 엄마가 이 세상에 박은 말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뚝은 달리 말하면 뿌리이다. 엄마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온 것일까? 「엄마의 말뚝 1」에서 작가는 박적골이라는 시골에서 서울 대처로 나온 엄마의 삶을 이야기한다. 박적골에서 엄마는 남편을 잃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맹
"박완서,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 박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연작은 엄마가 이 세상에 박은 말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뚝은 달리 말하면 뿌리이다. 엄마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온 것일까? 「엄마의 말뚝 1」에서 작가는 박적골이라는 시골에서 서울 대처로 나온 엄마의 삶을 이야기한다. 박적골에서 엄마는 남편을 잃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맹장염 정도 되는 병일 텐데, 집안사람들은 민간요법이나 무당굿을 찾다가 허망하게 아들이면서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한 사람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새집을 지은 지 3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 마을 사람들은 집터 동티가 난 거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미 처녀 적에 문명의 소문에 접할 기회가 좀 있었던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엄마는 대처의 양의사에게 보이면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으로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박적골을 벗어나 대처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 대처로 나가 사는 길만이 남편이 남기고 간 남매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3년 상이 끝나기도 전에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시부모가 엄연히 두 눈 뜨고 살아 있었지만, 이런 엄마의 집념을 막지는 못했다. 엄마는 시부모 봉양과 봉제사라는 의무를 포기하면서 재산상의 권리도 포기했다. 오로지 바느질 솜씨 하나만 믿고 엄마는 집안 장손을 데리고 박덕골을 떠났다. 나는 오빠와 친하고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막연하게나마 오빠가 걸머진 짐의 무게를 같이 느낄 수가 있어서 오빠가 안쓰럽고 불쌍했다.”(16)라는 진술에 나타나는 대로, 엄마는 어린 오빠를 서울에서 성공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단한 대처 생활을 버텼다. 오빠가 없었다면 엄마는 서울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빠는 엄마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매개였고, 오빠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엄마는 어떤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엄마는 딸인 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굶든 먹든 자식은 어미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말로 엄마는 시부모를 설득했다.

 

엄마는 를 서울로 데려가 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공부를 시켜 를 신여성으로 만드는 게 엄마의 꿈이다. 시대는 일제 강점기다. 남자들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시대에, 엄마는 딸에게도 교육을 시키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시부모라고 해도 엄마의 고집을 어찌 꺾을까? 제 자식 데려가 공부시킨다는 데야 달리 할 말도 없다. ‘는 어땠냐고? ‘는 사실 박적골을 떠나기 싫다. 박적골 집은 의 낙원이었다. 뒤란에는 앵두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가 때맞춰 꽃 피고 열매를 맺었고 뒷동산엔 조상의 산소와 물 맑은 골짜기와 밤나무, 도토리나무가 무성했다. 게다가 박적골 집에 아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이 집을 떠나 낯선 대처로 나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느 날 엄마는 내 머리를 빗기는 척하며 뒤통수 언저리까지 머리를 쌍동 잘라버린다.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단발머리라는 게 이유이다. 를 반드시 서울로 데려가겠다는 의지를 엄마는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엄마는 에게 신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얘기하는 신여성은 공부를 많이 해서 모르는 게 없는 여성이다. ‘에게는 참으로 두루뭉술한 얘기다. 뾰족구두니, 핸드백이니 하는 물건들도 에게는 여전히 낯선 대상일 뿐이다. 긴 머리꼬리에 금박을 한 다홍 댕기를 드리고, 같은 빛깔의 꼬리치마를 버선코가 보일 듯 말 듯 길게 입고 그 위에 자주고름이 달린 노랑저고리를 받쳐 입고 꽃신을 신고 싶은 아이는 도무지 서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차를 타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길가에서 파는 동그란 빵을 사서 내민다. 국화빵의 단맛에 현혹된 는 비로소 낯선 서울에 발붙일 계기 하나를 찾는다. 지게꾼을 대동한 엄마는 큰 한길을 걷다가 전찻길이 끝나는 데서부터 골목길로 접어든다. 지게꾼이 막걸리 값을 더 달라고 할 정도로 꼬불꼬불하고 높은 길이다. 박적골에서 엄마는 결코 가난한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딸을 끌고 엄마가 가는 길은 더럽고 뒤죽박죽인 길이다

