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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시인은 너무도 많고 시집은 그것보다 더 많다.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시집의 망망대해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읽을 책을 고르는 일도 독서에 포함된다면,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좋은 시집을 고르는 순간 우리의 독서는 벌써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좋은 시집인지 아닌지 읽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문제. 그렇다면 다만 확률이라도 높일 수는 없을까. 우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간다. 그리고 줄줄이 꽂힌 시집의 제목들을 차례로 발음해 보자. 텍스트를 구두(口頭)로 옮겼을 때 영 어색한 제목들이 있다. 가령 박정대의 첫 시집 「단편들」은 그리 어색하지 않다. 반면 그 옆에 꽂혀 있는 그의 두 번째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는 몇 번을 읽어 봐도 이상하다. "음악 같은 눈"은 그렇다 쳐도 "청춘의 격렬비열도"라니? 구어(口語)는 우리가 편하게 말할 때 사용하는, 일상에 가장 맞닿아 있는 언어다. 그런 구어의 반대 격에는 일반적으로 문어(文語)를 떠올리기 쉽지만 문어는 구어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니 구어의 정반대 개념을 말하라면, 그것은 시(詩)가 되겠다. 언어예술의 첨단으로서 시의 가치는 구어에 갇히지 않고 언어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시는 결코 일상적인 말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말이어도 일상적이지 않게 써야 시가 된다. 다시 말해 시는, 그것이 정말로 시라면, 평범한 언어를 결코 믿지 않는다. 신형철이 말한 대로 시는 '언어를 의심하면서', '불가피하게 자해를 감당'하며 한 줄 한 줄 앞으로 나아간다(「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 이것이 우리가 좋은 시집을 고르는데 한 가지 힌트가 될 것이다. 제목에서 '언어를 의심한 흔적'을 찾아보는 것.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 박연준의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김민정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이것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좋은 시집이다. 이 제목들이 낯설고 '비일상적'이라고 느꼈다면 그만큼 이들이 '시적'이기 때문이라고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다. 뭐 항상 들어맞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 좋은 시집을 만난 경우가 많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로 인해 그 경우는 이번에 하나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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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나이는 어디서부터 언제까지일까, 난 지금 청춘일까 아닐까, 청춘은 마음일까 몸일까 아니면 마음과 몸이 한데 어우러져야 청춘을 누릴 수 있는 걸까. 이 시집을 읽고 있자면 아무래도 난 청춘이 아닌 것만 같다. 그렇다고 늙은 것 같지도 않으니 마치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떠돌이같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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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에 초판이 나왔고 내가 구매한 책은 2013년 9월에 출간된 1판 8쇄본이다.
맨 처음 읽었던 박정대 시인의 시가 어떤 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 이런 시를 쓰는 시인도 있구나 감탄했던 건 기억난다. 이 시집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에 남아있는 건 무가당 담배 클럽에 관한 시들. 무가당 담배 클럽에서의 술고래 낚시 무가당 담배 클럽의 기타 연주자들 무가당 담배 클럽과 바람의 국경선 이 세개의 시를 읽고 이 시들이 수록된 시집을 찾아봤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담배인데 박정대 시인의 시에는 가끔 담배가 나온다. 무가당 담배라니. 도대체 무가당 담배라니. 그리하여 박정대 시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명이 되었다. 구할 수 있는 시집은 다 샀지만 절판되어 구매불가한 것들은 도서관에서 몇번이나 빌려서 보았다. 언젠가는 재판되어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박정대 시인의 시를 읽으면 왠지 홀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시를 읽으면 왠지 슬퍼지기도 해서 깊은 밤에 읽으면 더 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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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 쪽에 있는 서시를 보면서 그냥 뒷쪽으로 넘아가지를 않았다. 계속 그 서시만을 네번 다섯번 읽고 있었다. 끌려가는 게 내 인생인가를 슬퍼하기도 하며 의무가 되어버린 사랑에도 못내 무거워하고 버거워한다. 그래서 새로이 시작되는 격렬함을 무서워한다. 격렬함은 태양의 작렬함을 연상하게 하고 작렬함은 오아시스의 갈증해소를 잘 알고 있다. 사실은 갈증해소를 먼저 하고 싶은 게 오랜 사막을 걸어온 사람들의 모습이겠다. 근데 자기가 사막을 걸어온지도 목이 마른지도 모른 여행자들에게는 사막의 인식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막 사막에 눈이 내리게 되면 사막은 시원하게 느끼게 될지 아니면 소스라치게 될지 모르겠다. 