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정말 강준만 교수를 존경한다. 이번 책역시 나를 어김없이 만족시켰다. 강준만교수의 '실명비판'그리고 거침없는 '글쓰기'에 일부 지식인들이 비판하는데...그만큼 강준만 교수는 거리낄게 없다는거겠다. 비평서가 딱딱하다고 여기셨던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만큼은 깔깔 웃으면서 읽을 수 있을거다. 나는 그랬다. 정말 깔깔 웃으면서 침대에서 뒹굴대면서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면 이 시대 최고의 작가로 군림하고 있는 이문열이란 소설가에 대해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게 될것이다.(원래 나는 이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문열과 김용옥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문열과 김용옥의 진실한 지지자라면 진지하게 문제점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고언을 해보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여타의 분들은 아마도 나처럼 강준만 교수의 다른 책들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날테다! 걱정마시라~ ! 강준만 교수의 저서는 벌써 100여권이 있으니...^^ |
| 강준만 교수의 치밀한 작업 끝에 나오는 인물 비평 들은 정말 사람들을 할 말 없게 만든다. 초기 저널룩 인물과 비평을 통해 보여줬던 그의 이런 인물 비평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나온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한 인물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한 신선한 시도였다. 이문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를 강준만 교수는 여러번 비평했다. 이 책은 그런 비평글들의 종합판으로 이문열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반드시 한 번 읽어봐야할 수작이다. 이문열의 책은 분명 재미있고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비판적 시각으로 찬찬히 읽으면 그의 책에 뭔가 진보와는 어울리지 않는 코드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올바른 서구의 일반적인 보수와도 다른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신문에 쓴 칼럼 들이다. 칼럼과 그의 소설을 연계해 보면 그의 수구적, 피해주의적 코드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코드 분석은 물론 이문열의 문학카르텔 조성을 통한 권력조성, 인간관계를 통한 성공이데올로기 그리고 이문열이란 인물이 상징하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구석구석 빠짐없이 논한다. |
| 한국 지식계의 영향력이 있는 인물 두사람에 대한 비평서로, 그것도 한국사회의 의식있는 비평가에 의한 비평서로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으로 아주 재미 있게 읽었다. 두사람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대응 방식은 문제시하지 않거나, 아니면 더러운 똥을 피하듯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구분된다 할 수 있다. 저자처럼 조목조목 두사람의 비평을 위하여 분석한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지식으로서 많은 문제의식과 근거를 제시하며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다른 비평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적인 모범 형식 또한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비평이란 적어도 이러한 형식과 절차를 통하여야만 한다는 방법론 말이다. 저자처럼 (사회의) 영향력있는 지식인에 대한 견제는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데 믾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견제와 균형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만이 아니라, 많은 것에 적용할 수 있는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타민과 같은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저자만은 비유는 최근 언론재벌의 신문을 화장실의 휴지만도 못한 것이라는 독설과 유사한 등급의 비유이다. 그들이 다만 그들의 제국을 건설하며, 우리 사회발전에 기여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만의 우물속에서 동그란 하늘만을 부르짖으며 외쳤던 것들이 일시적으로 우리사회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활발한 논쟁을 통하여 우리사회가 균형을 이루어 진다면면 신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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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을 해부하다니, 그리고 이런 함의가 있다니.. 이문열을 읽으며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는 종교개혁과도 같은 깨달음이 있다. 그는 과연 그랬었다. 그리고 지금의 그는 실제로 그러하다. 강준만의 이문열 해부에 대하여 전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그의 분석은 누가 뭐래도 객관적이며 타당하다. 특히 시대의 논개 진중권이 등장하는 '젖소부인'편은 이책의 압권이다. 이문열에 관심있는 분 필독서라 하겠다. |