  

지게꾼이 숨이 턱에 닿아 비명을 질렀다. 이상한 동네였다. 시골집의 한데 뒷간만한 집들이 상자갑을 쏟아부어 놓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밀집돼 있었다. 내가 송도라는 대처에서 최초로 목격한 것도 사람과 집들의 이런 밀집상태였다. 그러나 나를 압도하고 주눅들게 한 건 밀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다스리는 질서였다. 질서란 밀집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것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제멋대로 방목되었던 계집애를 한눈에 주눅들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눈에 매혹한 것도 사실이었다. (28)

    

와 엄마가 걷고 있는 골목은 송도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집들이 밀집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질서가 있었다. ‘는 처음 본 대처인 송도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런데, 엄마와 오르고 있는 이 밀집 구역에는 도무지 질서란 게 없다. 번듯한 길 하나가 없고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좁고 더러운 길이 꼬불꼬불 나 있다. 엄마가 그토록 외치던 대처로서 서울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가 서울이냐고 묻는 아이 말에 엄마는 문밖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지금 모녀가 걷는 곳은 서울 문밖이다. 나중에 오빠가 성공하면 서울 문안에 들어가 살 거란다. 엄마의 얼굴에는 너도 반드시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강압이 보여 아이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 문밖의 가난한 동네인 현저동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있는 초가집 문간방에 엄마는 세 들어 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늘같은 시부모님한테도 다소곳한 채로 또박또박 할 말을 다하던 엄마가 안집 식구라면 코흘리개까지도 두려워하고 굽신대는 것이었다.”(29)

 

시골에서 서울로 나온 는 비로소 엄마가 지닌 두 얼굴을 본다. 엄마는 박적골에서 기원한 양반의식을 마음에 품은 채 서울 산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녀는 이웃들을 언제나 상것으로 부른다. 이웃들과 부딪칠 때마다 엄마는 저런 상것들하고 상종을 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엄마가 상것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 역시 시골에서 대처로 나온 사람들이리라. 그들과 엄마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엄마가 배신한 온갖 과수가 있는 후원과 토종국화 덤불이 있는 사랑뜰과, 정결하고 간살 넓은 초가집과 선산과 전답과 그 모든 것을 총괄하시는 비록 동풍은 했으되 구학문이 높으신 시아버지가 뒤에 있다고 믿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32)라고 어른이 된 나(서술자)는 말하고 있다. 서울에서 잃은 권위를 엄마는 박적골에서 길어 올린 기품으로 상쇄한다. 이웃을 상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엄마는 상것들은 들어갈 수 없는 세계에 어떻게든 말뚝을 박으려는 의지를 스스로 다진 셈이다.

 

엄마는 를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목록부터 먼저 만든다. 안집에 들어가지 마라, 골목 앞에 나가지 마라, 안집 애하고 놀지 마라, 동네 애들하고 놀지 마라, 상종할 만한 집 자식 하나도 없더라.”(34) 엄마는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을 아이에게 그대로 투영한다. 돌려 말하면 엄마는 이러한 금지가 여덟 살 아이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형벌이 될 수 있는지 모른다. 엄마는 오직 성공한 아들과 신여성이 된 딸만을 생각할 뿐이다. 양반의 기품을 따지는 엄마가 왜 하루 종일 기생들의 옷이나 바느질하고 있겠는가. 가뜩이나 그들이 사는 집 아래쪽으로는 감옥소가 있다. 엄마는 이곳이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곳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안다. 하지만 어쩌랴, 돈이 없는데. 시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처로 나왔으니 엄마는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아들딸을 남부끄럽지 않게 키우려 한다.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앞날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이 안집 아저씨에게 후레자식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엄마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아들이다. 엄마는 이불 속에서 울면서 시골에 편지를 쓴다. 집을 구할 돈을 보태달라는 얘기다. 박적골을 뛰쳐나오면서 엄마는 시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것은 엄마가 마음속에 깊이 숨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박적골에서 별다른 연락이 없는 사이 는 서울 문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합격을 한다. 친척집에 주소까지 옮기면서까지 엄마는 를 이 학교에 집어넣는다. ‘를 마을 아이들과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엄마는 초등학교 합격을 마치 과거급제처럼 부풀려 시골에 알렸고, 얼마 후 시골에서 집 사는 데 보탤 돈이 왔다. 이 돈에 금융조합에서 융자 받은 돈까지 합쳐 엄마는 세 들어 살던 집에서도 오르막길로 더 올라간 곳에 있는 기와집을 샀다. 여섯 칸짜리 기와집. 이사 간 첫날, 엄마는 서울에다 기어코 말뚝을 박았다며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한다.