사막은 목마름이 있어야 할 곳인 것 같다. 왠지. [인상깊은구절] 서시 : 박정대 - 아무리 마셔도 목마르고, /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 나는, 사막이다 / 사막의 무사이다 / 거기다 이제는 눈까지 멀어 / 음악만이 나를, 자꾸만, 어디론가, 끌고 간다 /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것이 / 지금까지의 내 삶이었다면 / 이제는 끌려가면서라도 / 맹글어지는 것이 / 내 삶이고 / 시 나부랭이고 / 의무 같은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 나는, 여전히 사막이다 / 사막의 음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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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의 시를 읽으면 아련한 슬픔이 묻어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나만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일 수 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그것은 시인과 내가 겪었던 추억의 공유, 적어도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느꼈던 막막함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정선에서, 나는 고한에서, 산들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과 같은 곳에서 자랐다. 석탄 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고, 인생의 막장과 같은 곳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곳. 삶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의 한숨 소리에 설핏 잠이 깬 그 순간에 배웠다. 생존본능의 포로였던 아이들은 전혀 아이답지 않았고,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슬픈 매질이 내 영혼에 문신처럼 남았다.
4 만항재 아무리 달려도 이정표가 나타나지 않아 뒤돌아 보면 좁은 산길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나무들의 물결, 허공의 바다를 털털거리며 지난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이곳은 전생에 무슨 바다였나. 길이 좁아질수록 생각은 날아가고, 길이 험해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리움의 계곡, 엄나무들은 엄숙하게 머리를 길렀지만 식솔들 이끌고 산 중턱까지 와서 정착한 낙엽송, 참나무 이주민들. 아무리 달려도 너에게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아 어느새 다다른 하늘 밑, 침묵은 끝나지 않고 바람 끝에 매달려 와서 끝내 만항재, 해발1,330m라고 씌어진 곳에서 불어가는 음악, 페루, 나비, 바람.
5. 음악, 페루, 나비의 경계를 지나서 오래도록 꿈꾸던 것, 그것을 나는 만항재에서 본다.
그랬다. 만항재를 넘으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전나무 숲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정암사와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수마노탑. 황동규 시인은 태백에서 만항재를 넘어 몰운대로 차를 몰며 이렇게 읊었다. 고개가 가파르다./자장율사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가만, 자장이며 의상 같은 쟁쟁한 거물들이/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 속을 방황했을까?//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입적지 미상의 의상도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이곳 어디쯤에서?/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해발 1280m의 만항재./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가문비나무의 물결/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저 날것,/도는 군침/
태백시에서 만항재를 넘으면 바로 고한이다. 석탄산업의 부흥기였던 7,80년대에 고한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넘쳐났었다. 그 주변 지역은 다 그랬다. 전국의 사투리가 모두 모여 새로운 사투리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 억센 사투리를 시나브로 닮아갔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마스크와 헬멧을 쓰고 막장에서 꼬박 8시간을 일했다. 요새와 같았던 유배지에서 돈 벌어 도시로 나갈 꿈을 꾸었던 사람들, 그러나 천형과 같은 광산일은 대를 물려 이어지고, 지친 사람들은 '잊혀진 곳에서 잊혀질 곳으로의 비상'을 기다렸다. 도로도, 집도, 심지어 냇물까지 검었던 그곳에서 오직 산과 하늘만 푸르렀다. 봄이면 태백산맥을 넘은 높새바람이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날리고, 겨울이면 방 안의 물도 꽁꽁 얼었던 그 혹독한 지역에서 철마다 아이들은 태어나고 또 그렇게 질긴 목숨을 지켜갔다.
박정대 시인은 그 매섭던 바람의 끝자락을 닮았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그의 시는 때로는 긴 호흡으로, 때로는 순간에 정지한 채로 자연을 모방한다. 그 시뮬아크르의 세계는 현실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어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태백준령에서 자란 소년이 간절히 바라던 그 상상의 세계로. 높은 산맥을 따라 점점이 흩어진 가난한 마을들, 그 육지 속의 격렬비열도엔 음악 같은 눈이 내리고 눈처럼 고운 꽃가루가 흩날리기를... 중년의 시인은 아린 손마디처럼 절절한 꿈을 꿈 속에서도 바라나 보다.
