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살던 고향집은 읍내에서 약 십리길을 산구비 구비 돌아 언덕을 휘감고 가다보면 아련하게 다가오는 정겨운 곳이다.황토흙 무릎까지 묻혀가며 발목 시큰거리면서 걷다보면 철이네 무우밭이 나오고 그 무우밭에서 우린 무우청을 힘껏 잡아당겨 벌건 황토흙이 묻어있는 무우를 짚에 쓱쓱닥아 한입씩 베어물곤 하였다. 시원하고 아린 무우맛---그 무우맛속엔 우리 부모님들의 땀과 눈물이 베어있을 터였다. 무우밭을 지나면 동네 어귀 텃밭에서 소를 훠이훠이 몰면서 밭갈이하시던 우리 아버지. 한번은 읍내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을때 아버지의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고,웬지 창피하다는 생각이들어서 일부러 피했던 나의 아린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하여 애꿎은 가슴팍만 두들겨 댔다. 이젠 백발이되시어 아무말없이 흙을 어루만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조용히 말씀하시는 아버지. 값진 노동으로 빛나던 건장하던 어깨가 축 늘어져 쓸쓸하기만한 모습으로 남으신 아버지.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그러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자화상처럼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욕심없이 내어놓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비칠거리면서 나비를 잡는 바우 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에서는 가슴켠켠이 쌓여있던 한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눈물로 정신이 어질덤벙했었다. 현덕선생님의 글을 아주 좋아하는 독자로서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가슴에 새기며 읽게된 것은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었다. 또한이 책의 크나 큰 매력은 김환영 선생님의 그림이다. 흐드러진 모빌밭을 거의 무채색으로 표현해내는 기막힌 아름다움,그리고 시대를 물흐르듯이 되살리어 책속의 인물을 정겨운 우리의 살아있는 이웃으로 되살리는 엄청난 힘은 가히 신비롭기조차하다. 딸아이의 선물로 책을 구입했는데 이책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으면더욱 좋을 듯하다. 글의 내용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책을 읽은 후에도 내내 여운이 잔잔하게 남는 책이다.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사랑으로 마음을 키워온 내가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다. 나는 이제 내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야 할까? 나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하는 아주 좋은 책이다. |
| 한참 남북간의 팽팽했던 긴장상태가 누그러들고 90년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역사 속에 묻혀진 주옥같은 우리 문학작품이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덕 선생님은 남북전쟁 이후 월북한 후 소식은 알 수 없지만, 현대적인 창작 동화가 태동하고 정착하는 시기에 쓰여진 이 작품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고 본다. 식민지 시대 어린이 문학의 정점이라고도 평가 받을 만 하다. 소학교를 같이 졸업한 바우와 경환이는 각각 소작의 아들과 마름집 아들이라는 신분적 차이를 갖고 있다. 그래서 바우는 소학교를 졸업하고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 하고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지어야 했고, 경환이는 서울의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서울로 공부하러 간 경환이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바우와 경환이의 갈등은 시작된다. 경환이는 동네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유행가를 부르고 나비를 잡으러 다닌다. 밭에서 그림을 그리던 바우는 그런 경환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바우는 나비로 경환이를 놀려주는데 화가 난 경환이가 나비를 잡는다며 바우네 생계가 달린 참외밭에 들어가 구두발로 밭을 엉망을 만들어 놓는다. 결국 둘은 싸우게 되고 그 일로 바우네 집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줄줄이 경환이네 집에 불려가고, 나비를 잡아 와 빌지 않으면 땅을 얻어 부치지 못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우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 않다. 그런 바우의 속도 모르고 바우를 야단치는 아버지 어머니가 원망스럽다. 화가 나서 집을 나가려던 바우는 밭에서 누군가를 발견한다. 가까이 가보니 그 사람은 바로 불쌍하고 정다운 아버지였다. 바우는 울음이 되어 터져 나오는 마음으로 외친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현덕 선생님은 당대 식민지 현실의 계급주의를 겪은 산 증인이며 경험자이다. 