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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에는 심장과 체온이 담긴다는 드라마 속 한마디가 따듯한 겨울밤이다. 냉기가 도는 날카로운 단어와 표현들에 쉽게 체온을 빼앗기거나 쉽사리 베이지 않을 정도로 따듯한 밤에 읽기 좋은 시집이다. 소녀가 풀어내는 헤아림의 말에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분노와 공포의 언어에 섬뜩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신변잡기의 모든 것이 시가 되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땐 어린아이의 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기괴한 단어와 표현들이 낯설진 않았지만 편안하진 않았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읽어가면서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마음이 시가 되기까지, 아이는 얼마만큼의 슬픔을 곱씹어야 했고 얼마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까. 엄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엄마가 화를 낼 때면/ 초록 머리칼이 곤두서 메두사가 된다/ 머리칼은 내 목을 칭칭 감아/ 질식시킬 수도 있겠다/ 그건 엄마의 의도가 아니라/ 머리칼의 의도이다 (엄마 중) 인형이 엄마를 먼저 먹어버렸어 (식인 인형 중) 분노지수가 높아지는 것/ 계속 높아지다 터지는 것 (토마토 중) 어른들이 쉽게 내뱉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곪게 한다. 곪아 터진 마음은 때론 폭력으로 때론 비행으로 때론 자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물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속 깊고 정 많은 아이는 시를 쓰게 된다. 겨울 목도리가/ 입 밖으로 기어 나와 목을 조른다 (혀 중) 몸속에 숨어 사는 피의 정체를/ 알아보려면/ 상처딱지를 듣고 피를 맛보아야 한다 (내가 시를 잘 쓰는 이유 중) 그저 그렇게 자라버린 수많은 어른들 속에서 나 또한 그들과 많이 다르지 않은 참 별로인 어른이 되어있다는 사실에 좌절감과 자조 섞인 허한 웃음이 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앞날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동심이 갖는 관대함 때문이다. 따듯한 말 한마디, 애정 어린 시선 한번에도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면죄부를 내밀기 때문이다. 못된 짓을 열 가지 이상 한 사람은/ 자동으로 못 들어오게 되는 집/ 그래도 진심으로 반성한 사람은/ 들어갈 수 있는 집 (내가 짓고 싶은 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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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 소녀가 쓴 동시..이 동시를 읽으면서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 읽어가는 것은 아이가 쓴 동시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쓴 동시를 편견 없이 바라 보는 것 그것이 이 시를 읽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솔로강아지가 나오기 전 작가 이순영은 언론을 통해서 먼저 알려져 있었다. 그것이 좋은 소식이 아닌 나쁜 소식으로. 그리고 이순영이 쓴 동시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면서 왜 이렇게 쓴거지. 하면서 말을 많이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욕하기 전에 먼저 그 아이가 그런 동시를 쓴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아이가 쓴 동시에는 우리들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놓았다는 걸 <솔로강아지> 라는 동시를 읽어본 사람은 느끼게 된다. 방송과 언론에서 보여지는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사회의 모습들..그 사회 안에서 경쟁을 부추기면서 의미없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습 모습들에 대해서 작가 이순영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어린 시절 그런 생각을 하였지만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게 되었다. 시에 담겨진 동시에는 왔다 장보리가 나온다.그 드라마 안에서 친딸과 앙딸의 비극적인 운명.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막장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 그것이 정말 우리 사회에서 지향해야 할 옳은 모습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시에는 강아지 순둥이에 대해서 나온다...우리는 종종 강아지를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 사람으로 태어나 골치 아픈 일들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들. 강아지는 의식주만 해결이 되고 아프지 않다면 걱정 꺼리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으며 태평한 강아지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사람들을 강아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시에는 학원 가기 싫어하는 그 마음이 담겨져 있다..학원에서 공부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그 아이는 정말 공부가 좋아서 학원에 가는 걸까 아니면 부모님의 강요에 떠밀려서 가는 걸까..우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는데 어릴 적부터 공부라는 것에 질리기 시작하면서 수능이 끝나면 책에 대해서 손을 놓게 된다...그리고 여기저기서 책을 읽어야 한다,인문학을 공부하면 인생이 달라진다..하여도 공염불이다..그것은 공부에 대해서 그 재미를 붙이기 전에 질려버리는 연습을 먼저 하였기 때문이다.. <솔로 강아지> 에 담겨진 동시는 없는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었다..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놓았으며 그걸 필터링 하지 않은채 그대로 드러내었기에 우리 스스로 편견을 바라보고 읽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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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강이지 어른을 위한 동시 이순영 동시집 솔로 강아지를 쓴 이순영 작가(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어린이)는 어린이가 쓴 거라고 보기에는 잔인하다는 평을 받은 동시를 발표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도 그 동시를 읽어보았고 그것과 함께 있는 삽화도 본적이 있다. 