 

박적골에 살 때는 남편과 집안이 엄마의 말뚝이었다. 남편이 죽고 대처로 나올 결심을 했을 때 엄마는 하나뿐인 아들을 말뚝으로 삼았다. 현저동 꼭대기에 있는 여섯 칸짜리 집은 박적골에서 떨어져 나온 엄마를 대처에 뿌리 내리게 하는 또 다른 말뚝이었다. 이제 문밖에 있는 집을 문안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그것은 아들이 성공하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엄마는 굳게 믿는다. 집을 옮기고서도 엄마는 여전히 이웃 사람들을 상것으로 부른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엄마가 상것으로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늙은 물장수가 그 중 한 사람이다. 엄마가 상것으로 치부한 사람들조차 물장수를 김 서방이라고 부르며 하대하는데, 엄마는 물 장수를 김씨 할아버지라 부르며 꼭 존댓말을 썼다. 오빠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엄마는 물장수를 존경한단다. 왜냐고? 물장수 노릇을 해서 아들을 둘씩이나 전문학교에 보내서다. 물장수는 엄마가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을 미리 실천한 사람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전문학교를 졸업한 오빠가 큰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문안에다 번듯한 집을 살 만큼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일제는 백성들의 삶을 한없이 조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몸속에 곡식을 숨겨와 자식들을 먹였다. 징용이니, 정신대니 하는 흉흉한 말들이 오가는 상황에서 엄마는 솔선해서 시골로 피난을 떠났다. 피난살이 반 년 만에 해방이 되었고, 먼저 상경한 오빠가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서울 문안에 집을 장만했다. 엄마의 소원이 드디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 후 살림은 순조롭게 늘어나 좀 더 나은 집으로 여러 번 이사도 다녔다. 묘한 건, 엄마가 현저동 여섯 칸 기와집을 잊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무엇이든 그 시절과 대보려고 했다. 거기다 엄마는 그때 한사코 바닥 상것들 취급을 하며 무시했던 이웃들을 진국이라며 재평가를 내렸다. 그런 엄마를 보며 어머니에게 지금 남아 있는 근거는 박적골 시절이 아니라 현저동 괴불마당집이었는지 몰랐다.”(58)고 생각한다.

 

엄마가 이 도시에 최초로 박은 말뚝을 또한 뜻 깊은 기념비로 기억한다. 태어난 곳, 그러니까 고향만이 말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낯선 서울에 처음으로 마련한 괴불마당집을 말뚝으로 삼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엄마에게 괴불마당집은 박적골을 대체하는 장소면서, 아들딸을 무사히 키워낼 수 있는 뿌리가 되는 장소였다. 이런 곳을 시간이 흐른다고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엄마의 이 마음은 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40여 년 만에 찾아간 괴불마당집이 연립주택으로 변한 걸 보고 는 가슴 속을 흐르는 소슬한 바람을 느낀다. 엄마의 말뚝은 뽑힌 것이다.”(59)라는 진술로 그녀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지 새삼 알 수 있다. ‘는 추억을 곱씹듯 어린 시절 통학로였던 길을 걷는다. 신축된 성벽이 가로막는다. 옛 길이 있던 곳에는 문이 나 있다. 문 안쪽으로 철조망이 쳐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엔 푸르름만이 충충하게 괴어 있다.