| 'jty400' 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이 강준만교수의 <<이문열과 김용옥="">> 이라는 책과 관련해 아래에 독자서평을 하나 쓴 것을 보았다. 그 분의 주장과 관련해 나의 생각을 이곳에 몇 자 남기고자 한다. 'jty400' 은 김용옥에 관한 강준만교수의 글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jty400':"이번에는 그것에 대해 책의 상당 분량을 써내려갔지만 기본 요지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 낸 글과 다를 바 없다." 맞다. 강준만교수의 김용옥에 관한 글이 일정부분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강준만교수의 계속되는 문제제기와 관련해 그것에 대한 성의 있는 반론을 전혀 하지 않는 김용옥이 더 큰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강준만교수가 주장하지 않았던가? 김용옥의 경우 다른 사람의 비판에 전혀 열려 있지 않고 그것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강준만교수가 일정 부분 반복해서 전하는 메시지를 강준만교수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jty400': "...이런 강준만의 책에 이문열이 일체의 반론을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강준만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은 없으리라 믿는다.명색이 대학교수라면 팩트에 근거해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책을 읽다보면 이문열의 공적발언을 가지고 자꾸 비판하는데 강준만 교수야말로 앞서 언급한 칼럼에서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이문열에게 사과 한마디라도 했을까?" 'jty400'은 강준만교수가 <한겨레> 에 쓴 칼럼의 내용을 문제삼으며 위의 말씀을 하셨다. 이문열이 강준만교수의 글과 관련해 일체의 반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jty400'은 지금까지 이문열이 자신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반론을 한 것이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이 있는 반론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열심히 시민운동하는 분들을 향해 "홍위병" 운운하는 이문열의 발언부터 문제삼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jty400'은 강준만교수에게, "명색이 대학교수라면 팩트에 근거해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정작 이문열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는 말일 것이다. 즉, 열심히 시민운동하는 단체들을 향해서 현 정권과 결탁되어 있다는 발언을 한 이문열이 정확한 "팩트" 에 근거해 발언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작, 증거를 대라면 증거는 없다고 하니까. 그런 측면에서 "팩트에 근거해 글을 써" 라는 부분은 'jty400'은 이문열에게 먼저 하는 게 순서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jty400'은 강준만교수가 이문열에 대해 "사과" 운운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작 자신의 '문화특권주의' 를 이용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터무니 없는 혐의 덮어 씌우기 발언을 남발한 이문열이 그동안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이 올바르고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jty400'이 이문열에 대한 애정으로 그를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은 이해못하는 바 아니지만, 작금의 이문열에 관한 논의와 관련해 정확한 상황 판단은 해야 하는 게 아닐까?한겨레>이문열과> |
| 남들은 다른사람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것 구경하는게 재미있다고 하지만 나는 토론의 공간이나 지면을 통해 갑론을박 논쟁하는 것을 보는게 훨씬 더 재미있다. 그런점에서 그런 논쟁꺼리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강준만교수의 글은 일단 재미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나는 '일부'만 동의하지만 글쓰기에 들이는 그 엄청난 노력과 정열에는 정말 감탄하곤 한다. 몇년전 전개되던 남진우와 강준만간의 수회에 걸친 문학권력에 관한 논쟁은 그 어떤 무협지보다도, 스포츠보다도 재미있었는데, 이 책은 강준만교수의 일방적인 메아리없는 말이라서 조금은 아쉽다. 제2의 남진우같은 사람이 나서서 이 책에 반론하는 글을 써주면 좋으련만. <강준만과 김정란="">.이런 제목은 어떨까? 이문열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되었고, 앞으로는 좀더 비판적으로 그의 글들을 읽게될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이문열의 책은 재미있고 빨려든다. 그리고 강준만의 글은 풍부한 주장근거와 인용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글쓰는 방식 때문에 선뜻 인정하기 힘들고 거부감부터 느껴진다. 그래도 그의 글은 '정말로' 재미있다.