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에세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또다른 면을 보여주는 '맛보기'역할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그와 비슷한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 세상사는 것이 다 하루키의 소설 같으랴. 이 에세이에서는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하루키식 세상보기를 엿볼 수 있다. 다만 앙앙(일본 여성 잡지)에 실렸던 짧은 에세이를 모아놓은 형식이라, 내용이 지나치게 표상적인 느낌은 없지않다. 또한 다른 에세이집들에서 나오는 내용들과 살짝 겹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어떤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다른 책을 고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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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작가 에세이를 본다. 특별히 찾아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최근 빌린 책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작가 에세이 집이다. 작가별로 찾아읽었는데, 이게 나름 국가별 구분도 된다. 루쉰의 에세이와 미루야마, 무라카미 에세이를 읽었고,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유럽작가의 에세이다. 나름 특색있고 읽기도 쉽고,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다. 그 중 일본의 동시대 작가임에도 불구 상당히 다른 감상을 전해준 두 작가가 인상깊어 포스팅한다. 루쉰같은 경우, 역시 에세이집에서조차 특유의 깊은 문장의 맛이 넘쳐났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연륜이 담긴 글은 도저히 차 안에서 읽어낼 수 없을 만큼 무게가 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의 시대상황으로 인한 루쉰의 분노가 표출되어 있는데, 지금 한국정치에 비견해도 다를 것 없는 느낌에 더욱 그의 글이 와 닿았다. 루쉰은 특히 청년에 관심이 많아 중국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 질타와 당부의 글이 한국에서 읽는 나의 어깨에까지 쿵쿵 닿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글을 쓰려면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책 제목만큼이나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이다. 어제까지 붙들고 있던 [소설가의 각오](제목부터가 다르지 않은가!)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라멜같이 말랑말랑한 사람이고, 미루야마는 박하사탕 혹은 단단한 (딱딱한) 알사탕같은 사람이다. 무라카미 글은 때론 달달하고 군데군데 웃음짓게 하고 (그릇을 깨뜨려놓고 "여보, 저 할머니가 염력으로 내 손바닥을 미끄럽게 했다구" 외치는 무라카미를 상상해보라) 그 가운데 잔잔한 삶에의 이해가 감동을 준다. 반면 미루야마는 대쪽같고 칼같은 사유와 문체가 독자의 의지를 불끈 솟게 만들고 자세를 곧추 세우게 한다. 하여 무라카미 글이 종종 '에이, 이게 뭐야'하고 킬킬댈만큼 가벼운 글들이 끼어있는 반면, 미루야마의 글은 '이사람 뭥미'싶게, 자신의 넘치는 자부심을 반복해서 읎조려, 자랑을 보통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굳이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고 어쩌구, 그러니까 내가 첫 소설이 당선이 된건데, 다른 소설들이 너무 시시껄렁하다는 둥 어쩌고) 호오가 너무 명확해서 자기 관심외의 것에 극단적인 모멸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에 반해 무라카미는 이래도 응응~, 저래도 응응~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무라카미에게 누군가 "위선자!"라고 욕한다. 무라카미 곰곰히 생각한다."내가? 내가? 음음음... 뭐 솔직히 말하면,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랄까~응응) 그렇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이 모두 일본 사람이라는 것은 어쩐지 납득이 간다. 일본에는 이런 '응응형'과 '사무라이형' 두 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그러니까 무라카미와 미루야마는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의 전형이랄까.) 또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서로를 좋아하거나 친할 거라고는 상상이 안된다. 뭐 그건,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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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편하게 읽는 책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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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척 좋다 나에게 완전히 먼 이웃나라였던 일본을 알게하고, 일본 문학을 접하게 하고, 더불어 일본어까지 필사적으로 공부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존재이다 그의 소설은 몇번씩이나, 몇편이나 읽어 제끼면서도(그렇다고 해도 그의 무척 많은 작품들 중 일부를 접한것에 지나지 않지만) 항상 채워지지 않는 갈증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존재가 아닌,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나는 그의 많은 글들을 접해왔지만, 그 안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에게 항상 3자였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그런 의미에서 참 신선한 책이었다. 