 

엄마는 서울에서는 박적골의 풍모를 잊지 않으려 했고, 박적골에서는 서울에 사는 문명인으로 행동하려고 했다. 박적골을 잊지 못하면서도 한사코 박적골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순에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 ‘는 엄마의 이런 마음을 영원한 문밖 의식(60)으로 표현한다. 안에 있으면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야 안이 비로소 보인다. 엄마는 서울에 있을 때는 박적골을 생각했고, 박적골에 있을 때는 서울을 생각했다. 엄마에게 서울과 박적골은 안이면서 동시에 밖이었다. ‘는 엄마의 영원한 문밖 의식이 자신의 현재를 지배하는 의식내용이라고 고백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 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60) 엄마의 말뚝은 엄마가 땅속 깊이 박은 말뚝이면서 동시에 내 마음에 깊이 박힌 말뚝이기도 하다. 엄마가 살아온 길은 그렇게 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다.

 

 

o*****s 2019.10.2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엄마의 말뚝'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삼우날 다시 찾은 산소에서 나는 어머니의 성함이 한 개의 말뚝이 되어 꽂혀 있는 걸 보았다'(p.131)   여든에 대수술을 받고 기력이 쇠한 노모는 묘지를 쓰지 말고 오래비와 같이 화장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북녘의 개풍군이 보이는 강화에서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이 되고 싶다는 그 유언은 끝내 성취되지 못한다. 어머니는 대신 노적봉이 바라보이는 묘역에 묻힌다.   <엄마의 말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삼우날 다시 찾은 산소에서 나는 어머니의 성함이 한 개의 말뚝이 되어 꽂혀 있는 걸 보았다'(p.131)

 

여든에 대수술을 받고 기력이 쇠한 노모는 묘지를 쓰지 말고 오래비와 같이 화장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북녘의 개풍군이 보이는 강화에서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이 되고 싶다는 그 유언은 끝내 성취되지 못한다. 어머니는 대신 노적봉이 바라보이는 묘역에 묻힌다.

 

<엄마의 말뚝>은 비석을 세우기 전 임시로 세운 말뚝에 새겨진 어머니의 이름을 추억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해방 후의 난리를 남편 없이 겪어내야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내 어머니를 떠올려본다. 

 

달동네에 겨우 정착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문 안으로 들어가 살겠다는 억척스러운 목표의식, 세들어 살지라도 마음까지 굽히지는 않는 자존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딸을 신여성으로 키워내려는 굳은 의지...

 

어쩌면 '엄마의 말뚝'은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게 말뚝처럼 박혀버린 어머니의 존재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작가에게 엄마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서울에 살면서는 시골 양반의 근거를 잊지 않고 주변 상것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반면 명절에 박적골을 방문할때는 서울내기를 흉내 내기 위해 원피스를 해입히고 타지도 못하는 스케이트를 걸치고 다니게 한다.

 

하지만 엄마의 그런 유별남이 작가를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케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읽을때면 엄마를 곰살궂게 대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하지도 않는 복잡한 심경이 느껴진다. 

 

 

어머니가 세운 신여성이란 것의 기준이 되었던 너무 뒤떨어진 외양과 터무니없이 높은 이상과의 갈등,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과의 모순, 영원한 문밖 의식, 그건 아직도 나의 의식내용이었다. 그러고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p.60)



