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9%
  • 리뷰 총점8 57%
  • 리뷰 총점6 14%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6.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이청준, 「서편제-南道사람 1」
"이청준, 「서편제-南道사람 1」" 내용보기
▣ 이청준, 「서편제-南道사람 1」        한 여인이 초저녁부터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소리를 한다. 그 소리를 듣는 사내는 북장단을 잡고 무언가를 견디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인이나 사내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솟는다. 소릿재라고 불리는 고개 초입에 있는 소릿재 주막에서 벌어지는 이 소리판을 묘사하는 것으로 연작소설  서편제-남도사람 1 은 시작된다. 소릿재 주막은 주막
"이청준, 「서편제-南道사람 1」" 내용보기

▣ 이청준, 「서편제-南道사람 1」

  

 

 

 

 

한 여인이 초저녁부터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소리를 한다. 그 소리를 듣는 사내는 북장단을 잡고 무언가를 견디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인이나 사내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솟는다. 소릿재라고 불리는 고개 초입에 있는 소릿재 주막에서 벌어지는 이 소리판을 묘사하는 것으로 연작소설  서편제-남도사람 1 은 시작된다. 소릿재 주막은 주막집 여자의 소리로 유명한 곳이다. 사내는 사람들 입소문을 따라 주막에 들러 여인의 소리를 듣고 있다. 과연 절창이라 할 만하다. 서른이 될까 말까한 여인의 도도하고도 구성진 남도소리를 들으면서도 사내는 무언가 흡족히 채워지지 않는 걸 느낀다. 소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사내는 도대체 이 여인에게서 어떤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일까? 소리를 끝낸 여인에게 술을 건네며 사내는 소리의 내력을 묻는다. 여인은 대답이 없다. 사내가 왜 내력을 묻는지 알아야 무슨 말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사내 얼굴에 떠오르는 간절함을 느꼈는지 여인이 입을 연다. ‘소리 무덤얘기가 먼저 나온다. 소리에게도 무덤이 있다고? 소리만 하다 죽은 사람이 소릿재에 묻혔는데, 소리 무덤은 그 사람의 무덤이란다. 1956년이나 57년 무렵, 여인이 대갓집에서 잔심부름꾼을 하던 시절 이상한 식객 두 사람이 사랑채에 들었다. 쉰 고개를 넘은 늙은 아비와 열다섯이나 되어 보이는 딸아이였다. 아비나 딸이나 소리를 잘했다. 부녀는 가을 한철을 하염없이 소리만 하고 지내다가 겨울이 되자 주인어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갓집을 떠나 공동묘지 길 아래 버려진 헛간 같은 빈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병이 들어 거동이 어려워진 늙은 아비는 식음을 전폐한 채 밤만 되면 소리를 일삼았다.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깃든 소리(12)였다. 고개 아랫마을 사람들은 어찌 보면 귀기(鬼氣)가 서린 그 소리를 한숨을 삼켜가며 들었다. 사람의 간장을 찍어 누르는 듯한 힘이 그 소리에는 있었던 것이다.

 