초등학생이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아이라서 그런 거리낌없는 시를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시와 삽화가 함께 있어서 시의 내용이 더 깊이 들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영어로 번역한 시도 있어서 한국어로 쓴 시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시를 보면서 대체 이 아이는 어떤 것을 보고 시를 썼는지 궁금해지는 것도 있다. 장롱 위에 있는 수십 개의 사람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 대체 무엇이길래 실종된 얼굴 같다고 한 것인지 궁금하다. 장롱 위에 실종자 명단이라도 붙어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장롱을 불태워서 실종된 사람들이 모두 그림 밖으로 나와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을까. 저자는 사춘기의 자신에 대해 동시로 쓰고 있다. 사춘기의 아이는 밝은 빛에서 나와서 계단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아이는 얼굴, 손, 다리도 점점 어두워진다. 사춘기 때문에 마음의 갈피를 못잡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표현한 동시 같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모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을 이야기 했는데 티라노사우루스, 지내, 귀신, 주사 등등... 그러나 저자는 제일 무서운 것이 엄마라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 모두 자신의 엄마가 제일 무섭다고 말했나보다. 엄마가 얼마나 무섭게 하길래 아이는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라고 했을까? 아빠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는데 말이다. '표범' 이라는 시로 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 시도 같이 실려 있었다. 눈밑으로 눈물이 흘러서 삼각형이 되었다는 표점의 얼굴을 보고 있는 작가의 생각은 어땠을까. 표범이 무섭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엽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니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얼음판에서 펼치는 다양한 경기들을 보면서 최고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냉정하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래서 친구였더라도 이기려고 이를 악물고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 시를 쓴게 아닐까 싶다. 저자가 이런 감성을 다 끌어안고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독자들에게 즐거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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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시 솔로강아지 A Single Dog 지은이 이순영은 얼마전 여름 ‘SBS 영재 발굴단’에 출연했었는데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2005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서울 서원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고, 2013년 오빠 재복이와 남매 동시집 <동그라미 손잡이 도넛>과 <코코아 속 강아지>, 동화책 <투명인간 노미>를 출간했으며 2014년 8월 표범이라는 시로 어린이 동아일보 문예상 장원의 영광을 안았다고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솔로강아지를 컬러링북으로 만날 수 있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 솔로강아지는 66편의 동시로 시인 순영이의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시로 표현했다. 시는 작각에 감정이나 상상력이 낳는 산물로 작가 자신의 독창성을 볼 수 있는데 솔로강아지 수록된 시들은 한 어린이에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모든 어린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솔로강아지 를 통해 우리 어린이들의 생각을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상황일 때 우리 어린이들이 고통스럽게 생각할까? 등 한 어린이에 체험한 아름다운 세계 속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해준다. 작가가 말하는 것들을 통해 시를 통해 우리 어른들에게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소름 돗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초등5학년이 맞는 건가 다시금 찾아보게 하는 작가약력 등. 내가 초등5학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나 떠올려 보기도 하면서.. 내가 12살 때 감성적으로 아니 내가 이런 시를 쓸 생각을 봤을까? 독후감 하나, 표어 하나 만들어 내는 것도 벅찼을 나이였던 것만 같은데. 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 때마다 편안함 속에 젖어드는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섞여있다. 시 하나하나에 삽화가 주는 느낌 또한 색다르다. 책 속에 첫번째로 등장하는 솔로강아지 부터 내가 짓고 싶은 집까지 정말 모두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춘기 아이들에 맘이 쓰여서 인지 사춘기에 관련된 시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이 왜이리도 한 번 읽었을 뿐인 시인데 하나하나 머릿속에 남아서 맴도는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무엇운 것 말하기에 우리엄마라니 공감은 되지만 너무나도 슬퍼진다. 시를 읽으면서 너무나도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말들 하지만, 꺼내 놓기가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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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강아지
어릴적 초등학교 시절때 동시를 많이 접했던것 같다. 나는 어렸을때 동시를 좋아했고, 시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시이기 때문에 더욱 읽어보고싶었다. 한때는 시를 좋아하고 사랑했으니까.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시를 다시 읽으면 어떤 기분일지도 궁금했다.