당시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현실을 그렸던 분위기에 비해 이 작품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리하여 작품을 너무 계몽적으로도 낭만적으로도 몰고 가지 않아 현실성과 낭만성, 계몽성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탁월한 내용 구성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현덕선생님은 이야기에서 마름과 소작이라는 계급의 갈등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경환이의 바우의 갈등을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자연스럽게 옮기고 있다. 이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을 계속 유지시켜서 결말을 낼 수 없게 되거나 극단에 치우치고 혹은 어설픈 화해를 이끌어 내게 되는 난점을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갈등의 중심축이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
| [Papa, Please Get the Moon for Me] 에릭 칼의 그림책처럼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이다. 당연히 손이 갈 수밖에 없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 그런데, 참 얄밉게도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정확히는 말한다면 가슴을 '꽉' 막히게 만드는 책이다. 그저 어린 사내아이들 사이에 있을법한 사소한 말다툼 또는 딴지 걸기. 그런데 세상은 그런 사소함조차도 가벼운 것으로 끝내려들지를 않는다. 지주-마름-소작. 말로만 듣던 용어들이 가슴에 꽂혀 들어온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통용될지 모를 그런 방식 그대로. 아빠로서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아버지로 비출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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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작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어디를 살펴 보아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현존 작가인지 돌아가신 작가인지 알 수가 없었고 도대체 이 책의 배경이 언제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첫장 둘째 줄에서
'버스는 떠난다. 경쾌스럽게.'가 눈에 들어왔다. 경쾌스럽게? 뭔가 작가의 역량이 의심대는 글귀였다. '경쾌하게'라고 써야 할텐데.....조금 더 아래를 읽어 내려가다보니 '송아지가 움직이는 대로 옮아 앉으며'가 보였다. 어? '옮겨 앉으며'로 써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둘째장 첫 줄에서도
'한 날에 그 곳 소학교를 졸업을 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왔다. '소학교를 졸업하였다.'로 하여야 옳은 표현인데 목적격 조사를 연거푸 두 번이나 겹쳐 쓴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마 작가가 지금 사람이 아닌가보다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다 읽으면서 그럴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명한 작가지만 모든 독자가 그걸 알고 있을 수는 없다. 출판사에서는 최소한의 설명으로 독자의 읽는 즐거움을 최대로 높여 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출판사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먼저 남았던 책이다.
내용면에서는 감동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다소 진부한 사건이 이어져 그저 그런 책인가? 생각을 하였지만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그 놀라운 감동 앞에 점점 눈을 크게 뜨고 책을 읽게 되었다. 흡입력이 있는 구성이었다. 시대적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어렴풋하게 짐작을 할 수 있었고, 가지지 못한 자의 설움과 그런 자의 아버지에 대한 자식 사랑이 뼈 속 깊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유아용 그림책처럼 편집이 되어 있어서 읽는 대상에 혼란이 올 수도 있는 책이다. 그러나 오른쪽엔 한 면 가득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왼쪽 글자는 일반 폰트로 깨알같이 글자가 들어가 있다. 꽤 긴 분량의 동화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고학년까지, 그리고 어른들까지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책 줄거리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리뷰에 잘 설명되어 있으므로 생략한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 멋진 제목이다.
이 책에는 쪽(페이지)가 적혀져 있지 않다.
