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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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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어떤 계기로 아마도 절필 선언 후 10년만의 컴백 소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이유로 백민석 작가의 작품 <죽은 올빼미 농장>을 읽고 나서 작품의 기이한 분위기가 좋아져서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 되었다. 여러 개의 단편이 있는데, 개인의 취향이나 호불호에 따라서 크게 갈릴만한 작품들이며, 이 작품집 내에서도 서사의 흐름만 봤을 때는 강한 인상을 준 것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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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어떤 계기로 아마도 절필 선언 후 10년만의 컴백 소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이유로 백민석 작가의 작품 <죽은 올빼미 농장>을 읽고 나서 작품의 기이한 분위기가 좋아져서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 되었다. 여러 개의 단편이 있는데, 개인의 취향이나 호불호에 따라서 크게 갈릴만한 작품들이며, 이 작품집 내에서도 서사의 흐름만 봤을 때는 강한 인상을 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편차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작품집의 거의 모든 단편들이 연작인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로는 우선 모든 소설에서 유사한 배경과 캐릭터의1인칭 화자의 주인공이 자기 고백을 하듯 비슷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유사하여 한 단편 소설에서 받은 화자의 성장 배경을 독자 마음대로 다른 단편에서 적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쓰인 단편들은 대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당대의 분위기, 풍요와 낙관의 거품이 터진 IMF 직후의 소설들이고, 이러한 거품의 상실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인기와 어떻게서든 연결시켜볼 수 있는 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시에 먹고 살아가는 일에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고 당대의 작가들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으므로 당시 작가들이 하루키의 영향을 얼만큼이나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할 말도 없다. 그러나 만일 한국 작가들이 하루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당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분위기가 자기 속으로 침잠하고 자기만족적 보호막을 상실 혹은 아픔 불행 등 그게 무어든 그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부정적 파편들을 덮어주는 쪽으로 독자들과 만났을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뚜렷한 서사를 가졌다기 보다는 어떤 기억을 끌어내 전달하는 화자의 자아와 만나는 느낌으로 읽힌다. 


여러 개의 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표제작인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다. 화자인 나는 어릴 때 정원이 딸린 넓은 저택의 심부름꾼 아이였다. '나는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었다'로 그 어린시절의 회상이 시작되는 이 소설은 아무 생각 없이 설렁설렁 읽다가 깜짝 놀랄만한, 그러니까 반전같은 느낌의 충격을 주었다. 지난 번에 읽은 <죽은 올빼미 농장>  때 인형의 정체를 서서히 인식하면서 별 내용없는 소설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걸 감안하면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백민석이라는 작가를 다시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장원의 이야기는 마치 먼 시대, 주인과 하인의 뚜렷한 계급이 있었던 어떤 먼 시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아이는 소설 내에서 장원이라고 부르는 저택의 어린 심부름꾼 소년이고, 그가 하는 일은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집안 심부름이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 가는 시간에 장원으로 출근을 하는 아이는 물을 받아 나르고, 집사에게로 가서 하루치 일거리를 받아 적고, 하녀장을 따라 시장에 가고 부엌 쓰레기를 싣는 것을 거들고 토끼 밥을 주는 등의 잡다한 일을 하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고, 매주 주급을 받는다. 


19년 만에 장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그곳을 방문한 그는 모텔을 발견하자 그곳에 들어가서 여자를 부르고 남편보다 잘해줬냐고까지 묻는다. 이 사소한 행위를 굳이 리뷰에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 다수에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 여성을 상품으로 사는 광경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길어야 20년 밖에 안된 시대인데, 지금과 그 때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만, 지금은 소설 속에 이런 광경이 드물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 때보다는 더 나아졌고, 남성들 스스로도 성적 욕망을 돈으로 사서 해결하는 걸 과시하는 게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걸 깨달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당대 여성 독자들은 한국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불편한 일들이 일어나는 상황들을 늘 목격했고, 알게 모르게 여성의 성이 남성의 욕망의 도구로 상품화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관습으로 인식했을 터다. 시대가 조금이라도 변한 지금, 챙피한 걸 알게 되었기를 바란다. 이 짧은 소설에서 굳이 모텔에서 여성을 불러 섹스를 한 상황을 모텔은 묘사한 이유는 어린 심부름꾼 시절 텍사스촌을 돌아다니던 어린 자신을 회상하면서 당대의 분위기와 지금을 비교하기 위해서인 거 같다. 주급을 받아 유원지로 신나게 뛰어다니는 길목에는 텍사스촌이 있었고, 그곳을 왔다갔다 하며 누나들과 마주치는 일은 어린 심부름꾼의 놀이 중 하나였다. 