그해 겨울 어느 밤 아비는 이승에서 마지막 소리를 끝내고 나서는 피를 토하며 죽었다. 소식을 들은 대갓집 주인어른이 홀로 남은 계집아이를 거두려고 했지만, 계집아이는 한사코 그 흉흉한 오두막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비의 소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홀로 지내는 아이가 안쓰러웠는지 주인어른이 심부름꾼 계집아이를 오두막에 보냈다. 사내 앞에서 소리를 하던 그 여인이다. 여인은 아비를 잃고 홀로 남은 계집아이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계집아이는 오두막에서 삼년을 보냈다. 아비의 기일이 되면 그녀는 정갈한 술 한 되를 마련하고 고인의 영좌 앞에서 밤새도록 소리를 했다. 그리고는 아비의 삼년상이 끝나던 날 새벽 훌쩍 오두막을 떠났다. 사내 앞에서 소리를 부르는 여인은 그러니까 아비에서 계집아이로 이어지는 소리의 내력을 이어받은 셈이다. 마을사람들은 소리의 내력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세 사람의 소리를 오직 아비의 소리로만 말하고 있다. 아비가 묻힌 소리 무덤은 결국 소릿재에 두루 퍼지는 소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을 마친 여인이 다시 소리를 한다. 사내는 아비와 딸의 이야기를 더 캐고 싶은 표정이다. 사내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여인의 소리는 점점 열기를 더해간다. 북장구를 치는 사내 손바닥 안에도 서서히 땀이 배기 시작한다. 가슴을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내는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여름 햇덩이를 느낀다. 어린 시절 사내는 어미가 해변가 언덕 밭에서 일을 할 때면 무덤가 잔디밭에 허리 고삐가 매인 채 지냈다. 언덕 밭은 아이의 죽은 아비가 남긴 유산이었다. 어미는 물결 위를 떠다니는 부표처럼 콩밭 사이를 오가며 하루 종일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은 이상스런 콧소리를 웅얼거렸다. 어느 날, 뒷산 넘어가는 고갯길 근처에서 이상스런 노랫가락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노래꾼의 소리였다. 노랫소리는 진종일 해가 지나도록 숲속을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어서였을까, 노랫소리도 같고 울음소리도 같던 어미의 웅얼거림이 이날 따라 산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분명하고 극성스러워졌다.

 

그러면서 어미는 뜨거운 햇볕 아래 하루 종일 가물가물 밭이랑 사이를 가고 또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산봉우리 너머로 뉘엿뉘엿 햇덩이가 떨어지고, 거뭇한 저녁 어스름이 서서히 산기슭을 덮어 내려오기 시작하자, 진종일 녹음 속에만 숨어 있던 노랫소리가 비로소 뱀처럼 은밀스럽게 산 어스름을 타고 내려와선, 그 뱀이 먹이를 덮치듯이 아직도 가물가물 밭고랑 사이를 떠돌던 소년의 어미를 후닥닥 덮쳐 버린 것이었다. (16)

 

남편은 잃은 어미는 소리로 가슴에 맺힌 한()을 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미는 숲속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흠뻑 빠져든다. 아이는 어미를 덮친 이 소리를 뱀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날 숲속에서 소리를 하던 남자는 아이 집 문간방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다. 그는 날이 밝으면 언제나 언덕 밭 뒷산의 녹음 속으로 숨어 들어가 진종일 지겹도록 노래를 불렀다. 사내의 소리가 깊어질수록 어미가 부르는 노랫소리도 극성스러워졌다. 아이는 무덤가 잔디밭에서 사내와 어미가 부르는 노래를 온몸으로 들어야 했다. 잠을 자거나 잠을 깨거나 아이의 귓가에는 언제나 노랫소리가 떠돌았고, 머리 위로는 언제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햇덩이가 걸려 있었다. 소리는 얼굴이 없었으되, 소년의 기억 속엔 그 머리 위에 이글거리던 햇덩이보다도 분명한 소리의 얼굴이 있을 수 없었다.”(17)

 