나는 삶이 봄바람처럼 느슨하다 느낄 때 박정대의 시집을 읽는다. 그의 슬픔과, 꿈과, 음악과, 나비로 사라지고픈 불멸의 잔상과 먼 이국의 어느 섬과, 사람들. 시인의 눈에 촛불처럼 흔들리는 삶.
10 밤의 여행자들 ........ 허공에다 당신은 매일 간절한 키스를 한다. 그 입맞춤이 |
| * 박정대라는 이름을 나는 우연히 얻었다. 바람의 우연이 만들어내는 모래들의 이미지, 견디고 저항하고 스러져 아우라지는, 차마 바라보기 처참한 변화들, 편린, 파편, 느리게 박살나는 존재를 침묵으로 바라보는 맑고 고요한 눈. * 문학의 성좌에 찬연히 빛나는 청춘. 요절로 얻어진 청춘은 사실 실체보다는 아우라가 더 크다. 세상에 요절 아닌 죽음이 어디 있나. * 사막에서 유목하는 인간은 무엇보다도 침묵과 절제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가볍게 비워내야 들을 수 있는 음악, 눈 감아야 보이는 풍경, 차갑고 황량한 사막에서 존재한다는 의미는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투쟁, 순간순간의 준엄한 생존이 맑고 느리게 흐르는 음악처럼 이어진다. 부드러운 비유도 필요 없이 실체가 비유 자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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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면 담배 피우고 싶다는데 정작 술은 마시고 담배는 끊은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다. 아무튼 술은 둘째치고 담배가 세금을 엄청 거둔다는 건 사실이다. 금연에 쓰는 건 물론이고, 함부로 담배꽁초 버릴 때 화재가 생길 걸 예상하여 그에 대비한 소방 관련 세금까지. 그렇다고 대안인 전자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도 최근 밝혀졌으니, 그냥 피지 않는 걸 추천한다. 대체 왜 복지 관련 세금 내긴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들이 담배는 거리낌없이 사냐고... 나는 정말 강원도를 내 고향으로 삼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서 약 4년간 살았다는 동인천은 기억에 없다. 내가 살았던 서울시 금천구에는 그 나름대로의 자연은 존재했지만 드넓은 바다가 없었다. 그런 곳에서 사람은 많으니, 이들이 점점 마음이 비좁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왕따를 당했다. 개인을 공동체에 포섭시켜야 하는 지역에서 오히려 소외라는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강원도는 그런 우리 가족 주변을 산과 바다로 둘러싸 품어주고, 이곳의 여러 생물들은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여행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단지 여행하는 과정이라던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추가하는 책을 좀 더 사랑한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난 아직도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건지.
얼마 전에 페친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분 시집을 사 읽은 적이 있는데 너무 별로였어서.... 실망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페북에서 추천한 시들은 의외로 몹시 괜찮다나. 이 분은 확실히 시집을 잘 골라야 할 것 같다. 이 시집에서도 여행, 사랑, 뭐 그런 소소한 테마들이 확실히 많이 나오더라. 부정적으로 말하면 시시한... ㅋㅋㅋ 근데 간혹 그런 시들이 눈에 띄어서 반전미 요소가 있다. 위에 인상깊은 구절처럼 우화적인 이야기들이 많지만, 세부적으론 사회현상을 깊이있게 다루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
혜화동과 관련된 시에서 쓰여진 걸 보니 시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11월인 듯하다. 마침 지금 11월; 이 책 전엔 세월호 책 읽었는데 중간 정도 읽은 날 갑자기 재조사한다더라 요새 타이밍 너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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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요즘 보고 있는 중인 기븐이란 애니메이션이 생각난다. 거기서도 주인공이 뭔가 흐느끼듯이 노래 부르면서 기타 연주를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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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 촬영지에서 강아지를 데려와서 이름을 박하라 붙였다고 한다. 대체 이 분 정체가 ㄷㄷ 물론 이 시의 이름도 영화 제목에서 따온 건 당연하다. 그나저나 짤은 9개월된 강아지라 하지만 여기서의 강아지는 무려 2달된 강아지입니다 사실 쌤쌤 아닌ㄱ...(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