이 소설은 화자 빼고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알파벳 소문자 두 자로 지칭된다. 화자가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여성은 xp이고, 이 이야기의 주제적 인물인 주인집 아들은 aw이다. 그에게 aw는 하나 뿐인 친구이고, aw 역시 그가 하나뿐인 친구였다. 그리고 19년 만에 장원을 다시 찾는 이유를 허둥거리며 찾은 이유를 그는 자신에게 왜 aw가 떠올랐는지 알아야겠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정원을 찾자 aw는 이미 죽은 사람라는 걸 알게 된다.  심부름꾼이 도련님이라고 부른 aw는 그보다 서너살 위의 중학생으로 외국인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가 학교를 다녀와서 부르면 달려가 그와 시간을 보내며 친구가 되었다.  허약한 '도련님'과 친구가 되어 주는 일도 그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던 것이다.


aw와 친해지면서 그는 점점 aw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aw를 흉내내기 시작한다. 그의 자세를 흉내내고, 그의 걸음걸이를 베끼고,  그의 습관을 흉내내고, 그의 웃음을, 그의 표정을 그대로 베끼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차례로 그의 행동거지들을 베끼자, 계속해서 다른 베낄 거리들도 눈에 들어오고, 그가 읽는 책을 읽고 그의 말투를 흉내내고 말투를 베낀다.


나는 전날 aw가 내게 했던 얘기들을 그의 목소리와 거의 흡사하게, 똑같은 목소리와 어투로 되풀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직나직하고 유려하게, 물론 근본적인 차이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내 성대까지 그의 성대와 똑같이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걸음걸이든 표정이든 목소리든 어투든 내가 aw를 베낀다고 해서 그와 똑같이 될 순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로 알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왜 그를 자꾸 베끼려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aw의 일기를 훔쳐보게 되고, 그의 일기 문장은 그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탐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허접한 노트 한 권을 사서 일기장까지 베끼기 시작한 어린 심부름꾼. 그가 19년 만에 그곳에 가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와 대화하는 화자 xp가 그에게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말은 스포라 생략하지만, 휴 하고 한숨이 나올만큼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g******1 2019.10.16.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eBook 주간우수작
한국 문학이 장난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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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중간 놀이 시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2교시 끝나고 운동장에 나가서 교장 선생님 말씀 듣고 체조도 하는 시간이었다. 월요일을 기다렸다. 월요일에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상을 주는 순서가 있었다. 몇 학년 몇 반 누구, 부르면 구령대에 올라가서 공손하게 상을 받고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받을 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월요일이 되면 설렜다. 상을 받는 아이들의 뒷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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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 중간 놀이 시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2교시 끝나고 운동장에 나가서 교장 선생님 말씀 듣고 체조도 하는 시간이었다. 월요일을 기다렸다. 월요일에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상을 주는 순서가 있었다. 몇 학년 몇 반 누구, 부르면 구령대에 올라가서 공손하게 상을 받고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받을 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월요일이 되면 설렜다. 상을 받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6년 내내 부럽게 쳐다만 봤다.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시간에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구령대에 올라가서 상을 받으면 앞으로의 내 삶이 조금은 환해질 것 같았다. 넌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전교생이 치는 박수에 그런 위로와 격려의 말이 섞여 있을 것 같아 구령대에 올라가서 상을 받아 보고 싶었다. 
  나는 한참이나 모자란 아이였다. 글씨도 못 쓰고 그림도 못 그리고 공부는 더 못 했다.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은 아이였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나라는 아이가 여기 이렇게 있다고 박수로써 상장으로써 증거하고 싶었다. 위로와 격려, 축하의 박수. 짝짝짝. 그렇게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박수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나의 삶의 모습이 어떠할지. 슬프고도 기이한 전조를 느꼈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의 모습이 예상되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상과 박수를 받았더라면 그게 자신감으로 연결돼서 활기찬 인생 계획을 세우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들을 하며 나는 급격히 늙어갔다.
  매달 내야 하는 방세, 급식비, 교복비, 수학여행비, 분기별로 내야 하는 납부금. 돈 걱정만 하며 살게 될 미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 친구를 보라」의 '나'처럼 사람들은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장차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사채 빚이나 지지 않고 살면 다행이지라는 자학적인 생각들. 콤플렉스는 심해지고 사람들이 나만 미워한다는 피해 망상까지 생겼다. 
  책을 읽었다. 어쩌다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돈이 생기면 시내에 있는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돈이 부족하면 헌책방에 갔다. 지하방으로 책들을 사다 날랐다. 원체 멍청해서 읽어도 이해가 안 됐다. 그래도 읽었다. 읽는 동안 낮이 밤으로 봄이 여름으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시간이 마구 흘러갔다. 읽다 보니 대학교에 들어가 있었다. 책을 읽는 것외에는 한 것이 없었는데. 들어가서도 열등감을 이겨 내기 위해 읽었다. 글은 여전히 못썼다. 못 쓰는 대신 잘 쓴 문장들을 읽었다. 내가 아니어도 잘 쓰니까.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었다. 『목화밭 엽기전』도 읽었다. 세련된 문장, 소설의 구조를 뛰어넘는 구조, 폭력스럽고 야만스러운 이야기, 그런 인물들, 짠하고 애처로운 '나'의 고백들, 사라진 작가, 선생들도 모르던 그의 행방. 요즘 작가 중에 누가 제일 잘 쓰냐는 질문에 다들 백민석.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백민석. 그가 사라지고 젊은(젊다고 하니까, 젊은) 작가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새롭다, 이전에는 없는 방식이다, 참신하다, 그로테스크하다, 번뜩인다는 심사평을 달고서. 
  월요일, 전교 1등이 사라져버린 틈을 타, 이름을 불러서 구령대에 오르게 한 후 상을 주고 박수를 치게 했다. 기괴한 일인데 전교 1등은 단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가 전교 1등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선생들은 돈 많고 집안 좋고 말 잘 듣는 애들만 뽑아서 잘한다, 칭찬하고 상을 주고 박수를 받게 했다. 몇몇 애들만 전교 1등에게 다가가서 힘내라고 응원해 줄 뿐이었다. 잘 버티고 꿋꿋하게 지내던 전교 1등은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선생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라진 전교 1등 대신 그의 그늘에 가려졌던 애들이 구령대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뭘 모르는 아이들은 축하해주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줬다. 
  백민석이 사라지기 전 출간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고 이래도 되나, 이러면 안 되는데 걱정이 들었다. 이름을 불러주지도 상을 주지도 박수를 쳐주지도 않았다. 지독히 슬프고 우스운 이야기. 소설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았던 희망들을 어둡고 슬프게 그려내고 있었다. aw로 대신한 나의 상상 속 친구. 시체로 표현되는 살아있는 자들과 맺고 싶었던 관계. 아파트 복도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유년. 백민석의 문장은 교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문장을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런 문장들을 쓰려면 엄청나게 많은 글들을 읽어야지 쓸 수 있다. 그런 문장들은 쉬지 않고 한달음에 쓰는 문장들이다. 지우지 않으려고 머릿속에서 문장의 순서를 짜 맞춘 뒤 바로 써 내는 것이다. 대단한 감각. 누굴 흉내 내려고 하지 않는다. 쓰다 보니 자신만의 세계가 완성이 되었다. 유년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세상의 적의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려고 글을 썼다. 용감해지진 않았지만 매일 밤 자괴감에 빠져 불면증을 겪는 일은 적어졌다. 
  두 번째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고 거봐, 우리 생각이 맞잖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출간된 지 15년이 넘은 소설집인데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 과거의 책이 아니다. 연도를 헤아릴 수 없는 먼 미래에서 우리에게 전달된 예언서이다. 소설의 구조는 전복되고 문장은 날이 잔뜩 서서 우리를 포함한 모두의 심장을 찌른다. 초등학교 이후로도 공식적인 칭찬과 격려를 받아본 적이 없다. 문서화된 축하의 말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비뚤어지지도 않고 사채 빚도 지지 않았다. 이유는 구령대에 올랐던 시간이 지나면 그 짦은 순간을 다시 경험해 보고 싶어서 기술만 습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환호의 순간이 없는 일상을 보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도 눈치챘다. 우리는 지하, 책만 가득한 세계에서 당신의 책들을 읽으며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 『목화밭 엽기전』이후 한창림의 삶까지도.