이듬해 이른 여름의 어느 날 밤, 어미는 길고도 무서운 산통 끝에 작은 계집아이를 하나를 낳고는 영영 눈을 감았다. 남자는 핏덩이 같은 갓난애와 아이를 데리고 이 고을 저 고을로 소리를 하며 밥 구걸을 다녔다. 남자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이는 언제나 뜨겁게 이글거리는 햇덩이가 이마에 내리쪼이는 걸 느꼈다. 그것을 그는 소리의 진짜 얼굴로 생각했다. 괴롭고 고통스런 얼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괴롭고 고통스런 소리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머리 위에 햇덩이가 뜨겁게 불타고 있지 않으면 그는 육신과 영혼이 속절없이 맥을 놓고 늘어지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사내는 소리를 어미의 얼굴로, 의붓아비의 얼굴로 기억한다. 어미와 의붓아비에게 소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내가 소리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은 어찌 보면 소리에 새겨진 어미와 의붓아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사내의 머리를 뜨겁게 달구던 여인의 소리가 끝나자 사내는 다시 부녀에 대해 묻는다. 여인의 입에서 뜻밖의 사실 하나가 터져 나온다. 아비를 따라 소리를 하던 여인이 장님이었다는 것. 태생부터 장님은 아니었다는 여인의 말을 들으며 사내는 억제할 수 없는 예감에 몸을 떤다. 사내는 도대체 무엇을 예감하는 것일까? 소리꾼의 딸은 나이 아직 열 살도 채 못 되었을 때 눈이 멀었단다. 소문으로 소리꾼 아비가 잠든 계집 눈 속에다 청강수를 몰래 찍어 넣었단다. 그러면 눈으로 뻗칠 사람의 영기가 귀와 목청 쪽으로 옮겨 가서 눈빛 대신 사람의 목청 소리를 비상하게 한다는 것. 여인의 말을 듣는 사내의 눈에 살기가 어린다. 오랜 예감이 비로소 들어맞았다는 표정이다. 사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소리의 남자가 그럼 소리 무덤의 주인이란 말인가? 더 좋은 소리를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벌이는 소리꾼 아비!

 

어린 시절 사내는 소리꾼 아비를 십년 넘게 따라다녔다. 아비는 어린것들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아비가 아이에게 소리를 가르치려 할수록 아이는 마음속으로 나이 먹은 아비와 아비의 소리를 죽이는 계획을 세웠다. 어미를 죽인 것이 바로 아비의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비의 소리가 실제로 어미를 죽였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차례 아비를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망설이다 때를 놓쳤다. 아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텐데도 아비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 가을 날 오후 한참 소리를 한 후 잠에 빠져든 아비 곁으로 아이가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안고 다가갔다. 실행은 하지 못한 채 아이가 온몸을 떨며 서 있을 때였다. 아비가 천천히 머리를 비틀어 아이를 돌아보고는 뭐 하고 있느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를 슬쩍 나무랐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잠이 든 시늉을 했다. 그날 오후 아이는 아비와 여동생을 떠났다. 아비가 찾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이는 그 소리가 나는 반대쪽으로 묵묵히 걷기만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지. 아비를 위해서도 그렇고 그 여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그건 바로 원한이지 소리를 위한 한은 될 수가 없었을 거 아닌가. 아비를 용서했길래 그 여자에겐 비로소 한이 더욱 깊었을 것이고…….” (29)

 

사내는 아비에게 눈을 잃은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에 곁들여 의붓아비에게 어미를 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내는 왜 그토록 소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맨 것일까? 소리를 찾는 일은 그에게 아비를 찾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아이의 머리에 이글거리는 여름 햇볕을 새긴 존재가 바로 소리꾼 아비이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아비의 소리는 사내가 사는 삶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를 죽이면 아이 또한 죽게 되는 원리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어른이 되어서야 사내는 이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죽은 아비의 소리를 쫓을수록 사내는 아비를 향한 원한이 소리를 통해 희석되는 것을 경험한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원한(怨恨)이 한()으로 깊어지는 계기를 본다. 원한은 복수를 부른다. 아이에게 복수는 어미를 죽인 소리꾼 아비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가 왔는데도 아이는 복수를 실행하지 못한다.