참으로 놀라운 이유는 저자가 바로 초등학생이라는 점이다. 나는 저자가 초등학생일거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이 책을 읽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솔직한 시라고 보면된다. 한글자 한글자 의미가 담기고 표현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동시를 읽으면서 어른인 나도 깨닫게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세상의 진실과 거짓속 그렇게 우리는 늘 살아간다. 알면서도 거짓을 받아들이고, 모르면서 착각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것 같다. 동시는 참으로 아이의 시선으로 한문장 한문장 쓰여졌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아이의 동시는 나의 마음까지 울리고, 어른들에게 마치 채찍질하는 듯하였다.
동시는 참으로 다양한 주제이다. 특히 명사형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림과 함께 동시가 쓰여져있는책이다. 특이한점 한가지는 영어로 동시를 번역되어있다는 점이다. 한국어로 동시가 쓰여졌다면 그 옆에는 영어도 같이 쓰여져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실 요즘 영어 공부를 시작중이다. 이 책은 동시를 음미하면서 영어도 접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쁘고 배움을 얻어서 좋았던것같다.
<솔로강아지>의 책 제목은 아직 무슨 의미인지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도 어린아이의 시선인 저자가 어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하게 동시를 읽으면서 괜히 뜨끔 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부분도 있었다. 동시는 참으로 다른 시각과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니까 예전에 시를 쓰던 그때가 떠오른다. 나도 그때 시를 쓸때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었던것같았다.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떻게 글을 쓸까 항상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쓰는것이 정답같다. 나는 이 책을 덮고 시로 내 마음을 표현해보는것도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노트를 꺼내서 시를 적어보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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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평]「솔로강아지」 어리고 탁월한, 그리고 잔혹한 재능
사회가 재능을 닫아버리는 경우는 어떤 게 있을까. 엄마를 씹어 먹고 구워 먹는다는 등 잔혹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보고 어린 작가의 출중한 재능이 눈을 감아 버릴까봐 걱정됐다. 「솔로강아지」는 초판에 담겼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빼고 다른 시 아홉 편을 대신 채워 내놓은 개정판이다. 나는 대학에서 시를 배우며 누군가에게 '시'와 '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시인의 표현을 더 깊이, 많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느끼게 됐다. 이 어린 작가는 이미 '시'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다른 시인과 다른 점을 찾자면 표현하는 소재뿐이었다. 이순영 작가는 나이에 걸맞은 일상적인 소재를 언어로 훌륭히 표현해내는, 다 큰 시인이 쓸 수 없는 시를 썼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성장에 따라 풍부한 계절처럼 모습을 바꿔갈 이순영 작가의 시가 기대된다. 이 어린 작가의 멋진 예술성을 더 파헤치고 느낄 수 없을까, 하며 책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마음에 거슬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순영이는 시 쓰기를 좋아하지만 자주 쓰지는 않고 가끔 자기가 진짜 쓰고 싶을 때만 쓰며 살아갈거라고 합니다. 시는 순영이의 베프거든요.' '학원가기 싫은 날'이 대중들에게 거부 당하면서 창작에 대한 마음이 구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같은 시인으로 이미 비슷한 고난을 헤쳐나갔을 어머니(이순영의 어머니는 시인 김바다 씨다)가 좋은 멘토가 될 것이라 위안을 삼기도 한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아이를 보고 막연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쓰고 싶은 글'이 아닌 '대중에게 거부 당하지 않을 글'을 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또 든다. 물론 어린 작가의 역량과 솔직함을 보면 괜한 걱정이라는 안심... 걱정과 안심... 계속 반복... 앞으로 이순영의 시가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중심을 잃어버리거나 창작을 그만둬 보지 못하게 된다면 무척 아쉬울 것 같아 드는 생각이다. 시는 어린 아이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장래희망처럼 다양한 모습을 띈다. 맨몸으로 집을 돌아다니는 오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아이다운 시가 있는가 하면(22P '오빠의 고추') 그 적은 세월에 어디에서 이런 '어둠'을 느꼈나 하고 깜짝깜짝 놀랄 만한 시도 있다. "어린이가 말하는 건 모두가 다 시 아닌가"(82P '시') 하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나 탁월한 감각, 강렬한 이미지 역시 볼 만하다.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병철 시인의 평가처럼 공깃돌로부터 바다로 넓어져 가는 생각, 상상, 감각은 놀라웠다.