s*****m 2016.09.20.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백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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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백민석 작가의 이 책에 대해서 쓴 글을 보고 제목부터 뭔가 매력적이다 싶어서 주문을 했었다. 띄엄띄엄 읽느라고 겨우 다 읽었는데 책이 도착했을 당시에 새 책인데도 불구하고 표지의 은색에 기스가 나 있는 상태라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계속 미루기만 했던 마음가짐이 책 읽는 걸 방해한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성별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은 아닌데 최근 들어서 남성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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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백민석 작가의 이 책에 대해서 쓴 글을 보고 제목부터 뭔가 매력적이다 싶어서 주문을 했었다.
띄엄띄엄 읽느라고 겨우 다 읽었는데 책이 도착했을 당시에 새 책인데도 불구하고 표지의 은색에 기스가 나 있는 상태라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계속 미루기만 했던 마음가짐이 책 읽는 걸 방해한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성별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은 아닌데 최근 들어서 남성 작가의 책에서 비춰지는 여성의 모습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서 여성의 모습을 크게 왜곡해서 그려놓는 남성 작가의 책은 손이 덜 가게 된다.
표제작인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 나오는 장원을 생각하면서 어릴 적에 살던 넓은 정원이 딸린 집을 생각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두 암호같은 영어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끝까지 눈에 익지 않고 입에 익지도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든 단편은 '아주 작은 한 구멍'.
좀 이해하기 힘들었던 단편은 꽤 있어서 백민석의 다른 소설을 읽어본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예전 표지에 비해서 바뀐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c*******b 2017.03.31. 신고 공감 1 댓글 0