항상 작품을 사이에 두고 저쪽 건너편에서만 만나던 하루키와 직접 대화를 나눈 기분이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먹을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전해지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의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수다스러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에는 느끼지 못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무척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책 안에서 그에게 추천받은 음악이나 작품, 먹거리 등은 후에 꼭 접해보고 싶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하루키의 수다스러운 일상 이야기이다. 다만 후기를 보면 원작에서는 일러스트도 함께였던 모양이지만 번역본에서는 일러스트가 모두 빠져 있어 그것이 참 아쉬웠다. 언제 일본에 들를때 꼭 원본을 사서 일러스트와 함께 다시 그의 이야기를 만끽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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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을 읽고 또 그의 책을 빠짐없이 소장하면서 나는 점점 작가가 쓴 소설에 대한 탐구심보다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물론 그의 소설이 주는 허무감에 깊이 동감해 환각에 빠져드는 시간도 왕왕있지만 이는 하루키라는 작가 자체에게 느끼는 일종의 동경심에서 떨어져나온 부속품? 혹은 부스러기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사소한 일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짧게나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런 책이었다.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나 사이더 하우스 룰즈같은 영화들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못내 기뻤다.
그와 나 사이엔 늘 건널수 없는 강 같은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토론까지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신감까지 주었다. ^_^ |
| 'anan'이란 잡지에 연재한 내용이라고 후기에 써 있었다. 내가 알기론 20대 여성 잡지인데... 뭐 무라카미의 에세이집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나쁠건 없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내용은 항상 그렇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냉동고 가득 크로켓을 얼려 놓았는데 냉장고가 고장나는 바람에 이틀에 걸쳐 혼자 죽도록 크로켓을 다 먹어버렸다든지 각 항공사마다 다른 블러디 메리에 대한 평가등등... 또 식당차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도 그런 열차를 타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니 무척 아쉬웠다. 전체적인 내용은 항상 그렇듯 그동안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엉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별로 웃긴 이야기가 아닌데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무척 재미가 있다. 그런데 후기에 나와 있듯이 이 글을 쓰면서 무척 신경을 많이 쓴듯 했다. 20대 여성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고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습을 상상하자 조금은 웃기기도 했지만 뭐 그만큼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모습이 보이는것 같기도 했다. 무라카미의 에세이집은 항상 유쾌하고 재미있다. 이 책 역시 무라카미의 엉뚱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
| 흔히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나는 아직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처음으로 짧게 읽어볼 생각으로 '무라카미 라디오'를 구입했다. 내용이 방대한 책을 잘 읽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 책이 오아시스와도 같은 책이었다. 첫 장부터 끝까지 한 가지 주제에서 구불구불한 흐름을 나타내며 다양한 생각을 한쪽반씩 적어낸 하루키의 사고가 매우 귀여우면서도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하늘 위의 블러디 메리'에선 비행기마다 블러디 메리 만드는 방식과 맛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다거나 '크로켓과의 밀월','도넛','리스토란테의 밤'에선 먹을 것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작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좀 어린애 같지도 했지만.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독특한 사고와 함께 음식의 취향이라든지 일본의 문화를 조금 엿볼 수 있었고 해외를 자주 드나든 그의 경험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독특한 사고방식도 잊지 못할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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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작가의 독서일기 몇 권에서던가, <무라카미 라디오>에 대해 혹평을 써놓은게 기억난다.
하루키같은 작가가 <무라카미 라디오> 같은 류의 글을 써서는 안된다는 요지였다.
하루키의 소설과 비교해 에세이가 가벼워서 그런 지적을 한 것 같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특히 'anan'이라는, 20대 초반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잡지에 실렸던 글들이라 다른 에세이보다 가벼움이 더한 듯하다.
심해저와 같은 진지함을 갖춘 소설이, 유쾌하고 심지어 촐랑대는 것과 같은 에세이와 동일한 작가에 의해 창작된 것인지를 의심할 정도로 하루키의 작품들은 극과 극이다.