(넘겨보니 스무 장이다.) [인상깊은구절] '아버지 말대로 정말 집을 나오고 말까. 그러면 아버지도 뉘우칠 때가 있겠지. 그리고 서울 같은 도회로 나가서 어떻게 고학이라도 해 볼까' 바우는 정말 그렇게 해 볼 것처럼 벌떡 일어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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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옛날 우리 살림이 어려웠을 때 누군가는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이다. 부잣집 아들인 경환과 경환이네 집에서 땅을 붙여먹고 사는 바우는 지난 해 봄 같이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하지만 살림이 어려운 바우는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으며, 경환은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방학을 하고 고향 집으로 내려온 경환은 학교 과제로 곤충채집을 하여야 한다는 핑계로 몇날며칠 나비를 잡으러 다니고 있다. 유행가를 부르며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경환이가 바우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런데 바우의 손에 앉은 나비를 달라고 하는 경환이의 말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경환은 바우네 참외밭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든다. 한참 익기 시작한 참외 넝쿨을 구둣발로 마구 짓밟아 놓은 것이다. 참다못한 바우는 경환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는다. 이 일로 바우의 엄마, 아버지는 경환이네 집으로 불려가 호통을 들어야만 했다. 바우의 아버지는 속상한 나머지 바우에게 나비를 잡아서 경환에게 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라신다. 바우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자신이 아니라 경환이 잘못했는데 왜 자신이 머리를 굽혀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버지는 나비를 잡아서 경환에게 갖다 주라고 계속 성화시다. 경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이 야속했다. 그래서 절대 굽히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후 뒷산으로 올라간다. 부모님이 깜짝 놀라시게 집을 나와 버릴까 생각하며 산에서 내려오다,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무엇을 쫓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경환이가 머슴을 시켜 나비를 잡게 하는 줄만 알고 코웃음을 치던 바우는 깜짝 놀란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바로 바우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순간 콧날이 시큰해져 오는 바우는 자신의 체면 따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아버지에게로 달려간다. 아버지에게로 달려가는 바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면서 심란하던 마음은 그 순간 고요해지며 오로지 부모님 생각만 하게 되었을 것 같다.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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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이가 내가 찜해 놓은 도서 목록을 보고 빌려 온 책이다 다인이는 책 표지를 보며 아빠가 나비를 불러 들이려고 입에 뭔가를 물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식구들 입에 풀칠할 내 땅 한 조각이 없어 바우의 자존심따윈 생각않고 주인 아들 경환이를 위해 나비를 잡아다 주라고 하는 아버지 형편이 어려워 학교 진학도 못한 바우가 유일한 탈출구인 그림책까지도 찢어 버리는 무심한 아버지 아버지는 바우의 마음같은 건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풀 숲에서 허리를 폈다 구부렸다 하며 주인아들의 방학숙제용 나비채집을 한다 그런 아버지를 발견하고 바우는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마음도 다 잊고 '아버지..''아버지...'를 부르며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데 그 마지막 줄을 읽으며 목구멍이 따가워졌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이제는 너무 자라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버린 어른들에게 꼭 읽어 보게 하고 싶은 책이다 이 저녁 술 취해 사 오셨던 아버지의 다 녹아 버린 아이스크림이 생각난다
0.'나비 잡는 아버지 ' 제목과 그림을 보고 어떤 책이라고 생각했나요? 1.바우와 경환이는 어떤 관계일까요? 2.바우는 왜 경환이에게 나비를 건네 주기 싫었을까요? 3.바우는 왜 경환이를 밭에 못 들어가게 했을까요? 4.바우 아버지와 어머니는 왜 바우에게 경환이 나비를 잡아 주라고 했을까요? 5.그 때 바우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6.바우는 왜 집을 나가고 싶었을까요? 여러분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나요? 7.바우 아버지는 왜 나비를 잡고 계셨을까요? 나비를 잡고 있는 바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그런 아버지를 보는 바우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8.여러분도 부모님이 내 마음을 몰라줘 서운했던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언제 무슨 일 때문이였나요? 9.부모님이 나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적이나 속상하게 했던 적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 보아요 10.나비 잡는 아버지의 뒷 이야기를 이어서 말해 보아요
(활동) 나비모양 종이책을 만들어 책 읽기전의 느낌 내가 만약 바우 아버지라면 내가 만약 바우라면 바우에게 하고 싶은 말 바우 아버지가 내 아버지라 생각하고 한마디 나비의 일생 나비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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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서울 수복 때 월북한 작가 현덕 선생의 작품에 충남 예산 태생 김환영 선생이 그림을 얹었다. 두 분의 글과 그림이 어찌나 찰떡궁합인지,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당신!" 하는 유행가를 흥얼거리게 하는 책이다.
경기도 언저리 사투리쯤으로 읽히는 대화체(특히 줄임말)의 구수함은 옹골찬 고집불통 바우놈을 닮았다. 하지만, 줄을 몇 줄 긋고 먹을 찍어 발랐는지 아니면, 먹통을 튕겨 놓고 선으로 공간을 메운 건지, 서향화로 가려다 실패한 동양환지, 애초에는 동야환데 서양화 기법을 쑤셔 넣은 건지, 정체가 불분명한 수묵담채는 얼굴만 보고 표정만 살펴서는 도저히 알아낼 길 없는 '울 아부지'의 시커멓게 타다 만 속내를 옮겨 놓은 듯하다.