 

아이의 이런 마음을 알면서도 아비는 아이를 멀리 하지 않았다. 사내는 제 눈을 멀게 한 아비를 용서하는 여인의 마음에서 이런 아비의 마음을 역으로 읽고 있다. 원한이 맺힌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는 소리 예술로 승화되지 않는다. 원한은 또 다른 원한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때 만약 아이가 아비를 죽였다면 아이의 머리에 그려진 아비의 소리 또한 사라졌을 것이다. 아비의 소리는 아이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이다. 뿌리를 잃은 아이가 어떻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게 될까? 아비 때문에 눈이 먼 여자도 마찬가지다. 아비에 대한 원한을 가슴에 품으면 이 여자의 소리는 원한 맺힌 노래가 되어버린다. 예술로 승화되지 않은 노래. 작가는 결국 소리가 예술로 승화되려면 가슴 속에 맺힌 원한이 한()으로 중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화(中和)라는 말이 중요하다. 원한은 자신까지 치지만, 한은 결코 자신을 치지 않는다.

 

사내는 아비가 소리를 이루기 위해 누이동생에게 어떤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 예감한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아비에게 눈이 먼 이 여인이 원한을 한으로 중화하여 소리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대목이다. 어미를 죽인 아비의 이미지에 휩싸여 살부(殺父) 욕망에 들끓던 사내는 한 맺힌 소리를 찾아다니면서 그 욕망을 시나브로 내려놓는다. 아비를 용서한 여인은 가슴에 맺힌 한을 소리로 풀어냈다. 사내도 마찬가지다. 여인이 소리를 하며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면, 사내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냈다. 머리를 뜨겁게 비추던 여름 햇볕을 사내는 온몸으로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식혔다. 작가는 이렇듯 소리에서 사람을 살리는 힘을 발견한다. 한 맺힌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새로이 살 힘을 얻는다. 정말로 좋은 예술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o*****s 2019.11.10.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편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관계'란 단어.
"서편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관계'란 단어." 내용보기
내게 서편제란 소설과 함께 떠오른 단어는 '관계'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 왜 내가 이 단어를 떠올렸는 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서편제는 내게 스쳐 지나가는 소설이었다. 홍차와 마들렌처럼 내게 이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낼 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관계'란 단어가 이번에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스러울 따름이었
"서편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관계'란 단어." 내용보기

내게 서편제란 소설과 함께 떠오른 단어는 '관계'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 왜 내가 이 단어를 떠올렸는 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서편제는 내게 스쳐 지나가는 소설이었다. 홍차와 마들렌처럼 내게 이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낼 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관계'란 단어가 이번에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스러울 따름이었다. 이건 뭐랄까 나를 옭아매는 느낌까지 선사하는 단어였다. '관계', 이 단어가 글 속에서 명백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새와 나무'라는 연작 소설에서다. 사내가 삶과 관계에 대해, 인간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인데 나는 그 부분에서 작가를 얼핏 느꼈다.

 

하여간 예전 독서로 인해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다시피한 이 '관계'란 단어는 이번 서편제 독서를 내내 지배한 단어였다. 이 단어가 독서를 방해한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분명 그 시절에 나는 저 '관계'란 단어를 앞에 놓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흔적을 따라가고 싶었으나 내가 리뷰를 남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저 앉아 생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가끔 정말 좋아한 책의 리뷰를 일기장에 남겨놓기도 했고 지난 리뷰를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길 때도 있지만 이 서편제란 책은 그 모든 것을 비껴갔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말 빠져있던 책들만 여러번에 걸쳐 리뷰를 썼기 때문이다.

 

왜 나는 서편제를 읽으며 한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아마 그건 연작 소설의 첫 소설인 '서편제'의 끝에 나오는 사내의 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이란 것이 어떻게 쌓이는가에 대한 사내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것이 한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한과 삶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삶과 한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것, 살아가는 것이 한을 쌓고 또 때로는 한이 풀어지기도 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응어리져서 풀어지지 않는 것이 한은 아니니 그것이 때로는 불쑥 치밀어 오르다가도 어느새 수면 아래에 고요히 잠잠해지는 것 또한 한이고, 때로는 그 속에서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한으로 인해 달관에 이르기도 하고 절망에 이르기도 하고 가슴 저이는 통증과 그리움을 안고 있다가도 그것이 신기루가 되어 흩어지기도 하였을 것인즉.