이런걸 본인도 아는지 자신에 대한 이런 저런 평가에 나름의 생각을 밝혀놓기도 했다.
내가 쓴 소설 역시 다시 읽어 보면 몹시 엉망진창이다. 음, 물론 '많든 적든'이란 주석이 붙는다고 쳐도 이렇게 결함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보면 정말로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인간처럼 보이는군.(중략) 그러나 한번 그런 식으로 내가 마음을 열고 나면, 잃어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에게 아무리 심한 말을 들어도 두렵지 않고, 특별히 화도 나지 않는다. (중략) 오히려 '그렇게 나쁜 인간인 데에 비해 잘도 건투하고 있잖아.' 하는 자신감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를 정도이다. 상당히 확신을 갖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사람을 깊이 다치게 할까. 그것은 잘못된 칭찬을 받는 것이리라. 그런 칭찬을 받아 잘못되어 간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인간이란 타인에게 칭찬을 받으면, 거기에 맞추려고 무리를 하는 법, 그래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 버린 케이스가 적지 않다. (p.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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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리뷰가 많다니!!! 까치 출판사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책 안 사고 그냥 읽었다. 시간은 좀 남아있고 해서, 짧은 책을 골라 읽었다.
읽으면서, 일본 수필은 원래 이렇게 짧게 쓰나? 생각도 해 보았고, 아님 작가가 초 간결한 수필을 좋아하나 생각을 했는데, 책 끝부분에 잡지에 연재된 글 50편이라고 한다. 허걱 한 페이지 정도의 지면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그리고 그림을(삽화) 기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잡지일 수록 글반 그림반 일수도 있는데, 아쉽다.
어쨌던 내 느낌으로는 작가의 지명도에 의한 책내기이다. 하루키가 좋은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 것을 단행본으로 내고, 그것도 물 건너와 번역까지 된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고, 또 이 많은 리뷰를 볼 때, 꽤 잘팔린 책임에 틀림없다. 대단한 작가이다.
하루키의 첫 수필집을 읽으면서, 이 분 경험을 다양하게 하신 분이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과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로마에서 운전을 배웠다는 것에서 놀랐다. 진정한 글로벌 작가임에 틀림없다.
여러편이 재미있지만 "스키야키" 부분은 정말 재미있다. 우리 노래가 미국에서 히트하지만 제목이 "창문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라면 제목을 "Kimchi" 혹은 "Bulgogi"이렇게 된다는 것 아닌가. "사꾸라"로 이름 지으려고 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의 첫 작품이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고 비교적 쉽게 등단한 것등을 알 수 있었다. 팬이라면 사서 읽을 만 하고, 아니어도 재미로 읽을 만 하다. 짧고 성의가 없어 보이는 느낌이지만 읽는 동안 재미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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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2 00:29 소설은 아니지만 글의 성격상 소설 카테고리에..
이책을 산 건 3~4년 전쯤 이었다. 지금은 내 손에 없어서(지금은 엄마손에 있다), 가끔씩 보고싶을 때면 서점에 가서 몇쪽을 읽다 나온다. 읽은 횟수에 있어서는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배웠다」다음이다. 「내가 배워야할...」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때까지 책이 낱장이 될 때까지 읽었으니 족히 몇백번은 될 듯하고...
내 또래의 많은 여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하루키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안 읽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로 알았던「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장편 몇권을 읽어봤는데, 내게는 장편 소설보다 단편 소설이나 여행기 같은 짤막한 글이 훨씬 입맛에 맞았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행기중 멕시코 편과 빵가게 재습격이다.
에세이는 사람의 인간성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좋은 글은 기교를 넘어선 어떤 향기가 풍긴다. 그래서 말장난에만 그친 글은 몇번만 읽으면 질리는 데 반해, 좋은 글은 아무리 읽어도 지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을 때마다 배꼽을 잡는다. 사물에 대한 재미난 시각과 그것을 글로 풀어낼 줄아는 센스. 아.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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