p****o 2010.02.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평생 아들의 죽음이라는 말뚝에 매여 산 엄마
"평생 아들의 죽음이라는 말뚝에 매여 산 엄마" 내용보기
엄마의 말뚝,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선생님 소설... 이 역시 지독한 솔직함이 인상적이다. 나만 이런 생각 하고 사는 게 아니구나, 했던 생각들을 어찌나 후벼파며 솔직히도 말씀하시는지, 그 솔직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어쨌든, 그런 박완서선생님의 대표작, 장마가 6.25의 극복의지를 어느정도 얘기하고 있다면 엄마의 말뚝은 6.25의 극복에 있어서는 회의적이라 할 수 있
"평생 아들의 죽음이라는 말뚝에 매여 산 엄마" 내용보기
엄마의 말뚝,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선생님 소설... 이 역시 지독한 솔직함이 인상적이다. 나만 이런 생각 하고 사는 게 아니구나, 했던 생각들을 어찌나 후벼파며 솔직히도 말씀하시는지, 그 솔직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어쨌든, 그런 박완서선생님의 대표작, 장마가 6.25의 극복의지를 어느정도 얘기하고 있다면 엄마의 말뚝은 6.25의 극복에 있어서는 회의적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의 상황처럼 전쟁의 당사자는 죽거나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극복은 관심도 없는 세대들이 하고 있으니 이는 극복이 안되는 문제라는 것을, 엄마의 소원이었던 화장을 후손들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임의로 매장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말하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의 엄마는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그녀의 자전적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그 강인함에 정말 놀라곤 했었다. 현저동 산동네에서 살면서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자존심과 희망, 아들을 6.25로 먼저 보내고도 강하게 살아왔던 엄마가 자신의 의지가 가장 약해지는 무의식의 상황에서 사실은, 평생 아들의 죽음이라는 그 말뚝에 매여 살았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6.25 당시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 후 몇십년이 흐른 후에도 치유되지 않은 그 때의 상처를 말하고 있어서인지 다른 책보다 더 여실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w*****u 2005.03.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자는 강하다.
"여자는 강하다." 내용보기
우선 책이 두툼한 편이라 언제 읽을까 하는 생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회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말뚝을 읽으면서 우선 시대적인 환경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어머니는 딸에게 여자가 서야 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부모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까. 또한 6.25라는 전쟁을 전혀 모르고 자란 나에게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여자는 강하다." 내용보기
우선 책이 두툼한 편이라 언제 읽을까 하는 생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회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말뚝을 읽으면서 우선 시대적인 환경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어머니는 딸에게 여자가 서야 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부모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까. 또한 6.25라는 전쟁을 전혀 모르고 자란 나에게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으나 엄마의 말뚝 2,3에 가서는 약간의 따분함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 고통을 다시 재생하여 써내려간 그녀의 용기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엄마의 말뚝이 끝나고 다른 작품을 읽어나갈 때는 정말 박완서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늦게 출발한 작가의 길이지만 그녀만큼 이야기 보따리가 없다.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주인공들의 심리를 잘 묘사했으며 또 여자이면서 남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에 대해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곤 하였다. 아직 많은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작가 또한 그녀의 어머니처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여자가 서야 할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h*******i 2002.02.1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엄마의 말뚝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우리나라 부모님들만큼 교육열이 높으신 분들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부모가 자식만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서만은 안산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오로지 교육을 시켜서 보란 듯이 성공을 시키기 위해서 시부모님들의 눈치를 보면서 결국은 서울로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우리나라 부모님들만큼 교육열이 높으신 분들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부모가 자식만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서만은 안산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오로지 교육을 시켜서 보란 듯이 성공을 시키기 위해서 시부모님들의 눈치를 보면서 결국은 서울로 와서 산꼭대기에까지 터를 잡아가면서까지 아이들을 교육시키려고 하는 노력에 나는 감탄을 한다. 아이가 동료를 사귀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유리창을 깨고 그 이후에 생기는 일이라든지..마치 우리들의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을 엿보는 듯한 재미난 느낌도 든다.
