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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훼스의 창="">의 전설은 창을 둘러싼 사람들간에 상처를 남기면서도, 그들의 운명의 실을 결코 끊어지게 하지 않는 힘을 발휘한다. 작가는 이 낡은 창을 모티브로 하여 창에서 만났던 연인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엮어간다.
어머니 레나테의 욕심 때문에 남자로써 길러졌던, 자신의 의지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아름다운 비극의 여주인공 유리우스.
그녀는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의 상황 속에서, 전설에 따른 자신의 운명을 깨닫게 된다. 음악학교 선배인 클라우스와의 만남... 오직 그를 사랑하는 것만이 그녀를 그 깊은 절망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했던 유리우스가 클라우스에 대한 사랑에 더욱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 올훼스의 전설이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그녀였지만, 전설대로 창에서 만난 연인은 결코 서로를 쉽게 놓을 수 없을 것이기에..
알렉세이(클라우스)는 소년시절, 그의 형 드미트리로 인한 상처를 안은 채로 자신의 감정을 접고 조국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었지만, 얄궂게도 그런 그에게 운명은 올훼스의 창에서 유리우스를 만나게끔 만들었다.
알렉세이는 작품 내에서 분명, 누구보다 주어진 운명에 적극적으로 맞서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오히려 창의 전설은,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죽음을 맞아야 하는 비극을 안겨 준다. 이 장면을 접하는 독자의 가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감을 남긴 채로.
자신의 가야할 길과는 상반된 창의 운명. 그는 어쩔 수 없도록 유리우스에게로 향하는 마음 때문에, 조국을 향한 마음과 그녀를 두고서 고뇌한다. 알렉세이는 창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유리우스와의 거듭된 해후는 결국 그를 전설에 따르게끔 만들고 만다.
알렉세이는 창의 전설의 비극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로 인해 죽어 가는 순간에도 그는 유리우스를 원망하지 않았다.
'유리우스.. 창의 전설을 깨지 못한 무능한 나의 사랑을 용서해 줘...'
그녀를 이 세상에 혼자 놔두고 간다는 사실과, 조국의 앞날을 볼 수 없음이 그에게는 못내 걸렸을 뿐. 오히려 그는 맘속으로 이렇게 외칠 뿐이었다.
역시 유리우스와 올훼스의 창에서 만난 이자크도, 그 전설을 완전히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알렉세이나 유리우스와는 달리, 사랑해야 할 사람과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 일생을 방황한다.
유리우스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 아마리에와의 엇갈린 사랑, 그리고 아내 로베르타의 비극적인 죽음.
이자크는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보지 못한 채 오직 피아노만 바라보며 그렇게 방황하다가, 결국 아들 유벨의 탄생으로 인해, 또 목숨과도 같던 그의 손가락이 고장나게 됨으로써야 오랜 방황을 마감한다. 그는 그때서야,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정말로 사랑해야 할 것을 찾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 상처받는 게 괴롭다면 애초에 잃고 싶지 않은 걸 갖지 않으면 된다.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
바라지 않으면 된다.
느끼지 않으면 된다.
....결국 인간의 영혼이란 녀석은 상처를 받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거야...'
<올훼스의 창="">의 주인공들은, 창에서 만난 연인들이거나 그렇지 못했거나, 모두 고통을 지고살아 가야 하는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올훼스의 창은 우리에게 이처럼 허무한 비극만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물론 주인공 알렉세이가 결국 창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마치 정해진 숙명인 양 비극을 맞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결국 모든 인물들의 살아가는 몸부림은 헛된 노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냐는 의문도 가질 수 있다.
세 주인공은 분명 겉으로는 창의 운명에 순응하고 만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의 삶을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유리우스, 알렉세이, 그리고 이자크는 자신들의 인생이 비극으로 치달아 가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자신들의 생의 의미를 깨달아갔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토리의 마지막까지 낡은 올훼스의 창에 얽힌 전설과, 비중이 작은 인물들까지도 그 운명에 결부시키면서 끊임없이 사랑과, 뼈에 사무치도록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거기에 작가 특유의 인물과 배경의 섬세한 묘사가 결합되어, 한층 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인간'으로써 고통과 얄궂은 운명에 맞서나가는 이야기는 바로 평범한 우리들이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일상 그 자체인 것이다.
순정만화의 시대를 열어준 만화가 '캔디캔디'라면, 순정 만화에 역사성과 철학적인 면을 가미해 그 수준을 끌어올린 것은 바로 <올훼스의 창="">이라고 생각한다.
<올훼스의 창="">이 만화의 형식을 빌린 '대서사시' 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올드팬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명작만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까닭은, 인간의 운명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작품 전체에 구구절절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가르쳐줘.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커다란 죄를 등에 지고 태어나는 건가. 설령 이 육체로 죄를 속죄한다 해도, 영혼이 견디며 더듬어온 그 수많은 사념,고통,슬픔,괴로움은 어디로 가는 거지? 괴로움은 어디로.. 슬픔은 어디로.. 천지를 갈라놓을 것 같은 이 사랑은 어디로..!!올훼스의>올훼스의>올훼스의>올훼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