경환과 바우는 소학교 동창, 마름집 도련님과 소작농의 아들로 만난 장난 같은 운명이다. 운명의 여신은 항상 경환이 편이었을 터, 공부도 못하는 놈이 소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유학을 간다. 온 종일 꼴 베고 소나 치면서, 취미삼아 겨우 그림이나 그리며 소일하는 바우의 처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방학을 맞아 돌아온 경환이가 "숙제를 해야 합네." 하면서 채를 들고 나비를 잡겠다며 설치는 꼴이 못내 마뜩찮다. 마침내 바우는 심술통을 터뜨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앞으로 마름집 어르신의 호출령이 떨어진다. 어쩌면 불호령이 될...
"밥을 열 끼를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 경환이 앞에 나비를 잡아 가지고 가서 머리를 숙이기는 무엇보다 싫었다. 아들의 그만한 체면쯤 돌보아 줄 줄 모르고 자기네 요구만 고집하는 아버지가 그리고 어머니까지 바우는 무척 야속했다. 노여웠다." (p.34 본문 인용)
바우의 맘 속에는 못난 어버이에 대한 야속함과 노여움이 사무친다. 하지만, 뒷산에 숨어서 내려다본 경환이네 메밀밭에는 연방 만세 부르는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농립을 벗어들고 나비 꽁무니를 쫓아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그 똑똑지 못한 걸음으로 밭 두덩을 지척지척 돌고 있다." (p.38 본문 인용)
아버지는 마치 마름집 머슴이라도 되는 양, 도망치기 바쁜 나비들의 꽁무니 헤헤거리며 쫓기 바쁘다. '내년에도 어떻게든 땅은 얻어 부쳐야 돼.' 하는 계산과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면...' 하는 걱정을 가슴에 안고 말이다. 거기에는 그렇게, 속도 없고 밸도 없는 사람인 양 그저 웃음으로 씁쓸함을 덮어버리려 애쓰는 '내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찌 보면, 이 시대의 아버지들 또한 소작농이긴 마찬가지일 터!
에고, 바우야! 니네 아버지 너무 무심타 말거라. 너도 새끼 낳고 키워보면, 그 맘 다~ 알 수 있을 게다. |
| 제목에서 아버지에 대한 가슴 찡한 이야기겠구나 느꼈다. 아버지란 말만으로 코 끝이 시린 나이가 되었으니 책을 읽기도 전에 벌써 가슴이 짠해져 와 불편하다. 마냥 커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등도 손도 이제는 쓸쓸하게 시든 나무처럼 보이니 말이다. 바우는 나비 잡는 경환이가 못 마땅하다. 자기보다 못난 놈이 집이 잘산가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 말이다. 경환이에게 나비를 잡아다 주지 않으면 땅을 얻어 부칠 수가 없어진다. 아버지는 바우만 나무란다. 당장 나비를 잡아다 주라며... 자신의 신세도 처량하고 화도 난 바우는 언덕에서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란 단어가 내 가슴에 울려 퍼진다. 아들을 위해설까 아니면 삶을 위함일까.. 가난한 소작인의 삶이 가슴속에 전해져 온다. 바우의 아픔도, 그런 아들의 아픔을 알지만 생존을 위해 모른 척 해야하는 아버지의 아픔도,,, 가난한 삶의 이야기 속에서 억지로 감동을 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난 공감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을 위해 자식을 위해 너무나 늙어버린 쓸쓸해 지신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난 가슴 깊은 사랑을 느낀다. 나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든든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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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오는 이야기. 가난이라는 주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바뀌지 않는,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주제이자 우리 삶의 그늘임이 분명하다. 가난이란 가진 재물에 따라 상하 관계의 권력을 형성하게 하고, 죄인이 아님에도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사회적 괴물이다. 정말이지 가난만큼 공포스러운 게 또 있을까?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무서운 덩치가 더욱 커 보이기만 할 뿐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는 가난의 연쇄살인은 삶의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만든다. 누구나 자신의 꿈을 펼치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평등의 기회가 당연히 자리하는 사회는 진정, 판타지인 것일까? 가진 자만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현실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읽는 내내 바우의 입장이 되어 내 입도 삐죽, 나와 버렸다. 가진 재산이 권력이 되는 우리의 시대상이 과거에서 많이 멀어진 현재에서도 쉽게 나타나고 있음이 더욱 속상했다. 하지만, 난 끝까지 바우를 믿는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잘못을 빌어야 하는 하위계층의 자식으로 계속 속해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지금처럼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으며 자신의 미래를 손에 꼭 움켜잡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그리고 경환이 같은 아이가 패배하기를. 