o*****8 2004.03.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은 덧칠의 미학, 한 폭의 유화 같은 것
"삶은 덧칠의 미학, 한 폭의 유화 같은 것" 내용보기
1. 말뚝의 구조 '내가 그 낙원에서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고 화자는 말한다. 말뚝은 중요한 버팀목이다. 기둥을 박기 전에 기둥과 그 사이사이를 연결할 벽과 그 위로 얹혀질 지붕까지, 모든 삶의 테두리를 두르기 전에 가장 기초적으로 세우는 버팀목이다. 그리고 말뚝은 한번 박아놓으면 쉽게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깊게 박아야
"삶은 덧칠의 미학, 한 폭의 유화 같은 것" 내용보기
1. 말뚝의 구조 '내가 그 낙원에서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고 화자는 말한다. 말뚝은 중요한 버팀목이다. 기둥을 박기 전에 기둥과 그 사이사이를 연결할 벽과 그 위로 얹혀질 지붕까지, 모든 삶의 테두리를 두르기 전에 가장 기초적으로 세우는 버팀목이다. 그리고 말뚝은 한번 박아놓으면 쉽게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깊게 박아야 한다.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받쳐주는 존재, 말뚝의 의미는 상징적이다. 가장의 부재. 그것으로 인해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빈 말뚝의 자리를 채워나간다. 어머니가 의지하는 것은 훗날 자라서 가장이 되어야 할 오빠이며, 오빠의 죽음으로 어머니는 또 하나의 말뚝이 베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오빠가 아버지의 빈 자리를 잇는 어머니 가슴 속 말뚝이라면, 딸인 화자는 어머니의 내면 욕망을 투영하는 대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자식을 교육하는 것에서도 어머니가 부여하는 의미는 차이가 난다. 어머니는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며 화자를 엄하게 교육시킨다. 그것은 오빠에게 가정을 일으켜야 하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과는 달리, 딸이 도시 여성으로 세련되게 서장하길 바라는 어머니의 꿈인 것이다. 그렇기에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소설 속에서 더더욱 긴밀하고 묘하게 보여진다.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로 증가시킨다. 2. 공간 <엄마의 말뚝>에서 공간은 이야기의 배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골의 할머니 댁에 있을 때, 차라리 화자는 풍족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의 변두리, 달동네로 옮겨 가면서 화자와 그 가족의 치열한 삶의 경쟁은 시작된다. 문은 중심 층과 변두리를 구분하는 상징적인 벽이다. 유독히 사대문 안의 공간에 집착하는 어머니. 소설은 어머니의 집착과 내색 않지만 깊게 배어있는 열등감 등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그려내고 서울에 올아와 정착하기까지 소시민들의 궁색하면서도 악착같은 삶을 그려낸다. 훗날, 그렇게 꿈꾸던 사대문 안으로 가족은 옮겨가게 되지만, 어쩐지 그들은 자신들이 서울에 올라와 처음 의지하고 박던 말뚝은 이제는 헐려진 옛 집에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헐려지는 옛 집을 보며, 그 아웅다웅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화자는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시린 듯 아쉬워진다. 3. 유화 그리기 박완서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결핍, 상실 등 상처는 현실의 고통에서 오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현실에서 찾아낸다. 한 마디로, 박완서 소설의 말뚝은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박고 있다. 작가의 세대가 겪었을 정치, 경제적인 시대상이 소설에서 현실적으로 다루어진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 구체적이고 신랄한 세태 묘사로 그려진다. "그 며칠 동안의 낭자한 유혈과 하늘에 맺힌 원한을 어찌 잊으랴. 그러나 덮어둘 순 있었다. 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또 사랑하는 걸로, 어머니는 손자를 거두어 기르며 부처님께 귀의하는 걸로." 결국 작가가 제시하는 해결책이란 삶이다. 철저히 살아가는 것, 생의 이 켠 저 켠굽이진 골목들을 둘러보며 살아가는 데 마음을 쏟는 일. 그것이 상처의 극복 방법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난 시간동안 아프게 꼬인 매듭을 굳이 풀어내려 하지 않는다. 한 가닥 한 가닥 엉킨 실을 들추어 풀어내는 일은 어쩌면 아무 의미없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엄마의 말뚝>의 남겨진 인물들에게는 그러하다. 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그에 따른 오빠의 죽음을 이제 와서 한 올 한 올 풀어낸다 한들 무엇이 남을 것인가. 엉킨 실 뭉터기가 풀리워지면 텅 비어버릴 뿐이다. 한 가닥씩 상처를 끄집어올리던 손끝만 시리고 아플 것이다. 결국 아픈 상처를 다시 들추어내는 행위일 뿐, 어떠한 극복방법도 되지 못한다. 소설의 인물들은 이러한 의미없는 매듭풀기대신 끌어안기를 택한다. 아프게 꼬였으면 꼬인 대로, 엉키었으면 엉킨 대로 품 안에 끌어안고, 가슴 깊이 깊이 묻어두고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어머니와 딸이 오빠의 죽음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새 가족을 맞으면서 삶에 충실하게 매여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자연히 지난 세월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세월이 가슴 속 응어리를 발효시키는 지도 모른다. 세월에 의해, 삶의 분주하고 자연적인 일상대화에 의해 작가가 깔아놓은 날카로운 상처는 점점 그 아픔을 잊어간다. 상처를 긁어내려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위에 새로운 삶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박완서 소설의 메시지일 것이다. 지우거나 긁어내지 않고 그 위에 다른 색으로 덧칠을 하는 것은 아픔을 가라앉히기 위해 박완서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극복 방법이다.