 

아마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주막 주인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한과 삶에 대해서. 여러 구절들이 맞물려 듬성듬성 서로를 연계하는 이 소설은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 머릿속에 굳건히 자리한 저 '관계'란 단어는 어쩌면 내가 이 소설을 사내와  그의 삶 사이의 관계로 읽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삶을 사는 주체와 삶 그 둘 사이의 관계. 그 속에서 한이란 것이 있을 지도 모르고 없을 지도 모르며, 회한과 그리움이 있을 지도 모르고 또한 없을 지도 모르며, 후회와 기쁨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한'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저 '관계'란 단어를 깨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저 '관계'란 단어가 지극히 원망스럽다. 이토록 내 뇌리에 박힐 요량이면 그 처음의 생각도 함께 박힐 것이지 처음의 생각은 저 홀로 망각의 강을 건너가고 그저 흔적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이 연작소설의 마지막 작품에서 사내는 차를 마시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마 삶이었을 것 같다. 자신이 지내온 인생을 떠올리며 찻잔에 그것을 담고 마셨을 것이다. 찻잔 속 삶은 그가 되었을 터이니. 어찌 보면 자신이 자신을 마시고 다스려나갔을 지도 모르겠다.




YES마니아 : 골드 e***h 2014.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恨)이라는 민족적 정서를 가장 구체화한 소설
"한(恨)이라는 민족적 정서를 가장 구체화한 소설" 내용보기
‘서편제’는 아마도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욱 잘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예전에 서울 개봉관의 관객수로 흥행성적을 집계할 시절에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수 백만명을 돌파한 영화로 대서특필될 정도의 영화였으니 한 번 정도 영화관을 기웃거렸을 법도 했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던 교과서의 가르침에 반항하던 시절이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쿠엔틴 타란티
"한(恨)이라는 민족적 정서를 가장 구체화한 소설" 내용보기

서편제는 아마도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욱 잘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예전에 서울 개봉관의 관객수로 흥행성적을 집계할 시절에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수 백만명을 돌파한 영화로 대서특필될 정도의 영화였으니 한 번 정도 영화관을 기웃거렸을 법도 했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던 교과서의 가르침에 반항하던 시절이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쿠엔틴 타란티노를 필두로 전세계를 휘몰아친 ‘B급 영화신드롬에 빠져 살던 시절이었던 때문인지 당시에 접하지 못했던 서편제라는 영화를 지난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접했다. 마흔 중반을 넘어 이젠 영화를 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간만에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혼자 PC 앞에 앉아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배우로 등장한 김명곤이 각색한 것을 보고 이미 출간된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겠다 싶어 다음에 원작으로 읽어봐야지 하다가 근 일 년이 지나서야 원작소설을 읽게 되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남도를 떠돌던 소리꾼 사내 하나가 어느 마을로 흘러 들어와 홀로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던 과부 아낙과 살림을 차리고 여자 아이를 하나 낳게 된다. 하지만, 아낙은 여자 아이를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소리꾼 사내는 다시 사내 아이와 여자 이이를 데리고 방랑길에 올라 소리로 품을 팔아 연명하며 아들에게는 북장단을 딸에게는 소리를 가르친다. 의붓아들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소리꾼 사내를 죽이고자 하나 결국 그러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달아난다. 소리꾼 아비는 딸에게 좋은 소리를 갖게 하고자 함이었는지 아니면 딸도 그를 떠나는 것이 두려웠는지 딸의 눈에 청강수를 넣어 눈을 멀게 한다. 이후 소리꾼 아비가 죽고 딸은 아비의 3년상을 치루고 다시 방랑길을 떠난다.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 헤매던 올아비는 수소문 끝에 찾아간 남도의 주막에서 여동생을 만나지만 소리를 청해 하룻밤 소리판을 벌이고는 자신이 의붓오빠임을 밝히지 않고 떠난다. 동생 역시 그가 의붓오빠임을 알아차리지만 그를 붙잡지는 않는다. 그가 떠나고 의붓동생도 다시 방랑길을 나서 아버지의 유골을 선학동에 이장한다. 그리고, 오누이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그 사연을 남도를 떠돌며 전하게 된다.