공깃돌이라고 하는 작은 일상적인 사물부터 바다를 연상시킨 사유의 확장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ㅡ 이병철 시인 공깃돌을 보고 소금 알갱이를 연상하고 공중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모습에서 바다와 소금 알갱이를 떠올렸다. 무궁화를 보고 "분홍빛 레이스 / 투명한 피부 아래 보이는 가는 핏줄" 이라는 표현을 쓴 시 '무궁화'에서는 섬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시는 '감금'과 '고기굽기'다. 장롱의 겉무늬를 보고 감금된 사람을 떠올라다니! 내가 어렸을 떄 장롱무늬를 보며 간직하고 있었던 막연한 생각을 마치 척추 뽑듯이 쑥! 하고 봅아낸 느낌이었다. 불 태워서 나오게 하려는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 깊다. '고기굽기'에서 선택한 '말랑한 피가 솟는다', '고기는 온몸으로 운다'라는 표현은 쉽고도 재밌다. 육즙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고 모두가 생각할 법 하면서도 언어로는 쉽게 하지 못했던 표현 아닐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시는 이런 시라고 생각한다. 읽는 순간 아! 그렇지! 하고 다 마른 줄 알았던 우물에서 약수 한 바가지 퍼올리듯 감성을 끄집어 내주는 시. 아직 딱딱하게 굳지 않은 말랑말랑한 생각. 이순영의 시가 좋아질수록 32페이지의 '학원가기 싫은 날' 제목을 달고 있는 텅빈 페이지가 아쉽다. 그런데 「솔로강아지」에 삽입된 그림은 이해되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에서 글 대신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이는 결코 시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66페이지의 시 '토마토'를 보고 그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젠가 화가나 뭉개진 토마토처럼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그려보다 불현듯 이순영의 토마토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를 그제서야 이해할 때, 그때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한 문학적 쾌감을 앗아가 버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출판사의 의도는 알겠지만 언어로 그려야 할 세상을 그림으로 채우다니... 시 옆에 놓인 그림을 바라봄으로써 '시'로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그림 한 장에 가두어 버렸다. 머릿속 풍부한 세계를 잃어버린 느낌. 문학 작품 대부분 그림이나 사진 없이 오로지 백지와 글로 이루어져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으로 채우라는 의미다. 그게 허구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문학적 상상 아니던가. 출판사의 과도한 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로 치자면 "혹시 이해 못할까봐 말해주는 건데, 여기서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한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거야. 결말은 '이렇고', 아! 몇 페이지 전 쯤에 복선과 암시가 깔려 있으니 다시 한 번 봐봐" 정도의 친절이랄까?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페이지를 양분한 영어 번역이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영문으로도 다시 한 번 읽어보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대로 해외 출판을 하려는 걸까? 아쉽기보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추측한다면 이순영의 '시'를 보여주는 책이 아닌 이순영의 '시'를 재료로 만든, 멋들어지게 꾸민 '상품'이라는 느낌이다. 뭐 물론 책의 구성과 디자인 약간 아쉽긴 하지만 이순영이라는 재능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다음에 보는 '이순영'은 온전하게 시만을 즐길 수 있는 '이순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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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악마와 천사의 두 마음이 급변하게 아교처럼 찰싹 달라 붙었을까. 디지털에 아니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인성이 아이들의 인성이 접착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윤리의 순수함이 그래도 초등학생까지는 아직까지 묻어 있지 않나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위치를 나침반이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자 역할을 하는것 같기도하고, 새삼 엄마라는 순순한 단어, 그 포근함을 생각케한다.책속에서 표현하듯이 엄마가 화날때는 동물일게다. 내가 무척 짜증스럽거나 기분이 않좋은 상태에서 엄마의 화가 내 몸속으로 들어 올때는 그것이 반복되어 전이될때는 더 더욱 그럴것이다.
다수의 상식에서는 이해가기 힘들었던 「 솔로강아지 」에서 학원에 가기싫을때 라는 시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그 시, 그 문제의 그시.
독자들은 위 시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까.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발상이라면, 엄마를 정신적으로 아주 가학적으로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 아니 엄마는 혹시 우리 아이들에게 더 심하게 엄마라는 이름을 빌어 아이를 혹독하게 공격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사회의 단면이 너무나 빠르게 우리 아이들에게 젖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울타리에 갇히 짐승처럼 길들여 지고 있지 않나 반문도 하게 된다.
