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인가. 지성인인가. 혈열 남아인가. 우리는 최인훈의 서유기를 읽어야 한다. 남의 나라 한번 침략해 보지 못한 역사를 자랑할 만한 것인지. 그것은 왜 민족사적으로 토착했는지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지성으로 읽는 성경과 플라톤은 종교와 철학의 입장이 아닌 서양인과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날의 전수된 과정을 음미해 볼 필요도 있다. 일제치하의 일련의 지식인들의 배반이 과연 우리들이 때려부수고 저주하고 모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아도 되는지 다시 한번 음미하고 확인해 보아야한다. 해방이후 들어온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에 대하여 아직도 이질감으로 근질근질한지 민족의 등줄기에게 물어 보아야한다. 조선 총독부의 소리와 상해 임시정부의 소리와 인민 정부의 자아비판의 소리와 유교와 불교의 입장에서의 조국에 대한 발언과 춘원 이광수의 변명과 이순신의 인테리겐자로서의 일장연설과 논개의 변에 대하여 겸허하게 들어야 한다. 읽기 쉬운 글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미래 소설,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관념, 상념의 소설이다. 사건, 외부로 나타나는 주인공의 행위는 이유정의 방에서 고작 자기 방으로 찾아 들어가는 몇 분간의 짧은 시간동안의 독고 준의 한 바탕 생각들의 총 집합이다. 현대 소설사의 총괄적 글 쓰기의 시험이라 할까. 최인훈은 이 시대 전세계 문제 작가들의 글쓰기를 시험한다.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또스토엡스키, 프로이드, 하이데커, 니체, 안톤 슈낙, 보르헤스…. 그는 꺼이꺼이 울거나, 분개하거나, 자포자기하거나, 자괴하지 않는다. 각 분야, 다방면에 걸쳐 여러 각도로 재조명하고 알알이 들춰내고 분석하여 재조립한다. 재미로 읽을 양이면 다시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최소한의 지적무장이 되지 않고는 해독하기 힘든 소설이다. 십자군 전쟁과 모세의 엑소더스와 과학과 심리학까지 섭렵해야 한다. 읽기 전에, 읽으면서, 읽고나서, 인터넷을 뒤적였다. 혹시 독후감이나 논평이나, 독자리뷰나 소개 글이 있을까. 내가 읽는 방식은 옳은가. 내가 느끼는 것은 올바른가 확인하기 위하여. 어느 곳에도 없었다. 왜 그럴까. 외국 책이라면 기를 쓰고 수십 페이지의 논평이나 해설이나 논문이 쏟아져 나오건만, 한국인 - 동족인이라는 지적 문제에 관한 동류항 내에서 나보다 나은 놈은 못 보아주겠다는 질시, 또는 질투일까. 아니면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기일까. 다만 송재영의 '분단 시대의 문학적 방법'이라는 권말 해설이 있지만 성의 없음에 실망한다. 제임스 조임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쪽 단위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평론을 본적이 있다. '서유기'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몇 개의 파트별 나누어 논해야 할 것이며, 토론이 있어야할 것이다. 외국 문화에 대한 아부보다 우리 것에 대한 비평과 토론으로 우리 시대를 재평가 해보는 것이 조국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유익할 것이다. 이 일련의 평론 부재는 또 다른 사대주의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