 

소설 서편제남도 사람이라는 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의 첫번째 소설로 영화 서편제는 첫번째 소설인 서편제와 두번째 소설인 소리의 빛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소설 서편제로부터 따오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소설 소리의 빛에서 따왔다고 볼 수 있다. 표현 매체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영화와 소설의 느낌이 정반대인 것은 조금 의외였다. 영화에서는 마지막 소리판을 통해 한()을 토해 내는 듯한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면, 소설에서는 마지막 소리판 후의 이별과 방랑을 통해 한()을 더욱 깊이 가슴 속으로 품게 되는 것 같은 애절함이 느껴진다. 소설의 원작자가 작가 노트를 통해 영화에서는 소리꾼 여자가 마침내 나름대로의 득음(得音)의 경지에서 후련스런 해한과 절정의 해방감을 맛보지만, 소설에서는 언제까지나 끝없는 떠돎만이 계속되고 그 떠돎 자체가 우리 삶의 한 운명적 과정이요 비극적인 꿈의 짐이 아닌가 싶어, 나는 그 영화대본의 원작자 처지에서 마음이 새삼 아득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지만.”이라고 언급할 정도니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갈만한 정도일 것이다.

 

참으로 애잔한 오누이의 운명에 가슴이 먹먹해져 학창시절에 우리의 민족적 정서라고 배웠던 한()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사전을 한 번 뒤적여 봤더니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사전적 정의는 본질을 꿰뚫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헤아릴 수는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BOOK : 2016-005-0183)

k******1 2016.11.1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네 한의 정서를 느껴보자..
"우리네 한의 정서를 느껴보자.." 내용보기
우리민족의 정서로 한을 꼽으면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흔히들 팔자려니 업보라느니 하는 말을 잘쓰지는 않아도 생각은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정서 깊은 곳에는 그러한 한이 서려 있다. 우리 민족의 성격인 것이다. 이 서편제는 이청준의 남도사랑 연작이라는 연작 소설중에서 소리의 빛, 서편제, 선학동나
"우리네 한의 정서를 느껴보자.." 내용보기
우리민족의 정서로 한을 꼽으면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흔히들 팔자려니 업보라느니 하는 말을 잘쓰지는 않아도 생각은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정서 깊은 곳에는 그러한 한이 서려 있다. 우리 민족의 성격인 것이다. 이 서편제는 이청준의 남도사랑 연작이라는 연작 소설중에서 소리의 빛, 서편제, 선학동나그네, 새와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의 연작이다. 이청준은 이 남도사랑 연작을 쓰는 시기에 맞추어서 언어사회학서설이라는 또다른 연작을 썼다. 따라서 이 두 연작을 같은 시기에 썼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함께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70년대에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는 현실의 억압적인 유신상황하에서 작가로서 진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언어와 괴리되는 모습을 언어사회학서설에서 다양한 고민 지점으로 표현했고 이러한 고민과 번민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이 소리를 통한 그것도 한이 깊이 서린 서편제라는 소리를 통한 승화를 모색한 것이다. 결국 남도사랑연작의 마지막 다시 태어나는 말에서 작가 이청준이 작가로서 양심과 현실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힘겨운 고민과 번민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가슴속의 한을 원망이나 복수로 갚지 않고 용서로 그것을 승화시킴으로서 자신의 창작으로 완성해 가는 것이 판소리의 소리의 득음과 관련이 있는 것에서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