강준만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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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뛰어난 비평능력을 느끼고 그에 대한 신뢰성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문열이 쓴 모든 기사와 잡지에 실린 인터뷰를 기반으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비평에 임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날카롭다. 다소 이건 심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의 비평을 강준만은 스스로 '독설비평'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 지는 면이 있다. '지식인은 직업적으로 워낙 위선이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화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본심이 나오고 진짜 자기 실력이 나온다. 이건 '독설비평'이 아니면 절대 밝혀낼 수 없는 것들이다.' '이문열' 이라는 대상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지만 단지 한 인물에 대한 비평에서 끝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책이다. 책 전반부에 걸쳐서 '문화특권주의와 지식폭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출판계와 작가의 관계, 유명 작가와 정치권의 유착, 출판에 대한 비판의 종속 등등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지만 드러나지 않는 암묵적 실체에 대해 적나라한 고발을 하고 있다. |
| 강준만 교수는 엄청난 다작가다. 그는 한국사회에 대해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책 내기를 책 읽기 하듯이 한다. 절필을 선언하기 전까지 그가 수년간 낸 책만 해도 수십권은 될 것이다. 그의 저작이 너무 많아 일일이 세는 것이 귀찮고 힘들다. 어떤 이들은 그의 저작들의 수준을 이야기하며 다작을 하는 대신 전문성이 떨어진다고도 비판하지만 그가 써내는 책이 학술서도 아닌 사회비평서라는 점에서 일정한 깊이를 유지하면서 그만한 다작을 하기란 힘들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오히려 그의 글이 일정부분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성이 들어가지 않아 보이는 것은 글의 내용보다는 그의 문체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소설가도 아닌 이에게 무슨 '문체'냐고 할테지만 비평가들에게도 그만의 문체가 존재한다. 강준만은 매우 쉬운 구어체를 구사하면서 아주 알아듣기 쉽게 풀어써내는 솜씨를 가지고 있다. 직설과 풍자면에서는 진중권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쉽게 풀어쓰기 면에서는 진중권보다는 강준만이 앞선다. <이문열과 김용옥>이라는 책은 전권 2권으로 되어있으며, 상편은 이문열에 대해서, 하편은 김용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김용옥만을 보고 싶다면 굳이 상편을 볼 필요는 없다. 상편과 하편은 전체적으로 이어져있는 있으며, 지식폭력과 문화특권주의를 살피는데 있어 중요한 두 명을 모두 봐야하겠지만, 이문열이나 김용옥 둘 중 한명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에 대해 강준만이 어떻게 썼는가를 궁금해한다면 두 권중 한권만을 봐도 무방하다. 강준만은 대단한 수집가다. 그가 이 책속에서 인용하는 신문기사와 각종 칼럼들은 모두 그의 수집벽에 의해 이루어진 성과다. 물론 항간에는 그를 위해 자료를 모아주는 도우미가 있다고도 하지만 자료를 모아준다고 해도 그 자료를 모두 읽어내는 것은 오로지 그가 해야하는 작업이다. 그가 이문열과 김용옥에 대해 책 한권 분량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저서는 물론이고, 인터뷰와 칼럼, 비평까지도 모두 읽어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봐야한다. 강준만은 이문열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싫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이문열이 싫은 이유에 대해서 엄청난 근거를 대가며 말하고 있다. 강준만의 이문열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다. 아주 매몰차다. 그래서 이문열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화병이 나서 당분간 앓아눕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치만 이문열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강준만을 자신과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문열이 흔히 말하듯 아이가 어르신을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는 강준만의 비판을 하찮게 무시해버리고 말 것이 뻔하다. 나는 이문열을 잘 모른다. 그 유명한 이문열의 <아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떨어지는 곳에는 날개가 있다> 는 물론이고 자라나는 어린이라면 인생에 한번쯤 읽을 이문열 번역의 <삼국지> 조차도 읽지 않았다. 난 황병국의 삼국지를 읽었다. 앞으로 삼국지를 추가로 읽는다고 하더라도 장정일과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을 것이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이문열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소설가나 번역가로서의 그와 칼럼니스트(?)