[인상깊은구절]
그 며칠 동안의 낭자한 유혈과 하늘에 맺힌 원한을 어찌 잊으랴. 그러나 덮어둘 순 있었다. 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또 사랑하는 걸로, 어머니는 손자를 거두어 기르며 부처님께 귀의하는 걸로
m********r 2001.08.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엄마의 말뚝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얼마전에 존경하는 박완서 작가님께서 타계하셨다.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기도 했고 얼마전 티비에서 방영되어진 작가님의인터뷰 장면이 떠올라 더욱 가슴이 아팠다.아들을 먼저 보내고 참 많이도 힘들어하셨던 작가님.. 부디 그 곳에서는 아드님과 행복한 재회하셨으면 좋겠습니다.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이 책 [엄마의 말뚝]은 박완서 작가님의 대표소설이다.예전에 다른 책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얼마전에 존경하는 박완서 작가님께서 타계하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기도 했고 얼마전 티비에서 방영되어진 작가님의
인터뷰 장면이 떠올라 더욱 가슴이 아팠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참 많이도 힘들어하셨던 작가님.. 부디 그 곳에서는 아드님과 
행복한 재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책 [엄마의 말뚝]은 박완서 작가님의 대표소설이다.
예전에 다른 책에서 <엄마의 말뚝2>는 이미 읽는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무 인상 
깊게 본지라 <엄마의 말뚝1,3>을 포함해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계사에서 나온 박완서 소설전집을 보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모두 
읽어볼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아쉬웠던건 의외로 책에 오타가 많이 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도 전혀 신경이 쓰여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만큼 작가님의 작
품들이 너무 좋았던데 있었던거 같다.

