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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TV를 틀면 지겨울 정도로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음식이라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즐길꺼리로서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듯하다. 요즘 트렌드로 확실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요리들. 이 책은 그러한 음식들에 관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미술 평론가 이주헌씨와 왠지 음식,그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여겨지는 법의학자 문국진씨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그런데,이 문국진씨라는 분은 <반 고흐,죽음의 비밀>이란 반 고흐의 죽음 규명에 관한 소설도 쓴 적이 있는 분이라 하니 이들의 조합이 영 어색하지만은 않다. 음식 문화의 예술성에 대해서는 이주헌씨가 음식물에 포함된 과학적,의학적 의의와 맛의 감각성에 대해서는 문국진씨가 맡았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음식물 그림의 기본은 정물화이지만 인물화의 소품으로,풍속화의 한 부분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음식물이라 하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텐데 음식 정물화를 죽음을 선명히 드러내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특이했다. 음식을 하는 부엌을 그린 풍속화 속의 소재인 고기,생선,과일,채소나 사냥물을 소재로 한 정물화 속의 동물이나 가금류등은 모두 생명이 제거된 것이기에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여가생활이 늘어나면서 식사 풍경이 중요한 작품 소재로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정원이나 테라스에서 즐기는 식사 장면은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 행복을 느끼게 했다. 그 외에도 식당에서의 식사,농부의 식탁등 다양한 정서로 가득한 식사 장면 속에서 여러 계층 사람들의 삶과 음식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커피,빵의 역사도 살짝 곁들여 들려주고, 신화에 등장하는 음식에는 우리의 염원이나 소망,금기,호기심 같은 것이 담겨 있는데,그 그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는 해석도 신선했다. 러시아 교회에 대한 비판이나 현 정치적 위기를 경고하기도 하는 풍자의 용도로 그린 그림에서도 음식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국진씨는 법의학자답게 음식과 인간의 욕망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분석을 보여주었다.식욕 중추와 성욕 중추가 대뇌 시상하부에 나란히 밀접해 있기때문에 음식과 성에 대한 충동,그것에 대한 만족감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했다.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저녁식사 후>(p-240)라는 그림을 통하여 음악과 식사의 만족감에 대해서도 들려주는데,꼭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를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술에 관한 얘기를 듣다보면 고흐나 키르히너의 그림이 쉽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독재자는 모두 금주가다" 라는 미국 작가 찰스 퍼거슨이란 사람의 논설에 따르면 스탈린,히틀러,무솔리니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는데,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남자는 좀 위험할까? 어느 책에서 히틀러는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화가가 되었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참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식인의 주제를 담고 있는 그림,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음식의 그림등 정말 다양한 주제의 음식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풍미 갤러리란 제목에 걸맞게 음식을 주제로 한 많은 그림들을 만났다. 그 그림들이 담고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삶이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해 주기도 하지만,그에 대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식인이라는 행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삶의 모습을 수많은 그림들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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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테마로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유독 먹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는 영화가 있다.최근에 본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같은 영화가 그렇다.일상의 소소함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삼시 세끼까지는 아니더라도 먹는 장면은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할텐데 왠지 감독의 숨은(?) 의도가 있을 지도 모른다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했다.막내 스즈에세 잔멸치 새우 덮밥은 추억의 음식이였다.그런가 하면 세 자매에게 매실주는 술 이상의 무엇이였다. 그리고 소소한 음식들을 네 자매가 함께 먹는 장면들은 훗날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무엇이란 생각을 했다.옛날 화가들이 음식을 통해 여러 가지 욕망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음식이 주는 상징과 <풍미 갤러리>를 통해 만난 음식의 이야기는 서로 달랐지만 말이다.
<풍미갤러리> 첫장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살짝 충격적이기도 했다.음식을 주제로 한 그림이 모두 아름답거나 혹은 행복함만을 주지 않는 다는 건 가깝게는 베이컨이라든가 램브란트의 그림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저자가 음식이란 정물의 개념에 대해 내린 정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음식물 정물화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욕망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생존 욕구다.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그러니 음식물을 향한 우리의 욕망은 살고자 하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우리가 음식물을 그리고 그것을 보고 즐기는 것은 그만큼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욕망에 따라 그려진 음식물 정물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선명한 인상은 죽음이다.(...) 음식물 정물화는 정물화 가운데에서도 죽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이다.원래부터 무생물이었던 사물을 보여주는 다른 정물화와 달리 본디 생명이 있던 생물을 죽은 사물의 형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그러니 제아무리 예쁘게 장식되고 아름답게 꾸며진 음식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깊이 들여다 보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된다.아름다운 만큼 무서운 그림이다./ 17~18
음식을 정물로 그린 그림에 이렇게까지 깊은 상징이(?) 이 담겨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첫장부터 무언가에 얻어 맞은 기분..모든 음식정물이 다 그렇지 않다고 항변해 보고 싶은 마음..그런데 근본적인 질문으로 따져 보면 선명한 죽음이란 표현이 맞다.이런 까닭에 어떤 그림을 보아도 첫장의 이 질문으로 돌아오는 느낌마저 들었다.그렇다고 모든 그림들이 메멘토리와 관련되어 있지는 않았다.노동의 수확장면 같은 그림을 통해서는 노동의 가치와 부모님의 고단함을 또 때로는 작은 사치가 주는 행복함을 만나게도 된다.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음식을 다룬 정물화의 바탕에는 아름다움과 무서움이 공존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음식을 테마로 한 그림들을 찾아 보며 군침도 흘려 보고 감탄도 해 볼 요량으로 펼쳐 들었던 책이였으나 생각 보다 묵직한 주제를 만나게 된 것 같아 마음 한 켠에는 무거움도 있었다.그러나 음식 정물화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한 공부는 충분히 받은 듯 하다.매번 이런 시선으로 볼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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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큼입니다 ! 지인의 소개로 추천받아 읽었어요 두. 저자의 다른 분야 거기에서 풀어쓴 다양한 그림이야기들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요즘에 음식에관련한 책들이 많이나오는데 명화들을 식탁에 올려두고.여러시각에서.해석하고 평소에 잘 보지못하는 그림들도 보였고요 흥미로웠습니다. 책이.묵직해서 지하철에서 들고 읽느라 조금.힘들었지만 보람이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