로서의 그를 엄연히 구분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싫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텍스트를 온전히 읽어낼 자신이 없다. 그에 대한 편견이 이미 심어져있는 상태에서 그의 텍스트를 온전하게 읽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는 잘못이다. 텍스트와 저자는 엄연히 구분해야하니까. 철학자 가다머는 독자는 텍스트의 제자로서 임해야한다고 말한다. 텍스트에서 내가 원하는 부분을 얻어내고 나머지는 가지쳐 자른다면 이는 올바른 텍스트의 이해라 할 수 없다. 개인의 역사적 상황과 시대의 역사적 상황인 텍스트를 모두 반영하고 고려해야한다는 것이 가다머의 텍스트와 저자에 대한 입장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문열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내가 강준만의 이문열 비판에 대한 저서를 읽어도 되는 걸까, 라고 속으로 질문해봤다. 그리고 대답했다. 된다. 읽어도 된다. 왜냐면 강준만은 이 책을 통해 이문열의 지식특권주의와 지식폭력을 비판하려는 것이지 그의 소설의 문학성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문학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문학평론가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문방송학과 교수인 강준만이 소설가인 이문열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진 않다. 나는 칼럼니스트(?)로서의 이문열은 잘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으니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미 가지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강준만의 이문열 비판을 읽더라도 내가 순전히 강준만에 의해 나의 생각이 뒤바뀌거나 휘둘릴 염려는 없다. 그런점에서 내가 강준만의 생각 속으로 소속되어버릴 염려는 거두어도 좋다. 강준만에 의하면 이문열은 지식폭력의 희생자다. 그는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제대로된 정규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독학으로 공부하고 책읽기를 통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대단한 인물이다. 홀로 독학을 통해 그만한 지식을 갖추고 글쓰기를 통해 돈과 권력, 명예를 쥐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는 지식폭력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달성된 현재의 그는 신분이 미천한 인물들을 무시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신춘문예라는 정규(?)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평가들과 소설가들을 그는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대접하지 않는다. 이는 지식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역할바꿈을 한 그의 현실이다. 또한 그는 대단한 문화특권주의를 가지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현실 정치에 대해 발언하며 이럴 때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불리할때는 자신이 소설가임을 강조한다. 자기 필요에 따라서 색깔을 달리하는 카멜레온이라는 말이다. 자신이 내뱉은 발언이 문제시 되면 그는 그의 소설가라는 문인의 위치로 돌아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문열이 입지전적인 대단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그는 대단한 문화권력을 지니고 문화계뿐 아니라 정치, 사회계에서도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점에서도 대단한 인물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의 발언이 문제시되는 것이고, 그가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사태 또한 문제시되는 것이다. 강준만의 이문열에 대한 비판은 그가 조목조목 드는 근거로 보아도 타당하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이문열의 소설을 한권도 사보지 않은 나같은 사람이 아니라 이문열의 매니아들이다. 그들은 이문열의 소설을 통해 이문열을 접했고, 이문열의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침묵하는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이문열을 다시 생각해봐야하며, 이문열의 실체를 알았다면 그의 권력을 뒷받침해주는 자신을 거둬야 할 것이다. |