매말라가는 우리 사회의 윤리가 아이들의 도덕교과서와는 너무나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아닐까. 책속의 도덕과 사회화속의 도덕의 간극은 흑백논리만큼이나 크다. 인정하고싶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신랄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들이다. 삽화 그림과 시어들도 잔뜩 화난 모습들, 오죽했으면 솔로 강아지를 최고의 주제로 삼았겠는가. 어른들도 솔로족이 많지만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이외는 아무도 없다. 그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숨쉴 공간이 숨쉴 산소가 부족하다. 오직 공부다. 오직 전쟁이다. 놀이의 즐거움은 유치원때부터 이미 사회에 빼앗기고 만다. 그러니 나를 이기는 것보다는 상대방을 친구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것에 그 숨쉴 공간과 시간을 양보할 수 밖에 없다. 사회도 많은 동조를 하고 부추기고 있는셈이다.
마음이 닫혀 있던 그 울화가 엄마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아이의 꽉 닫힌 마음의 열쇠가 어느 순간에 폭발한 상태, 그것을 언어적 유희로 잘 갈무리해서 독자들에게 전이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직접화법을 표현한것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충격요법으로 대변한게 아니었나 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 솔로 강아지를 통해, 삭제된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때라는 시가 우리 사회에 울분을 토해낸 시지만, 우리 모두의 아이들 마음은 내가 짓고 싶은집, 내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처럼.
그런데, 아이들 세계에서 순영이처럼 직설적 표현이 그들 세계에서는 넘나든다. 은유가 아닌 은어가 되었던 어떠한 방식을 틀이 갖추어진채, 어른들의 마음의 시선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엄마와 어른들과 선생님과 사회적 어른들의 세계를 표현한다. 단지, 외형적으로 예를 갖추어야 할 장소는 배제하겠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시, 초등학교 5학년의 경험과 상상이 이 시대적 상황을 잘 꿰뚫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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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잔혹동시’라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시집이 다시 새롭게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동시는 삭제하고 몇몇 동시를 더 추가하여 개정판으로 나온 겁니다.
과연 어떤 시들이었기에 논란이 되었던 걸까(물론 가장 논란이 된 시는 제목만 실리고 내용은 빠진 백지로 실려 있지만 말입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며, 꼬마 시인의 시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초등학생이지만, 어린이의 시라고 느끼지 않을 그런 시들이 가득하기에 먼저 놀랐습니다. 역시 천재 시인이란 타이틀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집을 읽고 동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시와 어린이 시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린이들이 쓰는 시들을 동시라고 말하지만 엄격하게 동시가 아닌 어린이 시(또는 아동시)로 구분해야 한다는 거죠. 동시란 어린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동심으로 돌아가 쓴 시라는 겁니다. 물론, 꼭 어른들이 아니어도 되리라 여겨집니다. 이런 정의에서 동시와 어린이시를 구분하는 이유는 동심은 가득하지만, 서툰 표현들로 인해 어린이시라고 구분하리라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시로서의 격(?)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비록 나이가 어린 어린이의 시라 할지라도 시의 격이 있다면 동시라 말할 수 있겠죠.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이 시집 『솔로 강아지』는 동시라 말하기에 충분하리라 여겨지네요.
단, 동심이란 부분이 문제입니다. 동심을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 할까요? 동심이란 말 그대로 어린이의 마음입니다. 여기 어린이의 마음은 그렇다면 오늘날의 어린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은 모두 어린이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 까요? 이렇게 본다면, 이 시집 『솔로 강아지』는 분명 동시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심’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 또는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
다시 말해, 단순히 어린아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만이 동심은 아니라는 겁니다. 순진한 마음,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며, 때 묻지 않은 마음을 동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는 거죠. 이렇게 접근할 때, 『솔로 강아지』에 나오는 수많은 작품들은 어쩌면 동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독자들의 불편함이 출발하고 있다고 여겨지네요. 물론, 논란의 대상이 되어 그 내용을 삭제한 시 뿐 아니라, 그 외의 상당 시 역시 위에서 살펴본 사전적 의미의 ‘동심’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거든요.