[엄마의 말뚝]은 작가님의 자전적 연작소설이다.
<엄마의 말뚝1>은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오누이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해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살아가는 억척같은  어머니를..
<엄마의 말뚝2>에서는 똑똑했던 오빠의 죽음과 6.25전쟁을 통한 어머니의 한을..
<엄마의 말뚝3>에서는 그런 어머니의 죽음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외에도 작가님의 작품 <유시>,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
을의 사흘 동안>, <꿈을 찍는 사진사>, <창 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가 수록되

어있다.

원래 중, 단편 소설을 별로 즐기지 않았던 나였지만 작가님의 작품들은 단 하나도 
놓칠수 없었을 만큼 좋았기에 한시도 눈을 뗄수가 없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어쩜 이리도 글을 잘 쓸수 있을까? 감탄을 하며 보았고 이젠 작
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더는 볼수 없다는 생각에 많이 아쉽고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말뚝..
책을 덮고난 지금도 유난히 생각이 많이 나는 작품이다.
어린시절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며 할머니품에서 나를 떼어내 서울로 데리고  오신 
어머니..그리고 모진 가난 속 어머니의 말도 못할 고생들..오로지 자식들만을 위해 
그 험난한 길을 걸어오신 어머니..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 남편이 생기고 아이들이 생겼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때마다 
드는 불길한 예감 속 그 날의 주인공이 어머니라는 사실에 나는 왜 안도한것일까? 
똑똑했던 오빠도 이미 없고 어머니의 핏줄이라곤 나 하나 밖에 없는데..
그리고 수술 뒤 찾아온 어머니의 기억 속 잊혀질수 없는 깊은 한(恨)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벌써 수십년이 지났고 이미 잊었고 견뎌냈을거라
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그저 보이는것에 불과했었는가 보다.
어머니는 그렇게나 똑똑하고 마냥 든든했던 아들을 6.25 전쟁 속에 그렇게 참혹하
게 보내고 얼마나 미칠듯 힘이 드셨을까?
그런데 나는 이기적인건지 어쩔수 없는 순리적인 건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온전
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책을 보면서 갑자기 [친정엄마]의 한구절이 생각이 났다.
엄마 미안해..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던거 같다.
정말 잘 쓰여졌고 정말 가슴 아팠던.. 나중에 또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YES마니아 : 골드 g******2 2011.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개인의 일상안에서 현실을 읽어 내는 힘
"개인의 일상안에서 현실을 읽어 내는 힘" 내용보기
여성다운 세심함과 부드러움이 있으면서도 매우 객관적인 그녀(선생님이라고 해야하나...^^;)의 문체는 뛰어났다. '나-엄마-오빠'의 관계를 인간의 개인적인 심리묘사로서 표현해 내는 능숙함이 읽는 이의 감동과 재미를 더해 주었다. 사회적 환경(분단가 전쟁)을 인간의 내면세계안에서의 갈등으로 객관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여성의 세심함과 여린감수성(?)이 매우 긍정적 요소로 작용
"개인의 일상안에서 현실을 읽어 내는 힘" 내용보기
여성다운 세심함과 부드러움이 있으면서도 매우 객관적인 그녀(선생님이라고 해야하나...^^;)의 문체는 뛰어났다. '나-엄마-오빠'의 관계를 인간의 개인적인 심리묘사로서 표현해 내는 능숙함이 읽는 이의 감동과 재미를 더해 주었다. 사회적 환경(분단가 전쟁)을 인간의 내면세계안에서의 갈등으로 객관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여성의 세심함과 여린감수성(?)이 매우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삶과 시대에 대한 통찰력 또한 뛰어나다. 인간의 기본적인 외로움과 소외. 부모 자식간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자연스럽게 현실과 맞물려지고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별표 6개라고 주고 싶은 소설...

[인상깊은구절]
사람 속의 奧地는 아무 끝도 없고 한도 없는 거라지만 그런 어머니에게 그런 격정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내 어머니의 오지에 감춰진 게 선과 평화와 사랑이 아니라 원한고 저주와 미움이었다는 건 정말 너무했다. 설사 인간이 속속들이 죄의 덩어리라고 하더라도 그건 너무했다. 악과 악의 대결처럼 살벌하고 무자비한 모녀의 힘의 대결에서 어머니가 패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손가락 자국대로 선명하게 부풀어 오른 어머니의 뺨에 비로소 내 뺨을 비비며 소리내어 통곡했다.
b********n 2001.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엄마의 말뚝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엄마 엄마 우리 엄마..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그 무엇도 우리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으니까..하지만 그렇게 산보다도 더 위대해보이고 하늘보다도 더 높아만 보이던 우리의 어머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그 강력함과 높으심은 점점 읽어가고 할머니로 변해서 힘이 없어진다..가족이라는 이름을 내가 다시 한번 생각헤 보게 몬다는 책이다. 가족이란 무
"엄마의 말뚝" 내용보기
엄마 엄마 우리 엄마..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그 무엇도 우리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으니까..하지만 그렇게 산보다도 더 위대해보이고 하늘보다도 더 높아만 보이던 우리의 어머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그 강력함과 높으심은 점점 읽어가고 할머니로 변해서 힘이 없어진다..가족이라는 이름을 내가 다시 한번 생각헤 보게 몬다는 책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너무 함께 있어서 그 소중함은 전혀 모르다가 그들과 헤어지면서 우리는 그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리움도 얼마지 않아서 또 그냥 일상 생활에서 잊혀져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 가족이라는 것과 박완서 님과는 떨어뜨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끈근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y*****g 2004.06.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