| 유쾌, 통쾌, 상쾌, 빵! 똥침이다. 나의 분노여! 참으로 다행이다. 이 정도의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사회는 얼마나 복받았는가. 굳이 "조선일보에 중독되지 않는 면역력을 키우려면 한겨레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어느 네티즌의 말에 비유하면 "강준만('이문열과 김용옥 상권')을 읽으면 이문열로부터 얻은 분노를 모두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1년 여름 나는 신문을 통해 이문열의 '홍위병론'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80년대 그의 소설 몇권(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읽고 깊이 감동했던 이후 그(글을 통하여)를 만난 것이 거의 처음이었는데 그런 내게 바로 작가가 스스로 일그러진 영웅으로 현신하였기 때문이다. 그 충격은 뭐랄까 믿는 도끼에 발등찍히기... 또는 뒤통수맞기... 이런 정도일 것이다. 인간을 억압하는 온갖 굴레와 싸워줘도 모자랄 지식인이 왜 하필이면 과거 독재권력이 국민들을 협박하는데 써먹은 파쇼적 선동으로 다시금 이 시대를 과거의 일그러진 수갑으로 채우려 하는가 해서이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와같은 분노는 보다 의식있는 사람들의 책반납운동으로 표현된 바 있다.) 강준만의 이번 저작은 이문열이 어느날 갑자기 일그러진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내가 이문열의 '홍위병론'에 분개를 하게 된 것은 최근 20여년 동안 이런 쪽에 관심을 갖지 못한 탓이 컸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언론들이 지식인의 언행에 대한 바람직한 비평보다는 책을 반납하는 사람들의 행동만을 문제삼고 욕해대느라 바빴던 바와 같이 지식-언론이 유착되어 있는 현실때문이기도 하겠다. 2001년 이문열 '홍위병론'의 해악을 어디에 비유할까. 지금의 DJ정권이 들어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지하철 차내에는 "주위에 이런 사람 없습니까?"하는 글귀와 함께 '흰 어미 고양이의 젖을 문 하얀 새끼들 속에 검은 새끼 한마리'가 있는 그림이나 초록색 나뭇잎 뒤에 흉측스런 모습의 도마뱀(카멜레온?)이 숨어있는 그림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독재시대 이러한 그림들이 소리없이 국민들의 입을 억압했던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지식인 이문열은 광명민주시대에 과거 레드 콤플렉스에 짓눌렸던 한국인들의 심성을 짓밟았다. 이런 엄청난 지식인의 폭력언행의 해악에 대한 비평글을 기대해 왔다. 이 책은 그런 부분은 다루고 있지 않지만 문화권력을 쥔 권력자로서의 작가가 그 길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등을 쉽게 설명하여 주고 있다. 평범한 직장에서도 사람들은 높이 올라갈수록 한 칸 더 올라가거나 한 번(일년) 더 해먹으려고 갖은 술수와 요령(아부)을 부리는데 거대 문화권력자의 속성이 어찌 독재자의 영구집권의욕과 다를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이문열에 분노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많은 이해와 위안을 준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마라'라는 명언이 있지만 나는 "돼지에게서 진주를 바라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책을 돌려주고자 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어릴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라를 사랑하는 소년'이라는 글이 있었다. 서커스단원 소년이 돈을 많이 준 (다른나라)어른들이 자기 조국에 대해 욕하는 말을 엿듣게 되어 받았던 돈을 그 사람들에게 내던진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달콤한 재물(문학작품)이라도 올바르지 못한 행실을 하는 사람의 것은 받지 않는다." 물론 이런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 친일 친독재 행위를 한 서정주의 작품에게도 이나라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바쳤지 않았는가. 2001년은 언론사들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아전인수와 견강부회적 파렴치한 글쓰기와 함께 한 지식인의 시대꺼꾸로 돌리기('홍위병론')는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의 책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바로 작가 자신이었음을 밝혀주는 비평서이다. 젊은 시절 이문열의 책을 읽고 감동한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이문열이 2001년중 연속적으로 이 신문 저 신문에 신출귀몰 나타나면서 북돋은 분노를 단한번에 똥침 날리듯 해소할 수 있다. 강준만의 '이문열과 김용옥(상)'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본인을 직접 다른 소설같은 책이다. 강준만의 비평서에 나타나는 이문열의 행적이 소설적이란 의미이다. 만약 훗날에도 이문열의 작품들이 명작으로 남는다면 그 옆에는 항상 이 강준만의 책이 함께 있게 될 것이다. |
| '소설가 이문열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책이다. 아니 일단 쉼표를 찍고 다시 논쟁을 이어갈 수도 있을 테지만 일반인들이 이문열 논쟁의 앞뒤를 제대로 가리는데 이 책은 큰 역활을 한다. 고등학교 시절서부터 대학 초년생시절까지 이문열을 애독했던 한 독자로서 내내 심어왔던 불안한 의심을 이 책이 말끔이 씻어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문열은 그의 명성만큼 대단한 작가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는 도데체 어떤 처세의 비법을 가졌길래 그 험한 세상 풍파도 없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고수하고 있는가. 답은 문언유착과 문화특권주의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문열로 대표되는 한국 문단의 문제와 비젼을 강준만은 그의 가감없는 직설로 풀어낸다. 감추지 말고 모두 보여줘라, 그래서 우리 한 번 열심히 논쟁을 해보자꾸나. 강준만이 외치는 마지막 고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