물론, 이렇게 동심을 파괴하게 만든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핵심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를 동시라고 정의하고 있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만약 천재 꼬마 시인의 시집이라고 하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어쩌면 요즘 학생의 입장으로 느끼는 문제들에 대한 시적 접근이라고 칭찬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비록 그 안에 암울함이 있고, 때론 끔찍한 표현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허용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어른을 위한 동시>라는 타이틀보다는 작품성 있는 ‘시’에 초점을 맞췄더라는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분명 시에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논란이 된다는 것은 원래의 시집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다는 의미거든요. 그 시집을 그대로 살려내며,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물론, 출판사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지는 상상이 가지만 말입니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더 위험한 접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접근이야말로 현대에서 여전히 한 가지 소리만을 강요하며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움직임이니까 말입니다(요즈음 국정화 시도처럼 말입니다.). 비록 나에게 불편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 불편함 이면에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인의 시적 통찰력과 시인이 발견한 진실이 담겨 있음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울러 아이들이 동심이 파괴되었다면,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른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 책을 절판시켜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조금 아니지 싶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혹여 시인의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이런 논란이 시인을 더욱 튼튼하고 강하게 만드는 유익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참, 세상에는 어둡고 힘겨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밝고, 아름답고, 따스한 현실도 존재하죠. 다음번에는 조금 더 밝은 동시들을 독자들에게 선물해 준다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품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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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가장 논쟁에 섰던 솔로 강아지라는 동시집이 새로 개정판으로 나왔다고 해서 궁금증이 더해져 어떤 책일지 궁금해져 아주 빠른 속도로 그러면서도 천천히 초등학생이 쓴 동시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하면서 찬찬히 읽어 보았다. 어린 학생이 쓴 만큼 우리가 바라볼 수 없는 그러한 넓은 사유를 가진 학생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언가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우리 어른들조차도 부끄러워할 수 있는 모습이 가득했다. 어른으로서 책임감 없이 행하는 행동에 대한 비판부터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많은 학습량의 부담을 진 그러한 모습들 조차도 그녀의 시어로서 아주 강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사회 비판적인 시를 쓸 수 있다니 무언가 놀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이 충격을 주기에도 가능했다. 우리는 이러한 시를 통해서 무엇을 느껴야 할까? 단순히 어린 아이의 시로 치부하기에는 그 문학적인 부분이 기존의 시보다 강했기 때문에 우리 어른들이 보다 깨쳐야 할 부분들이 많다는 지점을 알게 해 주는 것이었다. 시는 아이의 마음이 투영된 시어로 풀어쓴 시이지만, 한 발 더 나아가면 앞으로의 좋은 것들을 위한 마음을 가지는 그녀의 마음이 더 담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로지 좋은 것만이 미덕이라고 치부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보다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은 우리 어른들의 마음이자 눈이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가 쓴 시처럼 행동이 바뀌고 아이들이 어른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양심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아는 것에만 그치고 머리가 커진 어른들은 무엇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통해서 완성된 모습에서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어른다운 모습과 오로지 자기 중심적인 지금의 사회를 보다 배려를 깊이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나 역시도 저자와의 생각에 동의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논쟁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우리는 논쟁 이전에 한 어린 아이의 시를 통해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시라는 문학 방식을 통해서 우리 어른들과 그릇된 사회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가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이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솔로 강아지>를 통해서 훌쩍 커 버린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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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솔로강아지 ◆지은이 : 이순영 ◆출판사 : 가문비 ◆리뷰/서평내용 : -> 어른을 위한 동시란 부제답게 솔로강아지는 순진무궁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동시가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아이의 동시이다. 어떤 이는 싫다고 하겠지만 동시는 맑고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려주는 것 같다. 어렵지 않고 술술 읽을 수 있고 쉽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지만은 않은 이 시집은 읽는 이에게 어떤 느낌? 감성? 메시지?를 전해 주는 힘이 있다. 한글 동시 옆에 영어도 번영된 동시도 있는 것고 기괴한 느낌의 삽화가 이 책의 특징이다. 참고로 논란이 되었던 '학원가기 싫은 날' 제목만 실려 있고 내용은 빠져있다. 하얀 여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왜 이 동시는 이 책에서 사라졌어야만 했을까? 초등학교 5학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솔직담백한 이 책의 지은이는 시 쓰기를 좋아하지만 자주 쓰지는 않고 가끔 자기가 진짜 쓰고 싶을 때만 시를 쓰며 살아갈거라고 한다.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꼭 하고 싶을 때만 시로 표현하고 싶은 아이는 시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가끔씩 정말 시를 쓰고 싶을 때 시를 쓰고 그런 시들을 모아 시집을 발표하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