[인상깊은구절]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 주려해서 심어 줄수 있는 것은 아닌 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텐 사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그 역시 한의 밑자리에서 아픔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아픔이나 원망이 쌓여가고 풀리는 감정태로서가 아니라, 그 아픔을 함께 껴안고 초극해 넘어가는 창조적 생명력의 미학"으로 한의 본질은 파악한다.
r*******d 2001.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소리에 대한 이해
"우리소리에 대한 이해" 내용보기
우리소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제일 먼저 판소리이다. 하지만 판소리가 우리 생활에 그렇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판소리의 그 길게 늘어지는 소리가 소름끼쳤다. 그리고 그만큼 공감이 가질 않았다. 판소리..... 하면 그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 이것이 판소리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저 한스럽게만 부르려고 하는 모습이 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서편제
"우리소리에 대한 이해" 내용보기
우리소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제일 먼저 판소리이다. 하지만 판소리가 우리 생활에 그렇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판소리의 그 길게 늘어지는 소리가 소름끼쳤다. 그리고 그만큼 공감이 가질 않았다. 판소리..... 하면 그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 이것이 판소리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저 한스럽게만 부르려고 하는 모습이 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서편제에서는 그 소리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되었다. 왜 우리민족의 소리가 한일수 밖에 없었는지.... 우리 민족의 정서가 한이기 때문에 그 소리를 한으로 밖에 풀어낼수 없었다는 것.... 솔직히 서편제는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잘알려져 있다. 처음엔 이상하던 판소리가 이제는 친숙하게 느껴진다.
d******7 2003.06.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예술의 아름다움..이란.... !!
"예술의 아름다움..이란.... !!" 내용보기
이 서편제 라는 작품은 영화. 그리고 책으로도 아주 유명한 작품이라 처음부터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한번더 읽었다. 1960년 초에 동호라는 한사람이 소릿재 주막의 한 주인의 판소리의 한 대목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떠올려보는 형식이다....!! 동호는 자신의 누나를 찾으러 다닌 끝에 남동생 동호와 누이 송화는 재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장님이 되어 버린 송화
"예술의 아름다움..이란.... !!" 내용보기
이 서편제 라는 작품은 영화. 그리고 책으로도 아주 유명한 작품이라 처음부터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한번더 읽었다. 1960년 초에 동호라는 한사람이 소릿재 주막의 한 주인의 판소리의 한 대목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떠올려보는 형식이다....!! 동호는 자신의 누나를 찾으러 다닌 끝에 남동생 동호와 누이 송화는 재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장님이 되어 버린 송화 와 자신의 아버지의 북 실력을 똑같이 이어받은 동생 동호가 서로 남남인듯이 같이 창을 한다. 그 부분에서 가장 감동적이었고. 서로 자신들이 찾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이유로 숨겨야 했던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팠고, 참 , 사람의 혈육이라는 것이 , 뜨거운 거란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 다시 한번더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 해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 유봉이 송화에게 한을 품게 해서 .. 그 한으로 더욱 훌륭한 노래를 부를수 있도록 하던 부분. 또한 너무나 안타까웠고. 그것이 송화를 위한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직 나의 생각으로는 그런 유봉이 이해가 되질 않을 따름이다
k*****0 2002.11.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 서편제를 읽고
"[소설] 서편제를 읽고 " 내용보기
제목 : 서편제-연작 ‘남도사람, 1976 ~ 1981’ 저자 : 이청준 출판 : 열림원 작성 : 2007.05.15. “아아. 영화를 다시보고 싶구나.” -즉흥 감상-   고백하건데 사실인즉, ‘천년학, 2007’을 보러가고자 약속이 잡혀있었던지라 복습을 해보기로 했었습니다. 마침 집에는 영화 ‘서편제, 1993’ VCD도 있었고, 그 원작 소설이라 말해지는 연작집도 한권 있었는데요.
"[소설] 서편제를 읽고 " 내용보기

제목 : 서편제-연작 ‘남도사람, 1976 ~ 1981’

저자 : 이청준

출판 : 열림원

작성 : 2007.05.15.



“아아. 영화를 다시보고 싶구나.”

