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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그대는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자의 삶의 방식이 상식을 벗어난 것이기에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집중해서 읽을 수가 있었다.
신은 우리에게 감정과 육체와 물질을 주고, 신이 마련해 준 삶의 방식에 순응하면서 사는 인간에 대해서 보상을 해 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하면서 고통을 피하고 아름답게 가꾸며 살기를 선택한다.그리고 인간이 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원할 때는 단호하게 벌을 주고 신보다 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벌을 주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이 두려워 신에게 복종하고 참회를 하며 용서를 빈다. 그래서 문자도 처음엔 한수에게 주는 문자의 사랑만큼 한수가 사랑을 주지 않으므로 삶이 고통스럽고 슬프고 비참했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면 피할 수록 더 크게 오고 차라리 고통 자체를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결심을 하자 갑자기 힘이 솟고 신선한 의지가 생기는 것이었다. 이젠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소극적인 인간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적인 고통에 웃음을 띄고,고통을 극복하는 아름다운 신의 모습을 나아가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신은 문자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문자가 행복을 느끼는 것 하나하나 빼앗고 모든 사랑을 바쳤던 아이마저 빼앗았을 때는 문자는 미칠 듯 했지만 그것마저 이겨내었을 때 문자가 투명한 얼음처럼, 가장 순수한 불꽃처럼 느껴졌다. 한수는 문자에게 이미 사랑의 대상이라기 보다 문자가 원하는 완전한 삶, 주고 받는 사랑이 아닌 완전한 사랑, 삶에 도달하기 위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다리인 것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고통을 당할 때, 자기 감정에 휘둘리게 될 때 한번쯤은 완벽한 삶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 고통을 누군가에게 의지해 해결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어느 정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뜻대로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 우리는 행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남들이 무한히 나를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 주기를 꿈꾼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굴레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통스럽고 슬픈 것이다. 슬픔이 극에 달할 때,가끔씩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완전하게 극복하고 어떤 것에서도 초월하기를 꿈꾸기도 하는데 문자에게서 나는 초월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거의 불가능하리라 여겨질 정도로 무거운 짐을 지고 어깨의 힘으로 겨우 일어나 묵묵히 갈증을 참아내며 사막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낙타처럼 어떤 상황에도 꿋꿋한 초월자의 모습을 갖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문자는 높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가는 도주에 그녀는 고목 나무 아래서 다리를 쉬었다. 언제나 다름없이 신선한 영감이 가슴을 뿌듯하게 차올랐다. 그 고복은 몸둥어리가 온전치 못한 불구의 몸임에도 늠름한 키에 풍성한 가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갓지 하나하나가 모두 하늘을 어루반지려는 갈망의 손으로 보였다. 저토록 높은 데까지 갈망의 손을 뻗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의 쁘리는 자기 키의 몇 배나 깊이 땅속으로 더듬어 들어갔을 것이다. 생명수를 찾아 부단히, 차고 견고한 흙 속으로 하얀 의지를 뻗친 나무의 뿌리가 자신의 발 밑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자는 시린 삶의아름이 가시는 듯난 위안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