가난을 이기는 힘은, 개인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순응하거나, 안주하며 타협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부지런히 달리며 노력하면, 우리 아버지의 나약한 힘에 더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물론 내 자신에게는 더할 수 없이 큰 힘이자, 세상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읽으며, 나 또한 어린 시절의 꿈꾸더 시절로 되돌아 갔다. 집이 부유한 것은 아니지만, 꿈이 있어 미래를 바라 볼 수 있었던 날들. 지금도 다시 한 번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꿈꾸던 미래를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꿈과 마주하기를 바라본다. 슬픈 현실이 과거로 물러서게 되는 그날, 내 마음 속 슬픔으로 각인 된 나비들을 모조리 하늘로 날려 보낼 것이다. 부디, 그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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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는 이야기로 이 이야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소작을 부치는 아버지가 주인 아들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나비를 잡게 되는 이야기로..난 이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아이에게 아비의 사랑에 대해 어떤 형태로던 감동을 전해 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아버지의 나비를 잡는 행위가 좀 다르게 와 닿았다.아들을 위해서가 아닌 살기 위한 아버지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바우와 경환이는 소학교에서 서로 경쟁적인 관계이다.마름집 아들 경환은 소작농의 아들 바우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하지만 이 열등감은 자신만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여전히 가난하기만 하고 그래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배움의 길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바우의 현실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경환은 방학때만 되면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나비를 잡으러 동네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바우에게 보란듯이 으스대며 행세를 한다.바우는 늘 그게 고깝고 눈에 거슬리는데 마침 경환이 쫒는 나비가 바우에게로 날아든다.바우는 별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 나비를 잡고는 그만 경환이와 시비가 붙는다. 바우에게 말에서 힘에서 된통 당한 경환은 그 분풀이로 바우네가 소작을 못 부치게 자신의 어머니에게 낮에 일을 이른다.대신 바우가 나비를 잡아와 싹싹 빌면 용서해 주겠노라 하면서.. 바우네 부모는 그만 앞일이 깜깜해져 어서 바우에게 나비를 잡아 빌러 가라고 다그치지만 바우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만 더 크다.혼자 고학이라도 할 요량으로 언덕에 누워 이생각 저 생각에 잠긴 바우는 그만 나비를 잡느라 모밀밭 두렁에서 혼자 엎드렸다 일어섰다하며 그 똑똑치 못한 걸음으로 밭두렁을 지척지척 돌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만다.바우는 그 순간 지금까지의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아버지가 무척 불쌍했고 정답고,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감격에 울음이 복받친다.아들을 위해 늙은 몸을 내던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고마워서가 아니라 저렇게밖에 살 수 없는 아버지의 그 현실이 바우에겐 너무 가슴 아팠던 게 아닐까.그래서 그 끈끈한 혈연의 사뭇침이 어린 바우에게 늙고 삶에 지친 아버지의 그 가련함을 가슴 깊이 품게 만든 것이리라.. 가끔 그럴 때가 있다.맘은 꿀떡같은데 현실로는 어쩔 수 없을 때. 바우 아버지도 그랬으리라.맘은 그깟 농사 때려치우고 아들 자식 남의 집에 가서 머리 조아리는 꼴 안 보고 살고싶지만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고 바꾸려해도 바뀌지 않을 자신의 현실에 대한 화가 되려 바우를 채근하게 만들었을 거다. 그리고 바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비의 그 타는 속을 좀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라는 그 짐이 얼마나 아버지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눌렸을까. 바우가 본 것은 자식 앞에서 부모로서 가져야 할 당위성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였을까.그래서 이 동화는 더 가슴 아프다.동시에 바우는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하는 동화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