-즉흥 감상-



  고백하건데 사실인즉, ‘천년학, 2007’을 보러가고자 약속이 잡혀있었던지라 복습을 해보기로 했었습니다. 마침 집에는 영화 ‘서편제, 1993’ VCD도 있었고, 그 원작 소설이라 말해지는 연작집도 한권 있었는데요. 하지만 결국 일정의 틀어짐에 새롭게 만들어진 작품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는 중에 일단은 읽고 있던 이번 책의 마침표를 만나 이렇게 조금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먼저 ‘소리’로서 그 문을 열게 됩니다. 한적한 길목의 한 주막에서 이어지는 소리에 북장단을 잡아주기 시작한 남자는 소리하는 여자로부터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여자에게 소리의 사연을 묻게 되는군요. 그렇게 ‘소리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서편제], 주막이 하나 있었습니다. 3대째 대물림 되어진 그저 한적한 주막에 그 집의 주인과 장님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약재 수집을 위해 전국을 떠돌고 있다는 한 남자가 방문을 하게 되는군요. 그리고는 장님 여인에게 소리를 청하게 되는데……. [소리의 빛], 해안도로를 달려 버스에서 내리게 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약국에 들러 ‘선학동’에서 머물만한 곳을 묻게 되는군요. 그렇게 한 주막에 들리게 되는 남자는 변해버린 선학동과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된 학의 이야기에 이어 다시금 날아오르게 된 학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선학동 나그네], 오래오래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마치 나무와 같은 남자의 모습에 이어, 20여일의 나그네 길을 걷던 한 남자의 모습이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런데 울창한 나무숲 근처에서 나무 같은 한 남자를 보게 되고 이리오라는 손짓에 주인공은 그곳으로 가게 되는군요. 그리고는 이처럼 숲을 이룬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새와 나무], 차를 마시는 방법에 대해 진정한 답을 원하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다양한 만남 속에서도 차의 참맛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어떤 사람이 기고한 글에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고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앞서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절에 들리게 되고 그곳에서 차를 마시게 되면서 눈먼 누이를 찾아 기나긴 여행길에 올랐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다시 태어나는 말]



  우후. 나름 짧게 적는다고 간추린 것이었는데 막상 적고 보니 길어진 듯합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작품은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이야기인 ‘다시 태어나는 말’일 경우에는 다시 읽어도 아직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또 저자분의 다른 작품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보니 이청준 님의 작품을 다시금 수집대상에 넣어야 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네? ‘다시금?’이 웬 말이냐구요? 그것은 분명 예전에도 이청준님의 몇몇 작품을 읽고 정말이지 중독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판사 자체에서 ‘이청준 문학전집’으로 묶여 나오던 것을 사려고 했었지만, 역시나 문제는 자금이었는데요. 그 당시만 해도 일단 돈도 별로 없는 학생이었고 헌책방을 모르고 살았다보니 책값이 점점 올라간다는 기분에 중도 포기하고 말았었습니다만, 이제는 나름 헌책방 마니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다시 시작해보려는 것입니다(웃음)



  그건 그렇다 치고, ‘천년학’을 아쉽게 극장에서 놓친 관계로 비디오나 DVD를 기다려야 할 판인데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아까워 영화에 관한 정보를 조금 읽어보니 영화 ‘서편제’의 뒷이야기를 담았다고 되어있군요. 영화 ‘서편제’일 경우에는 ‘서편제, 1976’와 ‘소리의 빛, 1978’을 영상화 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천년학’일 경우에는 앞의 두 이야기보다 조금 더 추상적인 기분으로 만났던 뒷이야기를 담았다고 되어있으니 다른 이야기는 어느 것까지, 또한 어떻게 영상화시켰을지 심히 궁금해져버렸습니다.



  그럼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한국의 ‘한恨의 정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바. 몇 권 밖에 소장하지 못한 것이나마 이청준 님의 작품을 집어 들기로 하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군요.

 

TEXT No. 445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n*****g 2007.05.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